외세에 의한 분렬,전쟁이냐 평화이냐
(평양 3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한생을 다 바쳐오신 민족의 위대한 수호자이시다.
주체34(1945)년 8월 당시 미국은 조선지배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주둔 일제침략군의 무장을 해제한다는 구실밑에 쏘미량군의 《무장해제분담선》이라는것을 고안해냈다. 조선은 외세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렬되게 되였다.
미제는 《무장해제분담선》을 구실로 그해 9월 8일 총 한방 쏘지 않고 남조선에 기여들었으며 강점 첫날부터 군정을 실시하였다.
조선을 세계제패야망실현의 전초기지로 만들 목적밑에 남조선강점직후부터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침략전쟁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로선을 견지하시였으며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였다.
1948년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리승만괴뢰도당의 《단선단정》책동으로 말미암아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에서와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회의 보고에서 지체없이 전조선적인 총선거를 통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해 8월 21일 북반부에 들어온 남조선대표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남북총선거를 성과적으로 실시하여 통일적중앙정부를 수립하자》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발표하시였다.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고 통일적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할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이에 따라 25일 전조선적인 최고인민회의창설을 위한 총선거가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북과 남의 각계층을 대표하는 572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선거되였다.
9월 2일 평양에서 진행된 력사적인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담아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으로,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9일 수령님께서는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엄숙히 선포하시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밀고나가시였다.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는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두가지 방향에서 대응조치를 취하였다.
그 하나는 나라의 방위력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의 위험을 막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에 의하여 공화국정부는 조국을 자주적으로,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안들을 여러차례 제기하였다.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북벌》소동과 관련하여 내란을 피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1950년 6월 상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확대회의를 열고 평화통일을 추진시키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였다.
여기서 남북조선 전체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인민들에게 보내는 평화적조국통일추진제의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에서는 남북조선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적최고립법기관을 창설하며 조국해방 5돐이 되는 8.15에 최고립법기관회의를 서울에서 소집할데 대한 방안을 제기하였다.
민족의 단합을 실현하며 통일위업을 가장 빨리 실현할수 있는 이 방안은 전체 조선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공명을 받았다.
1950년 6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국전선중앙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평화적조국통일추진에 관한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평화적조국통일방안들을 무작정 반대해나서면서 조국전선중앙위원회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하여 나간 3명의 파견원들까지 불법체포하고 야수적인 박해를 가하였다.
남조선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화국의 평화적조국통일방안에 대하여 끝끝내 범죄적인 침략전쟁으로 대답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