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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 탄생 100돐 특집《김일성조선》(14)
   빈터에서 일떠선 영웅의 나라

(평양 3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해방전쟁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파괴의 후과는 참으로 혹심하고 재난적인것이였다.

미제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하여 8,700여개의 공장, 제조소건물들과 생산설비들이 파괴되였으며 수십만정보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고 9만정보의 부침땅면적이 줄어들었다.

발전소와 저수지들도 혹심하게 파괴되였다.

모든 도시와 농촌들이 재더미가 되였다.

미제는 전대미문의 파괴를 저질러놓고 이제 조선은 100년이 가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저들은 비록 패했지만 조선의 앞길도 막막할것이라고 악에 받쳐 뇌까렸다.

하지만 미제는 오산하였다.

승리한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전시생산을 위한 투쟁을 전후복구건설준비사업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주체40(1951)년 초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게 하시였으며 1952년 5월에는 평양시복구건설에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1953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모든것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기성리론과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주체사상과 전후 나라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하시여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독창적인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제시하시였다.

나라의 도처에서는 전쟁의 후과를 가시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복구건설의 방대한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시였다.

강남요업공장을 찾으시여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벽돌을 시급히 생산보장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강선제강소(당시) 로동자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제강소를 빠른 시일안에 훌륭하게 일떠세워 영웅적조선로동계급의 본때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시위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흥남비료공장을 찾으시여 비료공장이 폭격당할 때 함주벌농민들이 땅을 치며 울었다는 사실을 무심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그들을 공장복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장진강발전소와 함주군 조양리, 평원군 삼봉리, 원산농업대학(당시)을 비롯한 수많은 공장, 기업소, 농촌, 교육문화기관 등 그이의 발자취가 어려있지 않은곳이란 없었다.

전후복구건설에 힘차게 떨쳐나선 강선의 로동계급은 자체의 힘으로 파괴된 전기로를 복구하여 전후 40일만에 첫 쇠물을 뽑아냈다.

성진제강소(당시) 로동자들도 전기로를 복구하여 생산에 착수하였다.

철도운수부문 로동자들은 철길과 다리, 화차들을 복구정비하고 정전후 며칠만에 모든 철도간선들에서 렬차운행을 보장하였다.

농민들은 파괴된 농경지와 관개수리시설들을 복구정비하면서 영농사업을 다그쳤다.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후 짧은 기간에 중공업과 경공업, 농촌경리가 급속히 복구발전되였으며 지난날의 식민지적편파성이 극복되여갔다.

평양시가 페허우에서 웅장화려하게 일떠서고 함흥, 청진 등 여러 도시들이 빠른 속도로 복구되여나갔다.

창조와 건설의 영재이시며 령도의 거장이신 김일성동지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셨기에 영웅의 나라 조선은 남들이 걸어보지 못한 력사의 초행길을 헤치며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에서도 력사적인 승리를 이룩할수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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