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족의 기억속에는 남조선 광주시의 애국적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여 대중적인 항쟁에 떨쳐나섰던 1980년 5월 18일이 깊이 새겨져있다.
민주화의 싹을 총칼로 짓밟고 친미파쑈통치체제를 유지연장하기 위한 군사파쑈도당의 폭거에 항거하여 그들이 일으킨 인민봉기의 불길은 삽시에 전라남도의 17개 시, 군과 전라북도의 전주 등으로 파급되여갔다. 참가자수는 연 100여만명에 달하였다.
봉기참가자들은 도시에서 계엄군을 몰아내고 이 일대를 완전한 해방구로 만들었으며 정예무력의 포위공격속에서도 도시를 10일간이나 사수하였다.
봉기는 미국의 비호, 조종밑에 감행된 군사파쑈도당의 야만적인 탄압에 의하여 좌절되고 도시는 《피의 목욕탕》으로 변하였다.
당시 대살륙전의 각본을 짜놓은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휘하에 있는 괴뢰군 사단들, 기갑부대와 비행대대 그리고 땅크와 장갑차, 대형직승기와 미싸일 등을 군사파쑈도당에게 넘겨주어 파쑈살인마들을 동족살륙전에로 내몰았다.
1996년 2월말 남조선《련합뉴스》의 전신인 《련합통신》이 밝힌데 의하면 광주사태때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사령관으로 있었던 윅캄은 한 공식석상에서 그때 자기가 남조선괴뢰군 20사단의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실토하였다.
미국신문 《져널 오브 코미스》 1996년 2월 27일부에 의하면 서울주재 미국대사는 1980년 5월 7일 미국무성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남조선군부를 사촉하여 시위진압경찰무력을 군병력으로 증강 또는 교체할 의도를 밝혔다.
9일에는 자기의 이러한 의도를 미행정부가 승인하였다는것을 남조선당국에 직접 통보하였다.
미국의 이런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기때문에 남조선의 군사파쑈도당은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고 하면서 남녀로소를 가림없이 쏘아죽이고 무한궤도로 깔아죽이고 생매장해죽이는 등 처참한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국은 그 무엇으로써도 광주학살만행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다.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있는 미제와 그에 추종하는 매국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언제가도 사회의 진보와 민족의 단합, 통일을 실현할수 없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였다.
우리 민족은 자주통일의 기치높이 굳게 단결하여 불행과 고통만을 가져다주는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몰아내고 조국통일의 숙원을 기어이 성취하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