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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들의 애국의 넋이 어린 모란봉
(평양 6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수도 평양에는 모란봉이 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조선민족의 삶의 터전인 이 땅, 이 하늘아래에서 모란봉은 별로 크지 않은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사상과 넋이 어려있는 모란봉은 조선의 명승, 평양의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되고있다.

로동당시대와 더불어 인민의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변모된 모란봉,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사회주의리상향으로 전변될 내 조국의 본보기로, 아름다움의 축도로 되기까지에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도 많다.

사연깊은 식수절

지금으로부터 66년전인 주체35(1946)년 3월 2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와 함께 모란봉에 오르시였다.

침략자들의 발굽밑에 무참히 란도당한 모란봉을 가슴아픈 눈길로 둘러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모란봉에 나무도 많이 심고 꽃들도 많이 심어야 하겠다고, 모란봉을 공원으로 잘 꾸려 평양시민들의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국의 산과 들을 아름답게 가꿀 웅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가지꺾어진 한그루의 나무를 보시고는 모란봉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이곳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마음대로 다치지 말아야 한다고, 오는 사람마다 나무가지를 꺾고 꽃을 꺾으면 남는것은 유적과 산밖에 없을것이라고 가슴아프게 말씀하시였다.

해방후의 첫해 그 봄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에 깊이 새겨진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찾아주신 내 나라, 내 조국땅우에 푸른 숲 우거지고 인민의 행복이 꽃펴나는 지상락원을 반드시 일떠세우실 불같은 맹세와 의지였다.

바로 한해전 10월 14일 뜻깊은 이 기슭에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시던 수령님의 절절한 호소가 다시금 그이의 가슴을 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좋은 사회주의리상촌을 보란듯이 일떠세우실 애국의 깊은 뿌리가 내려지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의 그 자욱, 그 업적을 길이 빛내이시기 위해 력사적인 3월 2일을 식수절로 제정하도록 해주시였다.

이 땅에서 숲을 가꾸는 새 력사, 아름다운 조국건설의 력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란봉을 남달리 사랑하시였다.

전화의 나날 적의 폭격속에서도 모란봉에 자주 오르시고 멀리 평양을 떠나시여서도 모란봉을 언제나 마음속깊이 간직하고계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러던 1952년 8월 어느날 그이께서는 동무들로부터 평양시의 피해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시였다.

동무들의 걱정어린 얼굴들을 한동안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눈앞에는 불현듯 모란봉의 정겨운 모습이 펼쳐졌다.

잊을수 없는 3월 2일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그후 1948년 9월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수령님을 공화국 내각수상으로 높이 추대한 크나큰 영광속에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가 장내를 진감하던 모란봉극장…

참으로 민족의 운명개척과 인민의 새 삶과 더불어 거대한 력사적사변들을 안고있는 평양의 모란봉이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을 향해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모란봉의 소나무는 꿋꿋이 살아있다고, 미국놈들은 그 어떤 폭탄으로도 우리 조국을 절대로 불태울수 없다고 절절히 토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의 일기장에 《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라는 내용의 일기와 함께 시 《조국의 품》을 쓰시였다. 그 시에 선률을 붙여 그해 12월 31일 설맞이모임에서는 몸소 풍금을 타시며 이 노래를 부르시였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과 그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슴속에 모란봉은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모란봉의 아름다움, 그것은 곧 조국의 품, 자애로운 수령님의 품이라는 고귀한 진리를 새겨주며 세월의 언덕넘어 오늘도 메아리쳐오는 위대한 신념의 선언-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

내 나라를 그 어떤 원쑤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강위력한 나라, 이 세상 가장 살기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일떠세우리라, 우리 인민을 가장 존엄높고 강의한 인민, 사회주의부강조국에서 자자손손 복락하는 가장 행복한 인민으로 되게 하실 애국애민의 웅지가 더욱 굳세게 자라나고있었다.

그날의 뜻깊은 사연과 온 나라 인민의 절절한 념원을 담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모란봉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만수대언덕우에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지게 되였던것이다.

우리의 멋, 우리의 넋을 최상으로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이름높은 모란꽃처럼 산세수려한 명산에 유정한 합각지붕을 떠이고 황홀한 자태를 드러낸 모란각.

민족성과 현대성, 인민성이 훌륭히 조화된 모란각이 일떠선데는 또 얼마나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던가.

1977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한 건설잡지에 이 나라에서 이름있다고 하는 설계가의 아들이 발표한 담화내용이 실리였다. 그자는 제 애비가 과거 설계한 《훌륭한 건축물》들이 방코크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에 있는데 그중의 하나인 평양의 모란봉에 있는 력사박물관건물은 동방건축술의 《표본》으로 되고있다고 줴쳐댔다.

반만년력사국인 조선의 《거인문화》에 감히 후진적인 야마도민족의 《난쟁이문화》를 올려세워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음흉한 기도가 깔려있는《미마나미야께》설의 현대판 변종으로서 조선민족과 문화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행위였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이자가 과거 일제가 조선에서 략탈만 한것이 아니라 이런 《유익》한 일도 했다고 뇌까린것이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을 합리화하고 군국주의부활을 공공연히 선동하는 망발이였다.

그에 대해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란봉의 그 건물을 흔적도 없이 헐어버리고 거기에 인민을 위한 우리 식의 봉사건물을 멋들어지게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해 착공한지 불과 두달만에 그 자리에는 조선식건축물인 모란각이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다.

조국해방 32돐을 며칠 앞둔 8월 10일 친히 이곳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록음속에 들어앉은 모란각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동안 정겹게 바라보시더니 모란각이 상상외로 빨리 잘 건설되였다고, 이제는 일제의 잔재가 아예 없어졌다고, 그러니 그 건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자들이 아마 호된 타격을 받았을것이라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며칠후 조선중앙통신은 《모란각이 새로 일떠섰다》라는 제목의 보도기사를 대외에 내보내였다.

분량이 1,200자정도밖에 안되는 기사였지만 재일동포들을 비롯한 조선민족의 가슴마다에 민족적자부심을 더해준 가슴후련한 소식으로 되였으며 일본의 《난쟁이문화》를 아예 납작하게 짓뭉개놓은 철퇴가 되였다.

로동당시대에 훌륭하게 꾸려진 정각들과 련못, 폭포들에 이어 모란각은 물론 을밀대, 최승대를 비롯한 옛건축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란봉은 모든 면에서 철저히 우리의 멋, 우리의 넋을 살린 최상의것으로 되여야 한다, 그 형식뿐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명실공히 조선의 봉우리, 민족의 봉우리로 솟아 빛나야 한다,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였다.

내 나라, 내 조국을 한품에 안으시고 품들여 가꾸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의 뜻과 실천은 이렇듯 숭고한것이였다.

모란봉처럼 가꾸고 넘겨주자

모란각을 찾는 사람들은 명산에 명음식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모란봉이 인민을 위한 가장 완전무결한 명산으로 되기까지 깃든 뜻깊은 사연을 다는 알지 못할것이다.

2008년 6월 점심시간의 짧은 휴식마저 미루시고 새로 개건된 모란각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란각에 깃든 사연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며 오랜 시간에 걸쳐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지붕의 청기와며 처마밑 원형기둥의 꽃장식, 조선식기법을 잘 살린 건축물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기본건물곁에 잇달린 야외식사칸을 보시고는 겨울에도 식사할수 있게 유리문을 달아주니 온도도 보장하고 건물도 품위있다고 하나하나 평가해주시였다.

앞으로 모란각에 개방식으로 된 넓은 식사홀들을 더 꾸려주며 주방의 소독대책 등 위생안전성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는 한편 개건된 건물에 맞게 봉사활동을 더 잘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그이께서는 모란각을 국수집으로 운영하면 육수와 꾸미를 만들때 적지 않은 부산물이 나오는데 그것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면 모란봉의 자연환경에 손상을 줄수 있다고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는 모란각에서 국수대신 수려한 자연환경에 어울리게 청량음료들과 빵, 꽈배기, 지짐, 통닭구이같은것을 봉사하는것이 더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명쾌한 가르치심이였다.

명산에 명음식!

그로부터 얼마후에는 또다시 모란각에서 김밥도 잘 만들어 봉사하도록 방향을 주시고 그 방도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마음써주시였다.

이렇게 새롭게 태여난 모란각이고 그렇게 품들여 가꾸어오신 모란봉의 아름다움이다.

한그루의 나무, 한떨기의 꽃송이로부터 숲속에 자리잡은 하나의 건축물, 거기서 인민이 즐기는 하나의 음식물에도 오로지 인민을 위한것, 우리의것으로 아름답게 정화되여있는 모란봉.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한생토록 이어오신 인민사랑의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땅우에 현실로 펼쳐가시던 내 나라, 내 조국의 모습이였고 축도였다.

모란봉처럼 사랑하고 모란봉처럼 가꾸어가자, 모란봉처럼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조국을 우리 후대들에게 넘겨주자!

이것이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조국관, 인민관, 후대관이다.

오늘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의 사상과 넋을 그대로 체현하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김일성,김정일조선은 앞으로 더더욱 아름다운 나라로 강성번영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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