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미국이 조선전쟁을 도발한 때로부터 62년이 되였다.
1950년 6월 25일 미국에 의해 강요된 조선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막대한 인적 및 물적피해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력사의 진실을 외곡하면서 오늘도 대조선압살책동에 계속 매달리고있다.
조선전쟁도발자의 책임에서 벗어나며 지배주의적야욕을 실현하려는 어리석은 망동이다.
력사적사실들은 조선전쟁의 도발자,전범자로서의 미국의 정체를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세계제패전략의 필연적산물
조선전쟁은 미국의 세계제패전략의 필연적산물이다. 미국의 침략적대외정책의 연장이였으며 그 직접적결과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두목으로 등장하게 된 유리한 지위를 리용하여 《세계에 대한 지도》,세계제패의 실현을 당면한 대외정책의 전략적목표로 내세웠다.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45년 12월 19일 국회에 보낸 《교서》에서 《우리들은 제1차 세계대전후 윌슨대통령이 우리에게 부여하기를 원하였던 지도적지위를 이제야 인수하게 되였다.》고 뇌까리면서 미국은 기꺼이 《세계를 지도》할 사명을 맡아나서야 한다고 고아댔다.
미국은 세계제패야망의 실현을 위하여 장성강화되는 사회주의나라들과 세계혁명력량을 반대하는 랭전을 선포하였으며 이른바 《견제전략》이라는것을 들고나왔다.
트루맨이 1947년 3월 미상하량원 합동회의에서 선포한 이른바 《트루맨주의》는 사회주의력량,세계자주력량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포고였으며 세계제패전략,《견제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현할데 대한 선언이였다.
《트루맨주의》의 선포와 《견제전략》의 수립은 미국이 세계제패를 위한 《반공십자군원정》을 개시하였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를,아시아에서도 조선을
미국은 세계제패전략수행에서 아시아,극동을 중시하였다.
당시 맥아더는 《유럽은 죽어가는 체계》이지만 8억의 인구를 가진 아시아야말로 《앞으로의 1 000년의 세계력사의 전진을 결정할것》이라고 하면서 아시아를 손안에 넣지 못하면 세계전체를 잃고만다고 주장하였다.
미국반동정부는 겉으로는 유럽중심주의를 표방하였으나 맥아더를 비롯한 《아시아제일주의자》들의 주장에 끌려 실천에서는 아시아중시정책으로 나갔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조선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1949년 1월 28일부로 된 미국무성 정보조사국의 《극비문건 제4849호》에는 《조선이 차지하고있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지리적위치로 하여 조선과 그 인민을 좌우하는것은… 극동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다른 어떠한 국가》에서도 가치있는것이며 《정치적으로 조선이 미국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은 물론 의심할바 없다.》고 씌여있다.
미국은 조선이 군사전략적위치로 하여 극동의 어느 지역에도 군사적타격을 가할수 있는 전략적요충지로, 중국과 쏘련의 극동지역에 쳐들어갈수 있는 《건늠다리》,《극동의 전초선》으로 된다고 보았다.
맥아더가 《조선은 대륙에로의 건늠다리》이며 조선의 전지역을 정복하는것으로써 《우리들은 쏘베트씨비리와 남방을 련결하는 유일한 보급선을 산산이 끊어버리고… 울라지보스또크와 싱가포르사이의 전지역을 지배할수가 있을것이다.》라고 떠벌인것은 그 한 실례로 된다.
미국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직후 조선의 북과 남이 판이한 길을 걷고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조선을 공산주의와 대치하고있는 동방의 전초선,동서방간의 정치군사적대결점이라고 떠들었다.
해방후 우리 공화국이 세기적변혁을 이룩하며 사회주의를 향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하고있는데 대하여 두려워하면서 조선을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모든 성공이 달려있을지도 모르는 리념상의 싸움터》,《미국식민주주의와 공산주의사이의 대결의 시험장》으로 규정하였다.
결국 전쟁의 방법으로 전조선을 식민지화하는것을 대조선정책의 기본으로 내세우게 되였다.
전쟁만이 조선의 북반부에 깊이 뿌리박은 인민민주주의제도를 전복하고 자주성이 강한 북반부인민에게 저들의 침략적요구를 강요할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된다고 간주하였던것이다.
미국이 1947년 가을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끌고가고 1948년에 남조선괴뢰정권을 조작하였으며 이른바 《아시아제일》의 괴뢰군창설에 미쳐날뛴것은 이러한 요구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이렇듯 조선전쟁은 전조선을 식민지화하고 그를 전초기지로 하여 극동에서 세계제패계획을 실현해보려는 미국의 강도적인 전략과 침략적인 대조선정책의 필연적산물이였다.
조선전쟁과 미국의 경제공황
미국이 조선전쟁도발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진것은 또한 당시 저들이 직면한 심각한 경제위기와도 관련되여있었다.
1948년말 경공업부문으로부터 시작된 공황은 차츰 중공업부문에까지 련쇄반응을 일으켜 1949년 3월에는 철강부문에도 파급되였으며 이해 상반년에만도 약 4,600개의 회사가 파산되였다.
방대한 과잉로동력이 조성되여 1950년안으로 완전실업자만도 1,300만명으로 늘어날것이 예견되였으며 독점체들의 리윤은 1948년 9월의 366억US$로부터 1949년 3월에는 284억US$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국독점재벌들은 정부가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기 위한 크고 새롭고 굉장한 주사침을 준비할것을 기대하면서 행정부의 통치배들에게 새 전쟁도발을 요구하였다.
《번영이 요구되거든 전쟁을!》, 이것이 과잉생산공황에 몸부림치는 미국독점자본의 요구였다.
미국억만장자들의 리익을 대변한 반동정부는 드디여 경제의 군사화와 군비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1948년을 계기로 평화시기의 미국력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군비확장이 시작되고 경제공황의 공포가 극도에 이른 1950년에 조선전쟁이 일어난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그에 대해 일본도서 《조선전쟁》은 《조선전쟁은 미국이 직면하고있는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전쟁과 아시아의 괴뢰정권들
미국이 조선전쟁을 도발한데는 또한 아시아에 있는 괴뢰정권들의 붕괴위기와도 관련된다.
우선 1950년 5월 30일 남조선에서 진행된 괴뢰국회선거에서의 참패로 리승만괴뢰정권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리승만일파는 총 의석수 210석가운데서 47석을 확보한데 불과한 반면에 《남북협상파》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우세를 차지하였다. 새 《국회》에서 《대통령선거》를 실시한다면 《중간파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많았다.
미국의 력사가 허쉘 메이어가 평한바와 같이 이러한 사태앞에서 리승만도당이 《살아남을 최후의 희망》은 전쟁이였으며 하루라도 빨리 내란을 도발하는것이였다.
리승만역도는 장면을 워싱톤에 급파하여 6월 10~13일경에 《정부의 붕괴를 보고》하고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미국의 신속한 원조를 요청》하였다.
리승만의 급보를 받은 트루맨은 그자신이 실토한것처럼 당시의 미국정부로서는 《리승만을 지지하는수밖에 방법이 없었》으므로 괴뢰정부의 붕괴를 막아야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정된 전쟁을 하루빨리 일으키는 길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당시 중국인민이 1950년 여름 타이완(대만)을 해방하려고 한다는 정보자료때문이였다.
이전 CIC고문이며 리승만의 정치고문이였던 문학봉이 고백한데 의하면 미국은 중국인민이 늦어도 7월에 타이완해방작전을 벌릴것이라는 정보자료를 받고 그에 앞서 선손을 써야 하겠다는 결정을 짓게 되였으며 이때문에 조선전쟁도발날자를 앞당기게 되였다.
왜 6월 25일을 택하였는가
미국이 조선전쟁도발날자를 6월 25일로 택한데는 전쟁도발자로서의 저들의 정체를 숨겨보려는 교활한 음모가 깔려있었다.
력사에서 《일요일새벽기습전술》은 제국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써온 수법이였다. 로일전쟁이나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은 모두 일요일새벽을 리용한 기습으로 시작되였었다.
미국은 이 수법에 새로운 의미를 첨가하였는데 그것은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가 리승만에게 한 말에 의해서 드러났다.
로버트는 미국이 《왜 6월 25일을 택하게 되는가?》하는 리유를 밝히면서 25일은 일요일이라는것,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으므로 미국이나 남조선이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라는것, 다시말하여 미국이나 남조선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뇌까렸다.
미국은 전쟁도발자로서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어용보도수단들을 동원하여 6월 13일에 선포했던 《준비상계엄령》이 24일에 해제되여 이날 괴뢰군의 3분의 2가 《외출》하였으며 24일 저녁 서울 괴뢰륙군구락부에서 진행된 《무도회》에는 38°선연선부대의 사단장이상이 모두 참가하였다는 허위보도를 날렸다.
그러나 당시 괴뢰군8사 사단장으로서 전선동부에 있었던 리성가의 진술에 의하여 6.25전야에 38°선의 괴뢰군은 모든 외출이 금지된 상태에서 전투태세에 있다가 25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다는것이 밝혀졌다.
조선전쟁은 이렇게 발발되였다.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미국의 정체는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으며 미국은 력사의 준엄한 심판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대신 남조선괴뢰들과 일본반동들을 내몰아 제2의 조선전쟁,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날뛰고있다.
평화를 원치 않고 전쟁을 즐기는 자들은 명심해야 할것이다.
만약 미국의 호전세력과 남조선괴뢰들이 력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감히 또다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반격에 부딪칠것이며 멸망의 운명을 면치 못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