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미제의 조선전쟁준비책동은 일본에서도 본격화되였다.
1948년 12월 전범자들이 석방되기 시작하고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이른바 공직추방령(국가기관에 취직할수 없게 한 법령)도 유명무실하게 되였다.
미제의 부추김밑에 일본에서는 수많은 파쑈단체들이 재생되여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고 조선과 타이완(대만)을 합병하여 대일본제국을 소생시키자고 공공연히 떠드는데까지 이르렀다.
1949년부터 극동병기공장정책이 추진되여 무기생산이 활성화되였다.
1950년초에 들어서면서 기계, 화학공업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이 맥아더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군수공장으로 전환되였다.
그해 4월부터 모든 조선소들에서 미제의 땅크상륙함선을 병력수송선으로 개조하는 일이 벌어졌다.
혹가이도로부터 규슈에 이르는 일본의 전 령토에 최대형의 폭격기가 착륙할수 있는 비행장들이 수많이 건설되였다.
한편 조선전쟁도발계획과 관련하여 재일조선인과 그 민주단체들, 일본민주력량에 대한 대대적인 폭압이 감행되였다.
미제의 이와 같은 만행은 조선전쟁의 공격기지, 후방기지로 지정된 일본에서의 전쟁준비가 마지막단계에서 추진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