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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 유인당하였던 박정숙녀성 국내외기자들과 회견
(평양 6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

남조선괴뢰패당에게 유인당하였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박정숙녀성이 2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국내외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에는 우리 나라 출판보도부문과 총련의 기자들 그리고 중국,로씨야,미국,일본의 기자들이 참가하였다.

사회주의조국에 체류하고있는 해외동포들이 방청으로 참가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라북1동에서 살다가 괴뢰들의 유인에 걸려 남조선에 끌려갔던 박정숙녀성이 발언하였다.

그는 기자회견장에 나서니 수치스러운 과거로 하여 머리를 들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일시적인 난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장사에 눈이 어두워 다니다가 종당에는 괴뢰정보원놈들의 간계에 넘어 조국과 정다운 이웃들,일가친척들을 배반하고 범죄의 길로 굴러떨어졌던 사람이다.

예로부터 나라를 배반한 죄는 제일 크고 용서받을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께서는 나를 크게 탓할대신 오히려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고 재생의 삶을 누릴수 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말 꿈을 꾸는것만 같고 도무지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라에 보탬은커녕 죄되는 일밖에 한것이 없는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우리 인민들과 세상사람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 기자회견을 요청하였다.

이어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 괴뢰들의 유인전술에 걸려 남조선으로 끌려갔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적들의 꼬임에 빠져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것은 전적으로 나의 사상정신상태가 잘못된데서부터 시작되였다.

그때 나의 머리속에는 어머니조국과 숨결을 같이하며 강성국가건설에 한몸바치는데서 삶의 보람을 찾겠다는 생각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리기주의사상이 더 크게 지배하였다.

결국 눈앞의 어려움만을 생각하였고 나중에는 남조선에 있는 아버지를 중국에서 만나 돈을 얻어보려는 망상까지 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2006년 3월 29일 밤 남몰래 비법월경하였다.

아버지를 만나면 돈을 얻을수 있다는 미련한 생각을 품고 지경밖으로 내짚은 그 걸음이 나라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길인가를 미처 몰랐다.

중국동북땅에 이른 나는 가슴을 조이며 거처지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어느한 벽돌집에서 문을 열어주어 들어가게 되였다.

그 집주인은 조선말을 할줄 알았는데 사연을 듣고 아들과 무엇인가 토론하더니 나를 움막에 있게 하였다.

하루는 집주인이 이제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겠는데 물어보는 말만 대답하고 다른 말은 일체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후 전화가 걸려왔는데 전화하는 사람은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 형제관계를 알아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3~4일 지나 집주인이 나에게 아버지를 만나려면 배를 타고 칭다오(청도)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워 다리엔(대련)의 어느한 곳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약 일주일간 머물러있었는데 하루는 《사장》이라고 하는 자가 와서 나를 사진찍어 가는것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자는 괴뢰들에게 매수되여 우리 사람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을 업으로 하는 놈이였다.

이틀후 그 자가 나타나 이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하면서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는것이였다.

이렇게 나는 괴뢰들의 각본에 따라 이놈저놈의 손으로 넘겨지게 되였다.

6월 28일 오후 4시경 단둥(단동)항에서 한 녀성과 함께 《칭다오로 가는 배》에 몸을 싣게 되였다.

다음날 아침 9시경 배가 정박하자 함께 배에 올랐던 그 녀성은 나의 위조증명서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어느한 건물 1층 위생실앞에 나를 세워놓고 이제 누가 올것이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이어 어떤 남자가 건물 3층으로 데려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얼굴이 길죽하고 건방지게 생긴 자가 책상우에 놓여있는 지함에서 무슨 음료를 꺼내주면서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약이다.》라고 빈정거리며 여기가 남쪽땅이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칭다오로 가는 사람인데 배를 잘못탄것 같다. 저 배를 타고 당장 돌아가겠다.》고 소리치며 항변하였다.

그러나 놈들은 울면서 발버둥치는 나에게 《여기는 가고싶으면 맘대로 가는데가 아니다.》라고 하며 끝내 차에 태워가지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는 놈들에게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다가 남쪽에 잘못 왔으니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그리고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들이댔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놈들은 공화국에서의 경력과 생활경위 등을 물어보고 그에 대해 쓰게 하고는 얼리기도 하고 위협도 하였으며 지어 조롱까지 하며 모욕을 주었다.

한번은 《탐검실》이라고 쓴 방에 나를 끌고가 손과 발, 가슴에 전기줄을 붙여놓고 불을 번쩍이며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강박하였다.

지금도 무서운 공포와 압박속에 시달리던 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쳐 깨여나군 한다.

이렇게 20일정도 취조를 받은 후에야 놈들에게 끌려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그런데 병원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뇌수술을 받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된 상태였다.

그때에야 나는 놈들에게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버지는 나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사망하였다.

지금도 우리 공화국주변에는 괴뢰정보원의 돈을 받아먹고 우리 주민들을 유괴하는 자들이 줄을 늘이고 걸려들기만 기다리고있다.

총련 조선신보사 기자: 박정숙녀성이 남조선으로 끌려나가 6년간 살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말해달라.

대답:아버지는 비록 숨졌지만 이복동생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천진한 생각이였다.

이복동생은 만날 때마다 말뿐이고 더우기 자기에게 피해가 올가봐 늘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할수없이 80살되는 이모사촌오빠의 집을 찾아가 앓고있는 형님의 간병을 해주며 살았는데 친척집에 얹혀산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재정적부담때문에 더 있지 못하고 사촌오빠가 알선해준 한 로인의 집에서 간병원노릇도 하였다.

나중에는 운신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90살나는 로인의 집에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그야말로 돈에 팔린 가련한 노예나 다름없었다.

갖은 수치와 모욕을 참아가며 지하철도역과 아빠트복도, 승강기 청소 등 일거리라면 닥치는대로 하였다.

이렇게 간신히 살아가는데 여기에 걸음걸음 감시와 전화도청까지 끈질기게 계속되여 공포와 불안,초조감속에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번은 라원주라는 녀성의 소개로 공업원료를 생산하는 한 회사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사장놈에게 사기만 당하였다.

억울하고 분하여 매일같이 회사를 찾아다니며 사정하였으나 조소와 멸시만 받았다.

온 정신이 거기에만 쏠려있다나니 지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지하철도계단에서 거꾸러져 무릎을 상하였다.

그러나 돈이 없어 다친 다리를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지금도 잘 걷지 못한다.

남조선은 정말 썩고 병든 사회이다.

거리에 나가도 온통 사람들을 유혹하는 말들과 광고들로 란장판을 이루어 뭐가뭔지 통 알수가 없다.

TV를 켜도 모두 음란하고 퇴페적이여서 보면 머리가 뗑하여 도로 꺼버리군 하였다.

들려오는 소리들도 《금은세공방 주인에게 약넣은 술을 먹이고 금품을 털어갔다.》느니,《의사들이 환자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느니,《아버지를 법정에 불러내여 땅과 재산을 빼앗았다.》느니,《애인을 목을 눌러죽이고는 사망보험금을 타먹었다.》느니,《10대의 아이들이 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하였다.》느니 하는 따위뿐이다.

험악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살아가기 위해 돈에 미쳐 돌아갔다.

작년 10월 어느날 밤중에 갑자기 숨이 막혀 경찰병원에 간적이 있었다.

의사라는 놈은 생명이 위급하므로 빨리 보호자부터 대라는것이였다.

보호자가 없다고 하니 그러면 입원할수 없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것이였다.

나는 숨이 막히는데다가 야밤삼경에 돌아가야 또다시 실려오겠는데 병원복도에라도 좀 앉아 안정하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래도 그놈은 막무가내로 나를 뿌리치며 병원밖으로 빨리 벗어나던가 아니면 당장 보호자를 대라고 야단치는것이였다.

순간 너무도 분격하여 병원이 떠나갈듯 큰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고말았다.

의사가 환자를 놓고 보호자를 찾는것은 만약 내가 죽으면 치료비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괴뢰당국자들은 누구나 부지런히 일하면 잘 살수 있는 사회,정의와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라고 입버릇처럼 떠들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한 요설이다.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차넘치고 사회악이 판을 치며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고 인간의 정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사회,사람들을 정신문화적으로 타락시키는 썩고 병든 사회가 바로 남조선이다.

로씨야 이따르-따쓰통신사 기자:일부 사람들이 박정숙녀성처럼 남조선으로 나갔는데 그들의 생활형편,실태가 어떠한지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대답:남조선괴뢰들은 우리 공화국에서 살다가 남조선으로 나간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부른다.

그중에는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고 도주한 반역자들도 있지만 놈들이 말하는 《탈북자》들은 나와 같이 일시적인 생활난과 친척방문,사업상 등의 리유로 중국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에 갔다가 괴뢰들의 유인,랍치,매수책동에 걸려 남조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괴뢰정보원으로 끌려가 중죄인취급을 당하게 된다.

처음 10여일간은 독감방에 갇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항변 한마디 못하고 인권을 무참히 유린당한다.

오죽하였으면 지난해 남조선의 보수언론들에서조차 《탈북자》들의 독감방에 대해 문제시하는 글까지 냈겠는가.

심문을 받는 기간 그들은 감시자의 가혹한 랭대속에 위생실마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며 녀성들의 경우에는 취조관놈들의 성노리개대상으로 되고만다.

이렇게 한달 또는 그 이상 괴뢰정보원에서 온갖 정신육체적고통을 받다가 나오면 《하나원》이라는데 옮겨지는데 그곳 또한 감옥이나 다를바 없다.

《하나원》은 《탈북자》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는곳인데 아침 5시에 교회에 끌고가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종일 반공사상을 불어넣고 자본주의사회의 썩어빠진 사상문화와 약육강식의 법칙을 주입시킨다.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석달동안 담당관들의 횡포무도한 압박과 통제,사방에 설치된 카메라의 감시속에 외출,면회,전화도 할수 없다.

이렇게 놈들의 끈질긴 검토와 《교육》을 마치면 사회에 내던져지는데 이때부터 모진 천대와 멸시,수치와 모욕을 받으며 치렬한 생존경쟁의 싸움판에 뛰여들어야 한다.

《탈북자》들에게 차례지는 일자리란 오물청소,그릇닦기,시중들기 등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가장 비천하고 어려운 일뿐이다.

녀성들인 경우 유흥업소에 매매되거나 음란한 화상촬영에 내몰리는 등 구렁텅이에 빠지고있다.

더우기 그들의 《주민등록증》에는 별도의 번호가 찍혀있어 어디를 가나 외면당하고있다.

극심한 생활난과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사회적인 랭대와 따돌림까지 계속되다나니 그들은 정신적불안과 만성적인 피로감 등으로 각종 병마에 시달리고있다.

어쩌다 직업을 구해도 또 떼울가봐 매일같이 걱정하며 갖은 고역을 당하고 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여 죽는길밖에 없다.

때문에 모두 타락하여 마약과 사기,성매매 등 범죄의 길에 빠져들고있다.

출판물들의 자료에 의하면 남조선이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1위이며 그중에서 《탈북자》들의 자살률은 여느 사람들의 5배에 달한다.

김옥란이라는 젊은 녀성은 나에게 《남조선사회에 환멸을 느낀다.공화국으로 돌아갈 결심이다.》라고 하면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느 한 유흥집에 들어가 온갖 수모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참으며 일하였다.

그러나 돈을 받을수 없게 되자 절망감에 빠져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현재 《탈북자》들은 부지런히 일하면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애쓰지만 더욱 어려워만지는 비참한 생활처지를 한탄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고있다.

그리고 명절날,생일날이면 고향이 그립고 조국을 잊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다.

지금 그들은 어지러운 남조선사회를 저주하고 자신들을 원망하며 공화국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있다.

그러나 자기들이 나라앞에 지은 죄때문에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으며 감시와 통제가 그림자처럼 뒤따르기때문에 어쩌지 못하고있다.

나는 이 기회에 그들에게 말하고싶다.

본의든 본의아니든 어머니조국을 두고 나간 사람들은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려 한다면 저주로운 남조선사회를 박차고 공화국의 품으로 주저없이 돌아와야 한다.

어머니조국은 나와 같이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공화국의 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관대하게 용서하고 따뜻이 안아주고있다.

평양타임스 기자:지금 괴뢰패당이 《탈북자》들을 통한 반공화국모략책동에 광분하고있는데 이에 대해 남조선에서 직접 보고 들었거나 체험한 사실들이 있으면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내가 남조선에 있을 때 괴뢰정부와 국회,언론들에서 늘 들려오는 소리는 《탈북자》문제니,《북인권》문제니 하는것들이였다.

지금 괴뢰패당은 《북인권》소동에 《탈북자》들을 써먹고있는데 괴뢰들이 내세우는 자들은 우리 제도에 대해 앙심을 품었거나 공화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더러운 인간추물들이다.

이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은 괴뢰보수패당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몇푼의 돈을 바라고 반공화국대결에 미쳐날뛰고있다.

지금 괴뢰패당은 반공화국대결선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다.

《적십자단체》니,《자원봉사자》니 하는 이름으로 《탈북자》들에게 돈을 준다고 하면서 꼬여서는 우리 공화국을 헐뜯고 남조선사회를 미화분식하는 온갖 허위와 악담을 늘어놓거나 구호를 웨쳐대며 시위까지 추동질하고있다.

거짓과 허위로 반공화국대결을 선동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고 란장판이 벌어질 때가 많아 돈으로 꾀여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내고있다.

언제인가 괴뢰언론들에서 《탈북자》들이 중국에 나갔다가 북에 잡혀갔다고 크게 떠들어댄 일이 있었다.

후에 알고보니 역적패당이 반공화국모략선전을 위해 남조선에서 더는 살수 없어 대양건너로 갔거나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름까지 리용하여 그렇게 꾸며댄것이였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되여 남조선으로 오게 되였는가고 물으니 식당에서 만나 뭉치돈과 값비싼 물건들을 주는데 유혹되여 왔다는 사람,술에 취해 위생실에 들어갔는데 칼부림을 하며 위협하여 끌려오게 되였다는 사람,녀자들의 꼬임에 속아 오게 되였다는 사람 등 천태만상이였다.

진짜로 인권유린의 왕초는 다름아닌 리명박패당이다.

오늘 괴뢰패당이 《탈북자》문제에 대해 계속 떠들고 더러운 인간쓰레기들을 내세워 우리 공화국의 영상을 깎아내리려고 발악하고있지만 그야말로 부질없는 노릇이다.

중국 신화통신사 기자:어떻게 되여 공화국으로 돌아오게 되였는지 그에 대하여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원래 나는 중국에서 아버지를 만나 도움을 받은 다음 다시 공화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었다.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타산이 괴뢰정보원놈들의 마수에 걸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남조선에 끌려가있는동안 언제한번 공화국에 대한 생각,조국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을 잊어본적이 없었다.

이 목적을 달성해보려고 수없이 노력하였지만 들장날가봐 누구와 터놓고 말해볼수도 없고 또 걸음걸음 돈이 있어야만 했다.조국에 오고싶었지만 너무나도 막막하게만 생각되여 절망과 허무감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러던 때인 지난해 8월 TV화면에서 로씨야련방에 대한 력사적인 방문을 진행하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뵈옵게 되였다.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수척해진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씨비리,원동지역에까지 가신 어버이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조국을 버리고 더러운 시궁창속에서 헤매는 자신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였다.

복잡다단한 우리 가정을 차별없이 대해주시며 일흔번째 생일을 맞는 어머니에게 생일상도 안겨주시고 아들을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을 졸업시켜 교단에 세워주시였으며 동생을 과분하게 평가해주신 장군님의 은혜를 갚지는 못할 망정 내 지금 어디에 와서 무슨 짓을 하고있단 말인가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결단성있게 행동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가다가 숨이 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우리 인민들을 잘 살게 해주시려고 그토록 애쓰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야전렬차에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접하자 조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오열을 터뜨렸다.

장군님께로 돌아가 무릎꿇고 속죄하려고 했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죽더라도 기어이 조국땅에 가서 묻히겠다.

나의 온 정신은 공화국으로 향하였고 더 이상 무서운것도 없었다.

나는 괴뢰정보원놈들의 감시를 따돌리고 저주로운 남조선땅을 떠나 꿈에도 그립던 어머니조국,공화국의 품에 다시 안겼다.

민주조선사 기자:그처럼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는데 공화국으로 돌아온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답:어머니조국은 발을 잘못 디디여 천길나락에 굴러떨어졌던 나에게 생명수를 부어주었다.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비행기승강대에서 내리는 나를 해당 일군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을 때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쇠고랑을 채워도 할말이 없는 나였다.

그날밤 나는 별이 총총한 평양의 밤하늘을 보고 또 보며 생각하였다.

조국이란 두 글자가 이렇듯 정답고 크나큰것이구나,내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다.

그러나 그때까지만해도 얼마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나를 기다리고있는지 상상도 못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께서는 나의 죄많은 과거를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대해같은 사랑과 은정을 안겨주시였다.

김정은장군님께서는 죄인이나 다름없는 나를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단에 서있는 아들과 함께 평양에 모여 살도록 해주시였다.

나는 남들이 허리띠를 조이며 강성국가건설에 피와 땀을 바칠 때 저만 잘 살겠다고 어머니조국을 버렸던 배은망덕한 죄인이다.

재생의 삶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 위해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장군님의 동상을 찾았다.

지난날을 속죄하고 대원수님들께 못다한 충정을 합쳐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을 깨끗한 량심으로 받들어나갈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 같으신 분은 이 세상에 없다.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꼭 같으신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 계시여 나는 두번 다시 태여났다.

박정숙녀성은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장군님께 대를 이어 충정을 다해나갈 불타는 일념을 담아 아들,며느리와 함께 노래 《못잊을 나의 길》을 절절하게 불렀다.

그는 아들며느리와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어버이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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