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에서 매국적이며 반동적인 《유신》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거세찬 10월민주항쟁(부산, 마산민주항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산과 마산 등 남조선전지역을 휩쓸며 타오른 항쟁의 불길은 《유신》파쑈통치를 끝장내고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남조선인민들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항쟁에는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학생들과 로동자, 시민 등 3만여명이 참가하였다.
1979년 10월 15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독재《정권》퇴진, 《유신헌법》철페, 학원의 민주화,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는 《민주선언문》을 채택하는것으로 시작된 항쟁은 16일부터 폭동적성격을 띠고 매우 격렬하게 벌어졌다.
항쟁참가자들은 부산시내중심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벌리면서 최루탄을 쏘아대는 경찰들과 맞서 《독재정권 타도》, 《학원의 민주화》, 《대학에서 정부특무들을 제거하라》고 웨치며 완강히 싸웠다.
21개의 파출소와 수십대의 경찰차들을 파손시키거나 불살라버리고 행정기관, 어용선전기관들을 습격, 파괴하였다.
부산에서의 민주항쟁에 호응하여 마산에서도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정부》폭동이 일어났다.
18일 경남대학 학생들이 《유신체제 철페》구호를 들고 시내 곳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린것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투쟁에 경남산업전문대학 학생들과 시민들, 로동자들이 합세하였다.
참가자들은 마산에 있는 《민주공화당》사무소와 시청, TV방송국 등을 습격하고 파출소들과 경찰차들을 점거, 파괴하거나 불살라버렸다. 폭동은 20일 새벽까지 계속되였다.
부산과 마산에서 타오른 항쟁의 불길은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 각지에로 급속히 파급되였다.
16일부터 25일까지의 사이에만도 서울에서는 리화녀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한국신학대학》, 전라남도에서는 전남대학교, 대구에서는 계명대학교의 학생들이 련이어 반《정부》집회와 시위에 떨쳐나섰다. 청주와 울산에서도 대학생, 로동자,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10월민주항쟁은 독재《정권》의 악랄한 탄압속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였다. 경찰력량을 동원해서도 항쟁을 진압할수 없게 되자 독재《정권》은 땅크와 장갑차로 중무장한 3,000여명의 륙해군무력과 락하산부대까지 항쟁진압에 내모는 한편 부산과 마산지역에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을 공포하고 살벌한 폭압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박정희 물러가라!》, 《유신독재 철페!》 등의 구호밑에 완강히 전개된 항쟁은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유신》독재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리승만괴뢰정권의 멸망을 가져온 4.19인민봉기의 봉화가 오른 마산에서 또다시 폭동의 불길이 타오른것은 박정희반역도당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을 새로운 투쟁에로 고무추동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마침내 《유신》파쑈독재자는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야 말았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그날의 항쟁용사들의 정신을 이어 《유신》독재부활을 꿈꾸며 전대미문의 파쑈폭압과 반인민적악정으로 남조선을 인권의 불모지, 민주주의페허지대로 만들고 민생을 도륙낸 괴뢰보수집권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