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시 대성구역에 위치한 금강사터는 498년 7월에 지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유적이다.
금강사는 가장 력사가 오래고 규모가 큰 조선의 옛 건물들중의 하나였다.
가운데에 8각나무탑이 있고 그 동, 서, 북면에 돌을 깐 보도로 련결된 3개의 불전이 있으며 남쪽에 문이 있는 1탑3금당식절이다.
1탑3금당식은 고구려에서 창조된 독특한 절배치제도로서 백제, 신라 그리고 일본에까지 퍼졌다.
집터들의 평면과 그 배치거리는 엄격한 기하학적도식을 적용하였다.
탑터평면은 8각형이며 그 밑단 한변의 길이는 10.2~10.4m이다.
동, 서 금당의 평면은 1:2의 옹근수비례에, 북금당의 평면은 1:√2의 금강비례에, 강당의 평면은 1:1.616의 황금비례에 맞는 균형이 잡힌 장방형이다.
북금당터의 남쪽변을 밑변으로 하고 그 길이를 한변으로 하는 정3각형을 남쪽방향으로 그리면 그 정점이 탑터의 중심점에 일치한다.
8각탑터의 중심점에서 북금당계단 남쪽변까지의 거리를 반경으로 하는 원을 그리면 문터, 동, 서 금당터의 안쪽변이 이 원주에 접한다.
금강사터 매개 건물의 배치와 규모 설정에서 8각탑터 한변의 길이가 하나의 기준크기로 되고있다.
금강사8각탑은 현재 터만 남아있기때문에 탑의 째임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는 알수 없으나 여러가지 자료들과 발굴고증을 통하여 7층이상의 나무탑이였다는것을 확실하게 알수 있다.
8각탑터의 너비도 24.7m로서 대단히 크다.
세나라시기 신라가 백제건축가 200여명까지 초빙하여 645년에 완성한 황룡사9층탑(높이 80m정도)의 한변의 길이는 22.08m로서 금강사8각탑터보다 2.62m나 작다.
옛 도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사는 1102-1481년에 없어졌다.
사회과학원 고고학박사 서국태(남자,63살)는 금강사터가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수준 특히 발전된 건축술을 연구하는데서 귀중한 자료로 된다고 말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