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혁명투사 차광수 서거 80돐 중앙추모회가 30일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차광수는 주체형의 첫 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과 조선로동당의 시원으로 되는 첫 당조직-건설동지사의 핵심성원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참모장의 중책을 지니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싸우다 1932년 10월 30일 돈화(중국)의 격전장에서 스물일곱살의 젊은 나이에 최후를 마쳤다.
추모회에는 김영남, 김기남, 최태복, 김원홍, 오극렬, 문경덕, 리병삼과 당, 무력, 정권기관, 사회단체, 성, 중앙기관 일군들, 조선인민군, 조선인민내무군 장병들, 로력혁신자들, 유가족들, 평양시내 근로자들이 참가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비서인 김기남은 추모사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투사는 조선혁명의 려명기에 수령중심의 통일단결의 새 력사를 개척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한 견결한 한별옹위투사였다.
특출한 위인상을 지니신 김일성동지께 인간적으로, 사상적으로 완전히 매혹된 그는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으로 모시고 끝까지 따르는 길에 조선혁명의 창창한 미래가 있으며 혁명전사의 참된 삶도 있다는것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그것을 지켜 목숨바쳐 싸웠다.
그는 김일성동지의 총대중시사상과 로선을 받들고 주체적인 혁명무력건설과 선군위업개척에 공헌을 한 수령님의 첫 총대동지였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숭고한 인민관을 따라배워 언제 어디서나 수령님식대로 사업하고 생활한 참된 혁명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밑에 쟁쟁한 혁명가로 성장한 그는 조직관념이 남달리 높았으며 어떤 정황속에서도 절대로 혁명적원칙을 양보하거나 제정된 제도와 질서를 흥정하는 일이 없이 모든것을 수령님의 의도와 결론에 따라 처리해나가군 하였다.
투사가 오늘도 조선로동당과 조국, 인민의 기억속에 불굴의 한별옹위투사, 열혈충신으로 영생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높은 정치적신임과 뜨거운 동지적사랑, 고매한 혁명적의리가 있었기때문이다.
혁명선렬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숭고한 전우관, 동지관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
추모사는 조선혁명의 려명기에 수령중심의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조국의 해방과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싸운 차광수를 비롯한 항일혁명선렬들의 고결한 혁명생애와 투쟁업적은 조선혁명의 승리적전진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라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