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의 할머님-리보익녀사
(평양 11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리보익녀사(1876.5-1959.10)는 한평생 만경대혁명일가의 애국가풍을 지성다해 받들어오신 열렬한 애국자이시였다.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시는 자손들을 돌보아주고 그분들의 뒤바라지를 성실하게 해주시는것이 녀사의 락이였다.
녀사께서는 맏아드님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혁명투쟁에 나서시자 나라를 찾는 큰일을 하자면 마음을 굳게 먹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하시며 혁명활동을 적극 방조해주시였다.
특히 맏손자님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애국의 길, 나라찾는 길로 서슴없이 떠밀어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의 서거후 김일성동지께 《증손아, 이제는 아버지가 메고있던 짐을 네가 메야겠구나. 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 나나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해도 좋으니 조선을 독립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거라.》라고 말씀하시였다.
일제가 수령님의 행처를 알아내려고 만경대집에 달려들어 갖은 모략과 행패질을 다할 때마다 적들과 맞서 견결히 싸우시였다.
적들이 《귀순공작》을 위해 1년 가까이 중국 서간도의 산악지방으로 돌아다니며 고생시킬 때에도 끄떡하지 않으시였다.
끼니때 일본음식이나 중국음식을 내놓으면 조선음식을 가져오라고 위엄있게 분부하시였고 간혹 목욕탕물이 미지근하거나 적들이 먼저 사용한 흔적이라도 있으면 김장군의 할머니를 무얼로 알고 허술히 대하는가고 호령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싸움에서 이기셨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내 손자가 장하다, 어서 왜놈들을 다 잡아치우고 우리 나라 땅에서 왜놈들의 씨를 말리라고 기세를 올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그 어떤 강권이나 불의앞에서도 휘여들지 않는것이 할머니의 성미이고 기개였다고 쓰시였다.
리보익녀사께서는 손자분께서 국가수반이시였지만 생의 말년까지 농사를 지으시면서 근면하게 생활하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