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말년에 찾은 애국의 길
(평양 12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전 남조선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은 인생말년에야 비로소 조선민족의 화해와 통일, 협력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보람있는 삶을 누리였다.
그는 《기업으로 애국한다》는 지조를 가슴에 묻고 수십년간 기업활동에 종사하였다.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 늦었지만 나라의 통일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은 주체87(1998)년 10월말 평양을 방문하여 민족경제협력과 관련한 사업들을 진행하고있었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그가 있는 숙소를 찾아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생은 배짱이 세고 한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이니 누가 뭐라든 금강산관광업을 잘 성사시켜보는것이 좋겠다고, 우리는 우리 민족이 잘되고 잘 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나갈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애국의 넋에 날개를 달아주시였다.
명예회장은 금강산관광개발을 다그쳐 그해 11월 동해의 푸른 물에 첫 관광선을 띄웠다. 그리하여 민족의 명산을 보고싶어하던 남조선사람들의 소원이 풀리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경제협력의 길을 개척한 명예회장에게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면서 그의 사업을 잘 도와주도록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6.15공동선언발표후에 그를 또다시 만나주시고 정주영명예회장선생은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와 다름없다고, 그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기념촬영시에는 명예회장선생이 불편해하니 앉아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였고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앉아있으라고 하시며 두차례에 걸쳐 산삼과 송학수예품도 보내주시였다.
혈육의 정을 초월하는 믿음을 받아안은 명예회장은 반통일분자들의 압력과 회유에도 굴함없이 통일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2001년 3월 그가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자신의 명의로 된 조전과 화환을, 서거 10돐에 즈음하여서는 구두친서를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평양의 보통강기슭에 그의 애국심이 깃든 체육관이 일떠섰을때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명명하도록 해주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