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조선에서 예술영화 《종군작곡가 김옥성》(제1, 2부)을 새로 만들었다.
영화는 애국의 열정으로 군대와 인민을 고무추동하는 명곡들을 많이 창작한 작곡가 김옥성(1916-1965)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황해남도의 한 농촌마을에서 출생한 그는 일찌기 음악에 대한 애착과 감수성을 키웠다.
해방후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비로소 작곡가가 되려던 꿈을 성취할수 있었다.
1945년 11월 악극 《락랑공주》창작에 기여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첫 작품이였다.
그후 남녀평등권법령에 의하여 나라의 주인으로 된 조선녀성들의 애국심을 반영한 가요 《녀성의 노래》를 내놓았다.
교성곡 《압록강》, 관현악곡 《농촌의 봄》을 비롯하여 우수한 작품들을 련이어 창작한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고무추동하는 음악작품들을 만들었다.
그 대표작이 조선의 유명한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와 《전호속의 나의 노래》이다.
전후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한 김옥성은 현실에 침투하여 생활을 깊이 체험하고 창작할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주체적문예사상을 높이 받들고 창작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리였다.
하여 관현악과 합창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민족적형상수법을 적용하여 명작으로 훌륭히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로 만풍년을 이룩한 청산리사람들의 환희의 감정을 형상한 작품은 세기를 이어 군민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리워지고 세계음악계에도 알려져있다.
이후 가요 《강선은 천리마의 고향》, 동요 《아름다운 만경대》 등 여러 형식의 음악작품들을 창작하였다.
불같은 열정을 지니고 민족의 자랑으로 되는 명곡들을 수많이 내놓은 그의 음악유산들은 《김옥성작곡집》에 담겨져 조국과 인민의 재부로 대를이어 전해지고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