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12월에 들어와 평양의 하늘가에서는 눈이 계속 내리고있다.
한해전 가시면 안된다고 피눈물을 쏟던 그 거리들마다에 오늘도 함박눈이 쌓여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위대한 김정일동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있다.
각지에 모신 어버이장군님의 태양상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이께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맞으신 눈보라가 불덩이마냥 간직되여있다.
백두산의 눈보라를 축복의 꽃보라로 안고 탄생하시고 빨찌산의 총성을 자장가로 들으시며 성장하신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남달리 백두의 눈보라를 사랑하시였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은 눈보라길을 웃으며 헤치는것은 그이의 한생의 락이였고 보람이였다.
주체87(1998)년 1월에도 그이께서는 대한의 강추위를 무릅쓰시며 자강도를 찾으시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여러 중소형발전소들과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보시였다.
16일 하루동안에만도 북천띄우개식발전소, 장강고등농업전문학교(당시)의 토목언제식발전소, 전기화된 장강읍 55동의 살림집 등 수많은 대상들을 돌아보시였다.
16일부터 21일까지의 현지지도로정은 연 6,000여리에 달하였다.
그이의 현지지도는 말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의지와 정력으로 이어진 분과 초의 련속이였다.
우리 걸음이 한걸음 떠지면 그만큼 조국의 전진이 떠지게 된다고, 날씨를 보아가면서 편안한 걸음을 할수 없다고 하시며 떠나시였고 로동계급이 보고싶다시며 한밤중에 먼길을 나서기도 하시였다.
때로는 지척도 분간할수 없는 무더기비와 삼복철의 무더위를 헤치시며 함흥과 단천, 성강과 라남, 자강도로 종횡무진하신 그이의 자욱은 눈물없이 더듬을수 없는 헌신의 자욱이였다.
생애의 마지막 3년간에만도 김정일동지께서 강행군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며 찾으신 단위는 근 1,000개에 달하였다.
이처럼 어버이장군님의 한생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눈보라한생이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