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4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줄이는것,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통속적으로 표현하신 이 글줄에는 조선농민들의 세기적숙원이 담겨져있다.
락후와 빈궁이 지배하던 이 땅우에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사회주의문화농촌을 건설하시려는것은 그이의 리상이였고 투쟁목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력사적위업을 실현하시려고 한평생 험한 논두렁길을 걷고 걸으시였다.
서해의 간석지벌과 분계연선의 농촌마을들, 북변의 농장들과 두메산골의 척박한 농경지에 이르기까지 다 찾으시였다.
비내리는 이른새벽도 눈오는 깊은 밤도 가리지 않으시였다.
《아니, 수령님께서 여기에까지 오시다니!…》
수령님을 모시게 된 더없는 영광과 기쁨에 앞서 수많은 농민들이 끓어오르는 격정속에 이 말을 뇌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끊임없는 농촌현지지도길에는 한해동안에 3차례, 4차례씩 찾으신 농장도 있고 친히 조합원, 건설주가 되신 농장도 있다.
탄생일에도 이슬내린 밭두렁길을 걸으시며 살림살이를 의논해주시고 진창속에 발을 잠그시며 양어장의 자리를 잡아주신 이야기도 있다.
그이께서 친히 자리잡아주신 농촌부락과 저수지들은 그 얼마인지 모른다.
수령님께서는 농장형편이 어려우면 마음에 걸리시여 때없이 들리시고 농장살림이 늘어가면 기쁘시여 찾고찾으시였다.
궁벽하기 그지없던 창성군의 험준한 산발들에 오르시고 골짜기의 넝쿨속을 헤치시며 황금산, 보물산의 새 력사를 펼쳐주시였다.
이 나라 수많은 농장들의 살림형편이며 생활수준, 농사정형을 손금보듯 헤아리시며 찾으신 곳마다에서 척박한 땅, 불모지들이 기름진 땅으로 전변되고 문화농촌이 일떠섰다.
사회주의농촌의 전변을 안아오신 김일성동지의 헌신은 전설적인 인민의 수령의 위대한 한생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