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지난 6.25전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64년은 조선반도에서 핵문제를 발단시키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전쟁위협에 날뛰여온 미제의 흉악한 정체를 고발하고있다.
조선전쟁초기에 벌써 미제는 조선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우리 인민군대의 드센 반공격에 의해 남으로 패주하던 미제는 1950년 8월 급기야 핵무기를 비밀리에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9월부터 미륙군성의 작전연구실이 원자탄을 지상에서의 근접지원작전에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 작전연구실의 한 박사가 12월 1일 실전에서의 원자탄사용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전장을 돌아본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앞서 11월에는 트루맨과 맥아더가 줄줄이 나서서 《늘 원자탄사용을 적극 검토하고있다.》, 《조중국경지역에 원자탄 30~50개를 투하할 계획이 있다.》고 공언하였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들어가면서 미제의 핵전쟁기도는 더욱 무모한 단계에 들어섰다.
미제는 조선반도에 플루토니움과 핵페기물을 비롯한 대량의 방사능물질을 살포하기 위한 야전실험을 1952년까지 65차례나 감행하였다.
1951년 9월과 10월 미공군의 《B-29》폭격기들이 평양상공에서의 원자탄투하를 위한 연습에 광분하였다.
1952년 12월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핵무기사용을 공공연히 떠들었으며 그후 핵살륙수단을 동원할것을 예견한 이른바 《아이젠하워공세》까지 준비하였다.
미제가 핵무기사용을 위한 준비를 은밀히 추진시킨 사실은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미공군이 원자탄사용계획의 진척정형을 상급에 보고한데서 그대로 드러났다.
조선전쟁시기 6차례에 걸쳐 원자탄을 사용할데 대한 계획을 모의한 사실만으로도 미제의 핵전쟁야망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정전직후 미제는 저들이 당한 수치스러운 참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오히려 《원자탄을 사용하지 않았기때문에 조선전쟁에서 참패했다.》고 공공연히 떠벌이면서 조선반도핵전쟁야망을 기어이 실현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1953년 12월 북침을 새롭게 시도할 목적밑에 《갱신정책》을 들고나왔으며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나라들의 힘이 더 커지기전에 핵우세에 기초한 대량보복력으로 종전보다 더 큰 침략의 예봉을 돌려야 한다는 《레드포드전략》으로 구체화하였다.
1950년대 말에는 남조선강점 미군의 핵무장화에 착수한다는것을 공공연히 선포하였다.
그때로부터 계속되여온 미제의 핵무기반입으로 남조선은 1980년대 중엽까지만 하여도 1,720여개의 각종 핵무기들이 들어찬 세계최대의 핵전쟁기지로 전변되였다.
1991년 북남사이에 비핵화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핵무기반입은 계속되였다.
미제의 핵전쟁야망은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무모한 핵공격계획들과 그 실현을 위한 군사연습이 년대와 세기를 넘어 끊임없이 감행되여온 사실이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정전직후부터 핵공격계획들인 《8-53》, 《대량보복계획》, 《프리덤 드라비》를 작성한 사실, 1998년 1월부터 6월까지 미공군기들이 본토의 여러곳에서 우리 공화국을 목표로 핵공격훈련을 감행한 사실, 남조선강점 미공군무력이 《B-61》핵폭탄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훈련에 돌아친 사실 등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는 《핵태세검토보고서》작성으로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로골화하고 《키 리졸브》, 《독수리》, 《을지 프리덤 가디언》 등 각종 침략전쟁연습을 통해 그 실천능력을 검증하고있다.
미제의 발악적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위기가 날로 고조되고있다.
참으로 지난 64년간은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핵참화를 들씌우려는 미제의 핵전쟁위협으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이다.
오늘도 미제의 핵전쟁야망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것은 날을 따라 더욱 무모한 지경에 이르고있다.
미제는 우리의 자위적핵억제력을 걸고들며 그 누구의 《핵위협》에 대처한다는 미명하에 미싸일방위체계구축에 열을 올리면서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미쳐날뛰고있지만 전쟁의 도발자, 평화의 파괴자에게 차례질것은 비참한 파멸뿐이라는것을 똑똑히 명심해야 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