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혁명렬사 최춘국동지 생일 100돐기념 중앙보고회가 6일 청년중앙회관에서 진행되였다.
최태복동지,최룡해동지,김평해동지와 우당위원장,당,무력,정권기관,근로단체,성,중앙기관 일군들,인민군군인들,공로자들,유가족들,평양시내 근로자들이 보고회에 참가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룡해동지가 보고를 하였다.
보고자는 주체3(1914)년 9월 6일 함경북도 온성군의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최춘국동지는 혁명의 총대로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높이 받들고 주체의 선군혁명사에 공적을 남긴 혁명전사였으며 충직한 군사정치일군이였다고 말하였다.
최춘국동지가 주체19(1930)년 9월 두만강연안 북부국경지대를 무장투쟁의 전략적거점으로 꾸릴 구상을 안으시고 온성지구에 진출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된것은 그의 생애와 혁명투쟁에서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고 강조하였다.
보고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체21(1932)년 봄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한 최춘국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분대장,중대정치지도원을 거쳐 련대장,련대정치위원,독립려단 정치위원의 중책을 지니고 용감하게 투쟁함으로써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해방후에도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함경북도 파견원,보안간부훈련소 분소장의 중책을 지니고 조선로동당의 창건과 정규무력건설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바쳐 투쟁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사단장으로서 최고사령관동지의 전략적의도를 관철하는 투쟁에서 무비의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영웅적위훈을 떨치였다.
보고자는 최춘국동지의 한생은 비록 짧았으나 당과 수령을 받드는 길에서 그가 발휘한 충실성과 용감성,영웅성과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는 세대가 여러번 바뀌고 혁명이 멀리 전진한 오늘도 조선인민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다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