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천년강국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가 건립된때로부터 1,600년이 되였다.
릉비는 고구려의 24대왕이였던 광개토왕(재위기간 391년-412년)의 공적을 전하기 위해 그의 아들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것이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오늘의 중국 길림성)에 있다.
릉비는 비몸과 받침돌로 구성되여있다.
비몸은 높이가 6.34m, 네면의 너비가 1.43~1.9m 되는 거대한 4각주의 응회암통돌로 되여있다.
비문은 비몸의 네면에 다 씌여졌으며 총 글자수가 1,800자가량 된다.
글씨는 독특한 예서체로서 고구려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잘 반영하고있다. 매우 론리정연한 비문의 구성과 내용은 고구려의 학문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것을 시사해준다.
고구려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발전수준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것으로 하여 귀중한 사료적가치를 가지는 비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되여있다.
첫 부분에는 고구려시조 동명왕이 나라를 세운 경위와 고구려의 력대왕들의 계승관계, 광개토왕이 나라를 잘 다스린 공적에 대한 총평 등이 씌여져있다.
둘째부분은 나라의 위력을 떨치고 령토를 크게 넓혔으며 삼국통일에서 큰 전진을 이룩한 광개토왕의 업적을 서술하고있다.
셋째부분에는 왕릉의 관리, 수호를 위한 법령조항들을 밝혀놓았다.
릉비는 동방의 최대강국이였던 고구려의 력대왕들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광개토왕의 지위와 어울리게 거대한 규모와 웅건한 필체, 귀중한 력사적내용들로 조화롭게 배합되여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