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14년 10월 3일기사 목록
천년강국 고구려와 그를 계승한 《해동성국》 발해
(평양 10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고주몽(동명왕)에 의해 조선의 첫 봉건국가로 출현한 고구려(B.C. 277년-A.D.668년)는 강력한 국가로서의 존엄과 위용을 떨치였다.

고구려는 동방의 손꼽히는 군사강국이였으며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된 문명국이였다.

고구려에서는 누구나 말타기, 활쏘기, 칼쓰기 등 무술을 익히는것을 하나의 생활풍조로 여기고 오락이나 경기도 무술놀이를 기본으로 하였으며 관리들의 등용,평가에서도 군사적자질을 중요시하였다.

우수한 돌가공,성곽축조기술로 1,000여개의 성을 쌓아 나라를 요새화하였다.

인민들의 근면한 로동과 창조적지혜에 의해 농업과 수공업, 목축업 등 경제의 많은 부문이 발전하였으며 특히 의학과 금속가공, 요업기술은 세계선진수준에 있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구려벽화무덤들은 회화, 공예를 비롯한 미술분야가 발전된 고구려의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고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강점군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속에 고구려장수였던 걸걸중상이 684년에 진국을 세운데 이어 그의 아들 대조영이 698년 동모산(오늘의 중국 돈화)에서 발해의 창건을 선포하였다.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698년-926년)는 짧은 기간에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였다.

발해는 자기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대내외정책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단호히 실행하였다.

천하무적으로 위용떨쳤던 고구려의 상무기풍을 이어받아 수십만명의 상비무력을 보유하고 나라의 방선을 강화하였다. 당시 이웃나라 사람들속에서 《발해사람 셋이면 맨손으로도 범을 잡는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발해사람들은 뛰여난 무술을 소유하고있었다.

고구려의 옛땅을 거의 다 회복한 발해는 전반적인 경제발전을 촉진하면서 주변나라들은 물론 먼 나라들에도 진출하여 대외무역과 상업을 적극화하였다.

세가지 색갈을 내는 발해의 도자기제품은 《발해삼채》로 알려졌고 각종 털가죽제품 역시 다른 나라들에서 귀한 보물로 취급되였다.

고구려의 모든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발해는 《해동성국》(동방의 륭성한 나라)으로 명성떨치였다.(끝)

Copyright (C)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