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수령의 친위전사로 한생을 빛내인 조선혁명의 제1세대들가운데는 오백룡도 있다.
그는 주체3(1914)년 10월 24일 당시 함경북도 회령군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일찍부터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
17살나이에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무장투쟁방침을 받들고 무기획득을 위한 싸움에 나섰으며 그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 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하였다.
해방후와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는 철도려단 군사부려단장,내무성 경비국 려단장,조선인민군 사단장 등의 중임을 맡아 수행하면서 정규무력건설과 새 조국건설,전쟁승리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그후 당과 국가,군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조선혁명무력의 강화발전과 조선로동당의 자위적군사로선관철을 위하여,사회주의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의 혁명가적풍모에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수령결사옹위를 생의 목표로,삶의 전부로 여기고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한것이다.
까막눈이였던 자기에게 손수 《오백룡》이라고 이름까지 쓰신 학습장을 안겨주시며 조선글을 처음으로 배워주시고 명사격술도 가르쳐주시면서 불굴의 투사로 키워주신 수령님을 언제나 따르고 존경하였다.
오백룡은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높이 받들어모시고 백두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가는데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무장을 들고 혁명에 참가한 때로부터 오랜 세월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위해 투쟁하여온 그를 혁명의 원로로,핵심골간으로 내세워주시고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를 원형으로 한 예술영화를 만들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교양하도록 하시고 투사의 후손들이 충정의 대를 이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있어 혁명렬사 오백룡은 수령옹위의 전위투사로 영생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