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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강한 자주정신을 과시한 광주학생사건
(평양 11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력사에는 광주학생사건도 기록되여있다.

지금으로부터 85년전 조선인민은 광주학생사건을 통하여서도 일제의 조선민족멸시정책과 식민지통치를 용납하지 않을 굳은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였다.

1929년 10월 30일,광주-라주사이의 기차칸에서는 일본인남학생이 조선녀학생을 희롱하면서 모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학생들은 오만무례한 일본인학생을 단호히 징벌하였다.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응당한 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경찰은 도리여 조선인학생들을 폭행하다못해 체포구금하였다.

일제경찰의 로골적인 비호를 받은 일본중학교 교직원,학생들 수백명은 무기를 비롯한 각종 흉기를 가지고 광주역에서 또다시 조선학생들에게 란동을 부리였다.

조선민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은 야수적폭거에 격분한 광주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참을수 없는 분노를 대중적반일시위로 터뜨렸다.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광주일대에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광주시내 와 전라남도의 경찰,일본인무장《자위대》,소방대,일본인학생 등을 총동원하여 시위참가자들을 마구 체포구금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발악적일수록 조선학생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투쟁은 그해 12월부터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져가면서 더욱 고조되였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9년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전국의 194개 학교 6만여명에 달하는 조선학생들과 애국적인민들이 투쟁에 합세하였다.

저들의 식민지지배가 허물어질수 있다는데로부터 일제는 이를 탄압하기 위한 일대 살륙전을 벌렸다. 하여 맨주먹밖에 없는 수많은 조선학생들이 무리로 참살당하고 검거투옥되였다.

광주학생사건은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과 학생운동의 제한성으로 하여 비록 실패하였지만 일제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조선민족의 강한 자주정신과 기상을 힘있게 과시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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