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연구원은 11일 《《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낸 반인권적범죄의 진상은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된 상보를 발표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남조선에서 《세월》호대참사가 있은 때로부터 200일이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시신들은 침몰된 배와 함께 차디찬 바다밑에 내버려져있으며 《세월》호진상규명과 관련자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다.
괴뢰패당에 대한 유가족들의 원한은 구천에 사무치고 각계층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있다.
《세월》호참사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괴뢰패당에 의해 감행된 고의적인 대학살이고 특대형반인권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패당은 오히려 《세월》호에만 계속 발목이 묶여있을수 없다느니,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리용하려 해서는 안된다느니 뭐니 하며 대참사의 진상을 어물쩍 덮어버리려 하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낸 괴뢰패당의 반인륜적, 반인권적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기 위해 이 상보를 발표한다.
세계를 경악시킨 대학살만행
력사에는 배침몰사고에 의한 참변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세월》호침몰사건과 같이 세상사람들의 커다란 경악을 자아낸 대참사는 일찌기 없었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침몰당시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려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하여 476명의 승객들이 타고있었다.
그중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은 172명이고 나머지 304명은 침몰된 배와 함께 바다밑에 수장되였다.
어떻게 되여 이런 끔찍한 참사가 빚어지게 되였는가.
《세월》호가 침몰된 곳은 바다기슭에서 눈으로 빤히 보이는 3km 떨어진 수역이였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배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고 그로부터 한시간이 지나서 배가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는 6시간이라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배에는 구명조끼와 구명뽀트도 어느정도 갖추어져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수백명의 생명을 내버려둔채 저들만 살겠다고 배에서 먼저 내뺐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승객들부터 구원하고 맨 마지막에 탈출하든가 아니면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것이 법도이고 상례이다.
그런데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이동하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객들에게 발각될가봐 선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적고양이처럼 몰래 배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되여 얼마든지 살수 있었던 수백명의 승객들이 마지막 탈출기회마저 잃고 배에 갇힌채 고스란히 생죽음을 당했다.
괴뢰당국의 구조실태는 또 어떠하였는가.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여 구조활동을 벌려야 하는것이 바로 괴뢰해양경찰이다.
하지만 당시 사고현장에 먼저 나타난 목포해양경찰서소속 경비정 123호는 승객들을 구원할 대신 배를 버리고 탈출해나온 선장과 선원들만 처싣고 사라졌다.
그런가하면 사고발생직후 전라남도 119구조대 등에 소속되여있는 직승기들이 현장에 날아왔지만 《해양경찰의 소관》이라고 하면서 가로막음으로써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시각에 아무런 구조활동도 할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사전에 저들과 뒤돈을 대고 계약한 민간구조업체 《언딘》소속 인원들만 배에 접근시키고 민간인잠수부들이 선체에 진입하여 승객들을 구원하겠다고 하는것마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구조흉내나 내고 조명탄만 쏘아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구조에 동원된 괴뢰군부놈들 역시 물속이 어둡고 물살이 빠르다느니 뭐니 하면서 고의적으로 구조를 태공하였다.
이렇게 되여 침몰후 생존자들을 구출할수 있는 기회를 다 잃게 되였다. 그후 시신들을 건져내는데만도 몇달이나 걸리였으며 아직도 일부 시신은 찾지도 못한 상태에 있다.
대양한복판도 아닌 륙지가까이의 수역에서 37m깊이에 침몰한 배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여 수백명이 졸지에 수장되는 대참사를 빚어낸 21세기의 비극은 바로 이렇게 되여 일어난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세상, 태공과 무책임, 안일해이와 불법무법, 고의 등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무참하게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는 참혹한 인권페허지대가 바로 오늘의 남조선이다.
죽어서도 우롱당하는 인권
304명의 승객들이 배와 함께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된 끔찍한 참변은 삽시에 온 남조선땅을 초상집으로 만들었다.
침몰수역이 바라보이는 전라남도 진도의 팽목항은 생때같은 자식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가슴터지는 통곡소리로 차고넘쳤다.
남조선각지의 곳곳에 수백개의 분향소들이 생겨나고 추모행렬이 끊길줄 몰랐다.
당시 악몽의 침몰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조차 죄의식속에 살아야 했던 비애의 나날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괴뢰패당은 희생자들을 우롱, 모독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망동들을 거리낌없이 저질러 만사람을 경악케 하였다.
피해자가족들의 눈물과 곡성이 하늘땅에 차넘치고있을 때 실종자명단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유가족들이 통곡하는 한복판에서 제 배를 채우려고 태평스럽게 음식을 먹어대는가 하면 식당에 몰려가 술판, 먹자판을 펼쳐놓고 희희락락거리면서 《<세월>호자작시》까지 읊어대는 추태들이 벌어졌다.
당시 《KBS》방송사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수패거리들은 《<세월>호사고는 한꺼번에 300여명이 죽어 많아 보이지만 년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그리 많은것도 아니다.》, 《꼭 불행인것만은 아니며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것》이라는 잡소리를 줴치다 못해 나중에는 《<세월>호문제에 진저리가 난다.》, 《생존가능성이 없으니 이젠 그만하라.》, 《다 죽었을게 뻔한데 보험금이나 타갈것이지.》 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악담으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심히 모독하였다.
그런가하면 괴뢰검찰과 경찰은 DNA확인이니 뭐니 하면서 시신을 유가족들에게 제때에 넘겨주지 않아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하였다.
현 집권자는 초상집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미국상전을 끌어들여 그앞에서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꼬리치며 아양을 떨었는가 하면 가짜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는 광대극을 연출하여 각계층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냈다.
《새누리당》패거리들은 《세월》호대참사의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자면 야당과 유가족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넘겨야 한다는 각계층의 요구를 끝끝내 거절하였으며 《국회》를 찾아와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마구 내쫓았다.
뿐만아니라 《세월》호침몰사고를 무작정 《북의 소행》이라고 몰아대면서 《단호한 보복》이니 뭐니 하고 악담질을 해댔는가 하면 북이 《남남갈등》을 부추긴다고 하면서 《북풍설》을 조작하기에 급급하였다.
나중에는 우익보수단체들과 작당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 대해 《선동군》, 《시체장사군》 등으로 심히 모독하고 지어 단식투쟁을 벌리는 유가족들앞에서 음식냄새를 피우고 먹자판을 벌리면서 괴롭히는것도 모자라 《제대로 단식했으면 이미 죽었어야 하는데 왜 살아있는가.》, 《보상금을 타먹기 위한 연극이다.》고 조롱하였다.
극우보수단체패거리들은 괴뢰당국의 비인간적이며 무책임한 처사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 《제2의 광주폭동》, 《빨갱이는 죽어도 된다.》고 참을수 없이 모욕하였다.
이에 유가족들과 각계층은 《실종자와 가족을 두번 죽이는 행위》, 《인간의 초보적인 도덕도 모르는 패륜의 무리》, 《추악함과 비렬함의 극치》, 《한을 품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령혼들을 모독하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고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그야말로 패륜패덕과 사회악이 판을 치고 조상전래의 풍속과 인륜이 무참히 말살되여가는 야수화된 사회, 최악의 인권불모지인 남조선에서만이 볼수 있는 말세기적참경이였다.
《세월》호참사는 반인권적, 반인민적정치의 필연적산물
《세월》호대참사는 결코 악덕업주나 몇몇 해운관계자들에 의해 빚어진 비행의 산물이 아니라 철두철미 괴뢰당국의 반인권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치가 빚어낸 필연적결과이다.
원래 《세월》호는 수명이 훨씬 지나 파철이나 다름없는 중고품을 사들여온데다가 제멋대로 구조를 변경시키고 수리정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항 당시 정량의 3배나 초과된 화물을 실었다.
그러나 괴뢰당국은 실태를 뻔히 알면서도 안전검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합격판정을 내리였으며 선장과 선원들이 자격미달자들이였지만 승선을 눈감아주었다. 항행도중 선장이 휴식하면 항해사자격이 있는 일반선원이 조타를 잡아도 된다고 《선원법》을 뜯어고친 놀음을 벌린것도 괴뢰당국이다. 뿐아니라 이미전부터 려객선들의 잦은 고장과 상습적인 정원초과 등으로 사고위험이 높아가는데 대한 우려와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나 괴뢰패당은 그것을 외면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당국은 《세월》호침몰사고가 일어나자 그것이 돈에 환장한 려객선의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때문인듯이 여론을 내돌리였다.
그리고 유병언의 도주와 수색놀음을 연출하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시체만 찾아놓고는 모든 책임을 죽은자에게 떠넘겨버리였으며 선장을 비롯한 몇몇 송사리들을 재판에 걸어 처벌하는 놀음으로 사건을 무마해버리려 하였다.
괴뢰당국것들은 《세월》호침몰후 수백명의 승객들이 바다물속에서 숨져가며 살려달라고 피타게 호소하고있을 때 구조대책은커녕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였다.
당시 청와대 안보실 실장이였던 김장수는 안보실은 재난구조를 지휘하는 사령탑이 아니라고 하면서 구조에 낯도 돌리지 않았으며 안전행정부 장관은 한 경찰학교졸업식참가도중 사고관련 보고를 받고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외면하였는가 하면 괴뢰정보원은 침몰사고를 맨 먼저 알고서도 모르는척 하였다.
구조현장에 내려간 괴뢰국무총리라는자는 고급호텔의 온돌방에 자빠져 태평스레 잠을 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지어 청와대 안방주인은 《세월》호침몰사고를 통보받고도 생사를 다투는 그 시각에 7시간동안이나 자리를 비워놓고 딴장을 보아 비난, 조소거리로 되였다.
그런가하면 선장과 《오래동안 묵인하고 쌓여온 잘못된 관행》에 사고의 책임을 넘겨씌우면서 민심을 기만해보려 하였다.
뿐만아니라 청와대에 대한 각계의 비난이 비발치자 수십일이 지나서 마지못해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속에 없는 《사과》놀음을 벌리고 그것이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자 괴뢰국무총리를 제물로 내던지는 기만극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였으면 《월 스트리트 져널》, 《뉴욕 타임스》, 《가디언》을 비롯한 미국과 서방언론들까지 《최악의 참사》, 《전세계를 경악시킨 대참극》, 《사고가 아닌 인재》 등으로 대서특필하면서 이번 참사는 전적으로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의해 일어난것》이라고 신랄히 비난, 규탄하였겠는가.
《세월》호대참사가 일어난 후에도 남조선에서는 괴뢰패당의 반인민적통치로 서울지하철도 전동차충돌사고,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병원과 경기도 고양시의 주차장에서의 화재사고와 경기도 성남시에서의 야외공연장 붕괴사고 등 각종 참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남조선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전체 주민세대의 45%에 달하는 700여만세대가 제 집이 없어 뜨내기살이를 하고 완전실업자는 450여만명, 반실업자는 1,000만명에 이르고있다.
극도의 생활고에 몰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오늘 남조선은 《자살왕국》으로 악명을 떨치고있다.
하나의 거대한 인간생지옥으로 전락된 남조선에서의 여론조사에서는 60%이상이 《만일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다면 다른 나라에서 태여나고싶다.》고 개탄하였다.
괴뢰패당의 반인권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치를 그대로 두고서는 제2, 제3의 《세월》호참사가 계속 일어날수밖에 없다는것이 남조선 각계층의 민심이다.
괴뢰패당이 남조선사회를 이처럼 참혹한 인권페허지대,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어놓고도 그 누구의 《인권》에 대해 떠들고있는것이야말로 철면피의 극치이며 인권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다.
남조선괴뢰당국은 입이 열개라도 《세월》호대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전대미문의 반인권적, 반인민적범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심판대에 나서야 한다.
만일 괴뢰패당이 《세월》호대참사의 진상을 덮어버리려고 계속 교활하게 놀아댄다면 남조선 각계층의 더 큰 분노와 규탄을 불러일으키게 될것이며 광범한 대중적항거의 폭발에 의해 수치스러운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다.
주체103(2014)년 11월 11일
평 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