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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신문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에 대한 학살만행 폭로
(평양 2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인터네트신문 《오마이뉴스》가 4일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지난 전쟁시기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을 무참히 학살한데 대해 폭로하였다.

그에 의하면 6.25전쟁을 도발하자마자 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반격에 의해 서울이 함락되는데 바빠난 미제와 괴뢰군경은 6월 28일부터 사흘동안 대전형무소의 수감자들을 대전시 골령골에 끌고가 1 400여명이나 무참히 처형하였다.

7월 3일부터 감행된 2차 학살만행에 의해 희생된 인원은 1800~2000여명으로 추정되고있다.

3차 학살이 6일무렵부터 17일까지 계속되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당시 기자로 활동하던 영국인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알려지게 되였다 한다.

그들은 글들을 통해 남조선경찰이 1700여명의 수감자들을 교회당주변 숲에서 처형하였으며 이를 교회당에 있던 프랑스 신부가 목격하였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 인민군대가 금강계선을 돌파한 소식이 날아들자 하루동안에만도 녀성들을 포함한 수많은 수감자들을 30여대의 자동차에 싣고가 학살한적도 있었다고 폭로하였다.

당시 학살된 수감자수는 모두 7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에 대한 학살만행은 우리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와 그 이후에도 감행되였다.

괴뢰들은 인민군대를 도와주었다는 리유로 충청남도에서만도 무려 1만 1990여명을 검거하여 대전형무소에 감금하였다.

그리고는 수감자들에 대한 식량, 약품공급마저 차단하여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들어 죽게 하였다.

1951년 1월 17일에는 괴뢰군 헌병대가 형무소에 갇힌 수감자 166명을 골령골에 끌고가 처형하였다.

이렇게 학살되여 땅속에 묻힌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 그곳에서 유골들이 농사와 각종 개발로 땅을 파헤칠 때마다 나오거나 산에서 나딩굴고있는 형편에 있다.

이러한 야수적인 학살은 군부와 경찰의 우발적인 만행이 아니라 괴뢰당국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한것이며 여기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당시 미제침략군이 작성한 문서들이 이를 실증해주고있다.

미제침략군 25사단 CIC파견대의 전투일지 활동보고서는 1차 처형에 대한 사실을 전하면서 당시의 학살만행이 남조선《정부》의 지시에 의해 감행된데 대해 밝히고있다.

1950년 9월 23일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관의 륙군무관 에드워드가 미륙군정보부에 보낸 《한국에서 정치범 처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도 학살만행에 대해 씌여져있다.

보고서는 형무소의 재소자들이 인민군대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없애려고 몇주동안 처형하였으며 이 명령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려온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학살만행을 직접 목격한 프랑스 신부도 영국기자에게 수감자총살때 미군장교가 지켜보고있었다고 말하였다.

이 모든 사실은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에 대한 학살만행의 장본인이 다름아닌 미제와 그에 추종한 리승만괴뢰당국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의 력대 독재통치자들은 저들의 학살만행의 진상을 흑막속에 가리워왔다.

2000년에 골령골에서 학살자들의 유골이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2007년 어느한 매장지에 대한 발굴정리사업이 진행되였다.

그러나 리명박독재《정권》이 이 사업을 방해하였으며 오늘까지도 진상규명이 외면당하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전지역의 18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4일 대전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유해매장지들을 모두 발굴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기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설것을 요구하였다.

23일부터 골령골 유해발굴에 나설것이라고 단체는 밝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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