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터네트신문 《1코리안뉴스》에 실린 글(2)
(평양 3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중국인터네트신문 《1코리안뉴스》에 실린 글 《북핵이야기》의 두번째부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독특한 핵보유국
그후 일들은 6자회담의 온기와는 다르게 전개되였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핵시험성공을 발표한것이다.
2005년 핵보유를 선언한지 1년 8개월이 경과된 후였다. 진도 3.9에 폭발력 1Kt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북핵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했던 미국은 불시에 고슴도치가시에 찔려 놀라 벌떡 일어섰다.
세계지축이 지진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통신, 방송들이 동아시아뿐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조선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과 한국도 핵보유를 지향하게 된다는 도미노현상을 일으킬것이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조선의 이러한 행동이 핵전파방지체계 자체를 흔들리게 만들고있다고 거세게 주장했다.
그러나 방사능 류출없이 지하핵시험을 성공한 조선은 핵무기보유를 공식선언하면서 승리를 기뻐하는 열기로 전국이 뜨거웠다.
세계언론들은 2006년 10대뉴스에 《핵시험성공》을 놓았다.
조선의 핵시험성공으로 가장 위기의식을 가진것은 미국이였다. 조선이 핵시험을 계속 진행하면 북의 힘에 대한 신뢰도에 변화가 생기기때문이였다. 미국을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거리가 대두되였는데 조선의 핵문제를 국제화하는데 걸리는 난관이였다.
제재가 국제사회의 의사를 모아내는 면에서는 중요하지만 만능처방은 아니라는 새로운 견해가 백악관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이 아무리 조선의 핵문제를 가지고 여론을 동원해도 지구의 아주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이 북핵위협을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다른 묘수를 짜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핵협조설》이였다.
미국정부는 핵전문가들을 내세워 조선이 이란이나 수리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과 핵밀매를 하고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론이 미처 확산되지 못했는데 《북핵협조설》을 강하게 비난하는 조선외무성 대변인성명들이 발표되였다. 북조선은 《핵협조설》을 여론화하는 서방언론들을 규탄하는 목소리의 강도를 계속 높여나갔다.
2007년 9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뉴욕 타임스》지를 비롯한 미국의 일부 언론기관들이 조선과 수리아가 비밀리에 《핵협조》를 하고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고있다며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도이며 이미 2006년 10월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이전을 철저히 불허할것이라는데 대하여 천명하였으며 변함없이 행동하고있다고 강론했다.
동시에 대변인은 우리는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으며 한다면 하고 안한다면 안한다, 이번 《비밀핵협조설》은 6자회담과 조미관계의 전진을 달가와하지 않는 불순세력들이 또다시 꾸며낸 서툰 음모일뿐이라고 일축했다.
몇개월뒤 미국의 VOA방송에 따르면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유명한 미국의 허쉬기자는 2008년 2월 11일 미국의 VOA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북-수리아 핵협력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나본 미국정부인사중 누구도 이스라엘공군기가 지난해 9월 파괴한 수리아내 건물이 북이 지원한 핵시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수리아 핵협력설에 대한 최근의 보도는 이스라엘측의 언론공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북과 수리아간 핵협력의 실체가 분명치 않더라도 이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갈수는 없다고 우겼다.
이런속에서 미국대통령 죠지 부쉬가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2001년 부쉬행정부 출범이래 처음있는 사변이 터진것이였다.
조선중앙통신은 2007년 12월 6일 날자로 《죠지 부쉬대통령의 친서를 조선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성 차관보가 5일 박의춘외무상에게 전달하였다.》고 보도했다.
당시 신문 《한겨레》는 《부쉬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친서를 보낸건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간의 협의만으론 쟁점이 되고있는 <핵신고>국면을 넘어 핵페기단계로 신속하게 진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마침내 미국의 정보부문들로부터 이란이 이미 2003년에 핵무기연구개발을 중지하였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였다. 이것은 조선이 이란과 핵문제로 련결된것이 없다는 확인인 동시에 조선의 《핵협조설》을 무산시키는 소리없는 표명이였다. 이야말로 조선에 대한 미국의 아량인지 굴복인지 알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것이다.
관념을 깨뜨리는 정황은 관념을 무너뜨리는 정황으로 계속 확대되여갔다.
조선핵문제에 관한 제5차, 제6차 6자회담이 진행되고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페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성원들이 필요한 감독과 검증을 진행하도록 하는데 동의했다는 보도가 날았다. 이어서 2007년 6월 26일에 조선은 유엔에 《핵프로그람신고서》를 제출하며 세계이목을 집중시켰다.
6자회담침체의 최대의 장애물이였던 《핵프로그람신고서》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국은 안도의 숨을 쉬였고 한국언론은 《북핵 어물쩍 넘어가는가?》라며 북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인정되는것은 아닐가하고 전전긍긍하였다.
속담에 걱정이 현실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던가? …
그 시기 조선을 다녀온 프리챠드 전 미국대북특사는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데 더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한 조선 전문가들의 주장을 천연스럽게 소개까지 했다. 《미래한국》 워싱톤특파원 리상민기자에 의하면 프리챠드 전 특사는 5월 29일 《워싱톤 포스트》(WP)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북을 방문해 김계관 북핵협상대표 등 북고위관리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미국은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데 익숙해져야 하고 북핵페기는 북미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된후 론의를 고려해볼수 있다.》
미국은 벌써 북핵보유국인정궤도에 진입한 셈이 되였다.
이런 흐름속에서 조선이 CNN 등 미국 방송들이 중계하는 가운데 2008년 6월 27일 5MW원자로의 랭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세계에 보여줬다. 후일 얼핏 보면 조선이 핵보유를 포기하는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고도의 외교행보였다고 정객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건이였다.
북핵폭탄계획(프로그람)의 상징물인 랭각탑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에 창문들이 떨리고 먼지도 일어났지만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게 될지도 모를 세계판도우에서 그것은 한갖 폭음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이 녕변핵복합체에 있던 랭각탑을 파괴한 이후 핵계획을 완전히 해체하고 얼마 되지 않는 핵무기들을 포기한다해도 조선은 여전히 핵능력을 갖춘 국가들로 구성된 또 다른 그룹에 속해있을것이다.
신흥핵국가들이 실제로 등장할수 있는가?
북핵문제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하였다.
세계에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나라들 말고도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과학자들과 기사들, 하부구조를 가지고있는 나라는 40여개에 달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무기선택안을 진지하게 연구하다가 멈춘 스웨리예와 스위스로부터 1991년에 핵폭탄제조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핵후퇴국가는 10여개이다.
이 나라들이 핵에서 실지로 완전후퇴한것인가?
문제를 그렇게만 볼수 없다.
조선과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국은 비밀핵무기계획을 추진시키다가 지난 1970년대에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했다. 미국의 핵전문가인 허즈맨은 핵공업을 가지고있는 한국이 자기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 신속하게 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었다.
원자탄의 피해를 입은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핵폭탄제조가 금지사항으로 되여있지만 역시 일본에도 일류급핵시설이 갖추어져있는 상태이다.
핵개발에서 후퇴한 아시아의 다른 지역인 대만은 미중관계완화를 지켜보면서 1970년대에 비밀무기계획에 착수했다. 미국의 압력으로 대만이 중지하기는 하였지만 핵을 보유한 중국과의 긴장상태가 고조될 경우 그 계획을 신속히 회복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있다.
이란이 우라니움농축활동에서 매년 성과가 진전되고있는것과 동시에 사우디 아라비아와 페르샤만에 있는 테헤란의 적수들도 프랑스와 미국의 협조하에 핵동력계획에 착수했다. 6개아랍국의 기구인 만협조리사회는 자체의 지역적인 우라니움농축계획을 내놓았다.
에짚트에서도 첫 원자력발전소건설계획이 발표되였다. 범아랍민족주의를 일으킨 가말 아브델 나쎄르대통령이 핵무기구상을 탐구하다가 멈춘후 40년의 세월이 흘러 발표된 이 계획은 에짚트도 그간 잠자고있지 않았다는것을 시사했다.
이상과 같이 모든 나라들은 핵개발후퇴국으로 자처하는 브라질처럼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핵폭탄금지조항을 리행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무기화에로 급속히 이행할수 있는 핵동력기술을 갖추고있다는것을 쉽게 판단할수 있다.
핵대국이나 핵신흥국가나 위험신호에 대한 대응은 꼭 같을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로씨야처럼 아무런 제한없이 내놓고 핵을 만드는 국가나 숨겨놓고 만드는 국가, 도전을 물리치며 힘들게 핵을 만드는 국가나 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리익을 위한것으로 끝나게 될것이다.
그러니 핵보유국을 인정해 주고말고 하는것은 사실상 의의가 없는 일이다.
조선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원리를 알고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정정당당하게 하고싶어했다. 이 정정당당한 대응을 위하여 조선은 정세관리를 매우 치밀하게 계획하고 계획적으로 진행할뿐이였다.
2008년 7월 10일 북핵6자회담이 또다시 열렸다.
우여곡절끝에 열리는 회담이였음에도 사람들은 별로 개운치 않아했다. 그동안 조미간의 핵협상 달리기를 관찰해 볼 때 미국은 눈에 보이는 외교적성과를 얻기에 급급하여 조선에 끌려다니는듯 한 모양새가 되였기때문이였다.
미국이 조선의 핵신고서에서 제외하도록 한 우라니움농축프로그람과 핵확산문제를 보면 당연히 검증에 포함시켜야 하는것이 빠진것과 같았다. 미국은 조선의 완강한 고집에 밀려 그 두 사안을 신고서와는 별도로 량해각서에 담는 형식을 취해줌으로써 철저하고 완전한 신고였어야 한다는 당초의 원칙에서 후퇴했고 조선에 양보한것이다.
핵페기론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핵신고서에서 빠진 핵무기페기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고있었지만 6자회담자들은 이에 눈을 감고 있는듯 하였다. 6자회담참가자들이 외관상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고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다. 조선은 이런 틈을 타서 플루토니움을 리용한 추가핵무기제조는 대가를 받고 포기할지언정 기존핵무기로 핵보유국지위를 얻겠다는 욕심을 꾸준히 실천에 옮길수 있게 되였다.
2009년을 맞이한 조선에서는 《변이 나는 해》라는 색다른 표현이 나타났다. 그 《변》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은 비날론이나 주체철, CNC기술과 같은 기술 및 경제문제들로 꼽고있었지만 속으로는 따로 세워놓은것이 있었다고 본다.
그들이 맞이한 진짜 《변》은 핵문제에서의 《변》이 아니였을가?…
그런데 그 《변》에 직접 물을 대준것이 바로 미국자신이라는 사실이 의아스럽다.
미국방성은 2008년 년례보고서를 통해 북을 처음으로 핵보유국에 포함시켰다. 이 보고서는 아시아대륙연안에는 이미 5개의 핵보유국이 있다면서 중국과 인디아, 파키스탄, 조선, 로씨야를 영문순서에 따라 차례로 명기했다.
지금까지의 미국정부립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건이였다.
미국정부는 지난 2006년 10월 조선이 핵시험을 실시했지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었다. 나아가 핵무기보유국임을 자처하며 북핵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선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미국정부는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명기한 보고서내용이 실수한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조선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미당국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점에 여론은 일치되였다.
미국의 실수만이 아니였다.
앞서 미국을 방문한 리명박《대통령》은 워싱톤특파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가 곧바로 발언을 취소하기도 했다.(당시 《쿠키뉴스》리동훈특파원에 따르면 리《대통령》은 《한국정부가 독자적정보를 갖고있는것 아니지만…》이라며 《북은 핵을 가지고있는 나라라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40여분간의 간담회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개인생각이라며 발언을 정정했다. 간담회후 대변인은 《대통령이 <핵보유국>말한것은 아닌걸로 정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조선의 대중보도수단들은 《미국이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하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보고서가 나간 뒤 미국방성은 《전적으로 실수였다.》며 한발 물러났고 국방성대변인은 《정책적으로 우리는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맹국들에 사과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미국방성산하 합동군사령부보고서와 로버트 게이쯔국방장관의 《포린 어페어즈》지 기고문에 이어 미국국가정보위원회보고서도 조선을 《핵무기보유국》으로 표기했음이 뒤늦게 또 밝혀졌던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조선은 핵무기 1~2개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가진 국가로부터 8개의 핵무기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가진 나라로 되였다고 밝히면서 《조선은 2006년에 핵폭탄 1개를 시험함으로써 핵보유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폭스 뉴스》TV방송은 《세계의 첩보기관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있다. 그들이 조선이 핵무기개발계획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인정하는것으로부터 이미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였다는것을 인정하는것으로 인식을 바꾸었다는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하였다.
타이신문 《아시아 뉴스 네트워크》는 《새로운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지역의 미군기지들을 재더미로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였다, 조선의 핵무기보유국지위는 남북관계와 지역의 정치정세를 급변시켰다고 주장했다.
영국신문 《더 타임스》는 《조선, 완전한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국제적으로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있다고 전했다.
《이쯤되면 미국의 동맹국들로서는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핵보유국 북과 공존하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는 《워싱톤 포스트》지의 지적은 충분한 타당성을 보여준것으로 되였다.
조선사람들은 만인의 인정을 받는것을 량민보증이라고 말하는데 이 사건들을 핵문제에서 세계의 량민보증을 받은것으로 여긴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