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주권문제를 혁명의 기본문제로 보시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벌써 새형의 혁명정권, 인민정권을 세우시였다.
1930년대 전반기 당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인민의 요구를 떠난 좌경적인 쏘베트시책들을 유격구들에 교조적으로 실시하였다.
사유재산일반에 대한 철페를 선포하고 토지와 식량으로부터 농쟁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가지고있던 모든것을 공동소유로 만들었으며 《공동재산》, 《공동분배》, 《공동생활》이라는 질서밑에 움직일것을 요구하였다. 지어 일제를 반대하는 진보적인 지주들까지 숙청하고 그들의 토지, 소와 말은 물론 장농속의 물건까지 모조리 수탈하였다.
이 후과로 유격근거지에는 수습하기 어려운 동요와 혼란이 일어났다.
이 시기 남북만원정을 마치시고 중국 동만지방의 왕청으로 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혼란된 시국을 바로 잡고 새로운 인민정권을 세우기 위한 투쟁을 벌리시였다.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도 않는 쏘베트형태의 정권을 세우고 인민들이 요구하지도 않는 시책을 실시하는것을 반대한다고 하시면서 유격구에 세워야 할 정권은 인민혁명정부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명백히 밝히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에 의하여 모든 유격구에 구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되고 마을들에는 촌정부가 세워졌으며 그것을 내올수 없는 지역들에는 정권의 기능을 수행하는 농민위원회가 조직되였다.
이것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하고 광범한 반일대중의 통일전선에 의거하며 정권의 주인인 인민대중이 관리운영하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였다.
유격구들에서는 제반 민주개혁들도 실시되였다.
이로써 유격구는 항일무장투쟁의 강력한 후방기지, 정치적령도거점, 전반적조선혁명의 책원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수 있었고 새형의 인민혁명정부는 해방후 조선에서 창건된 인민정권의 원형으로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