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발해는 고구려유목민들이 옛 고구려의 령토에 세운 나라로서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고 698년부터 926년까지 존재한 동방의 강국이였다.
조선의 여러곳에서 발견된 발해시기의 유적들가운데는 국력강화에 크게 기여한 24개돌유적도 있다.
이미 학계에서 발해시기의 돌칸흙무덤으로, 고구려의 무덤과 공통성을 가진것으로 규정된 함경북도 화대군 금성리에 있는 국가보존유적 금성리1호무덤주변에서는 한줄에 8개씩 3줄로 주추돌이 배치된 독특한 이 24개돌유적이 발견되였다.
동해안일대의 함경북도 어랑군 회문리와 청진시 송평구역, 김책시 동흥리 등에서도 나타났다.
주추돌들은 현무암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그 길이와 너비,높이는 각각 70~90cm정도이다. 이러한 주추돌밑에는 줄마다 띠기초를 하여 보강하였다.
돌유적들은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줄에 돌을 8개씩 3줄로 배렬한것, 돌의 웃너비가 70~90cm이고 강돌과 진흙을 번갈아 다져 만든 띠기초가 있는것, 돌줄의 길이가 약 10m이고 너비가 7~8m인것, 주변에서 발해시기의 기와들과 살림용구들이 나온 점 등이 모두 같다.
유적들은 려행도중 말을 갈아타기도 하고 휴식을 할수 있게 설치한 건물로서 발해시기에 널리 쓰인 역참시설로 인정되고있다.
발해에서는 기본지역에서뿐아니라 전국에 이러한 역참망을 설치하고 그에 의거하여 나라의 전반적인 국력을 강화하였다.
24개돌유적은 당시로서 매우 발전된 교통통신망에 기초하여 나라의 중앙집권적봉건통치를 강화한 발해의 력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서 귀중한 자료로 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