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지난 조선전쟁의 피어린 격전의 갈피속에는 당시 38°선경비임무를 수행하고있던 공화국경비대 군인들의 영웅적인 위훈도 깃들어있다.
경비대전투원들은 위대한 전승의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군공을 아로새긴 공화국의 첫 위훈자들이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조선괴뢰군은 미리 준비된 침략전쟁도발계획에 따라 미제침략군 고문관들의 직접적지휘밑에 38°선전역에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옹진고지방면을 지키고있던 10여명의 경비대군인들은 피어린 격전끝에 적 1개 대대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옹진반도를 해방시킬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적들은 해주, 금천, 철원 등 여러 방면에서 쳐들어왔지만 경비대군인들은 진지와 초소들에서 치렬한 방어전을 전개하여 력량상 우세한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켰으며 인민군부대들과의 협동작전밑에 적들을 완전히 격퇴하고 반공격에로 넘어갔다.
당시 전투환경에 대해 남조선괴뢰군 제17련대본부 장교였던 한서환은 이렇게 실토하였다.
《…25일 새벽에는 드디여 38°선 이북지역을 향하여 일제히 진공하라는 륙군본부 극비명령이 하달되였다.…
우리의 진공이 개시되여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공화국경비대의 맹렬한 반격을 받게 되였는데 이때의 38°선충돌은 과거 어느 전투보다도 가장 가혹한것이였다.…
공화국경비대의 공격이 얼마나 심하였던지 우리는 이런 경우에 무엇을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고 장교나 하사나 병사나 할것없이 혼비백산할따름이였다.…》
경비대군인들의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희생정신에 의해 미제가 감행한 무력침공은 이렇듯 첫걸음부터 여지없이 분쇄되였다. 그들의 영웅적투쟁은 전전선에서 아군부대들이 즉시적인 반공격을 가하도록 하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