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민족의 자주적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력사에는 지금으로부터 87년전에 있은 광주학생사건도 기록되여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사이의 기차칸에서는 일본인학생깡패들이 조선녀학생들을 희롱하면서 모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학생들은 오만무례한 일본인학생들을 단호히 징벌하였다.
일제경찰은 도리여 조선학생들에게 폭행을 가하다 못해 체포구금까지 하였다.
경찰의 로골적인 비호속에 수백명의 일본중학교 교직원, 학생들은 각종 흉기를 들고 광주역에서 또다시 조선학생들에게 란동을 부리였다.
일제의 야수적폭거에 격분한 광주학생들은 참을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11월 3일 그들은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제도를 철페하라!》라는 구호밑에 격렬한 반일투쟁을 벌리였다.
당황망조한 일제는 광주일대에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시위참가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구금하였다.
그러나 투쟁은 더욱 고조되여 12월부터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대되였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그해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전국각지 194개 학교의 6만여명에 달하는 조선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이 투쟁에 합세하였다.
일제는 전국적으로 경계망을 강화하고 경찰들과 함께 2개 련대의 정예무력까지 탄압에 동원하는 등 일대 살륙전을 벌렸다.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간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한 조선인민은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