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이 강산에 차넘치는 7월이 왔다.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참다운 동지애의 시원을 열어놓으시고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을 뜨거운 감회속에 되새겨보고있다.
그이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금고에 따로 소중히 보관하신 한장의 사연깊은 사진이 그에 대해 잘 말해주고있다.
수령과 전사사이의 동지적관계가 얼마나 공고하고 영원한것인가를 눈물겹게 이야기해주는 그 사진은 공화국이 창건된 해인 주체37(1948)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수상 겸 첫 산업상이였던 김책동지와 함께 찍으신 사진이다.
동지획득을 최상의 락으로 여기신 그이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도 자본가들은 돈을 모으는 재미가 별재미라고 하지만 자신한테는 동지를 모으는 재미가 최상의 락이고 재미였다고 뜨겁게 쓰시였다.
하기에 한생 동지애의 혁명실록을 무수히 새겨오시였다.
항일전의 나날에는 100여명 대원들의 《민생단》보따리를 불태우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 편입시킨것을 비롯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펼치시였으며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는 불타는 고지에서 군인들이 콩나물을 길러먹도록 해주시고 전쟁사에 류례없는 화선휴양소를 내오도록 하신 감동깊은 사실 등을 갈피갈피에 수놓으시였다.
절세위인의 동지적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후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때에도 새겨졌다.
1973년 8월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무더위속에서도 오랜 시간 릉건설사업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신 그이께서는 얼마후 릉에 새로 안치할 40명 렬사들의 이름을 더 적어보내주시고 필요한 자료들까지 다 보내주시였으며 렬사들의 순위와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전사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주실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신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