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휴식》을 끝내신 사연
(평양 3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52(1963)년 12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으로 10여일간 휴식하시기 위해 황해북도에 내려가 계시게 되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매일같이 도안의 여러 군들을 돌아보시면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였다.
어느날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서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관이 몇번이나 쉬실것을 간청드렸으나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했는데 백날을 휴식한들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고 하시며 도내 당 및 행정경제기관 일군들의 협의회를 해야겠으니 그들을 부르라고 이르시였다. 이리하여 다음날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일군들과 마주앉으신 수령님께서는 먼저 린산군당위원회 일군을 부르시여 군과 도에서 생산되는 천은 얼마이고 중앙에서 받는 천은 얼마이며 옷을 해입혀야 할 군내 학생수는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머리를 수그리고 대답을 드리지 못하는 일군에게 수령님께서는 지금 국가에 천이 없어서 어린이들의 옷을 해입히지 못하는가, 어째서 못해입히는가고 따져물으시였다.
당시 나라에서 1년간 생산되는 천으로는 전국의 유치원생으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겨울옷과 여름옷을 각각 한벌씩 얼마든지 해입힐수 있었다.
잠시후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실정을 잘 모르는것을 보아 회의를 아무리 계속해도 성과가 없을것 같으니 이제부터 책임적인 일군들이 몇개 리에 내려가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가지고 온 후에 회의를 다시 계속하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길로 여러 리들에 나가시여 밤늦게까지 농민들을 만나보시며 형편을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후 평양으로 떠나시였으며 그로부터 1주일후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솜옷과 모자를 무상으로 공급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채택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