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의 농기계를
(평양 5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61(1972)년 10월 어느날 벼수확기시제품들이 나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시교외의 어느 한 포전으로 나오시였다.
마지막 한대의 벼수확기까지 다 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과학자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가장 큰 결함은 자기 머리를 써서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의것을 본딸 생각만 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벼수확기를 크게 만들지 말고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자그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후 또다시 이 부문의 일군들을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연구하고있는 벼수확기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베는 장치를 완성하지 못하고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남의것을 자꾸 본딸 생각만 하니 잘될리 없다고, 벼짚과 밀짚은 그 성질이 서로 다를뿐아니라 벼는 논에서 자라고 밀은 밭에서 자라는것만큼 그렇게 해서는 벼수확기를 완성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몸소 동작을 해보이시며 밀을 베듯이 내려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올리훑으면서 걷어쥐고 베는 식으로 만들어보라고 일깨워주시였다.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첫 벼수확기가 완성되였다.
우리 식으로 완성한 첫 벼수확기의 작업모습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그 이름을 《청산리》호라고 지어주시였다.
그후에도 벼단까지 묶어내는 벼수확기를 완성시켜주시고 그 이름을 《모란봉》호라고 지어주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