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무산지구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80년이 되였다.
주체28(1939)년 5월에 진행된 이 전투는 보천보전투(1937.6)와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로 조선의 항일무장투쟁사에 기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공세를 보다 강화하면서 혁명군이 전멸당했다고 허위선전까지 벌리고있던 당시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적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기 위한 총성을 국내에서 울리기로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해 4월 북대정자회의에서 제시하신 무산지구진공작전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의 적요충지들을 련속 타격하는 춘기반격전을 전개하여 국내진공작전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5월 18일 압록강을 감쪽같이 건너 조국땅에 들어선 혁명군은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으며 청봉과 건창, 베개봉과 삼지연을 거쳐 대낮에 《갑무(갑산-무산)경비도로》를 따라 무산지구에로 신속히 진출하였다.
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기 위해 일제가 품들여 닦아놓은 경비도로로 대부대가 대낮에 행군했다는 사실은 적의 몇개 사단을 소멸한것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령활무쌍한 일행천리전술에 적들이 당황망조해하고있을 때 혁명군은 22일 신사동과 신개척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였다.
다음날 조선인민혁명군은 지형상 유리한 대홍단벌에서 유인매복전으로 신개척에서 돌아오는 7련대의 뒤를 따르던 적들을 일격에 전멸시키는 커다란 전과를 이룩하였다. 이로써 무산지구진공작전은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다.
무산지구전투는 대륙침략에 미쳐날뛰던 일제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김으로써 린접국가들의 혁명투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제국주의침략과 예속을 반대하는 세계피압박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을 고무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