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궁민 또는 화전민의 대부분은 매년…나쁜 곡식마저 얻을수 없어서 야생나무, 과실, 나무눈, 풀뿌리 등을 먹으며 어떤 지방에서는 흙을 먹는자까지 있다.》
이것은 일제의 극심한 쌀략탈만행으로 말미암아 조선에 무서운 기근이 들었던 상황에 대하여 일본인들자신이 실토한 말이다.
지난 세기 조선을 불법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쌀략탈을 식민지경제략탈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리로 삼고 이를 미친듯이 강행하여 조선인민을 극도의 기아와 빈궁에 시달리게 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미 1910년에 48만 7,000석, 1911년에 50만석의 쌀을 략탈해간 일제는 1913년 2월에 《조선미곡검사규칙》이라는것을 공포하고 본토에서의 쌀부족문제를 조선에서 쌀을 대량략탈하여 푸는것으로 정책화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농민들은 1914년에만도 230만석을, 1919년에는 280만석의 쌀을 빼앗겼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토에서 쌀부족현상이 더욱 우심해지자 일제는 또다시 《산미증식계획》이라는것을 내들고 쌀략탈을 본격화하였다.
그로 인하여 조선의 그 어디에나 극도의 기아와 빈궁이 들고 풀뿌리와 야생나무, 심지어 흙까지 파먹는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1931년에 9.18사변을 조작하여 만주를 집어삼킨 일제는 대륙침략전쟁준비에 필요한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해 조선농민들에게 《량곡공출》제도를 강요하고 폭력기구를 총동원하여 강제로 식량을 징수하였다.
그리하여 1931년 한해에만도 근 1,000만석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갔다.
일제강점 말기에 이르러 조선이 얼마나 심한 인위적기근지대로 되였는가 하는것은 이 시기 산과 들의 소나무들이 하얗게 변모되고 파충류나 량서류같은것이 중요한 식용물로 된 사실이 잘 말해주고있다.
참으로 일제는 조선의 귀중한 모든것을 깡그리 앗아간 략탈자, 날강도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