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의 중앙계급교양관에는 과거 일제가 조선의 근대적발전을 가로막은 죄행자료들이 전시되여있다.
조선에서 일어난 부르죠아개혁(1884년)을 전후한 시기의 력사적사실들은 일제가 나라의 발전을 막기 위하여 책동한 교활하고 악랄한 침략자라는것을 증명하고있다.
1870년대초에 조선에서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는 개화파가 형성되였다. 개화파는 개화와 독립, 부국강병을 정치적구호로 내세웠으며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수구파세력을 타도하고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이룩하며 독립을 유지강화할것을 지향한 진보적인 정치세력이였다.
개화파는 1884년 12월 4일 조선의 첫 부르죠아개혁이였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개화파들은 5일에는 새 정부의 탄생을 온 나라에 공포하였으며 정부정강도 발표하였다.
개화파는 자기의 무력이 많지 못한것을 고려하여 일본공사로부터 정변시에 왕궁호위에 일본군대를 동원시킬데 대한 《약속》을 받아내였다. 그런데 정변후 사태가 급변하자 왕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일본군대는 배신적으로 철수하였다.
정세가 불리하게 전환된 조건에서 개화파는 일본에서 《원조》받은 무기를 꺼내여 쓰려고 하였지만 그것은 전혀 쓰지 못할것들이였다.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면서 부르죠아개혁운동의 성과를 고착시키려고 한 개화파의 노력은 외세에 의해 실현될수 없게 되였다.
결국 갑신정변은 일제의 배신행위로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조선인민은 근대적발전을 가로막은 일본의 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