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우리 나라에는 1950년대 후반기부터 천리마시대로 력사에 기록된 한 시대가 있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천리마작업반운동이 세차게 일어나 조국건설력사에 눈부신 전진과 비약이 이룩되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인간으로 교양개조하는 대중교양운동, 생산을 앙양에로 이끄는 대중적혁신운동이였다.
이 운동의 선구자들중에는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당시 강선제강소)의 진응원작업반원들도 있다.
주체45(1956)년 12월 강선제강소를 찾으시여 더 많은 철강재를 생산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호소를 받들고 진응원과 그의 작업반원들은 5개년계획(1957-1961)수행의 첫 출강부터 용해시간을 이전보다 3시간이상 단축하였다.
1959년 2월 제강소에 또다시 오시여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불씨를 심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에 고무된 그들은 그해 3월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첫 봉화를 들었다.
진응원과 작업반원들은 본위주의를 비롯한 뒤떨어진 사상관점, 일본새를 극복하고 집단적혁신으로 생산을 다그쳐 제강소가 5개년계획을 앞당겨수행하는데 이바지하였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적구호를 높이 들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강철증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진응원작업반은 우리 나라에서 첫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이 운동은 온 나라에 급속히 확대되였으며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가 진행된 1960년 8월까지 760여개의 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칭호를 받았다.
우리 나라의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로동계급편)은 바로 천리마시대 인간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오늘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천리마시대에 발휘된 영웅적투쟁정신과 기백을 높이 떨쳐가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