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우리 인민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류다른 추억속에 되새겨보군한다.
력사에 천리마시대로 기록된 이 시기 경제건설성과도 컸지만 그보다 이때가 고결한 인생관과 륜리의 경지가 펼쳐진 잊을수 없는 나날이기때문이다.
이 시대의 길확실, 리신자영웅들은 온 나라가 다 아는 공산주의교양의 선구자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우리 나라에서 천리마작업반운동이 전개되고있던 때 평양제사공장(당시)에서 길확실작업반은 이 운동에 제일먼저 궐기하였다.
갓 20대에 들어선 작업반장인 길확실은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기 집이 있었지만 합숙으로 거처를 옮기고 작업반원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보살펴주었다.
하루 일을 끝낸 후 그들의 옷과 침구류를 빨아주고 새옷도 지어주었으며 앓는 작업반성원을 위해 며칠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 나날 길확실작업반은 서로 돕고 이끄는 단합된 집단으로 되였으며 생산에서도 혁신을 일으켜 주체48(1959)년 7월 공장적으로 첫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그후 그는 뒤떨어진 다른 작업반으로 옮겨가 1960년에 그 작업반도 천리마작업반으로 이끌었다.
공화국정부는 1년도 못되는 사이에 두개의 작업반을 천리마작업반으로 만들어 인간개조의 본보기를 창조한 길확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안겨주고 천리마시대의 전형으로 내세워주었다.
농촌의 평범한 처녀선동원이였던 리신자도 농사일에 성실하지 못한 농장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결함을 고쳐주었으며 작업반원들의 생활을 진심으로 돌봐주었다.
그의 진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뒤떨어진 사람들이 로동을 사랑하고 집단을 귀중히 여기는 모범적인 인간들로 성장하게 하였다.
리신자도 우리 당의 품속에서 온 나라가 다 아는 선동원으로, 로력영웅으로 자라났다.
길확실, 리신자영웅과 같은 공산주의교양의 선구자들이 발휘한 미풍, 천리마시대 인간들의 인생관을 우리 인민모두가 본받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