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우리 나라의 민족악기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다.
고대시기의 민족악기는 B.C.3000년기초에 동방에서 제일먼저 문명시대에 들어선 고조선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으며 당시 이웃나라들의 악기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생활과정에 악기를 더욱 발전시켜 그 종수를 부단히 늘이였다. 그리하여 악기종수가 중세초기인 세나라시기에 50여종, 고려시기에 60여종,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서는 80여종에 달하였다.
피리, 저대, 가야금, 북 등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들의 출현은 당시 직업화된 관현악단을 조직할수 있는 물질적토대로 되였다.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초기에 왕궁에 백수십명규모의 대관현악단이 무어졌으며 15세기에는 새로운 음악표기법이 창안도입되여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에 널리 리용되였다. 이 시기에 편찬된 악보들이 조선봉건왕조실록에 기록되여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다.
그러나 20세기초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하여 민족악기들은 민족관현악단과 함께 빛을 잃었다.
나라가 해방된(1945.8.15.)후 민족악기들은 다시금 자기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악기들을 시대의 요구와 현대적미감에 맞게 개량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특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새로운 민족악기인 어은금, 옥류금이 창안제작되고 수많은 악기들이 훌륭히 개량되였다.
우리 민족음악과 양악을 마음대로 조화시켜 연주할수 있게 개량된 악기들은 주체적인 배합관현악을 비롯한 민족음악발전에 크게 기여하고있다.
평양시의 통일거리에는 종합적인 민족악기생산기지가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