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변혁의 시대-천리마시대
(평양 6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자력갱생으로 강화발전하여온 우리 나라의 현대력사에는 천리마시대도 기록되여있다.
천리마시대가 펼쳐지던 때는 조국해방전쟁(1950.6.25-1953.7.27.)이 끝난 후 난관이 겹쌓였던 시기였다. 당시 나라에는 자금도 자재도 로력도 부족하였고 인민들의 생활도 펴이지 못하였다. 적대세력들은 새 전쟁도발책동을 로골적으로 감행하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질풍같은 속도로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를 탄 기세로 내달려 력사에 있어본적 없는 기적과 변혁을 이룩하고 조선사람의 기상을 만방에 떨치였다.
주체45(1956)년 12월 평양에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소집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5개년인민경제계획의 첫해인 1957년도 인민경제계획과 관련한 문제가 중요하게 토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이후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시여 로동계급에게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터놓으시며 우리는 남이 한발자국을 걸으면 열발자국을 걷고 남이 열발자국을 뛰면 백발자국을 뛰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계획보다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제강소로동계급은 이 1만t의 증산과제를 단 석달반동안에 해제끼고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뽑아냈다.
강선땅에서 타오른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은 모든 부문에로 타번져졌다.
전국의 로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은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대고조를 일으켜나갔다.
김책제철소(당시)에서는 19만t능력의 설비로 27만t의 선철을 생산하였고 황해제철소(당시)에서도 한해도 못되는 사이에 대형용광로를 일떠세웠다.
기계공업부문의 로동자들은 30여일만에 뜨락또르를, 40일만에 자동차를, 1년동안에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냈으며 3, 000t프레스와 대형양수기, 굴착기, 불도젤 등을 제작하였다.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벌려 한해사이에 국가계획보다 1만 3, 000여대의 공작기계를 더 생산하였다. 이 시기에 기계가 기계를 낳고 공장이 공장을 낳는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건설부문에서는 살림집을 14분에 한세대씩 조립하는 평양속도를 창조하였으며 농촌경리의 수리화가 기본적으로 완성되여 사회주의농촌경리의 물질기술적토대가 튼튼히 다져졌다.
우리 인민은 공업화의 거창한 과업을 단 14년동안에 실현하고 사회주의공업국가를 일떠세웠다.
세상사람들은 힘차게 솟구쳐오르는 공화국의 장엄한 모습을 보며 천리마조선의 기적이라고 격찬하였다.
1961년에 수도 평양에 세워진 천리마동상은 위대한 천리마시대 우리 인민의 영웅적기개를 시위하는 기념비로, 우리 나라의 상징으로 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