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일찌기 국가를 세우고 뛰여난 슬기와 재능으로 우수한 문화를 창조한 우리 민족은 동방의 문화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오래전에 일본렬도에 진출한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아스까문화를 창조하였다.
일본의 나라현 아스까지방에서 발전한 아스까문화는 고구려, 백제 등의 직접적인 영향밑에 이룩된 문화로서 삼국시기의 우리 민족문화를 아스까지방에 그대로 옮긴것이다.
아스까지방에는 지금도 당시의 문화발전상을 보여주는 법륭사와 《천수국수장》, 다까마쯔무덤의 고구려식벽화와 같은 건축물과 유적, 유물이 많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당시 고구려는 야마또국가에 국가적사절단과 함께 불교승려, 기술자, 학자들을 수십차례에 걸쳐 파견하였다고 한다.
아스까사(법흥사)가 완공되였을 때 고구려에서 거기에 앉힐 불상에 입힐 황금 300량(11.250㎏)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담징을 비롯한 고구려의 많은 화가들은 일본에서 여러 불교사원의 벽화를 그려주었다.
백제도 아스까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일본땅에 우리 민족문화를 보급하는데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은 6세기-7세기 일본에서 활동한 조각가, 공예가인 도리이다. 도리의 가문은 522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리의 대표작으로는 아스까사의 금동장륙불상과 법륭사의 금동석가여래삼존상 등을 들수 있다.
아스까문화를 대표하는 금동석가여래삼존상은 623년 일본왕실로부터 의뢰받아 창작한것인데 이 작품의 완성으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고 한다. 고구려식과 백제식을 결합한 아름다운 조각적양상을 두고 일본사람들은 오늘까지도 도리양식이라고 하고있으며 도리는 일본조각사의 시초를 열어놓은 사람으로 불리우고있다.
도리와 같은 뛰여나고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에 의하여 락후한 상태에 있던 일본문화는 마침내 개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
이처럼 아스까문화는 조선적색채가 진한것이 특징이다. 이런데로부터 일본사람들은 아스까문화를 《이국적정서가 넘쳐나는 문화》라고 말하군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