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해마다 우리 인민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에 참패를 안기고 위대한 승리의 축포를 터쳐올린 전승의 날을 뜻깊게 경축하고있다.
그러나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1950.6.25-1953.7.27.)에서 당한 패배의 수치와 괴로움을 덜어보려고 패전을 《승전》으로, 《잊혀진 승리》로 묘사하면서 해괴하고 치졸한 놀음을 벌려놓군 한다.
력사에 새겨진 패전이 《승전》으로 될수는 없다.
조선전쟁을 도발한 미제는 전쟁 첫시작부터 련전련패를 거듭하게 되자 침략전쟁에서 살륙과 략탈의 전법을 익히고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고 하는 살인《장군》들을 모조리 동원하였다.
하지만 조선전쟁에서 살인《장군》들의 작전들은 련이어 파탄되였다.
패전을 모른다고 호언장담하던 미24보병사단장 띤은 자기 사단을 전멸시키였으며 졸병의 옷을 갈아입은채 도망치다가 인민군병사에게 포로되여 미국의 위신을 흙탕속에 구겨박았다.
모조리 죽이는 전법으로 승진의 길을 닦아온 미8군사령관 워커도 인민군대의 매복에 걸려 저승길로 갔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미제의 살인《장군》들은 련속 파면되였다.
1950년말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완전실패하자 전쟁형세는 《동쪽의 나뽈레옹》이라고 자처하던 맥아더에게 수치스러운 종말을 가져다주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으로 된 릿지웨이와 그뒤를 이은 클라크도 패전《장군》으로 락인되고 미8군사령관의 자리에 새로 올라앉았던 밴플리트는 《무능한 지휘관》이라는 혹평을 받고 파면되였다.
미제침략군 9군단장은 비행기와 함께 한강에 처박혀 물고기밥신세가 되였고 미1해병사단장 스미스는 《무덤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렇듯 승진의 일로만 걸어온 미군장성들 누구나 조선전쟁에서는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