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온갖 범죄적만행을 감행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준 우리 민족의 천년숙적이다.
그 범죄적만행중에는 1929년 11월 일제가 청년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광주학생사건도 있다.
1929년 10월 30일 아침 광주와 라주사이의 렬차안에서 일본인학생불량배가 조선녀학생을 모욕하고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녀학생에 대한 민족적모욕에 격분한 조선청년학생들은 일본인학생불량배에게 응당한 징벌을 가하였다. 그러나 일제경찰들은 구체적인 내용은 알아보지도 않고 조선청년학생들만 마구 구타하였으며 일제의 어용신문들은 진상을 외곡하여 보도하였다.
11월 1일 일제는 300여명의 일본인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무장시켜 시위투쟁을 위해 광주역전에 모여있던 조선청년학생들을 습격하게 하였다.
이에 격분한 광주시내의 조선청년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히 동맹휴학을 선포하고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에 떨쳐나섰다.
광주학생사건을 발단으로 한 조선청년학생들의 반일투쟁은 그해 12월부터 전국적범위에로 급속히 퍼져갔다.
일제는 전국적으로 경계망을 강화하고 경찰들과 함께 군대들까지 동원하여 조선청년학생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1930년 1월 일제는 경성에서의 조선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을 탄압하기 위하여 경찰과 기마순찰대 등 수천명의 진압무력과 각종 차량을 모조리 동원하였으며 방대한 폭압무력앞에서도 청년학생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2개 련대의 침략군까지 동원하였다.
그야말로 온 나라는 조선청년학생들의 피로 물들었다.
90여년전의 광주학생사건은 오늘도 우리 인민에게 일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