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우리 인민의 원군기풍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포화속에서도 높이 발휘되였다.
강원도 금강군의 직동령과 접하고있던 마을인민들은 적들의 포탄이 무시로 날아드는 속에서도 전시식량생산투쟁을 힘있게 벌렸고 정성껏 음식을 지어 고지의 인민군용사들에게 보내주었다.
군인들을 친혈육처럼 여기며 자기 집 쌀독까지 다 기울여 성심성의로 위해준 금강의 세 동서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인민군장병들속에서 널리 전해지고있다.
제손으로 일군 땅에서 많은 량의 옥백미를 전선원호미로 바친 어랑군의 한 녀성은 60살이 넘었지만 인민군부상병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였다. 하기에 군인들은 그가 이끄는 담가대를 두고 《어머니담가대》라고 정답게 부르군 하였다.
주체41(1952)년 11월 벼 50가마니를 전선원호미로 바친 평원군의 다수확농민들의 애국적소행은 온 나라 농민들속에서 전선원호미헌납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게 한 봉화로 되였다.
그들의 모범을 따라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군기기금헌납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나어린 소년단원들도 이 운동에 합세하였다.
우리 인민이 지성을 다해 전선의 용사들에게 보내준 비행기와 땅크, 함선들은 《로동자》호, 《대학생》호, 《소년》호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전쟁승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평안남도의 인민들은 한달동안에만도 전선에 무려 8만 5,400여점의 위문품과 6,400여통의 위문편지를 보내였으며 함경북도의 농민들은 1951년 상반년동안에 막대한 량의 일용품, 섬유제품 등을 마련하여 싸우는 군인들에게 보내주었다.
강원도와 자강도의 녀성들도 많은 량의 피복을 마련하여 보내주었다.
군대가 강해야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가 있어야 자기 가정과 후대들의 안녕과 행복도 있다는 철리를 깊이 체득하였기에 우리 인민은 불비속에서도 원군의 길을 순간도 멈춤없이 걸어갔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70년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우리 인민의 원군길은 끝없이 이어지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