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총비서 고유원준동지의 령전에 화환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훈장>수훈자이며 로력영웅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인민배우 유원준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13일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였다.(끝)


세계식량계획 보조집행국장일행 평양도착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세계식량계획 보조집행국장 쟝 쟈끄 그래쓰일행이 오늘 평양에 도착하였다.
 비행장에서 관계부문 일군들과 조선주재 유엔개발계획대표와 세계식량계획 부대표가 일행을 맞이하였다.(끝)


조선영화문화창작사/소개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창작가들이 창립 50돐(6.14)을 높은 창작성과로 맞이하고있다.
 이곳에서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밀림이 설레인다>의 속편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사회주의건설시기를 주제로 한 영화문학들과 가사들이 련이어 창작되고있다.
 <김일성상>계관인이며 2중로력영웅인 리춘구가 이끄는 이 창작집단은 지난 50년간 수백편의 영화문학과 수많은 가사들을 창작하여 조선영화발전에 기여하였다.
 지난기간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혁명활동력사를 보여주는 총서형식의 혁명영화 <조선의 별>,<민족의 태양>을 비롯한 혁명영화문학들을 창작하여 영화예술에서 수령형상창조의 새 경지를 개척하게된것은 이곳 창조집단의 특출한 성과이다.
 또한 이 창조집단은 예술영화 <꽃피는 마을>,<로동가정>,<도라지꽃>,<자신에게 물어보라> 등 사상예술성이 높고 시대정신을 훌륭히 반영한 영화문학들을 수많이 창작하여 인민들의 사상정서교양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최근년간 이 집단은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 심오한 철학적의미를 종자로 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영화문학들을 시대의 걸작으로 창작완성하여 영화예술의 본보기를 낸게 하였다.
 주체81(1992)년에 이 영화의 14부(최현덕편)를 내놓은 창작가들은 현재까지 45부에 이르는 영화문학들을 창작하였다.
 영화문학창작에서 이룩한 특출한 공로로 하여 이 집단에서는 10여명의 <김일성상>계관인,2중로력영웅,로력영웅이 배출되였다.(끝)


총련조선대학교 학생조국방문단성원들이 감상발표모임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사회주의조국에 체류하고있는 박재수를 단장으로 하는 총련조선대학교 학생조국방문단 성원들의 감상발표모임이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서는 김설자,박현숙,정영봉,구혜영,백승숙,정일용 학생들이 장편소설 <영생>과 <력사의 대하>를 읽고 받은 감상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오름을 금할수 없었으며 그이의 고매한 풍모와 위대한 업적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조국의 륭성번영과 민족의 존엄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신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혁명의 중하를 걸머지시고 머나먼 길을 걸으신것은 력사의 요청이였고 불세출의 위인의 <숙명>이였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그처럼 높이 칭송하고있는것이라고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면서 그들은 민족이 낸은 또한분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여 수령님은 영생하시며 수령님의 업적은 찬연히 빛나고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시며 우리 조국이 사회주의강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치고있는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대한 령도자로 모시고있기때문이라고 말하였다.그들은 비범한 예지와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엄혹한 정세속에서 역경을 순경으로,화를 복으로 전환시키시며 나라의 자주권과 인민의 안녕을 굳건히 수호해주신데 대하여 소설은 감명깊게 펼쳐보이고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따뜻이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무한대한 사랑을 깊이 절감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간직하게 된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장군님을 높이 우러러모시고 결사옹위해나갈 결의들을 피력하였다.
 그들은 해외에서 살고있는 자기들에게 온갖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해나가겠다고 말하였다.(끝)


김대중의 미상하량원 합동회의 발언을 비난/조선중앙통신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남조선의 현집권자는 9일 미상하량원 합동회의에서 한 연설에서 그 누구의 <무력도발>을 용납하지않겠다느니 <힘>에 의한 평화를 지켜나가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격에 어울리지도 않게 허세를 부렸다.
 그 누구의 <무력도발>이란 뒤집어놓은 북침위협의 대명사이며 <힘>에 의한 <평화유지>란 곧 반북대결과 북침을 의미한다는것은 삼척동자들도 알고있는 괴뢰들의 반역의 공식이다.
 문제는 한때 <민주인사>로 자처하고 <평화통일>에 대해서도 곧잘 되뇌이던 자가 <대통령>감투를 쓰자 력사의 버림을 받고 파멸당한 선행집권자들의 전철을 답습하여 낡은 반북공식을 되풀이하고있는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매국역적은 나라의 평화통일이 아니라 미제상전의 침략야욕에 편승하여 북침전쟁도발에로 내달을 의사를 그대로 드러냈다.이런 반민족적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미국의 <아낌없는 지원>을 간청해나선데서도 그는 매국배족적인 이전 집권자들과 다른데가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한술 더 뜨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끝)


미국의 무력현대화를 비난/조선중앙통신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의하면 9일 미륙군은 5년간의 집중적인 연구끝에 작성된계획에 따라 21세기에 대처하여 콤퓨터를 더 많이 도입하고 기계화보병사단들을 현대화하며 그 기동성을 높일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미륙군훈련교리사령부 사령관이라는 자는 기자회견에서 미륙군 사단들이 더 많은 장거리로케트,정보 및 반항공 수단 그리고 새로운 콤퓨터를 가지게 될것이라고 떠벌였다.
 그는 이러한 무력현대화를 <테로로부터 페르샤만전쟁과 같은 지역분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것으로 합리화하고 륙군이 사단들을 개편하여 3,000내지 5,000명 규모의 상설적인 해외타격무력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에 달라붙고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미군이 21세기에 가서도 세계적으로 군사적간섭과 전쟁책동을 더 발광적으로 벌리려 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끝)


일본인행불자문제로 일본당국을 규탄/로동신문 론평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13일부 <로동신문>은 개인필명의 론평 <어리석은 행위를 그만두라>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보도된바와 같이 최근 공화국적십자회는 일본인행불자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그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일본인행불자가 한명도 없으며 있어본적도 없다.조사결과는 해당 경로를 통하여 일본정부에 공식전달되였다.그러나 일본측은 <랍치의혹>문제를 계속 들고나오고있다.지어 그들은 <랍치의혹>문제를 정부간에 계속 론의해나갈것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그것을 조일국교정상화회담재개 및 식량지원과 련결시키고있다.이것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모독이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로골적인 표현이다.
 이번 조사는 일본인행불자들이 혹시 우리 나라에 있는지 알아봐줄데 대한 일본측의 요청을 인도주의적견지에서 고려하여 진행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이 <랍치의혹>문제를 계속 들고나오는것은 애당초 그 문제를 끄집어낸것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에 리용하기 위해서였다는데 대한 명백한 실증으로 된다.공인된바와같이 <랍치의혹>이란 남조선 괴뢰안기부가 조작한 모략이다.
 이런것까지 받아물고 광대춤을 추고있으니 일본반동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얼마나 비렬하고 집요한것인가.
 일본반동들이 <랍치의혹>문제를 조일국교정상화교섭재개 및 식량지원과 련결시키고있는데 그것은 일본외교의 도덕적저렬성을 드러내보이는것으로 될뿐이다.
 조일국교정상화는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다.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과거 조선인민에게 들씌운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우리 인민에게 사죄하고 보상한데 기초하여 선린우호관계를 수립하는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조일관계정상화를 타방에게 주는 선물처럼 생각하는 일본측의 주제넘은 사고방식과 오만한 자세는 세상사람들을 경악케하고있다.
 일본측이 있지도 않은 <랍치의혹>문제를 조일국교정상화교섭재개와 련결시키면서 쌍방간에 이룩된 회담재개합의를 뒤집는것도 서슴지 않고있는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분명히 조일회담을 재개할 의사도,과거를 청산할 용의도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일관계를 정상화하지 않고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나갈것이다.우리는 조일관계정상화를 위해 자기의 존엄을 버릴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다.
 식량협조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일본측이 결정할 문제이다.
 인도주의가 아니라 불순한 정치적목적으로부터 출발한 식량협조는 우리에게 필요없다.
 우리는 배심이 든든하다.
 여기에서 일본측이 명심해야 할것이 있다.그것은 지금과 같이 <랍치의혹>을 가지고 망동을 부리다가는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다는것이다.우리는 일본의 련립3여당대표단이 왔을 때에도 이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하였다.
 만일 일본당국자들이 분별이 있고 사태를 바로볼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신문에서건 그 누구의 입에서건 <랍치의혹>이라는 말자체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본측이 랍치에 대하여 말하겠으면 일본땅에서 감행된 김대중랍치사건이나 일제의 조선강점시기 백주에 감행된 조선인들에 대한 랍치련행만행에 대하여 일본국가문서고를 뒤지고 범행관련자들을 색출하여 그 죄악을 밝히는것이 도리에도 맞을것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그래 수십수백만명의 조선인 청장년들과 녀성들을 랍치련행한 일본이 감히 우리를 향해 <랍치의혹>이요 뭐요 할 체면이나 도덕적권리가 있는가.아마 일본당국자들은 이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을것이다.
 일본당국은 지금 자기가 어떤 처지에서 무슨 란동을 부리고있는가를 돌이켜보고 깊이 반성하며 리성을 되찾는것이 좋을것이다.(끝)


리조왕실까지 말살한 일제의 죄행/로동신문 기고문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13일부 <로동신문>은 <리조왕실을 말살한 무뢰한들>이라는 제목으로 된 교수,박사 박영해가 기고한 글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에 걸쳐 우리 조선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고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모든것을 짓밟고 략탈하여간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일본제국주의는 중세기적인 사무라이식포악성과 근세적인 교활성이 결합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그 어느 제국주의보다 포악하고 간악하고 간교하였다.
 근세시기 일제가 리조왕실에 대하여 감행한 죄행을 통해서도 이들이 지난날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얼마나 악착하게 유린해온 침략자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일제가 리조왕실에 대하여 감행한 죄행의 하나는 조선왕궁을 두번씩이나 횡포하게 침범하고 유린한것이다.
 1894년 2월 갑오농민전쟁이 폭발하고 이해 6월 농민군의 전주성점령을 계기로 <거류민>보호의 구실밑에 조선에 출병한 일제는 불원간에 일어날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면 조선에서 친청적인 민비정권을 갱질해야 하겠다고 타산하였다.그리하여 1894년 7월 일제는 룡산주둔 1개 련대의 정규군을 동원하여 새벽에 조선왕궁을 기습점령하고 <내정개혁>의 구실밑에 고종에게 강요하여 민씨정부를 축출하였으며 반청감정을 가지고 있던 대원군을 내세워 새 정부를 조작케 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다시 정권을 잡은 민비가친로정책을 실시하자 그를 없애치우기 위해 또다시 조선왕궁을 침범하였다.이해 10월 일본공사 미우라는 서울에 와있던 일본군과 일본인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왕궁을 기습점령하고 민비를 장검으로 찔러 치명상을 입히였다.그리고 아직 숨지지 않은 그를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린 다음 불태워버리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당시 조선민족이 유일한 국가주권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여온 왕궁을 2차례나 횡포하게 침범하여 군화로 짓밟고 한나라의 왕비까지 잔인하게 학살한 사실은 일제침략자들이야말로 초보적인 국제법상 도덕도 인륜도 모르는 악독한 침략자이며 저들의 침략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횡포무도한 날강도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일제가 리조왕실에 대하여 감행한 간악한 죄행은 조선을 강점한후 수난에 찬 리왕조의 마지막왕들을 연금시키고 마침내는 고종을 독살한것이다.일제는 고종을 덕수궁에,순종을 창덕궁에 죄인처럼 각각 연금시키고 부자간에 호상 만날수도 없게 하였다.그리고 1919년 1월에는 67살이던 고종을 독살하였다.밝혀진데 의하면 일제는 주구 한상학을 시켜 고종에게 독약을 친 식혜를 먹게 하였다.운명할때 고종은 내가 무엇을 먹었길래 이러느냐고 고함을 치다가 숨을 거두었다.죽은후 그의 눈은 피빛으로 되여있었으며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있었다.일제는 저들이 저지른 악착한 만행을 흑막속에 덮어버리기 위하여 고종의 사망경위를 직접 목격한 시녀 2명도 암살하였다.
 망국후 구왕조의 통치자들은 이미 무능력과 취약성으로 민중에게 실망만 안겨주었고 나라를 망쳐버린 위정자로서 락인되여 있었으므로 그들의 존재가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줄수는 없었다.그러나 고종은 1905년에 일제가 <을사5조약>을 강요할때에도 그 날인을 거부하였고 1907년 헤그밀사사건을 구실로 일제와 친일주구들이 양위를 강요할 때에도 <왜 은퇴를 강요하는가,내가 퇴위하면 나라를 누가 유지하겠느냐,양위문제는 내가 결심할 문제이고 누가 강요해도 접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것을 완강히 반대하였다.
 바로 일제는 이처럼 고종이 반일경향이 강하였고 그의 존재가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우려하였기때문에 마침내 그를 잔인하게 독살하였던것이다.당시 고종이 일제에 의하여 독살당하였다는 소식은 조선민족의 반일감정에 발화제로 작용하여 3.1봉기의 폭발과 고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리조왕실에 대한 일제의 죄행은 왕족들을 강제련행하여 친일화,황족화하여 그것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책동한것이다.
 사실상 당시 조선인민은 이미 력사적으로 자기 운명을 마친 리왕조와 왕족들에 대하여 그 어떤 미련도 기대도 애착도 가지지 않았으며 또 가질 필요도 없었다.그러나 일제는 독립국가인 조선을 비법강점한 저들의 죄행을 대외적으로 미화하며 식민지통치의 안전하고 영구한 유지를 위하여 리씨왕실의 왕족들을 강제련행하여 친일화하거나 말살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12월 고종의 아들이며 순종의 계승자였던 만10살난 영친왕 리은(민비다음에 맞은 엄비의 아들,순종의 배다른 동생)을 강제로 일본으로 련행해갔다.
 놈들은 이또를 태자태사(선생),리완용을 태자소사(부선생)로 임명하는 놀음을 벌리고 일제황태자의 답례방문과 신식교육을 구실로 일본으로 그를 끌어갔다.그후 일제는 리은이 휴가귀가나 부모들의 문병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어머니는 세자가 공부도 잘하고 건강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초대총독 데라우찌에게 다음과 같이 강하게 항의하였다.
 <세자가 건강하여 공부도 잘한다는데 어째서 집에는 돌려보내지 않는가.이또가 데려갈 때에는 1년에 한번씩은 늙은 량친을 만날수있도록 귀가시켜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당신은 그것을 알고도 리행하지 않는것인가.골육지간의 정이야 아무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처지를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라.사람을 속여도 푼수가 있지 너무하지않소.>
 일제는 엄비가 위독하다는 통지를 받고서도 세자를 돌려보내주지 않아 생전에 그리운 모자간의 상봉조차 할수 없게 하였다.고종이 독살되였을때에도 세자는 10여일후에야 조문할수 있었다.
 이처럼 일제는 세자를 강제련행하여 생전에 부모와의 따뜻한 혈육간의 정도 나눌수 없도록 가로막는 악착한짓을 감행하였다.
 영친왕을 련행한후 일제는 그를 일본황실의 황족으로 동화시키며 리왕실의 씨를 말리우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일제는 세자의 배우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황족처녀들에 대한 전면적인 건강검진을 진행한 다음 그중 임신할수 없는 처녀인 나시모도 가다꼬를 선택하여 그와 결혼시키였다.그런데 1921년에 뜻밖에도 나시모도가 생남하여 건강검진을 한 의사가 책임이 두려워 할복자살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고있다.1923년 5월 이 아이는 영친왕부부와 같이 서울에 왔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그것도 일제의 막후조종에 의한 모살로 인정되고있다.
 영친왕을 련행한 일제는 또한 그를 황실유년학교,륙군사관학교,륙군대학을 졸업시켜 일본인화하여 일본군에서 장교로 복무시키였고 중장으로까지 만들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현역으로 복무하게 하였다.
 일제가 패망한후 리은은 황족신분과 일본국적을 박탈당하고 평민으로서 하층생할을 하다가 1970년에 수치스러운 한생을 마치였다.일제는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리강(궁녀 장씨의 소생)도 일본으로 련행하려다가 그의 완강한 반대로 실현하지 못하였다.
 일제는 <나라를 빼앗고 부모를 살해한 일본의 황족으로는 될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왕궁을 탈출하여 상복차림으로 렬차를 타고 상해림시정부를 찾아가던 리강을 단동에서 체포하여 서울로 끌어다 왕궁에 연금하였다.
 일제는 고종의 딸인 덕혜공주(엄비의 딸)도 1925년 류학의 명목으로 일본으로 끌어갔고 1931년에는 일본인과 결혼시키였다.리왕실은 망국을 계기로 정치적실체로서 이미 종말을 고하였고 조선민족해방운동에 아무런 영향도 줄수 없는 존재로 되였지만 민족성원의 한개 가족으로서도 유지되지 못하고 풍지박산되였다.그것은 조선민족을 영구히 식민지노예화하기 위한 계략의 일환으로 감행된 일제의 악독한 동화정책이 빚어낸 비극이다.
 우리 인민은 지난날 일제가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천추에 용납할수 없는 온갖 죄행에 대하여 언제나 잊지 않고 천백배로 그 값을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


6월민중항쟁 11돐에 즈음하여 담화/<한민전>평양대표부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평양대표부 리상철대표가 6월인민항쟁 11돐에 즈음하여 11일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는 6월민중항쟁의 동기와 의의에 언급하면서 항쟁은 군사파쑈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이남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조국의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반미반파쑈민주항쟁이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외세없고 파쑈없는 새세상에서 참된 삶을 누리려던 그날의 이남민중의 소원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6월민중항쟁과 그 이후의 사태발전은 우리 민중이 통일조국에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파쑈독재와 사대매국만을 일삼는 그 어떤 <정권>에 대해서도 기대와 환상을 가져서는 안되며 자주,민주,통일은 오직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겼다.
 이것은 오늘 이른바 <국민의 정부>라고하는 현<정권>에도 례외로 될수 없다.
 반세기이상 지속되는 민족분렬과 국토량단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민족의 대단합과 조국통일을 성취하는것은 더는 지체할수 없는 겨레의 사활적요구이며 지상의 과제이다.
 우리 <한민전>과 이남 각계 민중은 민족의 태양이시며 통일의 구성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자주,민주,통일의 성업을 기필코 성취하기 위하여 배가의 투쟁을 전개할것이다.(끝)


군사장비도입에 거액의 자금 탕진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의하면 괴뢰도당이 군사장비도입에 계속 거액의 자금을 탕진하고있다.
 괴뢰도당은 지난해에 10억 7,700만딸라를 재래식무기구입에 들이밀었으며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기간에만도 53억4,500만딸라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괴뢰도당의 죄행으로 하여 남조선은 재래식무기구입에서 세계적으로 앞자리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되고있다 한다.(끝)


총학생회 회장들 북남대학교류의 전면허용을 요구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한양대학교와 아주대학교를 비롯한 남조선의 6개 대학 총학생회 회장들이 12일 동국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북과 남 청년학생들 사이의 학술,문화 교류를 전면허용할것을 괴뢰당국에 요구하였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총련 범위에서의 남북교류는 절대 허용할수 없다>고 하면서 대학생들의 애국적지향을 가로막는 괴뢰정부를 비난하고 남북대학들사이의 교류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들은 지난 5월말 축구경기와 유적답사 등의 학술,문화교류를 진행할데 대한 북측대학들의 제안에 따라 이런 사업을 추진해왔다한다.(끝)


민주인사들과 애국적청년학생들을 고문

 (평양 6월 13발 조선중앙통신)
 <한국문화방송>이 파쑈독재자들의 손발이 되여 민주인사들과 애국적청년학생들을 야수적으로 고문한 악마들에 대한 방송원과 기자의 대담내용을 전하였다.
 방송은 전두환역도의 <5공>시기 민주인사들을 전기고문한 혐의를 받고있는 리근안이란자가 10년이 되도록 행방을 감추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리근안은 <5공>시기 경기도경찰청에서 공안분실장으로 있던 자이다.그는 당시 민주인사들속에서 <얼굴없는 고문기술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왔다.
 그자는 전기고문과 관절뽑기같은 잔인한 고문수법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평소에는 경기도경찰청에서 근무하다가 거물급 재야인사가 잡히면 유명한 남영동대공분실에 와서 고문을 전담했다.
 방송은 이런 고문악마가 그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직껏 철저히 종적을 감추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그자에 대해서는 안잡는다는 말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현재로서는 그자가 누군가로부터 은신처와 도피자금을 꾸준히 제공받고있다.
 방송은 서울대학교 학생이였던 박종철을 고문학살하였던 범죄자들도 조직적으로 비호를 받고있다고 하면서 당시 <치안본부장> 등 경찰고위관리들은 지금도 수억원짜리집에 살고있으며 외국제차를 몰고 골프로 여가를 보내는 등 호화방탕한 생활을 일삼고있다고 폭로하였다.(끝)


여러 소식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서울의 <한국문화방송>이 괴뢰통계청에서 조사한 자료를 전한데의하면 남조선 도시근로자세대의 월소득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의기간에 한달 평균 6만 4,800원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세대주가 해고되지 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여 조사한것으로서 실직자세대까지 포함하면 근로자들의 소득은 훨씬 더 낮아진다.
 또한 그것은 명목소득만을 산출한것이며 물가와 수도,전기 료금등 각종 료금이 인상된것을 고려한다면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은 10.8프로나 줄어든것으로 된다.
 이와 반면에 근로자들의 세금부담액은 9프로 증가하였다.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9일 서울 종로에서 일용직과 저소득 로동자실업대책협의회가 조직되였다.
 <전국건설일용로동조합협의회>,<참여련대>를 비롯한 11개 시민단체들이 망라된 이 협의회는 발족식에서 림시 고용된 로동자들에 대한 실업대책을 세울것을 괴뢰당국에 요구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울산에 있는 송원산업로조가 8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로조는 업주측에 임금지불과 로조활동의 보장,해고자복직 등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한편 울산 태광산업로조도 이날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1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다는것을 발표하였다.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지방선거>에서 부정행위로 당선을 조작한 18명의 죄행을 적발하고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였다.
 이자들은 돈과 물건짝들을 뿌리는 등 추악한 행위로 당선을 꾸며냈다.
 여기에는 <도지사>,<시장>,<구청장>의 감투를 불법적으로 쓴자들이 들어있다.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15살부터 29살까지의 청소년들의 실업자수가 올해 들어 4월까지의 기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근 2배나 늘어났다.(끝)


5월 27일부 공화국외교부대변인담화가 유엔공식문건으로 배포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최근 미국의 조종하에 군사대국화를 지향한 일본반동들의 해외팽창움직임이 본격적인 실행단계에서 추진되고있는것을 규탄한 5월 27일부 우리 나라 외교부대변인 담화가 3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공식문건 에스/1998/462호로 배포되였다.(끝)


공화국창건 50돐경축 로씨야사회계위원회 결성

 (평양 6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50돐경축 로씨야사회계위원회가 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공산당련맹-쏘련공산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친선 및 문화협조 로씨야협회 지도부 공동회의에서 결성되였다.
 경축위원회는 로씨야의 광범한 사회계를 인입하여 여러가지 경축행사들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경축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산당련맹-쏘련공산당리사회 위원장 올레그 쉐닌이,부위원장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친선 및 문화협조로씨야협회 위원장 울라지미르 똘스찌꼬브가 선출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