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총비서께 팔레스티나대통령이 꽃바구니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신 6돐에 즈음하여 그이께 팔레스티나국가 대통령 야씨르 아라파트가 꽃바구니를 보내여왔다.
 김정일동지께 드리는 꽃바구니를 8일 우리 나라 주재 팔레스티나국가 대사 샤히르 무함마드 아브둘라흐가 해당부문 일군에게 전달하였다.(끝)


김정일총비서자께 조선주재 경제 및 무역참사단이 축하편지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김정일령도자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신 6돐에 즈음하여 조선주재 경제 및 무역참사단이 축하편지를 드리였다.
 김정일령도자께 드리는 축하편지를 8일 경제 및 무역참사단 단장인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경제무역참사 진옥발이 해당 부문 일군에게 전달하였다.(끝)


최고인민회의제10기 제2차회의 제2일회의 진행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2차회의 제2일회의가 8일에 진행되였다.
 회의에서는 첫째의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87(1998)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주체88(1999)년  국가예산에 대하여>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였다.
 토론자들은 1998년 국가예산은 우리 혁명주권의 정치적기초를 반석같이 다지고 수령,당,군대,인민의 혼연일체의 위력을 백배로 강화하며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을 원만히 보장하였다고 지적하였다.
 토론자들은 1999년 국가예산은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다그쳐 강성대국건설에서 위대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조선인민과 인민군대의 영웅적투쟁을 재정적으로 확고히 담보할수 있는 혁명적이며 동원적인 예산이라고 하면서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
 그들은 올해 국가예산을 성과적으로 집행함으로써 나라의 정치군사적,경제적위력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할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회의에서는 둘째의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경제계획법을 채택함에 대하여>를 토의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양형섭이 보고를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경제계획법 초안을 랑독하였다.
 둘째의안에 대한 토론들이 있었다.
 보고자와 토론자들은 오늘 우리 혁명이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있는 력사적시기에 인민경제계획법을 채택하는것은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인민경제계획화정책의 정당성과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생활력을 힘있게 과시하며 조성된 난국을 뚫고 주체의 강성대국건설위업을 다그쳐나가는데서 또 하나의 의의깊은 계기로 될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심의에 제출된 인민경제계획법은 지난기간 계획사업분야에서 이룩된 성과를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당의 계획화정책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한 주체의 법전이며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계획적관리원칙을 고수해나가는 조선로동당과 국가,인민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반영한 조선식의 혁명적인 계획법이라고 그들은 지적하였다.
 그들은 인민경제계획법이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계획화의 원리와 원칙,체계와 방법을 전면적으로 규제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면서 이를 원안대로 승인하는데 전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회의는 계속된다.(끝)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2차회의 참가자들이 7일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였다.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선률이 울려퍼지는 홀에 들어선 대의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대의원들은 층계를 올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홀에 들어서서 그이께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대의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현지지도와 외국방문시에 리용하신 렬차와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리용하신 승용차를 깊은 감동속에 돌아보았다.(끝)


장기수들을 가족의 품으로/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윤성식상무위원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인 윤성식선생은 6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회견에서 이북출신 비전향장기수들을 당장 북송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서울의 <만남의 집>에 거처하고있는 년로하고 병약한 비전향장기수들을 돌보아주던 정순덕녀성이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것으로 하여 의지가지할데 없는 비전향장기수들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었다는 소식에 접하고보니 이남당국자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남당국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남땅에 혈육한 점없는 비전향장기수들을 한사코 그대로 억류해놓고 그들의 고통을 한정없이 연장하고있는가.
 이것은 그들을 죽음에로 몰아넣으려는 인간살륙행위이다.
 사상과 신념을 고수하였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무고한 애국인사들을 수십년세월 감옥에 가두어넣었던것만도 치떨리는 인권유린행위였는데 제몸하나 가누지 못하고 생명이 경각에 놓여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또다시 <보안관찰법>의 희생물로 말리워죽이려 하고있으니 인권교살자라면 이남<국민의 정부>당국자들보다 더한 인권교살자가 세상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는 <국민의 정부>가 흉악한 인권유린만행을 걷어치우고 <만남의 집>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과 김인서,함세환,김영태 등 모든 이북출신 비전향장기수들을 당장 북송시켜야 하며 그들의 수족을 얽어매는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을 무조건 철페해버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끝)


로씨야대사관에서 기자회견/년례서신내용을 통보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우리 나라 주재 로씨야련방대사관에서 7일 기자회견이 있었다.
 여기에는 평양시내 신문,통신,방송 기자들과 우리 나라 주재 여러 나라 대사관 출판관계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로씨야련방 대사 왈레리 제니쏘브가 발언하였다.
 그는 최근 로씨야 대통령이 련방회의에 보낸 년례서신내용을 통보하였다.
 서신은 1999년 로씨야의 경제정책작성에서 나서는 과업과 현로씨야의 정치정세에 언급하고 사회발전의 기본원칙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서신은 유고슬라비아위기는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를 시종일관 허용하지 않은 로씨야의 립장의 정당성을 다시금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로씨야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나토의 군사적공격을 즉시 중지하며 꼬쏘보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것을 주장한다고 지적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었다.(끝)


유고인민과의 련대성집회 진행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미국주도하의 나토의 침략을 반대하는 유고슬라비아인민과의 련대성집회가 7일 천리마문화회관에서 진행되였다.
 집회에는 우리 나라 주재 유고슬라비아련방공화국 대사 류보미르쥬끼츠와 대사관성원들이 초대되였다.
 집회에서는 먼저 조선유고슬라비아친선협회 위원장인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리성호부위원장이 연설하였다.
 그는 미국과 나토의 침략무력이 유고슬라비아에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고있는것은 자주적인 주권국가에 대한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침략행위이며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대한란폭한 유린행위이라고 단죄하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미국과 나토의 침략행위는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그들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을 계속 확대하는 길로 나간다면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한결같은 저주와 강력한 규탄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과 군대가 나라의 자주권을 끝까지 수호할확고한 결의밑에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성전에 용감히 떨쳐나서고있는데 대하여 언급하고 우리 인민은 앞으로도 유고슬라비아인민의 정의의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련대성을 보낼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류보미르 쥬끼츠대사가 연설하였다.
 그는 미국을 두목으로 하는 서방제국주의자들은 수많은 비행기와 순항미싸일,항공모함 지어는 정찰위성을 비롯한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을 동원하여 유고슬라비아의 모든 대상물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의 범위에서 볼때 그들의 야수성과 잔인성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파쑈분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훨씬 릉가하고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침략자들이 유고슬라비아를 힘으로 굴복시키고 정복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라고 하면서 유고슬라비아인민에게는 정신적 힘,정의의 힘이 있다고 말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인민은 마지막까지 자기의 조국을 지킬 각오가 되여있으며 모든 노력과 가능한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승리하고야 말것이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집회에서는 유고슬라비아련방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련대성편지가 채택되였다.(끝)


명배우들의 활무대-태양절봄축전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에서 해마다 4월에 진행되는 봄축전은 세계적으로 관록있는 예술단체들과 명배우들의 활무대로 되고있다.
 이번 제17차 4월봄친선예술축전(4.10부터 4.18)은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국제,국내 콩클수상자,금메달수상자,최우수상수상자들이 많이 참가하는것으로 하여 보다 훌륭한 무대를 펼쳐놓게 될것이다.
 70여년의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으며 세계에 명성을 떨친 로씨야알렉싼드로브명칭군대협주단이 이번 축전에 다시 참가하게 된다.
 협주단에는 2명의 인민배우와 25명의 공훈배우가 들어있다.
 협주단은 이번 축전에 특색있는 공연종목을 준비하고있다.
 그리고 국제,국내 콩클수상자들과 명배우들로 구성된 로씨야명배우단과 로씨야국립아까데미야<베료슈까>무용단도 참가한다.
 10여명의 인민배우,공훈배우가 들어있는 이 무용단은 태양절봄축전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률동을 펼쳐보이게 될것이다.
 중국에서는 중국가극무용극원,동방가무단,중앙민족가무단 등 이름있는 예술단체들에서 선발된 50여명의 국가1급배우들과 명배우들이조선노래를 포함한 10여종목의 다채로운 공연종목을 무대에 올리게 된다.
 몽골과 뽈스까에서도 재능있는 배우들이 선발되여 축전에 참가한다.
 또한 국제적인 예술경연들에서 여러차례 금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이번 축전에서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지휘하게될 벌가리아의 지휘자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몰도바,벨라루씨,로므니아,에짚트,에스빠냐,이딸리아 등 여러 나라의 명성있는 국제,국내 콩클수상자들과 많은 성악,기악,무용,교예 명배우들이 참가한다.
 이들은 지금 축전무대를 빛나게 장식할 특색있는 종목들을 창작형상하고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각국 예술인들이 자기들의 예술적기량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될 태양절봄축전은 강성대국건설을 위하여 구보로달리는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고무를 주게 될것이다.(끝)


중국예술단 평양에서 공연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제17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온 중국예술단이 축전개막에 앞서 7일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이날 중국예술인들은 자기 인민의 전통적인 문화와 고유한 생활풍습을 특색있는 춤률동에 담아 형상한 무용종목들을 무대에 올렸다 중국노래 <나는 중국을 사랑하네>,<차잎을 따는 처녀> 등 종목들에서 출연자들은 자기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풍부한 성량과 세련된 성악적기교로 감동있게 형상하였다.
 이들은 또한 <노래하라 만경대갈림길이여>,<그보다 정다운 품 나는 몰라라> 등 우리 나라 노래들을 무대에 올렸다.
 축전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인 문화성 송석환부상 등 관계부문일군들,평양시내 근로자들이 공연을 관람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만영상과 대사관 성원들,문화부 부부장 애청춘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정부문화대표단을 비롯한 중국손님들이 공연을 보았다.(끝)


<백두산태양컵>쟁탈친선경기대회 진행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87돐에 즈음하여 3월 28일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 있는 체육관에서 국제태권도련맹 구락부들사이의 <백두산태양컵>쟁탈친선경기대회가 진행되였다.
 오스트리아 국제태권도련맹 명예회장은 개막연설에서 태양절을 가장 뜻깊게 기념할 목적으로 윈에서 <백두산태양컵>쟁탈을 위한 태권도친선경기대회를 조직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경기대회에서는 선수들의 태권도경기가 진행되고 우수한 선수들에게 메달이 수여되였으며 가장 많은 메달을 쟁취한 구락부에 <백두산태양컵>이 수여되였다.(끝)


다방면적으로 발전된 조선의 체신-체신절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4월 8일은 체신절이다.
 태양절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는 뜻깊은 시기에 명절을 맞이한 조선의 체신부문근로자들은 나라의 체신건설에 바쳐진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로고를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일찌기 사회주의체신건설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을 창시하시고 고귀한 경험과 업적을 쌓으신 주석께서는 해방후 새 환경에 맞게 그성격과 임무,활동원칙을 밝히시고 혁명발전의 매 시기,매 단계마다이 부문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하여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로 말미암아 체신망구성과 배치에서 심한 기형성과 편파성을 띠고있던 나라의 체신이 오늘은 다방면적으로 발전되고 현대적기술로 장비된 자립적이며 종합적인 강력한 체신으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통신부문에서는 당과 국가의 지휘통신망과 산업전화통신망이 튼튼히 꾸려지고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국제위성통신국이 새로 일떠섰다.특히 1993년 8월 25일 전국체신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서한 <체신의 현대화를 더욱 힘있게다그치자>를 받들고 나라의 체신부문에서는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다. 전화선로들이 전반적으로 정비보강되고 현대적설비들이 보충완비되였으며 전국에 정연한 통신체계가 세워졌다.
 각종 반송전화기가 생산설치되고 중앙으로부터 중요 공장, 기업소사이에 더 많은 직통전화회선이 구성되였다.
 특히 빛섬유케블을 늘이고 수자식자동전화교환기와 대용량의 임풀스부호변조중첩기 등 최첨단통신설비들을 설치하여 교환작업의 전자계산기화와 빛섬유케블화를 실현하였다.
 국제자동전화체계도 정연하게 세워져 늘어나는 세계 모든 나라와의 국제통신업무도 원만히 보장하고 있다.
 또한 전국의 무선방송국과 유선방송국,텔레비죤방송중계소들이 현대적으로 개건확장되고 더욱 정비보강되였으며 방송중계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졌다.
 초단파에프엠방송도 개시되고 주요도시들의 중계가 실현되여 방송의부문구조가 더욱 완비되고 다양화되였다.
 체신기자재생산기지의 물질기술적토대와 과학연구기지도 잘 꾸려졌다.지금 체신부문에서는 빛섬유통신까벨건설을 더욱 다그치며 수자식중첩기에 의한 통신회선의 다중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전망성있게 진행하고있다.(끝)


김정일령도자를 높이 칭송/일본시고꾸주체사상연구회회장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얼마전 평양에서는 일본시고꾸주체사상연구회 회장 나다 다까시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친선훈장 제1급이 수여되였다.
 그는 주체사상을 널리 보급선전하며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지지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린것으로 하여이 훈장을 수여받았다.그는 일본에서 발행되여 널리 애독되고있는 <김정일시대의 조선>이라는 도서의 저자이다.나다 다까시는 김정일령도자의 탄생 57돐을 맞으며 이 책을 발행하였다.
 그는 1970년대부터 조선을 여러번 방문하면서 <위대한 사랑의찬가 김정일 비서와 인민>,<인민의 아들 김정일>이라는 책을 이미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 만족할수 없었다.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도 붉은기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위업,세계자주화운동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모습을 우러르며 그는 김정일령도자이시야말로 절세의 위인,정치의 거장이시라는것을 더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다 다까시는 중첩되는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사회주의조선을 굳건히 고수하고 빛내여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의 현명성에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도서 <김정일시대의 조선>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게 되였던것이다.
 필자는 책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세계 혁명적인민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사회주의위업,인류의 자주위업을 승리에로 이끌고계시는데 대하여 높이 칭송하였다.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공화국의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심으로써 김정일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하면서 21세기는 조선의 세기로 될것이라고 강조하였다.(끝)


<군포로>란 단 한명도 없다/조선중앙통신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지금 이남통치배들이  북출신비전향장기수들을 있지도 않는 <군포로>와 <맞교환>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황당한 궤변이다.공화국북반부에는 <군포로>란 단 한명도 없다.
 우리는 <군포로>가아니다.
이것은 지난 조선전쟁시기(1950.6부터1953.7) 남조선에서<국군>에 징집되였다가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하여온 후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한 김준경(74살)이 한 말이다.
 지금 평양시 력포구역 세우물리에서 살고있는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양군이다.
 그는 이남통치배들이 자기와 같이 스스로 공화국의 품에 안겨 인민군대에서 싸운 사람들을 <군포로>라고 하는데 이것은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언어도단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1952년 6월 의거입북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중부전선 김화계선에서 싸웠다.이남사회에서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던 나는 군사정치학교에서 처음으로 우리 글을 배웠다.
 이남에서의 <국군>생활은 죽기보다 더 힘들었다.하여 나와 우리 동료들은 더러운 <국군>살이를 박차고 공화국의 품에 안겼다.
 공화국북반부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여러 기회에 그들과 자주 만나는데 그들도 나와 같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자기들의 생활에 대해 자랑하고있다.
 제대후 나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로동당원으로,축산기사로 자라났다.
 지금은 년로보장을 받고있지만 그전까지는 국영목장의 축산분조장사업을 하였다.
 나는 전쟁로병으로 국가적으로 계속되는 혜택을 받으며 생활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살고있다.
 나는 북과 남에서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공화국북반부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화목하게 사는 진정한 인민의 사회이라는것을 깨달았다.이 보금자리를 두고 우리가 가기는 어디로 간단말인가.나는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남조선으로는 절대 가지 않을것이다.
 이남통치배들은 미제의 구두발밑에 짓밟혀 사람못살 인간생지옥으로 된 남조선으로 우리들을 오라고 할것이 아니라 북반부에 고향을 둔 비전향장기수들을 즉시 돌려보내야 한다.(끝)


<한민전> <한국>생화학무기개발 진상 고발장 발표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이 전한데 의하면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가 남조선당국자들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륜적인 생화학무기개발 진상을 폭로하여 4월 2일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생화학무기개발 진상 고발장

 우리 겨레와 세계평화애호력량은 지구촌에 무서운 재난을 가져올 생화학무기개발을 한결같이 반대해오고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의 비호하에 생화학무기개발과 생산,비축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여왔다.
 오늘 이 땅은 미국이 쌓아놓은 1,000여개의 핵무기와 함께 생화학무기까지 가득찬 가공할 인간살륙의 병기고로 화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한국>당국자들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륜적인 생화학무기개발 진상을 만천하에 고발한다.

1.생화학무기개발 정책과 그 전개과정

 생화학무기개발은 <한국>의 력대집권자들이 이른바 <승공통일>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진해온 기조정책이다.
 <한국>당국자들이 생화학무기개발을 정책화한것은 1960년대말 내지 1970년대초이다.
 1969년 닉슨의 <괌독트린>발표와 때를 같이하여 박정희군사<정권>은 <자주국방>,<방위산업의 국산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핵무기개발과 함께 생화학무기개발을 극비정책으로 책정하였다.
 당시 박정희가 생화학무기개발에 눈독을 들이게 된것은 생산비가원자폭탄의 100분의 1정도밖에 들지 않는데 비해 그 살상효과는 매우 엄청나다는것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의 생화학무기(고엽제,최루제)사용과 그 가공할 피해력에서 실감했기때문이다.
 박정희역도는 생화학무기는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 떠벌이며 그 개발을 저돌적으로 추진하였다.
 1972년 2월 제1차 방위산업회의에서는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륙무기개발과 방위산업육성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되였다.
 박정희는 생화학무기개발을 위해 1970년대초에 <국방과학연구소>,<한국>화학연구소,<한국>화약연구소,한양화학연구소,럭키종합화학연구소 등 인간살륙연구소들을 잇달아 설치하고 그에 대한 총지휘를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가 관장하도록 하였다.그 이후 <국방부>산하에 세균무기연구소,화학탄연구소,31화학실험소를 신설하고 생물(세균)무기연구개발은 세균무기연구소가 전담하도록 하였고 화학무기연구개발은 화학탄연구소,31화학실험소,민간화학연구소들이 긴밀한 련계밑에 추진하도록 하였다.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산하에 병기개발기술위원회와 공창을 두고 생화학탄을 투발할수 있는 병기들을 제작하게 하였다.
 박정희<정권>은 1971년 7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회의에서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미국의 기술지원합의가 이루어진후 생화학무기개발 두뇌진들을 미국에 급파하여 1년동안 연수시키는 한편 1972년 1월에는 미국방성 기술지원팀을 <초청>하여 기술방조를 받도록 하였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의 생화학무기개발경험을 <모델>로 선택케 하고 세균,비루스배양과 독해물생산 및 그 운반수단의 개발에 박차를가하였다.
 1976년 <팀 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면서 박정희<정권>은 생화학무기연구개발에 더 큰 힘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되여 197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생물무기용세균,비루스배양과 화학무기용 독해물의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술적토대가 구축되였다.
 닉명을 요구한 <한국>의 고위생화학무기전문가는 그때를 회고하며 <당시 박(정권)의 독촉이 대단했다.우리 연구팀은 주야분투하였다.바로 이 시기에 생화학병기의 연구개발 및 생산기반이 확고히 조성되였다>고 술회하였다.
 <한국>에서 생화학무기개발은 1980년대에 들어와 전두환<정권>에 의해 <국방분야에서의 (한국)형장비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더욱 가속화되였다.
 이미 베트남전쟁에 참가하여 미국이 사용한 생화학무기의 효률성을 직접 목격한바 있는 전두환은 집권한지 9개월만인 1981년 6월 <청와대>에서 극비모임을 열고 생화학무기개발에 <신(정권)의 운명>을 걸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였다.
 전두환일파는 1983년 7월 미국에서 신경마비가스생산을 다그칠데 관한 법안이 채택되고 <화학무기재무장 5개년계획>이 발표되자 생화학무기개발팀을 미국에 수시로 보내 연구성과를 도입해나갔다.전두환일파는 세균무기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세균무기연구소의 두뇌집단을 보강하는 한편 미국방성산하 생물 및 화학무기연구소인 메릴랜드주의 로크빌에 있는 플로우실험소,포트 테트릭크에 있는 세균무기연구소,미륙군 세균무기연구소와의 공동개발을 더욱 적극화하였다.그리고 1985년 5월 제17차 <(한)미년례안보협의회>와 제7차 <(한)미군사위원회>에서 미국의 최신이원화 화학탄의 <한국>배치와 <한국>의 독자적인 생화학전능력보유합의를 계기로 방위산업체의 범위를 벗어나 민수업체들로 더욱 확대시켰다.
 바로 그속에서 1980년대 중반기에는 세균,비루스의 생체실험에 성공했으며 화학무기용 독해물생산이 산업화단계에 진입하게 되였다.전두환일당에 이어 로태우일당은 생화학무기개발의 본격적인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들은 <과거와는 달리 앞으로의 전쟁은 화학전이 전쟁승패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것이 확실시되고있다>고 공언하면서 생화학무기개발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갔다.동시에 동구권사회주의의 붕괴를 선진기술습득의 <오아시스>로 간주하고 생화학무기기술자들을 대거유치하는 한편 1991년 1월부터 4월까지의 기간에 만전쟁에 파견되는 <국군>의료진속에 생화학무기전문가들을 끼워넣어 국산생화학무기사용효과를 실전속에서 검증케 하였다.(계속)                    김영삼일당이 들어서면서 이미 개발완성된 생화학무기의 대량생산,비축과 신형생화학무기개발이 로골적으로 병행추진되였다.
 <문민>호전집단은 있지도 않는 이북의 <생화학무기개발에 대응>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1993년말에 <한국>이 화학무기를 보유하기로 정식 결정하고 1994년 <국회비준>에까지 제기하였다.이미 1991년 3월 미해군정보처가 <한국>이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있다고 인정하였고 1997년 8월 <뉴욕 타임스>지가 <한국>이 생화학무기를 보유,생산하고있다고 폭로한바 있다.
 <국민의 정부>간판을 달고 등장한 김대중일당은 선행<정권>보다더 교활하고 악랄하게 생화학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국민>통치배들은 미국에 추종하여 있지도 않는 <북의 생화학무기 개발>설을 국제사회에 류포시키면서 그 막후에서 자체의 <강력한 생화학전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금과 인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고있다.
 <국민의 정부>는 <한국>에서의 생화학무기현대화를 위해 <열린국민의 국방정책>실현을 력설하며 각종 규제사항을 페지하고 최신생화학민간기술까지 적극 도입하는 한편 미국이 새로 개발한 세균 및 독해물제조기술의 이전을 청탁하는 추태를 부리고있다.

2.생화학무기개발실상과 그 엄중성

생물(세균)무기의 개발과 저장

 <한국>에서 생물(세균)무기 개발과 저장은 그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섰다.
 생물(세균)무기개발의 본거지는 지금까지도 그 존재자체가 최대극비로 붙여지고있는 <국방부>산하 세균무기연구소이다.
 이 악마의 소굴에서는 수백명에 달하는 기술인력이 외부와의 일체차단속에 세균무기개발에 종사하고있다.
 <한국>에서 세균무기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인원은 세균무기연구소,미생물연구소들과 미국방성산하의 세균무기연구소들에 있는 해외연수생들을 포함해 1,000여명을 웃돌고있다.
 <한국>에서의 세균무기연구개발은 독자적인 개발보다는 주로 미국과 <합작>의 방법으로 시작되였다.
 세균무기연구개발에서 <한>미간의 상호결탁이 이루어진 리유는 <한국>으로서는 세균,비루스 배양과 생체실험,세균전에서 이미 오랜 경험과 과학기술적토대를 완전히 갖춘 미국의 도움을 받자는것이였으며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세균무기의 생체실험완료와 그 파급및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장(주민지대)으로 <한국>이 적합했기때문이였다.
 <한국>당국자들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1970년부터 1976년까지의 기간에만도 미국 플로우실험소에 무려 1만 2,000여개의태아를,제너럴연구소에는 6만여개에 달하는 사람의 신장을 혼합 비루스증식용으로 팔아넘겼다.1981년 3월에는 430여개의 통에 담긴 수천개의 태아가 또다시 일본항공회사의 비행기에 실려 미국의 플로우실험소에 수송된 사실이 에이에프피통신에 의해 확인되였다.
 <한국>당국자들은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관동군의 악명높은 세균부대(731부대)에 의해 개발되고 6.25전쟁시기 미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사용된 콜레라,천연두,황열병,페스트,류행성출혈열 등을 발생시키는 20여종의 각종 세균 및 비루스배양기술과 병원미생물의 배양,세균독소추출 등 세균무기연구개발과 관련한 기술적데터들을 체계적으로 이양받았다.
 세균무기연구개발을 위한 기본적토대가 축성되자 당국은 <국방부>세균무기연구소에서 세균, 비루스의 생체실험을 위한 여러가지 곤충류,진드기류,설치류들을 대대적으로 기르도록 하는 한편 고려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등 여러 대학들에 미국과의 <합작>으로 세균연구기관들을 설립하여 전염성이 강한 새로운 병원체들을 연구개발하게 하였다.
 <한국>에서 1980년대 중반기에 세균전을 목적으로 연구하고 만들어낸 병원미생물은 탄저균,페스트균,콜레라균,티브스균,일본뇌염비루스,출혈열비루스,천연두비루스,식중독균독소,파상풍균독소,보튜리즘독소 등 70여종에 달하였다.
 당국자들은 세균무기개발연구진으로 하여금 배양된 각종 병원미생물을 세균전에 실지 써먹을수 있게 더욱 실용화하도록 하였다.
 닉명을 요구한 세균무기연구소의 퇴직연구사는 당시를 회고하여 <군수용 특수용기에 영양형세균의 배양균을 넣어 한달동안 보관해보았는데 20프로정도가 죽어버렸고 다른 미생물들도 배양,농축,보관,운반 등에 매우 불안정했다.그래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세균연구 실무진의 도움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보다 안정한 병원미생물을 만들어냈다걎고 실토하였다.
 한편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는 미국방성산하 여러 세균연구소와 실험소들의 <방조>하에 병원성세균이 만드는 독성물질인 세균독소를 추출해내는 기술을 연구해 페스트균,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 등의 독소들을 결정상태로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당국은 그 생산을 가속화해왔다.
 이렇게 만들어낸 세균,비루스로 당국자들은 미국과 야합하여 <한국>민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1976년에 일본 가나가와현에 주둔해있는 미륙군세균무기연구소  제406부대(일명 의학연구소)소속 미생물연구소분견대를 <한국>에 끌어들여 그들과 함께 류행성출혈열병원체를 도처에 퍼뜨려 불과 1년동안에 2만여명을 사망케 하여 그 <파급적효과>를 검증하였다.또한 1976년 9월부터 1977년 2월까지의 기간에만도 <양자>,<양녀>라는 구실밑에 생후5개월부터 만 5살까지의어린이 60여명,1977년 3월에는 경기도내의 고아원들에서 어린이 104명을 인체실험의 목적으로 일본 오끼나와의 미군기지에 있는 특수부대로 끌어가 야만적인 생체실험을 감행하였다.
 1980년 6월과 1981년 11월, 1984년 10월에 경상남북도,전라북도 지역에서 발생한 류행성출혈열과 같은 원인모를 악성전염병들이 <한국>전역에 퍼진것은 례외없이 세균,비루스 생체실험에 의한것이였다.
 력사적으로 일본,미국 등 수많은 나라들이 대량살륙을 목적으로 세균무기를 개발했으나 동족살륙을 위해 세균무기를 개발하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 감행한 <한국>위정자들과 같은 살인악마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한국>당국자들은 세균,비루스에 대한 생체실험과 함께 그것을 장약 및 투발할수 있는 각종 병기생산도 동시에 추진시켰다.
 세균무기용 병기는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의 <특별주문>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가 책임지고 소속 병기개발기술위원회와 공창들에서 제조되고있다.여기서는 병원미생물 등을 장약할수 있는 각종폭탄,포탄,로케트탄,지뢰,수류탄,기구 등이 다량생산되고있다.
 심지어 세균무기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적련계밑에 여러가지 종류의 세균기구,세균만년필,세균권총 등 휴대용세균병기들과 <가치있는> 세균무기적용수단들이 연구개발되고있다.
 <한국>이 보유하고있는 생물(세균)무기비축량은 실로 엄청나다.<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에만도 병원미생물과 세균독소가 들어있는 군수용 특수용기가 수천개나 저장되여있으며 각 군단,사단,련대,대대들의 <비밀무기고>들에는 세균,비루스를 장약할수 있는 각종병기들이 수만개가 저장보관되여있다.

화학무기의 개발과 저장

 <한국>에서 화학무기 제조,저장은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엄중한상황에 놓여있다.
 1969년 유엔에서 발표된 속칭 <우 탄트보고서>에서는 <전쟁용 화학제란 가스상,액상,고체상을 막론하고 사람,동물,식물에 대한 직접적인 독작용이 있으므로 사용되는 모든 화학물질을 지칭한다>고 화학무기를 정의하고있다.
 <한국>의 화학무기연구거점은 <국방부>산하 31화학실험실,화학탄연구소와 대덕단지의 <한국>화학연구소,럭키중앙연구소,삼양화학기술연구소 등이다.
 여기서는 박사,석사 학위를 소유한 유능한 연구원들로 구성된 수천명의 연구진이 치사성이 강한 신독해물 및 탄두연구개발에 전념하고있다.
 미국의 몬산토,일본화학 등과 공동연구협정을 맺고 화학무기용 신독해물개발을 추진해온 <한국>화학연구소에서만도 1982년부터1987년까지의 기간에 1만여개의 시험합성물질을 만들어냈다.
 삼양화학기술연구소에서는 화학무기실,화학실험실 등 연구시설을 갖추고 1987년 당시 30여종의 화학무기용 <신제품>을 개발완성하였다.
      <한국>당국자들은 치사성이 강한 수많은 독가스공장들을 건설하여그 생산을 다그치고있다.
 그 대표적인 공장들로는 군산 림해공단에 세워진 tdi(톨루엔 디이소시아네이트)생산공장을 비롯하여 삼양화학,<한국>화약,동양화학,한양화학,<한국>화인,한림화학,국도화학 등  수십여개가 된다.
 서울 마포 가든호텔 맞은편 상가에 본사를 두고 경남 량산군에공장을 두고있는 삼양화학만 하여도 1980년 독가스생산 방산업체로 지정되여 불과 몇년사이에 재벌순위 랭캣4위로 뛰여오르고 외형이 350배로 급성장한  전문 씨에스(cs.미군암호명)독가스생산공장이다.
 cs독가스는 화학구조상 염소와 시안을 함유하고있는바 염소(c2)는 인류최초의 독가스로 사용된 화학물질이며 시안(cn.미군암호명)은 사람을 즉사시키는 독극물인 청산카리이다.
 1987년 7월  미국의 보스톤시에 본부를 두고있는 <인권을 위한 의사회>대표 파인박사는 <(한국)에서 사용되고있는 씨에스(cs)가스는 지난시기 베트남전쟁때 미군이 지하호 등에 은신해있는 베트공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던 독가스>라고 증언한바 있다.
 <한국>에서 독해물생산에 종사하고있는 업체들은 민수용화학원료생산이라는 너울을 쓰고 화학무기를 생산하여 군에 납입하고있다.
 동양화학주식회사에서 생산되는 tdi와  여기에 사용되는 포스겐독가스,염소가스 등은 화학무기용 독해물이다.
 <한국>당국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수다한 화학무기공장을 끌어들이고 미국과 <협조>하여 인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독해물을 생산해오고있다.
 1985년 1월 8일 <북미한국인권협회>는 <미국에서 끌어들인 독가스 mic(메틸 이소시아네이트)를 생산하고있는 회사들이 (한국)에 11개나 된다는것을 확인했다>고 폭로하였다.
 mic독가스로 말하면 1984년 12월 3일과 1985년 4월1일 아시아의 한 나라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사고로 장시간 루출되여 반경 40키로메터내에 있는 주민중 4,000여명의 사망자,2만여명의 실명자,20여만명의 중독자를 산생케한 악마의 독가스이다.
 <한국>당국자들은 1974년말경부터 미국의 름 앤드 하스연구실에서 개발한 독해물인 <아르에취-787>을 <신종쥐약>이란 상표를 달고 대량적으로 반입하고있으며 무고한 주민 1,000여명을상대로 한 인체실험으로 그 <효률성>을 측정하는 살인행위까지 자행하였다.
 그들은 일본으로부터는 염화티오닐을 수입하여 유독성가스가운데서 도가장 치사성이 높은 화학제인 신경가스를 대량생산하고있다.
 신경가스의 일종인v제(미군암호명)는 치사농도가 0.005미리그람 매 리터로서 보다 치명적인 인마살상용 독가스이다.
 <한국>에서 매해 생산되는 유독성독해물량은 수십만톤을 헤아리고있다.
 화학무기의 기본원료로 쓰이는 독성화학물질을 생산하고있는 30여개 업체의 규제대상물질생산규모만 보아도 년간 12만톤을 넘는다.1980년 염소가스생산량은 76만톤,1986년 신경가스생산량은11만 8,000톤,1992년 포스겐독가스생산량은 9만 6,000톤에 달하였다. 이와 함께 수포성,신경성,혈액성,최루성 등 유독가스생산량도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있다.
 <한국>당국자들은 유독성물질개발생산과 함께 독해물을 장입할 병기생산도 병행추진하고있다.
 화학병기생산은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그 직속 화학탄연구소가맡아 추진하여왔다.
 화학탄연구소는 1970년대에 이미 유독성물질을 장약한 화학포탄,화학폭탄,화학지뢰,화학수류탄,휴대용 화학병기와 이를 투발할수있는 155미리포,8인치포를 개발생산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화학유도탄,미싸일,방사포 등을 개발하여 다량생산에 들어갔다.
 <한국>은 현재 수만톤의 독해물과 수백만개의 화학탄을 휴전선일대와 광주,대구,군산,오산을 비롯해 이르는곳마다에 저장비축해놓고있다.

생화학무기의 실전배비

 <한국>군은 제조,저장된 생화학무기를 실전에 사용하기 위한 정연한 배비체계를 세워놓았다.
 <국방부>와 <한>미련합사령부산하의 미륙군야전군사령부,1,2,3야전군직속부대들에 화학공격체계가 세워지고 군단에는 화학지원대대,사단에는 화학지원대,련대에는 화학소대가 구성되여 임의의 시각에 이북을 공격할수 있는 체계가 완비되여있다.
 그리고 이미 1988년에 륙,해,공군마다 화생방부대학교를 내오고 실전교육을 진행하고있으며 곧 생화학전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화생방사령부까지 신설하기로 하였다.
 이북을 겨냥한 생화학공격훈련도 본격화하고있다.
 <팀 스피리트81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 시작된 화생방훈련은 해마다 강화되여왔으며 <국군>이 벌리는 각종 전쟁연습 때에도 례외없이 화생방훈련이 동반되고있다.이러한 과정속에서 <한국>군은전쟁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할수 있는 실전능력을 완전히 갖추었다.
 <한국>은 오늘 식민지대리<정권>의 반평화적,반인륜적 생화학무기개발정책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살인공포지대로 화하였다.
 이북의 이른바 <생화학무기개발>을 거들면서 그 막후에서 강행되고있는 <한국>생화학무장화의 현실적인 위험앞에서 누구도 이를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
 <한국>당국자들의 범죄적인 생화학무기생산과 실전배비는 화학무기의 개발,생산,비축,사용을 금지할것을 규정한 1992년 9월 국제협약에 전면 도전하는 행위일뿐아니라 남북불가침합의사항에도 역행하는 적대행동이다.
 우리는 이 엄중한 상황을 추호도 용납할수 없다.
 평화롭고 통일된 삼천리강토에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불문하고 파쑈당국의 가장 잔인하고 야수적이며 반민족,반인륜적인 생화학무기 개발,저장과 그 사용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분기해야 할것이다.
 우리 <한민전>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량심들이 미제의 비호밑에 광란적으로 추진되는 <한국>의 생화학무장화에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에 <한국>민과 보조를 같이해주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주체88(1999)년 4월 2일

서     울      (끝)


서울에서 4.3제주도인민봉기51돐추모집회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3일 제주도와 서울에서 4.3제주도인민봉기 51돐에 즈음하여 추모집회 등이 진행되였다.
 제주도에서 열린 범도민위령제에는 4.3인민봉기희생자유가족들과 각계 주민 2,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1948년 4월 3일 미제가 조작한 5.10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여 항쟁에 떨쳐나선 애국선렬들의 투쟁을 돌이켜보면서그들을 추모하였다.
 그들은 4.3인민봉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현 집권자의 <대통령선거>공약이 기만적인것에 불과한것이라고 하면서 봉기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구성과 특별법제정 등 자기들의 요구가 관철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한국문화방송>이 3일 4.3인민봉기 51돐을 맞으며 항쟁에 떨쳐나섰던 수많은 애국자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한 미군의죄행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방송은 최근에 입수된 미국방성비밀문서는 당시 봉기의 진상을 밝히는데 단서가 될것이라고 전하였다.(끝)


태양절기념 프랑스준비위원회 결성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87돐에 즈음하여 3월 26일태양절기념 프랑스준비위원회가 결성되였다.
 준비위원회에서는 프랑스조선친선협회 부위원장 앙드레 오브리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태양절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하였다.(끝)


조선도서기증식 도이췰란드에서 진행

 (평양 4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87돐에 즈음하여 조선도서기증식이 2일 도이췰란드에서 진행되였다.
 기증식에서 도이췰란드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한스 와우에르는 태양절을 맞으며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도서들을 기증받은것은 자기 당에 있어서 커다란 고무로 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발전풍부화시키시는 불멸의 주체사상과 그를 구현한 조선로동당의 투쟁경험은 자기 당에 있어서 매우 귀중하다고 하면서 도서들을 당중앙위원회와 산하조직들에 널리 배포하여 깊이 연구하도록 할것이라고 말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