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국은 조선전쟁의 도발자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실현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군사전략적중요성으로부터 전조선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책동하였다.
1)조선전쟁을 기도 한 미국의 진 의도
제2차 세계대전직후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련이어 승리함으로써 세계민주력량은 비할바 없이 장성강화되였다.
사회주의와 민주력량의 위력이 강화되는데 질겁한 미국은 유럽지역에서 나토를 조작한데 이어 아시아에서는 패망한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키고 남조선괴뢰를 비롯한 추종세력들을 규합하여 이 지역의 인민민주주의나라들과 혁명운동을 말살해 보려고 기도하였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조선반도를 반공전략과 대아시아전략실현의 전초기지로 간주하고 저들의 군사적지배령역을 전조선에 확대하기 위하여 날뛰였다.
미극동군 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나는 항상 조선을 무한한 가치가 있는 군사적전초기지로 인정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1957년 2월 4일)라고 하면서 <조선의 전지역을 정복하는것에 의하여 우리는 쏘베트 씨비리와 남방을 련결하는 유일한 보급선을 산산이 짓부실수 있을것이며...울라지보스또크와 싱가포르사이의 전지역을 지배할수 있을것이다.그때에 가서는 우리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곳이란 아무데도 없게 될것이다.>라고 하였다.(허쉘 메이어 <미국현대사> 148페지)
미국대통령특사로 남조선에 기여 든 웨드마이어중장은 <한국>에서의 군사기지화 진행정형을 시찰하고 <조선의 통일과 독립은 미국의 전반적리익에 중대한 위협으로 되므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군사적점령의 범위도 전 조선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하였다.(일본도서 <미국의 극동군사전략> 18페지)
조선반도의 군사전략적중요성에 관한 미지배층의 견해는 1946년 초여름 배상문제를 담당한 미국대통령특사 에드원 폴리가 조선의 북과 남을 돌아 보고 트루맨에게 제출한 <조선정세에 관한 견해,결론 및 권고>라는 시찰보고서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
그는 보고서에서 <솔직히 말해서...조선은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이 성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걸려 있는 사상상의 싸움터이다.이곳은 패망한 봉건주의에 도전하여 민주주의체제(미국식민주주의)가 수용될수 있겠는가 아니면 공산주의가 보다 강해 질것인가를 시험하는 장소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미국도서 <트루맨 회고록>2권 일문판 224페지)
1949년 여름 뉴욕의 통신보도도 <미국의 강경파는 조선을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상의 요충지로 보고 이 전쟁에 (한국군)을 투입할것을 고려하여 군사행동계획을 작성하였다.>고 지적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 73∼74페지)
미국이 조선전쟁도발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진것은 저들이 직면한 심각한 경제위기와도 관련되여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비할바 없이 팽창되여 막대한 리윤을 축적한 미국경제는 전후 방대한 잉여자본도 미처 처리하지 못한채 1949년에 이르러 심각한 경제공황에 처하게 되였으며 이로 인하여 공업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5프로,독점자본의 리윤은 16프로나 감소되였다.
이것은 수백만의 실업대군을 낳고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산생시켰다.
미국은 이러한 엄중한 경제침체와 사회정치적위기로부터의 출로를 바로 조선전쟁에서 찾으려 하였으며 전쟁을 통하여 군수독점체들에 최대한의 리윤을 보장해 주고 위기에 처한 경제를 구원해 보려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도서 <조선전쟁>(128페지)은 <조선전쟁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미국은 북침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저들의 기도를 실현하려고 획책하였다.
2)전쟁준비의 가속화
미국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전쟁도발을 위하여 남조선통치배들에게 <북침통일>과 <실지회복>을 부르짖게 하며 전쟁광기를 고취시켰다.
1949년 5월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였던 무쵸는 남조선 <국방부장관> 신성모와 <내무부장관> 김효석을 불러 다 놓고 <당신들뒤에는 미국이 서 있으니 만사는 우리를 믿고 우리의 권고와 지시를 충실히 실행하여 주기를 바란다.
모든것의 해결은 힘이다.이 해결은 오직 미국의 힘으로만 해결할수 있는것이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를 가급적 촉진시켜야 한다.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정세와 우리의 의도를 잘 리해하고 모든 준비에 유감 없도록 류의하며 38도선 이북에 대한 총 진군의 시기가 하루라도 속히 오도록 힘써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미제국주의자들의 조선내전을 도발한 증거문헌집>평양 113페지)
상전의 적극적인 비호와 사촉에 힘을 얻은 리승만은 1949년 10월에 공개적으로 <남북의 분렬은 전쟁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북(한)을 점령하여야 통일을 실현할수 있다.>고 폭언하였으며 10월 7일 유피통신사 부사장 죠세프죤슨과 한 회견에서 <...3일이내에 평양을 점령할수 있다>고 장담하며 제법 허세를 부렸다.(남조선도서 <한국동란사> 85페지,남조선 <서울신문> 1949년 10월 8일)
또한 미국은 남조선통치배들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게 하는 한편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을 대량 끌어 들여 남조선<군>을 무장시키고 미군사고문단을 통하여 군사훈련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미국과 리승만역도는 북의 무력에 비한 <10대 1의 우위>보장을 목표로 무력증강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렸다.
1949년 7월 18일 리승만은 주미<대사>장면에게 보낸 편지에서 <10만명의 상비병,20만명의 예비병,10만명의 경찰력 도합 40만을 (국방)을 위하여 훈련시키고 장비시킬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또한 남조선<군>을 미국식으로 맹훈련시키고 <아시아에서의 제일의 군대>라고 추어 주며 전쟁열을 적극 고취하였다.
그것은 미국경제원조처 <한국>담당부장 죤슨이 1950년 5월19일 미국회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무기로 장비되고 미군사고문단에 의해 훈련된 남조선군대 10만명이 이미 준비가 완성되였고 언제든지 작전에 들어 갈수 있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일문판,40페지)고 증언한데서 찾아 볼수 있다.
미국의 북침계획에 따라 리승만군은 38도선지역에 공격형으로 배치되였으며 전쟁수행에 필요한 일체 군수물자와 장비들도 집결되였다.
이에 대하여 맥아더는 <전쟁전야에 미국은 북조선을 공격하기 위하여 모든 군수물자와 무기들을 38도선지역에 총 집결시켰다.>고 하면서 1951년 5월 3∼14일사이에 진행된 국회상원청문회에서 <(한국군)은 그 보급품이나 장비를 38도선에서 멀지 않은곳에 놓아 두고 있었다.그들은 종심진지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38도선과 서울사이의 이르는 곳마다가 모두 병참지역이였다.>고 증언하였으며 맥아더사령부 정보부장 월로우비 역시 리승만군대의 대부분이38도선을 따라 배치되여 있었다고 실토하였다.(오스트리아신문 <폴크스슈팀메> 1990년 7월 16일,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일문판 69페지,<조선전쟁의 력사> 일문판 96페지)
미국은 미국제무기로 장비시키고 훈련준 남조선<군>의 <림전태세>를 검증하고 <실전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1947년부터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부단한 무장도발을 감행케 하여 예비적인 <시험전쟁>을 벌리게 하였다.
38도선전역에서 감행된 남조선<군>의 각종 무장도발행위들은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2,617회나 된다.
1949년 7월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는 남조선륙군 참모총장 채병덕과 1사단장 김석원에게 <금번 단행할 북침은 멀지 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이며 ... 적과 직접 조우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라고 하였다.
미국은 남조선통치배들을 전쟁에로 부추기면서 구일본군 참모성원들까지 망라시켜 <북벌>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전쟁발발시 취하여야 할 특별행동에 관한 <엔에스씨-68>전략계획도 세워 놓았다.
이 계획은 1950년 1월 트루맨의 지시에 따라 미국무성과 미합동참모본부 련합회의에서 작성합의되고 4월 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비준된 조선전쟁도발과 관련한 계획으로서 1950년초 남조선통치배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1964년 4월 13일)
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일문판 165페지)에 밝혀 져 있는것처럼 결국 <북침공격을 위한 군사작전계획은 완전히수립>되였으며 <북조선에 대한 공격준비는 1950년 5월>에 일체 끝났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병탄하기 위한 침략전쟁준비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였는가에 대하여 미국도서 <아메리카현대사>가 <전쟁개시에 있어서 이번 전쟁처럼 완전히 준비하고 있은적은 우리들의 력사에서 처음이다.>라고 평한것도 결코 우연한것은 아니다.
3) 미국에 의한 조선전쟁 발발
미국과 리승만도당은 북침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를 완료하자 곧 실천에로 넘어 갔다.
1950년 6월 17일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쟁준비실태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공격개시>지령을 주기 위하여 자기의 특사 덜레스를 남조선에 파견하였다.
덜레스의 남조선행각목적에 대하여 오스트랄리아 문필활동가 월프레드 버체트는 <덜레스의 방문은 공격개시신호를 주고 공격개시와 함께 미해공군이 지원하여 줄것을 최고위급에서 리승만에게 담보해 주기 위한것이였다.>고 명백히 지적하였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 일문판 99페지)
실지 38도선시찰후 6월 18일 서울에 돌아 온 덜레스는 리승만에게 <북조선에서 먼저 (침입)했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라.>고 지시하였으며 6월 19일에는 남조선<국회>에 나타나 <미국은 남조선이 공산주의와 싸우는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물질적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남조선통치배들을 부추겼다.(일본도서 <침략자는 누구인가> 4페지)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6월 22일 미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남조선의 전쟁도발준비정형을 놓고 밀담하면서 미국이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넘어 가야 한다고 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의 발발> 66페지)
도꾜에서는 일본주둔 미군의 전쟁준비상태를 료해한 미국방장관 죤슨,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랫들리와 덜레스 그리고 맥아더사이에 비밀회담이 벌어 졌다.
이 밀담에 대하여 당시 <뉴욕타임스>는 극비에 진행된 회담에서는 대일강화조약을 토의한다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실지에 있어서 조선전쟁문제가 중심의제로 토의되였다고 평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 56페지)
바로 <도꾜4자회담>에서 조선전쟁개시일을 1950년 6월 25일로 하자는것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였다.
결국 덜레스가 현지에서 확정하고 미국대통령 트루맨이 최종적으로 비준한 지령에 따라 북침을 단행할데 대한 비밀명령이 리승만군에 하달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군사고문단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남조선<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일제히 개시하였으며 이로써 조선전쟁이 발발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해군참모총장이였던 리룡운도 <전쟁은 사실 우리들에 의하여,남조선으로부터의 도발로써 시작되였다.>고 실토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 1950년 6월 28일,교도통신 1975년 6월 25일)
1950년 6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오늘 아침 (한국군)은 북쪽으로 진격하여 해주를 점령하였다.해주는 경계선으로부터 1마일 북쪽에 있다.>고 전하였으며 같은날 아침 서울방송도 륙군본부의 특별보도문을 인용하면서 <옹진지구의 아군 제17련대는 해주시를 점령하였고 38도선일대의 (국군)주력부대의 일부는 38도선으로부터 20키로메터지점까지 진격중에 있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일문판 54페지,남조선잡지 <월간조선>1984년 6월호 176페지)고 발표하였다.
당시 적들자신이 인정한것처럼 공화국북반부는 매우 청소하였다.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 외교 및 군사위원회회의에 출석한 맥아더는 <북의 군대는 38도선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여 있었다.그것은 방어를 위한 배치였지 공격을 위한 배치는 아니였다.>고 조선전쟁발발경위에 대하여 고백하였으며 미군정보부에 있던 웨드마이어와 팀버맨도 <북의 인민군대는 군대로 보나 장비로보나 렬세에 놓여 있었기때문에 자진하여 침략할수 없었다.>고 하였다.(워싱톤주재 남조선<대사>의 <비밀보고>)
미국은 남조선<군>이 38도선을 넘어 서기 바쁘게 대기상태에 두었던 미군무력을 신속히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
6월 25일에 벌써 미공군 비행대들은 우리 인민군대를 표적으로 하여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6월 26일 낮부터는 공화국북반부지역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같은날 미제7함대도 조선해역에서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일본력사가 호라 도미오는 자기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미극동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전쟁이 일어 난 날인 1950년 6월 25일에 벌써 일본기지에 있던 전투폭격기들을 조선전쟁에 출격시켰다.>고 서술하였으며 미국력사가 페렌바하도 <그날(6월 25일) 미제5공군의 제68,제339전투비행대와 제25전투폭격비행대는 일본에서 163회 출격했다....미국은 이미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던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실과 자료들이 보여 주듯이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미국이 사전에 준비하여 극비에 붙인 전쟁씨나리오에 따라 감행된 침략적군사행동이였다.
4)유엔이름의 비법적도용
주도세밀한 북침계획에 따라 조선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침략전쟁의 진상을 외곡하고 저들의 공개적인 무력간섭행위를 유엔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우선 미국은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근거없이 <북으로부터의 무장공격>이라는 허위를 날조하고 우리 공화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비법적인 <결의>를 조작해 냈다.
이에 대하여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128페지)에는 <...어떤 추가적정보도 없이 38도선에서 일어 난 사태도 상세하게 알지 못한채 북조선에 (침략)의 딱지를 붙이려고 몹시 흥분한 미국의 제안을 강다짐으로 승인하고 말았다.>고 지적되여 있다.
미국은 저들의 전쟁정책을 은페하고 우리 공화국에 침략의 책임을 전가하는 부당한 <결의>를 조작하여 사실상 미군무력의 대대적인 투입을 결정한것과 함께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책동에 매여달렸다.
6월 27일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다시 열린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미국대표 오스틴은 조선인민군의 반공격을 <유엔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면서 <무장공격을 물리치며 그 지역에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줄것을 유엔성원국들에 권고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내놓았다.(<(조선문제)의 비법적토의에 관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공식기록> 제1분책 20페지)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미군의 전면적개입과 관련하여 25일부 <결의>를 인용하면서 <안보리사회는 유엔의 전체 가맹국에 이(결의)의 리행에 즈음하여 모든 원조를 줄것을 요청하였다.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나는 미국해공군에 (한국정부군)에 원호와 지지를 줄데 대하여 명령하였다.>고 자인하였다.(미국신문 <미네아 폴리스 타임스> 1950년 7월 23일)
이처럼 미국은 거수기를 발동하여 저들의 무력침공을 공식선포하고 추종국가들의 조선전쟁 참전을 합법화하기 위한 <결의>를 부당하게 통과시켰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 6월 25일부와 27일부 <결의>들로 조선전쟁에 대한 미군의 전면적개입과 추종국들의 참전을 위한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 한 미국은 7월 7일 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미군에 <유엔군>의 모자를 씌우고 추종국 군대들을 미국의 지휘하에 얽어 매기 위한 <결의>를 채택케 하였다.
트루맨의 명령에 따라 7월 8일 맥아더가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되였고 7월 25일에는 도꾜에 있던 미극동군사령부가 <유엔군사령부>로 변신되였다.
이러한 유엔<결의>들의 부당성과 비법성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력사의 정확한 평가가 내려 졌다.
당시 유엔주재 쏘련대표였던 말리크는 <유일한 론리적 결론은 미국정부가 먼저 침략행위를 감행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유엔의 행동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 침략행위를 은페하려고 기도하였다는것이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 1950년 8월 26일)라고 명백히 지적하였다.
일본력사가 가미 야후지는 자기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6월 25일,6월 27일,7월 7일의 3개의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들은 사실상 미국의 (결의안)이였다.>고 정확히 평가하였으며 1994년 6월 24일 전 유엔사무총장 부트루스 부트루스 갈리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1950년7월에 채택된 안보리사회결의 제84호는 (유엔군사령부)를 조직할데 대한 결정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사실상 이 <결의>들은 문제토의에 당사자를 참가시킬데 대한 유엔헌장 제32조를 무시하고 우리 공화국대표의 참가 없이 조작되였으며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은 5개 상임리사국의 동의투표를 포함한 7개 리사국의 찬성투표에 의해서만 채택되기로 되여 있는 유엔헌장 제27조의 요구에 어긋나게 쏘련대표가 결석 한 가운데 그리고 안전보장리사회에 위임된 일체무력에 대한 지휘는 개별적인 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안전보장리사회군사참모위원회가 책임진다는것이 규제된 유엔헌장 제47조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불법채택되였다.
이처럼 미국은 전쟁 첫날부터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전쟁발발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시켰으며 자기 지상군의 3분의 1,공군의 5분의 1,태평양함대의 대부분과 <유엔군>의 명목하에 15개추종국가 군대까지 동원하는 등 전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기도를 이루어 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심대한 패배를 당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을수 없었다.
2.미국은 조선반도 평화의 주되는 교란자
정전협정은 조선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조선반도에서 적대행위들과 무장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모든 조항들을 엄격히 준수하고 리행하는것은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된다.
1)정전체계를 파괴한 장본인
미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직후부터 정전체계를 파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과 관련한 정전협정 제60항의 리행을 전면 태공한데서 여실히 찾아 볼수 있다.
정전협정 제60항에는 정전후 쌍방이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3개월내에 소집하고 외국군대의 철거 및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것이 규정되여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다음날인 1953년 7월 28일 미국무장관 덜레스는 <우리는 90일이 경과한후 정치회의로부터 퇴장할것>이라고 로골적으로 선언하였으며 실지 미국측은 그해 10월 공화국정부의 제의에 의하여 판문점에서 열린 정치회의소집을 위한 예비회담에서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던 끝에 일방적으로 퇴장하는것으로써 이 회담을 결렬시켰다.
미국측은 1954년 4월에 열린 조선문제와 관련한 제네바회의도 파탄시켰다.
결과 정전협정 제60항은 더 이상 리행할수 없는 지상공문으로 남아 있게 되였으며 이로 하여 정치적방법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망은 완전히 막히고 평화가 아닌 정전상태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치회의를 파탄시킨데 이어 미국은 군사장비와 작전물자의 반입금지를 규제한 정전협정의 조항들을 파기하는데 달라 붙었다.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은 <조선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을 들여 오는것을 정지한다.>고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조항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대한 작전 장비와 물자들을 남조선에 비법적으로 반입하였다.
정전 직후부터 1954년 4월 15일까지 불과 1년도 못되는 기간에 미국이 남조선에 끌어 들인 군사장비만 하여도 작전비행기 177대,각종 구경의 포 465문,로케트 6,400기,박격포 145문,기관총 1,365정에 달한다.
이처럼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위반하여 오던 미국은 드디여 1957년 6월 21일에 있은 군사정전위원회 제75차회의에서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의 일방적인 파기를 선포하였다.
그후 미국측은 <...남조선에 대하여 신형무기의 공급을 시작함을...정식 통지>하고 원자 및 유도무기를 포함한 다량의 각종 신형무기를 로골적으로 반입하여 남조선을 하나의 거대한 핵기지로 전변시키였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미륙군참모총장이였던 렘니쩌는 1960년2월에 열린 미국회 하원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수년간에 걸쳐 노력한 결과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을 파기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우리는 거기서 신형장비를 가지게 되였다.>고 내놓고 떠벌였다.
미국은 또한 정전협정위반사건에 대한 협의처리를 맡아 보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마저 완전히 마비시켰다.
미국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자기측 <수석위원>을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남조선<군> 장성으로 임명함으로써 군사정전위원회가 더 이상 자기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제41항에 따라 정전협정 제13항 ㄷ목과 ㄹ목 그리고 제28항에 규정된 감독,감시,시찰 및 조사의 직책을 집행하며 그 결과를 군사정전위원회에 보고하는것을 기본임무로 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의도적으로 마비시켰다.
미국은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들이 조선경외로부터 증원되는것을 감독,시찰할 임무를 지니고 정전협정 제43항에 따라 출입항들이 있는 남조선의 인천,대구,강릉,부산,군산에 파견되였던 중립국시찰소조들의 활동을 각방으로 방해하여 오던 끝에 1955년 8월 5일 남조선당국을 내 세워 중립국감독위원회에 그해 8월 13일까지 철수할데 대한 최후통첩까지 하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1956년 1월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에서 고의적으로 자동차사고를 일으켜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리예대표를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지어 미국은 1956년 5월 31일 군사정전위원회 제70차회의에서 정전협정 제61항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1주일안으로 중립국시찰소조성원들을 남쪽출입항으로부터 모두 철수시킬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그해 6월 9일에는 전원 강제추방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란폭하게 위반하고 파기해 왔다는것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2)남조선주둔 미군은 새 전쟁위험의 화근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괴뢰군에 대한 작전지휘통수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국은 1953년 8월 8일 남조선통치배들과 <호상방위조약>을 조작하여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합법화하고 새 전쟁준비에 광분하였다.
미국은 1955년 7월에는 일본 도꾜에 있던 미8군사령부를 그리고 1957년 7월에는 <유엔군사령부>를 각각 남조선에 끌어들이고 새로운 북침전쟁을 위한 공격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였다.미국은 남조선주둔 미군무력을 부단히 강화하는 한편 정전직후 1955년 8월까지 2년남짓한 기간에만도 남조선<군>을 정전당시의 16개사단으로부터 일약 현역 31개사단,예비역 10개사단으로 증강편성하고 현대적인 작전장비들을 남조선<군>에 제공하였다.
특히 미국은 저들의 대조선압살정책과 새로운 세계전략에 따라 남조선을 핵기지로 전변시키기 위한 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 붙었다.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기지화책동은 일찌기 1950년대 후반기에 시작되여 1970년대 중엽에 들어와 남조선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마지막 지탱점으로 그 지위가 부각되자 <전선방위지역>으로 선포되면서 더욱 본격화되였으며 1980년대 이래 새로운 미행정부가 출현할 때마다 보다 구체화되였다.
1975년 5월 미국회하원은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회의에서 남조선에 반입 된 미국의 핵무기는 이미 1,000여개에 달한다고 공개하였으며 미국회 하원의원 로날드 딤럼즈도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이 남조선에 1,000여개의 핵무기를 반입하였으며 54대의 핵폭탄운반용비행기를 전개해 놓았다.>고 실토한바 있다.(<합동통신> 1975년 6월 3일,지지통신 1975년 6월 20일)
그후 미당국자들이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였다고 선언하였지만 사찰을 통한 확인을 용인하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사실상 그러한 주장은 아무런 신빙성도 없다.
미국은 정전직후부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끊임없는 정탐,도발행위들을 감행하였다.
1968년 1월 미국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 령해깊이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하다가 나포되였으며 1969년 4월에는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이,1994년 12월에는 미군직승기가 정탐목적으로 군사분계선 북쪽지역 상공에 침입하였다가 격추되였다.
미국은 1976년 8월에 있은 <판문점사건>을 비롯하여 군사분계선일대에서 우리측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행위들을 매일같이 감행하여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미국호전세력들이 북침공격을 위한 수많은 작전계획들을 세워 놓고 부단히 수정보충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보다 완성된 <작전계획 5027-98>이라는 제2의 조선침략전쟁계획까지 짜놓고 있다는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작전계획에 의하면 미국은 태평양지역사령부와 본토의 미군무력60여만명,미제7함대의 항공모함과 함선들,첨단무기로 장비한 전략전술폭격기들을 동원하여 공화국의 주요 정치,경제,군사적 중심지역을 타격할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유사시> 북에 대한 선제공격과 함께 압록강,두만강 지역에로 진격할것을 총적목표로 공식화 해 놓았다.(남조선잡지 <신동아> 1999년 5월호)
미국은 이 계획의 원만한 수행을 위하여 미8군사령부를 야전군체계로 개편하고 여러 항공모함전단과 1,000여대의 전략 및 전술폭격기들,전투기들을 일본과 미국본토 그리고 하와이와 괌도에 항시적으로 대기시켜 놓고 있다.
이와같이 북침전쟁을 위한 작전계획을 짜놓은데 기초하여 미국은 그것을 실전상황에서 련마할 목적밑에 남조선통치배들과 화약내 풍기는 합동군사연습을 끊임없이 벌려 놓고 있다.
지난해만 하여도 미국은 <독수리>,<을지 포커스 렌즈> 등 도발적인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련이어 벌리였으며 지난해 6월에는 남조선<군>을 이른바 <북방한계선수호>에로 부추겨 조선서해에서 무장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조선반도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북방한계선>이라는것은 전후 미군측이 교전일방의 동의도 없이 조선인민군측 관할수역에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강도적인 선이며 조선정전협정과 국제법의 초보적인 요구마저 무시한 비법적인 선이다.
이에 대하여 1999년 6월 17일 미국무성 대변인도 <북방한계선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바 없다>고 자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조선서해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무한정 계속 유지하려고 꾀하면서 남조선통치배들을 사촉하여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침략전쟁도발기도는 미,일,남조선사이의 <3각군사동맹>조작을 위한 책동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 나고 있다.
최근시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남조선,미국-일본,일본-남조선사이의 위험한 전쟁모의들이 보다 구체화되여 실천에 옮겨 지고 있다.
미국과 남조선사이의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이 년례 행사처럼 강행되고 있는 가운데 1999년 정초 마산에서 일본과 남조선사이의 군사협력가능성을 분석하는 모의시험이 진행되고 일본방위청장관의 서울행각시 군사련락체계의 구축과 합동군사연습실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등 군사적련계가 보다 깊어 지고 있다.
더우기 올해 3월에있은 미국방장관 코헨과 일본 통합막료회의 의장 후지나와 유지의 서울행각시에는 조선반도 <유사시> 미,일,남조선사이의 <공조>를 강화할데 대한 합의가 이룩되였다.(일본 <요미우리신붕> 1999년 1월 6일,남조선신문 <한겨레> 1999년 1월 7일,<제1라지오> 2000년 3월 18일)
이 모든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기도가 이제는 위험계선을 넘어 서고 있으며 미국이야 말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주되는 화근임을 그대로 실증해 주고있다.
3.평화와 안전을 위한 공화국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평화애호적인 근본립장으로부터 조선반도에서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성의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공화국정부는 1954년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하여 소집된 제네바회담에서 정전협정에 예견된대로 조선반도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평화와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기하였으며 회담이 결렬될 무렵까지도 최소 한 원칙적합의라도 이룩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제네바회담이 미국의 의도적인 방해책동으로 파탄된후 남조선에서 미군무력이 계속 증강되는 조건에서도 공화국정부는 1958년 주동적으로 조선인민군 병력을 대폭 축감하였으며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공화국정부는 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명정대하고 현실적인 평화방안들을 거듭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인내성 있게 노력하였다.
1974년 3월 25일에 진행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회의에서는 우리와 미국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담을 진행하고 이 회담에서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것을 서약하며 조선경외로부터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하고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조선반도가 그 어떤 외국의 군사기지나 작전기지로 되지 않을데 대하여 토의할것을 제기하였다.
공화국정부는 1984년 1월 10일에도 우리와 미국 그리고 남조선당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열고 여기에서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할데 대한 획기적인 평화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을 위한 당사자들사이의 대화를 성사시키려고 시종일관 인내성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평화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담겨 진 군축방안들도 내놓았다.
공화국정부는 조미회담과 <4자회담>에서도 조선반도의 실제적인 평화를 이룩하려는 선의의 립장에서 출발하여 조선문제해결의 근본내용으로 되고 있는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할데 대한 문제를 일관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의 공명정대한 제안을 어느 하나라도 받아 들였다면 조선반도에서 오늘과 같은 전쟁위험은 없어 졌을것이며 벌써 공고한 평화가 도래하였을것이다.
제반 력사적사실들은 남조선에 미군이 남아 있고 미국이 조선민족의 내부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한 조선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수 없고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그대로 실증하여 주고 있다.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고 새 전쟁도발책동을 중지하여야 하며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대로 <유엔군사령부>를 즉시 해체하고 미군을 남조선에서 당장 끌어 내가야 할것이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신성한 조국강토우에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몰아 올 반민족적행위들을 그만두고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따라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우리의 애국애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요구에 적극 응해 나와야 할것이다.
평화를 원치 않고 전쟁을 즐기는 자들은 명심해야 할것이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조선에서 저지른 미제의 죄행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옹호고수할것이며 조국통일 3대헌장에 따라 민족의 숙원인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