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위원장 이딸리아대통령에게 축전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동지는 이딸리아공화국 국경절에 즈음하여 30일 이 나라 대통령 까를로 아젤리오 챰삐에게 축전을 보내였다.
 축전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 있다.
 나는 이딸리아공화국 국경절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이 기회에 나는 우리 두 나라사이의 친선협조관계가 여러 분야에 걸쳐 확대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나라의 번영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끝)


조선외무성대변인 조미회담진행정형에 언급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대변인은 최근 로마에서 조미회담이 진행된것과 관련하여 오늘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였다.
 대변인은 지난 5월 24일부터 30일까지 로마에서는 정례화된 회담의 련속으로 조미부상급회담이 진행된데 대하여 언급하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회담에서는 3월 뉴욕회담에서 상정된 경수로제공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보상문제를 위주로 하여 미국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대조선 경제제재해제조치를 시행하는 문제 등 조미사이의 현안문제들이 심도있게 토의되였다.
 쌍방은 론의된 문제들이 두 나라사이의 관계개선에 부합되게 하루빨리 실천에 옮겨 져야 한다는데 대하여 견해일치를 보았다.
 쌍방은 앞으로도 여러 갈래의 회담들을 진행하여 현안문제들에 대한 론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하였다.(끝)


외무성대변인 조영외교실무자 회담에 언급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은 최근 평양에서 우리 나라와 영국외교실무자들사이의 회담이 진행된것과 관련하여 31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는 지난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우리 나라와 영국 외교실무자들사이의 회담이 진행된데 대하여 언급하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번 조영회담은 지난시기에 진행된 대화의 련속으로 된다.
 쌍방은 호상 리해와 신뢰의 분위기속에서 두 나라 관계를 여러 분야에 걸쳐 심화발전시킬데 대하여 진지하게 토의하였으며 일련의 문제들에서 견해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영국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것이다.(끝)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 준비를 위한 남측선발대 평양 도착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위한 남측선발대가 5월 31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관계부문 일군들이 남측선발대를 맞이하였다.(끝)


조선전쟁발발 50년에 즈음한 비망록/조선정부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조선전쟁발발 5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력사의 진실을 외곡하는 미국의 침략과 전쟁책동의 진면모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30일 비망록을 발표하였다.
 비망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조선전쟁이 발발된 때로부터 50년이 되여 온다.
 미국과 남조선통치배들이 도발한 조선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전쟁의 포성이 멎고 정전이 실현된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조선반도에는 아직도 평화가 깃들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긴장이 더욱 격화되고 새 전쟁의 위험은 날을 따라 커만 가고 있다.
 이것은 조선인민은 물론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한결같은 우려를 자아 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조선전쟁발발 5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력사의 진실을 외곡하는 미국호전세력들의 책동을 까밝히고 침략과 전쟁의 원흉이며 평화의 교란자인 미국의 흉악한 진면모를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1.미국은 조선전쟁의 도발자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실현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군사전략적중요성으로부터 전조선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책동하였다.

 1)조선전쟁을 기도 한 미국의 진 의도

 제2차 세계대전직후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련이어 승리함으로써 세계민주력량은 비할바 없이 장성강화되였다.
 사회주의와 민주력량의 위력이 강화되는데 질겁한 미국은 유럽지역에서 나토를 조작한데 이어 아시아에서는 패망한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키고 남조선괴뢰를 비롯한 추종세력들을 규합하여 이 지역의 인민민주주의나라들과 혁명운동을 말살해 보려고 기도하였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조선반도를 반공전략과 대아시아전략실현의 전초기지로 간주하고 저들의 군사적지배령역을 전조선에 확대하기 위하여 날뛰였다.
 미극동군 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나는 항상 조선을 무한한 가치가 있는 군사적전초기지로 인정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1957년 2월 4일)라고 하면서 <조선의 전지역을 정복하는것에 의하여 우리는 쏘베트 씨비리와 남방을 련결하는 유일한 보급선을 산산이 짓부실수 있을것이며...울라지보스또크와 싱가포르사이의 전지역을 지배할수 있을것이다.그때에 가서는 우리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곳이란 아무데도 없게 될것이다.>라고 하였다.(허쉘 메이어 <미국현대사> 148페지)
 미국대통령특사로 남조선에 기여 든 웨드마이어중장은 <한국>에서의 군사기지화 진행정형을 시찰하고 <조선의 통일과 독립은 미국의 전반적리익에 중대한 위협으로 되므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군사적점령의 범위도 전 조선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하였다.(일본도서 <미국의 극동군사전략> 18페지)
 조선반도의 군사전략적중요성에 관한 미지배층의 견해는 1946년 초여름 배상문제를 담당한 미국대통령특사 에드원 폴리가 조선의 북과 남을 돌아 보고 트루맨에게 제출한 <조선정세에 관한 견해,결론 및 권고>라는 시찰보고서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
 그는 보고서에서 <솔직히 말해서...조선은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이 성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걸려 있는 사상상의 싸움터이다.이곳은 패망한 봉건주의에 도전하여 민주주의체제(미국식민주주의)가 수용될수 있겠는가 아니면 공산주의가 보다 강해 질것인가를 시험하는 장소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미국도서 <트루맨 회고록>2권 일문판 224페지)
   1949년 여름 뉴욕의 통신보도도 <미국의 강경파는 조선을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상의 요충지로 보고 이 전쟁에 (한국군)을 투입할것을 고려하여 군사행동계획을 작성하였다.>고 지적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 73∼74페지)
 미국이 조선전쟁도발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진것은 저들이 직면한 심각한 경제위기와도 관련되여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비할바 없이 팽창되여 막대한 리윤을 축적한 미국경제는 전후 방대한 잉여자본도 미처 처리하지 못한채 1949년에 이르러 심각한 경제공황에 처하게 되였으며 이로 인하여 공업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5프로,독점자본의 리윤은 16프로나 감소되였다.
 이것은 수백만의 실업대군을 낳고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산생시켰다.
 미국은 이러한 엄중한 경제침체와 사회정치적위기로부터의 출로를 바로 조선전쟁에서 찾으려 하였으며 전쟁을 통하여 군수독점체들에 최대한의 리윤을 보장해 주고 위기에 처한 경제를 구원해 보려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도서 <조선전쟁>(128페지)은 <조선전쟁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미국은 북침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저들의 기도를 실현하려고 획책하였다.

 2)전쟁준비의 가속화

 미국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전쟁도발을 위하여 남조선통치배들에게 <북침통일>과 <실지회복>을 부르짖게 하며 전쟁광기를 고취시켰다.
 1949년 5월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였던 무쵸는 남조선 <국방부장관> 신성모와 <내무부장관> 김효석을 불러 다 놓고 <당신들뒤에는 미국이 서 있으니 만사는 우리를 믿고 우리의 권고와 지시를 충실히 실행하여 주기를 바란다.
 모든것의 해결은 힘이다.이 해결은 오직 미국의 힘으로만 해결할수 있는것이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를 가급적 촉진시켜야 한다.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정세와 우리의 의도를 잘 리해하고 모든 준비에 유감 없도록 류의하며 38도선 이북에 대한 총 진군의 시기가 하루라도 속히 오도록 힘써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미제국주의자들의 조선내전을 도발한 증거문헌집>평양 113페지)
 상전의 적극적인 비호와 사촉에 힘을 얻은 리승만은 1949년 10월에 공개적으로 <남북의 분렬은 전쟁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북(한)을 점령하여야 통일을 실현할수 있다.>고 폭언하였으며 10월 7일 유피통신사 부사장 죠세프죤슨과 한 회견에서 <...3일이내에 평양을 점령할수 있다>고 장담하며 제법 허세를 부렸다.(남조선도서 <한국동란사> 85페지,남조선 <서울신문> 1949년 10월 8일)
 또한 미국은 남조선통치배들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게 하는 한편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을 대량 끌어 들여 남조선<군>을 무장시키고 미군사고문단을 통하여 군사훈련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미국과 리승만역도는 북의 무력에 비한 <10대 1의 우위>보장을 목표로 무력증강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렸다.
 1949년 7월 18일 리승만은 주미<대사>장면에게 보낸 편지에서 <10만명의 상비병,20만명의 예비병,10만명의 경찰력 도합 40만을 (국방)을 위하여 훈련시키고 장비시킬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또한 남조선<군>을 미국식으로 맹훈련시키고 <아시아에서의 제일의 군대>라고 추어 주며 전쟁열을 적극 고취하였다.
 그것은 미국경제원조처 <한국>담당부장 죤슨이 1950년 5월19일 미국회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무기로 장비되고 미군사고문단에 의해 훈련된 남조선군대 10만명이 이미 준비가 완성되였고 언제든지 작전에 들어 갈수 있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일문판,40페지)고 증언한데서 찾아 볼수 있다.
 미국의 북침계획에 따라 리승만군은 38도선지역에 공격형으로 배치되였으며 전쟁수행에 필요한 일체 군수물자와 장비들도 집결되였다.
 이에 대하여 맥아더는 <전쟁전야에 미국은 북조선을 공격하기 위하여 모든 군수물자와 무기들을 38도선지역에 총 집결시켰다.>고 하면서 1951년 5월 3∼14일사이에 진행된 국회상원청문회에서 <(한국군)은 그 보급품이나 장비를 38도선에서 멀지 않은곳에 놓아 두고 있었다.그들은 종심진지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38도선과 서울사이의 이르는 곳마다가 모두 병참지역이였다.>고 증언하였으며 맥아더사령부 정보부장 월로우비 역시 리승만군대의 대부분이38도선을 따라 배치되여 있었다고 실토하였다.(오스트리아신문 <폴크스슈팀메> 1990년 7월 16일,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일문판 69페지,<조선전쟁의 력사> 일문판 96페지)
 미국은 미국제무기로 장비시키고 훈련준 남조선<군>의 <림전태세>를 검증하고 <실전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1947년부터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부단한 무장도발을 감행케 하여 예비적인 <시험전쟁>을 벌리게 하였다.
 38도선전역에서 감행된 남조선<군>의 각종 무장도발행위들은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2,617회나 된다.
 1949년 7월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는 남조선륙군 참모총장 채병덕과 1사단장 김석원에게 <금번 단행할 북침은 멀지 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이며 ... 적과 직접 조우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라고 하였다.
 미국은 남조선통치배들을 전쟁에로 부추기면서 구일본군 참모성원들까지 망라시켜 <북벌>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전쟁발발시 취하여야 할 특별행동에 관한 <엔에스씨-68>전략계획도 세워 놓았다.
 이 계획은 1950년 1월 트루맨의 지시에 따라 미국무성과 미합동참모본부 련합회의에서 작성합의되고 4월 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비준된 조선전쟁도발과 관련한 계획으로서 1950년초 남조선통치배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1964년 4월 13일)
 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일문판 165페지)에 밝혀 져 있는것처럼 결국 <북침공격을 위한 군사작전계획은 완전히수립>되였으며 <북조선에 대한 공격준비는 1950년 5월>에 일체 끝났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병탄하기 위한 침략전쟁준비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였는가에 대하여 미국도서 <아메리카현대사>가 <전쟁개시에 있어서 이번 전쟁처럼 완전히 준비하고 있은적은 우리들의 력사에서 처음이다.>라고 평한것도 결코 우연한것은 아니다.

 3) 미국에 의한 조선전쟁 발발

 미국과 리승만도당은 북침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를 완료하자 곧 실천에로 넘어 갔다.
 1950년 6월 17일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쟁준비실태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공격개시>지령을 주기 위하여 자기의 특사 덜레스를 남조선에 파견하였다.
 덜레스의 남조선행각목적에 대하여 오스트랄리아 문필활동가 월프레드 버체트는 <덜레스의 방문은 공격개시신호를 주고 공격개시와 함께 미해공군이 지원하여 줄것을 최고위급에서 리승만에게 담보해 주기 위한것이였다.>고 명백히 지적하였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 일문판 99페지)
 실지 38도선시찰후 6월 18일 서울에 돌아 온 덜레스는 리승만에게 <북조선에서 먼저 (침입)했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라.>고 지시하였으며 6월 19일에는 남조선<국회>에 나타나 <미국은 남조선이 공산주의와 싸우는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물질적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남조선통치배들을 부추겼다.(일본도서 <침략자는 누구인가> 4페지)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6월 22일 미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남조선의 전쟁도발준비정형을 놓고 밀담하면서 미국이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넘어 가야 한다고 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의 발발> 66페지)
 도꾜에서는 일본주둔 미군의 전쟁준비상태를 료해한 미국방장관 죤슨,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랫들리와 덜레스 그리고 맥아더사이에 비밀회담이 벌어 졌다.
 이 밀담에 대하여 당시 <뉴욕타임스>는 극비에 진행된 회담에서는 대일강화조약을 토의한다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실지에 있어서 조선전쟁문제가 중심의제로 토의되였다고 평하였다.(일본도서 <조선전쟁> 56페지)
 바로 <도꾜4자회담>에서 조선전쟁개시일을 1950년 6월 25일로 하자는것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였다.
 결국 덜레스가 현지에서 확정하고 미국대통령 트루맨이 최종적으로 비준한 지령에 따라 북침을 단행할데 대한 비밀명령이 리승만군에 하달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군사고문단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남조선<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일제히 개시하였으며 이로써 조선전쟁이 발발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해군참모총장이였던 리룡운도 <전쟁은 사실 우리들에 의하여,남조선으로부터의 도발로써 시작되였다.>고 실토하였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 1950년 6월 28일,교도통신 1975년 6월 25일)
 1950년 6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오늘 아침 (한국군)은 북쪽으로 진격하여 해주를 점령하였다.해주는 경계선으로부터 1마일 북쪽에 있다.>고 전하였으며 같은날 아침 서울방송도 륙군본부의 특별보도문을 인용하면서 <옹진지구의 아군 제17련대는 해주시를 점령하였고 38도선일대의 (국군)주력부대의 일부는 38도선으로부터 20키로메터지점까지 진격중에 있다.>(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일문판 54페지,남조선잡지 <월간조선>1984년 6월호 176페지)고 발표하였다.
 당시 적들자신이 인정한것처럼 공화국북반부는 매우 청소하였다.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 외교 및 군사위원회회의에 출석한 맥아더는 <북의 군대는 38도선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여 있었다.그것은 방어를 위한 배치였지 공격을 위한 배치는 아니였다.>고 조선전쟁발발경위에 대하여 고백하였으며 미군정보부에 있던 웨드마이어와 팀버맨도 <북의 인민군대는 군대로 보나 장비로보나 렬세에 놓여 있었기때문에 자진하여 침략할수 없었다.>고 하였다.(워싱톤주재 남조선<대사>의 <비밀보고>)
 미국은 남조선<군>이 38도선을 넘어 서기 바쁘게 대기상태에 두었던 미군무력을 신속히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
 6월 25일에 벌써 미공군 비행대들은 우리 인민군대를 표적으로 하여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6월 26일 낮부터는 공화국북반부지역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같은날 미제7함대도 조선해역에서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일본력사가 호라 도미오는 자기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미극동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전쟁이 일어 난 날인 1950년 6월 25일에 벌써 일본기지에 있던 전투폭격기들을 조선전쟁에 출격시켰다.>고 서술하였으며 미국력사가 페렌바하도 <그날(6월 25일) 미제5공군의 제68,제339전투비행대와 제25전투폭격비행대는 일본에서 163회 출격했다....미국은 이미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던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실과 자료들이 보여 주듯이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미국이 사전에 준비하여 극비에 붙인 전쟁씨나리오에 따라 감행된 침략적군사행동이였다.

 4)유엔이름의 비법적도용

 주도세밀한 북침계획에 따라 조선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침략전쟁의 진상을 외곡하고 저들의 공개적인 무력간섭행위를 유엔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우선 미국은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근거없이 <북으로부터의 무장공격>이라는 허위를 날조하고 우리 공화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비법적인 <결의>를 조작해 냈다.
 이에 대하여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128페지)에는 <...어떤 추가적정보도 없이 38도선에서 일어 난 사태도 상세하게 알지 못한채 북조선에 (침략)의 딱지를 붙이려고 몹시 흥분한 미국의 제안을 강다짐으로 승인하고 말았다.>고 지적되여 있다.
 미국은 저들의 전쟁정책을 은페하고 우리 공화국에 침략의 책임을 전가하는 부당한 <결의>를 조작하여 사실상 미군무력의 대대적인 투입을 결정한것과 함께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책동에 매여달렸다.
 6월 27일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다시 열린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미국대표 오스틴은 조선인민군의 반공격을 <유엔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면서 <무장공격을 물리치며 그 지역에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줄것을 유엔성원국들에 권고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내놓았다.(<(조선문제)의 비법적토의에 관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공식기록> 제1분책 20페지)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미군의 전면적개입과 관련하여 25일부 <결의>를 인용하면서 <안보리사회는 유엔의 전체 가맹국에 이(결의)의 리행에 즈음하여 모든 원조를 줄것을 요청하였다.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나는 미국해공군에 (한국정부군)에 원호와 지지를 줄데 대하여 명령하였다.>고 자인하였다.(미국신문 <미네아 폴리스 타임스> 1950년 7월 23일)
 이처럼 미국은 거수기를 발동하여 저들의 무력침공을 공식선포하고 추종국가들의 조선전쟁 참전을 합법화하기 위한 <결의>를 부당하게 통과시켰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회의 6월 25일부와 27일부 <결의>들로 조선전쟁에 대한 미군의 전면적개입과 추종국들의 참전을 위한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 한 미국은 7월 7일 안전보장리사회회의에서 미군에 <유엔군>의 모자를 씌우고 추종국 군대들을 미국의 지휘하에 얽어 매기 위한 <결의>를 채택케 하였다.
 트루맨의 명령에 따라 7월 8일 맥아더가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되였고 7월 25일에는 도꾜에 있던 미극동군사령부가 <유엔군사령부>로 변신되였다.
 이러한 유엔<결의>들의 부당성과 비법성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력사의 정확한 평가가 내려 졌다.
 당시 유엔주재 쏘련대표였던 말리크는 <유일한 론리적 결론은 미국정부가 먼저 침략행위를 감행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유엔의 행동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 침략행위를 은페하려고 기도하였다는것이다.>(미국신문 <뉴욕타임스> 1950년 8월 26일)라고 명백히 지적하였다.
 일본력사가 가미 야후지는 자기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6월 25일,6월 27일,7월 7일의 3개의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들은 사실상 미국의 (결의안)이였다.>고 정확히 평가하였으며 1994년 6월 24일 전 유엔사무총장 부트루스 부트루스 갈리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1950년7월에 채택된 안보리사회결의 제84호는 (유엔군사령부)를 조직할데 대한 결정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사실상 이 <결의>들은 문제토의에 당사자를 참가시킬데 대한 유엔헌장 제32조를 무시하고 우리 공화국대표의 참가 없이 조작되였으며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은 5개 상임리사국의 동의투표를 포함한 7개 리사국의 찬성투표에 의해서만 채택되기로 되여 있는 유엔헌장 제27조의 요구에 어긋나게 쏘련대표가 결석 한 가운데 그리고 안전보장리사회에 위임된 일체무력에 대한 지휘는 개별적인 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안전보장리사회군사참모위원회가 책임진다는것이 규제된 유엔헌장 제47조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불법채택되였다.
 이처럼 미국은 전쟁 첫날부터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전쟁발발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시켰으며 자기 지상군의 3분의 1,공군의 5분의 1,태평양함대의 대부분과 <유엔군>의 명목하에 15개추종국가 군대까지 동원하는 등 전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기도를 이루어 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심대한 패배를 당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을수 없었다.

 2.미국은 조선반도 평화의 주되는 교란자

 정전협정은 조선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조선반도에서 적대행위들과 무장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모든 조항들을 엄격히 준수하고 리행하는것은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된다.

 1)정전체계를 파괴한 장본인

 미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직후부터 정전체계를 파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과 관련한 정전협정 제60항의 리행을 전면 태공한데서 여실히 찾아 볼수 있다.
 정전협정 제60항에는 정전후 쌍방이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3개월내에 소집하고 외국군대의 철거 및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것이 규정되여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다음날인 1953년 7월 28일 미국무장관 덜레스는 <우리는 90일이 경과한후 정치회의로부터 퇴장할것>이라고 로골적으로 선언하였으며 실지 미국측은 그해 10월 공화국정부의 제의에 의하여 판문점에서 열린 정치회의소집을 위한 예비회담에서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던 끝에 일방적으로 퇴장하는것으로써 이 회담을 결렬시켰다.
 미국측은 1954년 4월에 열린 조선문제와 관련한 제네바회의도 파탄시켰다.
 결과 정전협정 제60항은 더 이상 리행할수 없는 지상공문으로 남아 있게 되였으며 이로 하여 정치적방법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망은 완전히 막히고 평화가 아닌 정전상태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치회의를 파탄시킨데 이어 미국은 군사장비와 작전물자의 반입금지를 규제한 정전협정의 조항들을 파기하는데 달라 붙었다.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은 <조선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을 들여 오는것을 정지한다.>고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조항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대한 작전 장비와 물자들을 남조선에 비법적으로 반입하였다.
 정전 직후부터 1954년 4월 15일까지 불과 1년도 못되는 기간에 미국이 남조선에 끌어 들인 군사장비만 하여도 작전비행기 177대,각종 구경의 포 465문,로케트 6,400기,박격포 145문,기관총 1,365정에 달한다.
 이처럼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위반하여 오던 미국은 드디여 1957년 6월 21일에 있은 군사정전위원회 제75차회의에서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의 일방적인 파기를 선포하였다.
 그후 미국측은 <...남조선에 대하여 신형무기의 공급을 시작함을...정식 통지>하고 원자 및 유도무기를 포함한 다량의 각종 신형무기를 로골적으로 반입하여 남조선을 하나의 거대한 핵기지로 전변시키였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미륙군참모총장이였던 렘니쩌는 1960년2월에 열린 미국회 하원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수년간에 걸쳐 노력한 결과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을 파기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우리는 거기서 신형장비를 가지게 되였다.>고 내놓고 떠벌였다.
 미국은 또한 정전협정위반사건에 대한 협의처리를 맡아 보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마저 완전히 마비시켰다.
 미국은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자기측 <수석위원>을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남조선<군> 장성으로 임명함으로써 군사정전위원회가 더 이상 자기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제41항에 따라 정전협정 제13항 ㄷ목과 ㄹ목 그리고 제28항에 규정된 감독,감시,시찰 및 조사의 직책을 집행하며 그 결과를 군사정전위원회에 보고하는것을 기본임무로 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의도적으로 마비시켰다.
 미국은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들이 조선경외로부터 증원되는것을 감독,시찰할 임무를 지니고 정전협정 제43항에 따라 출입항들이 있는 남조선의 인천,대구,강릉,부산,군산에 파견되였던 중립국시찰소조들의 활동을 각방으로 방해하여 오던 끝에 1955년 8월 5일 남조선당국을 내 세워 중립국감독위원회에 그해 8월 13일까지 철수할데 대한 최후통첩까지 하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1956년 1월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에서 고의적으로 자동차사고를 일으켜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리예대표를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지어 미국은 1956년 5월 31일 군사정전위원회 제70차회의에서 정전협정  제61항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1주일안으로 중립국시찰소조성원들을 남쪽출입항으로부터 모두 철수시킬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그해 6월 9일에는 전원 강제추방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란폭하게 위반하고 파기해 왔다는것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2)남조선주둔 미군은 새 전쟁위험의 화근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괴뢰군에 대한 작전지휘통수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국은 1953년 8월 8일 남조선통치배들과 <호상방위조약>을 조작하여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합법화하고 새 전쟁준비에 광분하였다.
 미국은 1955년 7월에는 일본 도꾜에 있던 미8군사령부를 그리고 1957년 7월에는 <유엔군사령부>를 각각 남조선에 끌어들이고 새로운 북침전쟁을 위한 공격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였다.미국은 남조선주둔 미군무력을 부단히 강화하는 한편 정전직후 1955년 8월까지 2년남짓한 기간에만도 남조선<군>을 정전당시의 16개사단으로부터 일약 현역 31개사단,예비역 10개사단으로 증강편성하고 현대적인 작전장비들을 남조선<군>에 제공하였다.
 특히 미국은 저들의 대조선압살정책과 새로운 세계전략에 따라 남조선을 핵기지로 전변시키기 위한 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 붙었다.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기지화책동은 일찌기 1950년대 후반기에 시작되여 1970년대 중엽에 들어와 남조선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마지막 지탱점으로 그 지위가 부각되자 <전선방위지역>으로 선포되면서 더욱 본격화되였으며 1980년대 이래 새로운 미행정부가 출현할 때마다 보다 구체화되였다.
 1975년 5월 미국회하원은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회의에서 남조선에 반입 된 미국의 핵무기는 이미 1,000여개에 달한다고 공개하였으며 미국회 하원의원 로날드 딤럼즈도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이 남조선에 1,000여개의 핵무기를 반입하였으며 54대의 핵폭탄운반용비행기를 전개해 놓았다.>고 실토한바 있다.(<합동통신> 1975년 6월 3일,지지통신 1975년 6월 20일)
 그후 미당국자들이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였다고 선언하였지만 사찰을 통한 확인을 용인하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사실상 그러한 주장은 아무런 신빙성도 없다.
 미국은 정전직후부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끊임없는 정탐,도발행위들을 감행하였다.
 1968년 1월 미국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 령해깊이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하다가 나포되였으며 1969년 4월에는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이,1994년 12월에는 미군직승기가 정탐목적으로 군사분계선 북쪽지역 상공에 침입하였다가 격추되였다.
 미국은 1976년 8월에 있은 <판문점사건>을 비롯하여 군사분계선일대에서 우리측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행위들을 매일같이 감행하여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미국호전세력들이 북침공격을 위한 수많은 작전계획들을 세워 놓고 부단히 수정보충하여 왔으며 최근에는 보다 완성된 <작전계획 5027-98>이라는 제2의 조선침략전쟁계획까지 짜놓고 있다는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작전계획에 의하면 미국은 태평양지역사령부와 본토의 미군무력60여만명,미제7함대의 항공모함과 함선들,첨단무기로 장비한 전략전술폭격기들을 동원하여 공화국의 주요 정치,경제,군사적 중심지역을 타격할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유사시> 북에 대한 선제공격과 함께 압록강,두만강 지역에로 진격할것을 총적목표로 공식화 해 놓았다.(남조선잡지 <신동아> 1999년 5월호)
 미국은 이 계획의 원만한 수행을 위하여 미8군사령부를 야전군체계로 개편하고 여러 항공모함전단과 1,000여대의 전략 및 전술폭격기들,전투기들을 일본과 미국본토 그리고 하와이와 괌도에 항시적으로 대기시켜 놓고 있다.
 이와같이 북침전쟁을 위한 작전계획을 짜놓은데 기초하여 미국은 그것을 실전상황에서 련마할 목적밑에 남조선통치배들과 화약내 풍기는 합동군사연습을 끊임없이 벌려 놓고 있다.
 지난해만 하여도 미국은 <독수리>,<을지 포커스 렌즈> 등 도발적인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련이어 벌리였으며 지난해 6월에는 남조선<군>을 이른바 <북방한계선수호>에로 부추겨 조선서해에서 무장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조선반도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북방한계선>이라는것은 전후 미군측이 교전일방의 동의도 없이 조선인민군측 관할수역에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강도적인 선이며 조선정전협정과 국제법의 초보적인 요구마저 무시한 비법적인 선이다.
 이에 대하여 1999년 6월 17일 미국무성 대변인도 <북방한계선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바 없다>고 자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조선서해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무한정 계속 유지하려고 꾀하면서 남조선통치배들을 사촉하여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침략전쟁도발기도는 미,일,남조선사이의 <3각군사동맹>조작을 위한 책동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 나고 있다.
 최근시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남조선,미국-일본,일본-남조선사이의 위험한 전쟁모의들이 보다 구체화되여 실천에 옮겨 지고 있다.
 미국과 남조선사이의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이 년례 행사처럼 강행되고 있는 가운데 1999년 정초 마산에서 일본과 남조선사이의 군사협력가능성을 분석하는 모의시험이 진행되고 일본방위청장관의 서울행각시 군사련락체계의 구축과 합동군사연습실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등 군사적련계가 보다 깊어 지고 있다.
 더우기 올해 3월에있은 미국방장관 코헨과 일본 통합막료회의 의장 후지나와 유지의 서울행각시에는 조선반도 <유사시> 미,일,남조선사이의 <공조>를 강화할데 대한 합의가 이룩되였다.(일본 <요미우리신붕> 1999년 1월 6일,남조선신문 <한겨레> 1999년 1월 7일,<제1라지오> 2000년 3월 18일)
 이 모든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기도가 이제는 위험계선을 넘어 서고 있으며 미국이야 말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주되는 화근임을 그대로 실증해 주고있다.

 3.평화와 안전을 위한 공화국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평화애호적인 근본립장으로부터 조선반도에서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성의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공화국정부는 1954년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하여 소집된 제네바회담에서 정전협정에 예견된대로 조선반도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평화와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기하였으며 회담이 결렬될 무렵까지도 최소 한 원칙적합의라도 이룩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제네바회담이 미국의 의도적인 방해책동으로 파탄된후 남조선에서 미군무력이 계속 증강되는 조건에서도 공화국정부는 1958년 주동적으로 조선인민군 병력을 대폭 축감하였으며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공화국정부는 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명정대하고 현실적인 평화방안들을 거듭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인내성 있게 노력하였다.
 1974년 3월 25일에 진행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회의에서는 우리와 미국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담을 진행하고 이 회담에서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것을 서약하며 조선경외로부터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하고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조선반도가 그 어떤 외국의 군사기지나 작전기지로 되지 않을데 대하여 토의할것을 제기하였다.
 공화국정부는 1984년 1월 10일에도 우리와 미국 그리고 남조선당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열고 여기에서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할데 대한 획기적인 평화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을 위한 당사자들사이의 대화를 성사시키려고 시종일관 인내성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평화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담겨 진 군축방안들도 내놓았다.
 공화국정부는 조미회담과 <4자회담>에서도 조선반도의 실제적인 평화를 이룩하려는 선의의 립장에서 출발하여 조선문제해결의 근본내용으로 되고 있는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할데 대한 문제를 일관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의 공명정대한 제안을 어느 하나라도 받아 들였다면 조선반도에서 오늘과 같은 전쟁위험은 없어 졌을것이며 벌써 공고한 평화가 도래하였을것이다.
 제반 력사적사실들은 남조선에 미군이 남아 있고 미국이 조선민족의 내부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한 조선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수 없고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그대로 실증하여 주고 있다.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고 새 전쟁도발책동을 중지하여야 하며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대로 <유엔군사령부>를 즉시 해체하고 미군을 남조선에서 당장 끌어 내가야 할것이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신성한 조국강토우에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몰아 올 반민족적행위들을 그만두고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따라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우리의 애국애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요구에 적극 응해 나와야 할것이다.
 평화를 원치 않고 전쟁을 즐기는 자들은 명심해야 할것이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조선에서 저지른 미제의 죄행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옹호고수할것이며 조국통일 3대헌장에 따라 민족의 숙원인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것이다.(끝)


조선과 에티오피아 두 나라 정부들사이의 협조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에티오피아련방민주공화국 정부 사이의 주체89-91(2000-2002)년도 문화교류계획서가 25일 아디스 아바바에서 조인되였다.
 두 나라 정부의 위임에 의하여 에티오피아주재 우리 나라 문성모대사와 에티오피아 공보 및 문화상 월데미카엘 체무가 계획서에 수표하였다.(끝)


6.1국제아동절 50돐기념 중앙보고회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6.1국제아동절 50돐기념 중앙보고회가 오늘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천연옥녀맹중앙위원회 위원장은 보고에서 6월 1일을 전세계어린이들의 국제적명절로 기념하기로 결정한것은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어린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그들의 행복과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전세계 어머니들의 단결과 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력사적인 계기였으며 녀성문제해결과 후대육성을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오늘 조선에서는 후대육성문제,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문제가 빛나게 해결되였으며 어린이들을 훌륭히 키우려는 어머니들의 세기적념원이 실현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한없이 숭고한 후대관을 지니시고 한평생 후대들을 위하여,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다 바쳐 오신데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후대육성사상과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오신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나 새 조국건설의 나날에도 어린이들을 훌륭히 키우시기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 오신데 대해 지적하였다.
 그는 후대육성사업은 오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빛나게 계승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이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다그쳐 나가는 조선혁명발전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어린이보육교육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고 사회주의교육학의 요구에 맞게 어린이들을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훌륭히 키워내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 오시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조국의 미래로 활짝 피여 나고 있는 우리의 귀여운 어린이들은 영원히 주체혁명위업의 대를 꿋꿋이 이어 나가며 강성대국건설의 장엄한 진군길에서 충성의 꽃으로 활짝 피여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보고회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인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양형섭부위원장,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중린비서 등과 조선주재 여러 나라 외교관 부인들과 외국인녀성들이 참가하였다.
 보고회가 끝난 다음 평양시내 유치원 어린이들의 예술공연이 있었다.(끝)


주체의 철학적세계관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을 새롭게 확립하였다.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체철학이 밝힌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이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립장을 밝혀 주고 있다.
 세계에 대한 주체적관점과 립장은 세계의 주인인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립장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한다는것은 세계의 주인인 사람의 리익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대한다는것이다.
 사람은 세계의 주인인것만큼 마땅히 사람의 리익의 견지에서 세계를 대하여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것은 사람이며 사람의 리익보다 더 귀중한것은 없다.
 세계의 모든 사물은 오직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지게 된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한다는것은 세계의 개조자인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변화발전에 대한다는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존재는 사람이며 사람만이 세계를 개조할수 있다.
 세계의 개조를 요구하며 세계의 개조를 실현하는것도 사람이다.
 사람은 객관적법칙을 리용하여 세계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능동적으로 개조하여 나간다.
 세계는 사람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서만 사람을 위한 세계로 개변되게 된다.
 세계에 대한 주체의 관점과 립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자주적으로,창조적으로,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관점과 립장이다.
 주체의 철학적세계관은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끝)


새 영화들이 나왔다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예술영화 <밀림이 설레인다> 제12부를 만들어 내놓았다.
 영화는 항일혁명전쟁의 준엄한 고난의 행군이 승리적으로 끝난후 북대정자에서 열린 군민련환대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령활한 지략과 전사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투철한 수령관 그리고 대원들의 뜨거운 의리와 동지애를 감명 깊게 보여 주고 있다.
 이에 앞서 나온 예술영화 <녀성승무조원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주석의 전략적구상을 받들고 녀성렬차승무조원들이 청춘의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전시수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해 가는 영웅적투쟁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촬영소에서는 조선인민경비대 한 병사가 바다에서 군사임무수행중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였지만 혁명적 신조를 지키고 기어이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는 모습을 형상한 예술영화 <아들은 돌아 왔다>와 한 청년연구사가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느 한 화력발전소에서 기류식분쇄기연구에 성공하는 내용을 주제로한 예술영화 <흰연기> 등도 만들어 내놓았다.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에서도 예술영화 <군관의  안해들>을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들을 내놓았다.
 예술영화 <군관의 안해들>은 어느 한 최전연부대 군관 안해들이 나이와 생활경위,성격과 취미는 서로 달라도 인민군군인들을 친어머니,친누이 심정으로 보살펴 주는 내용을 통하여 그들이야 말로 한가정의 주부가 아니라 남편들과 한 전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 하는 병사,혁명군대의 한식솔이라는것을 보여 준다.(끝)


<림팩 2000>합동군사연습과 관련한 론평/로동신문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31일부 <로동신문>은 미국이 하와이 앞바다 태평양상에서 최대규모의 <림팩 2000>합동군사연습을 벌려 놓은것과 관련한 론평을 실었다.
 론평의 필자는 미국이 정기적으로 <림팩>전쟁연습을 벌려 오고 있지만 이번과 같이 규모가 크게 벌린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이것은 그들의 아시아지배야망실현을 위한 위험한 전쟁놀음이라고 지적하였다.
 론평은 <림팩 2000>합동군사연습은 직접적으로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것이라고 하면서 전 조선을 군사적으로 틀어 쥐고 그를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에 대한 군사적지배권을 실현하려는것이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의 골자이라고 까밝혔다.
 론평은 이번 연습은 대조선압살책동의 한 고리이라고 하면서 미국호전계층들은 지난 조선전쟁때와 같이 방대한 다국적무력을 조선전선에 들이 밀어 속전속결하려 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론평은 미국호전세력들은 화약내 풍기는 전쟁연습으로 북남대화와 협상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군사적긴장상태와 전쟁위험을 증대시켜 얻을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미국은 력사의 흐름과 현실을 똑바로 보고 침략전쟁연습을 당장 걷어 치워야 한다고 지적하였다.(끝)


<출판물계약 독점체결>소문은 모략/민주조선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31일부 <민주조선>은 <삼성당>이라는 남조선의 출판업체가 우리의 출판물수출입사와 <저작물출판권 양도 및 공동출판>에 관한 <계약>을 <독점체결>하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것은 우리를 자극하는 불순한 모략선전이라고 규탄하였다.
 론평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년초에도 남조선출판물들에는 <삼성당>이 우리의 해당기관과 서적출판문제를 가지고 합의하였으며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기사들이 실리였다.
 당시 우리는 그것이 불순한 목적을 노린 날조극이라는것을 명백히 밝히였다.사실 공화국의 출판물수출입사는 남조선의 출판업체와 그런 문제를 협의한적이 없으며 따라서 <합의서>라는것도 존재할수 없다.이에 대해 밝히면서 우리는 북남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모략선전을 그만두라고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당>이 사죄는커녕 <계약체결>을 운운하며 기어이 공화국의 서적들을 출판한것은 북으로 쏠리는 민심을 리용하여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였다고만 볼수 없다.
 우리는 다시금 강력히 경고한다.
 <삼성당>은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우리의 저작권,출판권을 침해한데 대해 사죄,보상하며 더 이상 공화국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끝)


<교육부장관> 광주봉기전야제후 술놀이판을 벌려 물의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교육계 우두머리들이 지난 17일 광주에서 있은 광주인민봉기 20주년기념 전야제에 참가하였다가 행사가 끝나자마자 돌아 앉아 술놀이판을 벌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 졌다.
 그들은 <민주당>패거리들이 찾아 들어간 광주시내의 그 술집에서 따로 술판을 벌려 놓고 놀아 댔다 한다.
 광주의 애국렬사들을 모독하는 그들의 행위와 관련하여 각계에서 비난과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교육부장관>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였다고 한다.(끝)


매향리 미군사격장주변 주민들이 피해보상 요구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에 있는 미군사격장주변 10개마을 주민 2,160여명이 23일 피해보상금을 지불할것을 당국에 요구하였다.
 그들은 지난 8일 쿠니사격장에서 있은 미공군의 폭격연습으로 주민들이 부상당하고 수백채의 집 유리창들이 깨여 져 나가는 등 큰피해를 입은데 대해 밝히면서 보상금 216억 1,000만원을 내라고 들이대였다.(끝)


시민,로동단체 회원들 일본총리의 남조선행각 규탄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련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투자협정,세계무역기구반대국민행동을 비롯한 남조선의 시민,로동단체 회원 500여명이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일본총리의 남조선행각을 규탄하는 대회를 가지였다.
 대회에서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강제로 끌려 갔던 녀성들과 태평양전쟁피해자들이 자신들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일제의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폭로하였다.
 대회참가자들은 과거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만행에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일본은 이에 대해 정식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또한 남조선일본<어업협정>은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인민의 요구를 무시한 매국협정이라고 락인하고 독도를 집어 삼키려는 일본의 교활한 침략행위를 준렬히 규탄하였다.
 그들은 최근 괴뢰당국과 일본사이에 흥정판이 벌어 지고 있는 투자협정이요,자유무역협정이요 하는것은 남조선로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농업 및 생태계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뿐아니라 무역과 제조업분야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것이라고 주장하고 두협정의 체결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요구들이 담긴 공동성명서를 채택하고 대회장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시위행진을 벌렸다.(끝)


<민주로총>이 로동관련문제의 해결을 주장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방송보도에 의하면 <민주로총>이 29일 기자회견에서 로동시간단축,자동차회사를 해외에 팔아 넘기려는 정책의 재검토,비정규직로동자 보호 등 3대로동관련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을 경우 예정대로 30일부터 조합원 10만명이 참가하는 총 파업을 벌릴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는 <로사정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론의하자는 <정부>의 안을 믿을수 없는것이라고 배격하고 현 집권자가 직접 해결할것을 요구하였다.
 단체는 총 파업준비를 위해 29일부터 단위로조별로 롱성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끝)


김정일총비서의 로작을 뷸레찐으로 발행/탄자니아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정일령도자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사상사업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필수적요구이다>를 23일 탄자니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친선협회와 주체사상연구소조 탄자니아전국조정위원회가 공동명의로 뷸레찐으로 발행하였다.(끝)


조선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국제련락위원회에서 뷸레찐 발행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국제련락위원회 서기국에서 25일 뷸레찐 제303호를 발행하였다.
 뷸레찐은 <세계의 관심사로 되고 있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오는 6월 중순 평양에서 력사적인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진행된다고 하면서 이번 회담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협력과 교류,평화와 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것으로 하여 전체 조선인민은 물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썼다.
 뷸레찐은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력사적인 계기로 되리라는 기대를 표시하면서 최근 일부 보도매체들이 조선분렬과 조선전쟁,이번 회담과 관련한 그릇된 여론을 류포시키고 있는데 대하여 준렬히 규탄하였다.
 이번 회담은 명백히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의 공명정대성을 남측이 이번에 다시 인정한데 기초하여 진행된다고 뷸레찐은 강조하였다.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국제적깜빠니야 세계적판도에서 광범히 진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뷸레찐은 조국통일3대헌장을 지지하는 국제적서명운동에 5월 20일 현재 7,500만명이 참가한데 대하여 자료적으로 상세히 소개하고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민들과 인사들,단체,조직들이 여기에 적극 참가할것을 호소하였다.
 뷸레찐은 <광주인민봉기 20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광주인민봉기에 대하여 상세히 서술하고 광주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 있으며 그것은 남조선에서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끝)


3대헌장지지국제적서명운동에 참가/각국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3대헌장을 지지하는 국제적서명운동에 여러 나라 정당,단체들이 참가하였다.
 24일 꼬스따 리까인민당 중앙위원회 조정자 에두아르도 모라 발베르데가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대표하여,27일 에짚트자유당 일반관계국장 라솨드 가발라 알리가 50만명의 당원들을 대표하여,19일 조선통일지지 메히꼬위원회 위원장 알레한드로 로쌀레스가 지지위원회와 라싸로 까르데나스로조전선 성원들을 대표하여 서명문에 수표하였다.
 조선통일지지 메히꼬위원회 위원장은 서명문에 수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지름길을 밝혀 주는 불멸의 기치이다.
 우리는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3대헌장에 따라 조선의 통일이 반드시 이룩되리라고 확신한다.
 김정일각하의 령도를 받는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위업은 필승불패이다.(끝)


이딸리아대표가 주체사상연구회의진행정형 통보모임을 조직

 (평양 5월 31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회 제15차회의에 참가하였던 이딸리아주체사상연구대표 쥬제뻬 아마따가 15일 회의진행정형을 통보하는 모임을 조직하였다.
 모임에는 까따니아종합대학 교직원,학생들이 참가하였다.
 모임에서 쥬제뻬 아마따는 지난 4월 평양에서 진행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회 제15차회의가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신 김일성주석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진행된것으로 하여 의의 깊은 회의로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이 주체사상의 심오성과 생활력에 언급하고 주체사상연구 및 선전사업을 보다 적극 진행할 결의들을 표명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방문기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이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는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은 주체사상의 위대한 생활력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조선을 고립압살하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하고 있는 오늘 조선인민이 자기가 선택한 사회주의길로 꿋꿋이 나아 가도록 지지성원하는것은 진보적인민들의 국제적의무로 된다고 지적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