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쿠웨이트사이의 외교관계 설정에 관한 의정서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쿠웨이트국가사이의 외교관계설정에 관한 의정서가 발표되였다.
수리아주재 조선 특명전권대사 김형준과 쿠웨이트국가 외무성 부상 할리드 쑬레이만 알 자랄라가 각기 자기 나라의 위임에 의하여 수표한 의정서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쿠웨이트국가는 정치,경제,문화,인도주의적분야와 기타 호상협조분야에서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려는 념원으로부터,유엔헌장과 국제법의 기본목적과 리념에 기초하여 관계를 발전시킬것을 믿으면서,외교관계수립이 두 나라의 민족적리익에 부합되며 세계에서 협조와 평화를 강화하는데 기여하리라고 확신하면서,외교관계에 관한 1961년 윈협약조항들에 기초하여 의정서에 서명한 날부터 대사급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의정서는 2001년 4월 4일 수요일 쿠웨이트시에서 조선어,아랍어와 영어로 두부씩 작성되였으며 모든 원문들은 같은 효력을 가진다.(끝)
조선무역성과 네데를란드 경제성사이의 회담록 조인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무역성과 네데를란드경제성사이에 무역경제분야에서의 쌍무적협조에 관한 회담록이 6일 평양에서 조인되였다.
무역성 김룡문부상과 네데를란드 경제성 국제무역 및 투자위원회 위원장 도미니끄 보데인이 회담록에 수표하였다.(끝)
조선청년들의 백절불굴의 투쟁기풍을 보았다/중국공산주의청년단 제1서기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 제1서기 주강은 우리 나라 방문인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1세기의 첫해에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한 우리는 조선청년들이 강성대국건설의 진격로를 열어 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청년들은 주체혁명위업에 끝없이 충직한 청년전위의 대오로 억세게 자라나 사회주의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 나가고 있다.
제일 인상 깊은것은 조선청년들의 백절불굴의 투쟁기풍이였다.
그토록 어려운 시기에 조선청년들은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청년영웅도로를 훌륭히 건설하였다.
그들은 부닥치는 온갖 애로와 난관을 박차고 사상의 힘,의지의 힘으로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하였다.
조선청년들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는 우리에게 커다란 고무로 된다.
조선청년들이 지닌 백절불굴의 기상은 정성옥영웅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조선방문나날에 나는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였다.
그의 성과는 조선인민뿐아니라 아시아인민의 기쁨이다.
우리는 조선청년들이 앞으로도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서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할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과의 친선의 뉴대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겠다.
특히 두 나라 로세대 지도자들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중조친선을 새 세대들이 끊임없이 공고발전시켜 나가겠다.
김정일동지께서 중국을 방문하신것은 중조친선을 새 세기에 계속 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우리는 중조친선이 끊임없이 발전되기를 희망하면서 조선청년들의 앞길에 승리와 번영이 있기를 바란다.(끝)
천도교창도 141돐 천일기념식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천도교창도 141돐 천일기념식이 5일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기념식에서는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한영읍부위원장이 보고를 하였다.
그는 창도 141돐을 맞이하는 천도교가 오늘까지 <척양척왜>,<보국안민>,<제폭구민>의 구호밑에 애국애족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 왔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온 겨레를 한품에 안아 주시는 자애로운 민족의 어버이이시라는것을 생활체험을 통하여 절감하였다고 하면서 북남 천도교인들을 비롯한 온 겨레가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그이의 령도 따라 강성대국건설과 6.15북남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통일운동에 떨쳐 나설것을 강조하였다.
기념식에는 오익제고문을 비롯한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일군들, 평양시내 천도교인들이 참가하였다.(끝)
일본사회주의자쎈터 의장일행 도착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일본 사회주의자쎈터 의장 나루미 고이찌로일행이 5일 평양에 도착하였다.(끝)
중국 예술단,교예단 도착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할 중국 예술단,교예단이 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한편 태양절에 즈음하여 재로씨야 정일심동포가 5일 평양에 도착하였다.(끝)
감방안에서도 마음속의 진달래를 줄곧 피우면서/비전향장기수 글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비전향장기수 박문재는 <감방안에서도 마음속의 진달래를 줄곧 피우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글에서 남조선에서의 그 오랜 감옥살이를 이겨 낼수 있은것은 정치적생명을 안겨 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은덕을 잊을수 없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남조선에서 이웃집 드나들듯이 네번씩이나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이다.
통일애국사업에 투신했다가 1949년에 서울서대문형무소에 잡혀 들어 갔던것이 그 첫번째였고 조국해방전쟁의 와중에 충청남도일대에서 유격투쟁에 참가했다가 1953년에 체포되였던것이 두번째였으며 악명 높은 <반공법>상의 <고무찬양죄>목에 걸려 1973년에 구속되였던것이 세번째였고 이어 1977년에 <유신정권>이 조작한 한 모략<사건>에 련루되여 <중앙정보부>의 검은 마수에 걸려 들었던것이 네번째였다.
이러는 사이에 나는 근 30년이라는 감옥생활경력을 쌓게 되였고 1993년에 마지막으로 석방되여 나왔을 때 내 나이는 이미 70고개를 넘게 되였다.
세상과 철저히 격페된 감옥살이에서 겪은 시련을 이 짧은 수기에 어떻게 다 담을수 있으랴.
나는 다만 네차례의 감옥생활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시련으로 되였던 네번째 감옥살이의 한 단면을 여기에 적어 볼가 한다.
이 마지막번째의 감옥살이가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시련으로 되였던것은 결코 16년이라는 가장 길었던 그 지속기간 때문이 아니였다.
그것은 이 박문재라는 수인이 시인 박팔양의 아들이라는것이 알려 지게 된 사실과 관련된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인 박팔양이라고 하면 <카프>시기에 창작된 시 <진달래>를 생각하게 된다.
진달래를 봄의 선구자로 노래한 그 시의 작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인것이다.
나의 이러한 래력을 알게 된 다음부터 원쑤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나를 상대로 한 전향공작에 거마리처럼 달라 붙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카프>출신의 이름 있는 시인의 아들을 전향시키면 그 효과가 더없이 클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였기때문이다.
나를 전향시키기 위하여 그네들이 들고 나왔던 수법이란 공산정권이 나의 아버지를 기껏 써 먹고는 숙청하였다는 허무맹랑한 허위선전이였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것이 아닌 케케묵은 수법이였다.
독자들도 조선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보았듯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반공선전은 이미 8.15직후부터 있었고 미제가 이 땅에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을 때 아버지가 당과 수령의 신임을 받고 인민군 군관견장을 달고 종군작가로 참전하고 있었는데도 리광수같은 사람은 여전히 그런 악선전을 믿고 있었다.
잊을수 없는 나의 아버지.시 <진달래>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여 몸부림쳤던 사람이며 수난에 찬 조국의 운명을 두고 번민도 컸던 사람이였다.그러면서도 사상상의 미숙성으로 하여 투쟁의 일선에 나서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으로 <카프>가 해산 당한 후에는 호구지책을 위해 발을 들여 놓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잘못 들여 놓은 일도 있는 곡절 많은 운명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가 지니고 있는 한가닥의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을 귀중히 여기시고 넓으신 한품에 안아 주시였으며 광복직후에 벌써 그를 당보 <로동신문>의 전신인 정로사의 편집국장으로 내세워 활동하게 해 주시였다.
정치적생명을 안겨 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총이 너무나도 고마와 내 그때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가.
그 감격이 나로 하여금 평생 수령님을 받들어 살것을 결의 다지게 하였고 종당에는 갓 스물을 넘긴 나를 통일애국사업에 몸을 던지게 하였다.
폭압자들은 그러한 나를 감방속에 앉혀 놓고 아버지가 숙청 당했으니 당신은 의지가지할데 없는 사람이 되였다,그러니 더는 고집하지 말고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딴 길을 택하라는것이였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거짓말이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열번,백번 거듭 들으면 거짓말도 정말인것처럼 느껴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것이다.
원쑤들의 악선전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나는 정신이 혼미해 져 그만 부지불식간에 정말 아버지의 신상에 그 어떤 일이 있은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 났다.
그렇지만 그 의문이 나에게 가져다 준것은 동요가 아니라 혁명적경각성이였다.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이 나를 허물어 뜨리는 지레대로 리용되게 해서는 안된다,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 나 전향공작반의 모략가들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말대로 나의 부친이 어떻게 되였다고 하자,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결코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킬수 없다,부친에게 설사 어떤 일이 있었다 해도 그것으로 해서 나는 나의 정치적생명을 버릴수 없다,이 감옥안에서 죽어 나가든 살아 나가든 나는 여전히 김일성수령님의 전사로,조선로동당원으로 남아 있을것이다,그 이상의것을 내게서 바라지 말라...
내가 신념을 이렇게 굳힐수 있었던것은 결코 우연에서 온 일이 아니였다.
나는 네번째 감옥생활을 하기 얼마전에 평양방송을 통해 1939년 5월 조국진군길에서 있은 감격에 넘친 일과 관련한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녀대원의 회상실기를 청취한적이 있었다.
나는 압록강과 소백수물이 합쳐 지는 물목의 언덕진 기슭에 핀 진달래를 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소라고 하신 말씀과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 조국의 진달래...
비바람도 이겨 내고 눈보라도 이겨 내고 끝끝내 피여 났군요라고 하신 말씀을 회고한 회상실기내용에 접하고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그때이래 진달래꽃에 대한 나의 표상은 아버지의 시 <진달래>에서 나온 봄의 선구자이면서도 가냘픈 꽃으로가 아니라 혁명의 화염을 활활 내뿜는 꽃,혁명의 도래를 알리는 열정에 넘친 꽃으로 승화되였다.
나는 또한 그 어려운 시기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명저 <영화예술론>에 접할수 있는 행운을 맞아 흥분이 절정에 달하였다.
나는 이 로작을 탐독하면서 젊으신 장군님이시야말로 정치대가,철학대가,실력대가이시라는 확신이 들면서 마음이 더없이 든든해 졌다.
그 든든한 마음속에서 혁명의 화염을 내뿜는 진달래꽃을 감방안에서도 줄곧 피웠기에 나는 지조를 지키고 압제자들의 전향공작을 마지막까지 짓부셔 버릴수 있었던것이다.
조국에 돌아 온 나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일군들에게 남조선의 감옥에 박팔양선생의 아들이 갇혀 있는데 꼭 찾아 와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다는것을 전해 듣고 혈육들을 붙안고 울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높이 받드시고 나를 포함한 수 많은 비전향장기수동지들을 기어이 찾아 주셨으니 <결초보은>하고 머리카락을 베여 신을 삼아 올린들 내 어찌 이 은덕에 다 보답할수 있겠는가.
그저 인간의 존엄이 지켜 지는 자유로운 땅에서 육체적로쇠를 극복하고 통일성업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나가겠다는것이 나의 유일한 결의라는것을 강조하면서 이 미숙한 글을 끝내는바이다.(끝)
<한민전> 평양대표부성원들 만경대 방문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평양대표부 박광기대표와 성원들이 5일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대표부성원들은 먼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과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의 묘와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의 묘를 찾아 그분들을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만경대고향집에 들어 선 대표부성원들은 력사의 집에 소중히 보존되여 있는 사적물들을 깊은 관심속에 돌아 보았다.
이어 대표부성원들은 만경대혁명사적관을 참관하였다.(끝)
의상미술계의 박사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미술대학 리유미박사는 우리 나라 의상미술의 권위자이다.
그는 지금 이 대학 산업미술학부 의상미술강좌장으로 사업하고 있다.
공훈예술가,부교수이기도 한 그는 조선민족의상을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감정과 정서,기호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의상미술기본>,<의상미술옷도안기본>,<민족의 자랑 아름다운 조선옷>,<옷도안과 설계>,<어린이뜨개옷도안>,<녀성들의 봄가을 옷도안>을 비롯한 30여건의 도서와 참고서들을 집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사람의 몸매에 맞는 옷도안은 의상미술분야에서 주체확립의 근본요구>,<옷형태도안의 표현방법에 대한 연구>,<의상미술창조에 대한 연구> 등 수십건의 론문을 집필함으로써 고상한 조선옷을 현대민족의상으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그가 출품한 옷도안들과 도서,참고서들은 국가미술전람회,전국산업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전시회들에서 1등의 영예를 지니였다.
특히 주체89(2000)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민족의상발표회에서 그가 내놓은 130여점의 옷도안들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체37(1948)년 일본 사이다마현 기와구찌시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남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1960년 3월 조국의 품에 안긴 그는 소녀시절부터 자기의 재능을 활짝 꽃 피워 나갔다.
1962년 전국학생소년미술전람회에 그가 내놓은 조선화 <예방주사>,<꽃밭에서>를 보아 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어린 학생이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잘 형상했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는 자기의 희망과 포부대로 1964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자신의 미술적기량을 높이기 위하여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다.졸업 후 이 대학의 교원으로 된 그는 30여년동안 조선의 민족의상발 전과 후대교육사업에 재능과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그는 주체90(2001)년에 박사로 되였다.(끝)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의 위대한 정치강령/로동신문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오늘호 <로동신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신 8돐에 즈음하여 기념론설을 실었다.
론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이 강령은 투철한 민족자주정신과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구현하고 있으며 온 겨레의 포괄적인 요구와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것으로 하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통일을 바라는 조선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광폭적인 민족단합과 통일의 대강이라고 강조하였다.
론설은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과 더불어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제시해 주심으로써 겨레에게 조국통일의 3대기둥,3대헌장을 마련해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대단결과 통일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조국통일의 밝은 전망을 열어 놓으시였다고 지적하였다.
수령님께서 한생을 바치시여 마련하신 민족대단결,조국통일의 로선과 방침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빛나게 계승,완성되고 있다고 하면서 론설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 함께 우리 민족 모두가 변함없이 받들어 나가야 할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그 지위를 뚜렷이 밝혀 주시였다.
특히 수령님의 주체적인 민족대단결사상을 철저한 민족자주의 사상,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가장 폭 넓은 민족단합의 사상으로 정식화하시였으며 민족적단합의 총서인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애국애족의 대용단으로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였으며 이 선언의 기치밑에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가 조국통일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미제에 의하여 엄중한 도전에 부딪치고 있다.
조성된 정세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의 기치아래 나라와 민족의 안전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하여 하나로 굳게 뭉칠것을 요구하고 있다.
론설은 전체 조선민족이 주체의 민족대단결사상과 북남공동선언의 정신대로 굳게 뭉쳐 나감으로써 미제의 반공화국,반통일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고 가까운 앞날에 기어이 민족자주통일위업을 이룩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민주조선>은 개인필명의 론설에서 온 민족이 애국애족의 기치,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단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끝)
에네르기시민련대 미국의 정책을 비난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의 <문화방송>보도에 의하면 남조선의 시민단체인 에네르기시민련대가 2일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집회를 열고 국제적인 환경보호협정인 <교또의정서>를 파기하기로 한 미국의 정책을 규탄하였다.
단체는 미국의 이러한 행위는 자국의 기업리익만을 앞세우면서 지구환경보호라는 명분을 헌신짝처럼 버린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단체는 미국이 이 협정의 준수를 약속할 때까지 미국상품사지않기운동과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관에 항의편지보내기운동 등 항의행동을 벌려 나갈것이라고 밝혔다.(끝)
태양절기념 준비위원회들 결성/각국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태양절기념 준비위원회 결성모임이 이딸리아,로씨야,말따에서 진행되였다.
모임들에서는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딸리아 인민민주주의통일좌익 총비서 미켈레 까뿌아노,로씨야련방공산당 나호드까시위원회 1비서 웨.데.이와노브,말따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안또니 바쌀로가 선출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수카르노교육재단과 민족주의동맹에서도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였다.
인도네시아-조선친선문화교류협회 위원장인 수카르노교육재단 총재 라흐마와띠 스카르노뿌뜨리와 민주주의동맹 총서기 한더르 씽이 준비위원회 위원장들로 되였다.
준비위원회들은 다채로운 기념행사들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끝)
로작단행본 출판/네팔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미국 워싱톤타임스 기자단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3월 30일 네팔 써허요기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단행본은 머리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세계정치원로이신 김일성주석각하께서는 세계정치사에서 특출한 지위를 차지하고 계시였다.
국제무대 특히 세계정치사에 남기신 그이의 위대한 업적은 날을 따라 더욱 빛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출판보도기관들과 기자들이 그이로부터 복잡다단한 세계정치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수많이 받아 왔다.
그이께서는 기자들이 제기한 질문들에 언제나 명백한 대답을 주시였다.
출판사는 김일성주석각하의 탄생일을 맞으며 그이의 로작 <미국 워싱톤타임스 기자단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네팔어로 번역출판한다.(끝)
새 미행정부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규탄하는 결의안/영국국회 하원 외교위원회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영국국회 하원 외교위원회 제1부위원장 죠지 캘러웨이가 3월 28일 미국의 새 행정부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규탄하는 결의안 <조선정세에 관하여>를 국회공식문건으로 제출하였다.
결의안은 영국국회는 부쉬행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사이에 진행되던 대화를 중단시키고 이른바 <강경정책>을 추구하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우려를 표시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것은 의심할바없이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격화시키는 부정적후과만을 초래할것이다.
부쉬행정부의 <강경정책>의 리면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미싸일방위>체계수립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데 있는것으로밖에 달리 해석될수 없다.
우리는 대화가 조선반도에서의 평화과정을 촉진하는 유일한 방도로 된다고 인정한다.
이것은 북과 남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에 전적으로 부합될뿐아니라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화의 중요성과 의의는 지난해 조선반도에서 진행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통하여 실천적으로 과시되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국의 새 행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화를 진행할것을 요구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