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바레인사이의 외교관계설정에 관한 공동콤뮤니케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바레인국가사이의 외교관계설정에 관한 공동콤뮤니케가 23일 발표되였다.
 공동콤뮤니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바레인국가는 자주권,령토완정,내정불간섭의 원칙들에 대한 호상존중에 기초하여 두 나라사이의 친선관계를 강화하고 두 나라가 호상 관심하는 여러 분야에서의 쌍무적협조를 강화발전시키려는 념원과 두 나라사이의 관계발전에 대한 리해관계로부터 출발하여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공약을 확언하면서 외교관계에 관한 1961년 4월 18일 윈협약조항들에 부합되게 대사급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지적되여 있다.
 공동콤뮤니케는 평양과 마나마에서 발표되였다.(끝)


최태복비서가 로씨야련방공산당대표단을 만났다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인 당중앙위원회 최태복비서가 23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로씨야련방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이며 로씨야련방 국가회의 대의원인 니꼴라이 빈쥬꼬브를 단장으로 하는 로씨야련방공산당대표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석상에서 단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였어도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전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조선의 통일은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없이 자주적으로 실현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로씨야련방공산당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 굳은 지지와 련대성을 보낸다고 강조하였다.(끝)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산물/종태위 진상조사보고서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의 일단을 또다시 자료적으로 립증한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일본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서 감행된 조선인강제련행범죄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지금 진보적인류는 지난 세기에 국제법과 인륜도덕에 저촉되는 온갖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인 일본이 과거청산을 회피한채 21세기에 들어 선데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조선청장년들을 체포와 랍치,유괴 등 악랄한 방법으로 강제련행하여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이미 수많은 사료들과 피해생존자들과 목격자,가해당사자들의 증언 등에 의하여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의 전모가 여지없이 밝혀 졌으며 지금도 일제의 천인공노할 강제련행만행을 립증하는 새로운 자료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최근 일본 아이찌현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과의 련계밑에 아이찌현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사람들의 이름이 기입되여 있는 <피보험자명부>에 들어 있는 피해생존자와 그 유가족들을 새롭게 찾아냄으로써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의 일단을 또다시 자료적으로 립증한것과 관련하여 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한다.

1.일본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인피해자들에 대한 조사경위

 1992년 일본 아이찌현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은 당시의 아이찌현 한다시장이였던 다께우찌 히로시에게 과거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인<피보험자명부>를 공개할것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이전 한다시장은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조사단에 당시의 조선인아동수 등을 기입한 <학적부>,<제적부>를 제공한데 이어 한다제작소의 <후생년금(1944년까지는 로동자년금)>대상자들이 기입되여 있는 <피보험자명부>를 공개하였다.
 조사단은 한다제작소 로동자 약 2만 2,800여명의 이름이 기입된 명부를 분석종합하여 그속에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1,235명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36명의 녀성들도 포함되여 있다는것을 확증하였다.
 또한 한다시가 공개한 <공습에 의한 순직자명부>를 통하여 48명(함경남도출신 47명,함경북도출신 1명)의 조선사람들이 한다제작소에 강제련행되여 갖은 고역을 당하던 도중 미군의 공습으로 희생되였다는것을 확인하였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1999년 7월 일본 아이찌현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으로부터 조선인<피보험자명부>와 <공습에 의한 순직자명부>의 사본을 넘겨 받아 피해생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찾아 내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 <피보험자명부>에 359번,<요시오까 요꾸덴>이라는 일본이름으로 기입되여 있는 사람이 현재 함경남도 북청군에 살고 있는 최익천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으며 그를 통하여 명부에 357번,<후미야마 잉고>라는 일본이름으로 기입되여 있는 사람이 피해자 최은행이라는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또한 명부에 73번,<미야모또 찌하꾸>라는 일본이름으로 기입된 리지백의 안해 신금녀와 323번,<가네모또 호라류>라는 일본이름으로 기입된 김봉룡의 동생인 김봉인 등 피해자유가족을 찾아 내게 되였다.
 조사과정에 가장 큰 애로는 명부에 피해자들의 이름과 주소가 일본이름,광복전 주소로 표기되여 있은것이였다.

2.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서의 강제련행범죄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 대한 개괄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는 일본이 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개시하면서 기업규모를 확대하였으며 태평양전쟁기간에는 미쯔비시중공업주식회사와 견주는 비행기제작회사로 알려 졌다.
 이 회사는 1942년에 일본 아이찌현 한다시에 제작소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한다제작소에서는 주로 일본해군의 함상공격기 <덴산-b6n>과 함상정찰기 <사이운-c6b>를 조립생산하였는데 패전할 때까지 총 1,404기가 생산되여 침략전쟁에 리용되였다.
 일본의 패전 당시 한다제작소의 종업원수는 약 2만 6,000명이였다.
 일제는 1945년 1월에만도 조선의 북부에서 1,200명의 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이 군수공장에 밀어 넣고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다제작소 로무과에 근무하였던 모리따 지로는 1944년 11월 3일에 한다를 출발하여 조선으로 건너 가 <징용공>들을 모집하였다고 하면서 강제련행된 그들이 <일본전국에 있는 나까시마의 각 공장에 1,000여명씩 할당되였다.한다공장에도 1,200명이 할당되였던것이다>(<한다의 전쟁기록> 한다시발행,1995년 10월 31일)고 증언하였다.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의 경성(지금의 서울)사무소에는 한다제작소뿐아니라 오따,고이즈미,다나,하마마쯔 등 일본 전국의 여러 공장들에서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담당자들이 자주 기여 들었는데 이렇게 하여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에 끌려 간 조선사람만 하여도 6,000여명에 달하였다.
 -강제련행피해자들에 대한 야수적만행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은 징발,체포,랍치,사기 등 강제적수법에 의하여 진행되였다.
 피해자 최익천(남자,78살)의 경우에도 군사적강제수법에 의한 징발형태로 끌려 갔다.
 그는 함경남도 북청군 후창면 오평리에서 출생하였는데 가정살림이 너무도 가난하여 19살까지 소작살이를 하다가 21살에 결혼을 하였다고 하면서 <당시 일제놈들은 군대에 나갈 나이를 넘어 선 21살,22살짜리 청년들을 마구 붙잡아 갔다.일본놈들은 나에게도 바로 (특별징용)이라는 딱지를 붙여 끌고 가려고 하였다.일제의 (징용)을 피해 덕성광산,라흥광산 등지를 몇달동안 피신해 다니던 나는 1943년 11월 중순에 끝내 남대천다리에서 (징용),(징병)으로 내모는 오평리 책임자였던 일본순사놈에게 붙잡히고 말았다>고 증언하였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후창면에서만도 6명의 청장년들이 강제련행되였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일본으로 련행해 가는 과정은 참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최익천은 <우리는 일본헌병들의 호송하에 짐승들이나 실어 나르는 화물차칸에 올랐는데 구석에 변을 볼수 있는 구멍이 나있을뿐 바깥을 내다 볼수조차 없게 되여 있었다.놈들은 기차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에게 물 한모금도 주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일제는 일본 후꾸오까현 모지에 도착한 최익천을 비롯한 1,336명의 조선사람들을 간몬턴넬(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와 후꾸오까현 모지를 련결한 해저턴넬)의 위험한 렬차시운전에 동원시켰다.
 이때 렬차의 <운전사>도 <차장>도 <승객>들도 모두 조선사람들이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그야말로 말하는 짐승,소모품,노예로 여겼다.
 일제는 한다제작소에 강제련행한 조선인피해자들을 <나가네료>라는 이른바 합숙에 30명씩 조를 무어 밀어 넣고 짐승먹이보다도 못한 식사를 시켰으며 그들에게 중세기적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최익천은 <놈들은 하루에 300∼400그람되는 수수,통밀,콩이 섞인 밥덩어리를 주었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100그람도 되나마나하였다.아무리 먹어도 기별이 없는 밥그릇을 놓고도 일본말로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워야 했고 먹은 후에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했다.그리고도 우리는 하루에 1618시간동안 고역을 치르어야 하였다.놈들은 우리가 참다 못해 배 고파 일을 못하겠다고 항의하자 (주는대로 먹고 시키는 일이나 착실히 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복종하라,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해자유가족 신금녀(녀자,70살)는 <우리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때의 로동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는데 변소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변소에 가려면 감독에게 보고 해야 했고 5분을 초과하면 감독이 변소에까지 찾아 와 꾸물거린다고 발로 차고 손찌검을 하였다.남편은 죽지 않고 돌아 왔지만 페인이 되여 한생을 고통속에 살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였다.
 일제는 작업도중에 옆사람과 말을 주고 받거나 곁눈질을 하면 길이 1메터 30센치메터되는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때렸으며 조성원 30명중 한사람이라도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였을 때는 전원에게 30키로그람의 물건짝을 등에 지고 2시간 30분씩 뛰게 하거나 다리짬에 각목을 끼우고 앉힌 다음 10키로그람짜리 모래주머니를 머리우에 올려 놓는 벌을 가하였다.
 최익천 등 피해자들이 이 제작소에서 일하는 기간 일제는 저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조선사람들을 불러 내여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일제는 이 시기에 충청도에서 꽃 나이 조선녀성들도 <녀자근로 정신대>의 명목으로 끌어 갔다.
 그들 역시 비행기동체에 뼁끼칠을 하거나 잡일을 하는 등 노예로동을 강요 당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한다제작소에 끌려 가 노예로동을 강요 당하였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1945년 7월 24일 일본에 대한 미군의 폭격시에 희생되였다.일제는 당시 제작소안에 있던 방공호에 저들만 들어 가고 조선사람들이 들어 가려고 하면 발길로 차서 밖으로 내쫓았다.
 이에 대하여 최익천은 <피할 길이 없는 우리는 할수 없이 멀리에 있는 소나무숲으로 뛰여 갔다.
 이때 소이탄이 떨어 지면서 옷에 불이 달렸기 때문에 저저마다 저수지로 뛰여 들었다.그런데 저수지에도 폭탄이 떨어 져 저수지물은 조선사람들의 붉은 피로 변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해자유가족 김봉인(남자,72살)은 <우리 형은 미군 폭격시 이리 저리 피하다가 보리낟가리속에 숨었는데 그만 기총탄알을 가슴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그런데도 일본놈들은 우리 형을 치료해 주지 않아 3일만에 죽었다.형의 동료가 유골을 가져 왔는데 작은 뼈 3개와 손톱,발톱,머리칼이 전부였다.우리 아버지는 너무도 기가 막혀 몸부림치다가 3일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였다.
 이상의 증언자료를 통하여 일본에서 1944년말 혹은 1945년초에 실시된것으로 알려 져 있는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로의 조선인강제련행이 그보다 1년전인 1943년 11월경에 시작되였다는것이 확인되였을뿐아니라 충청도출신의 조선녀성들까지 <녀자근로정신대>로 끌려 가 노예로동을 강요 당하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 지게 되였다.
 또한 광복후에 일제에 의하여 나까시마비행기주식회사 한다제작소에 강제로 끌려 갔다가 사망한 조선인피해자들중 50여명의 유골을 살아 남은 100여명의 강제련행피해자들이 가지고 와서 유가족들에게 넘겨 주고 고향으로 돌아 갔다는것이 확인되였다.
 제반 사실은 조선인강제련행범죄가 일제의 군사적강제수법에 의하여 철두철미 군권과 관권의 안받침밑에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감행되였다는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3.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중대한 인권유린죄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군사적강제수법에 의한 로동력의 징발과 노예화,소멸을 목적으로 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산물이다.
 조선민족말살정책의 본질은 조선의 멸망과 국토략탈,민족멸종을 목표로 한것이다.
 과거 일제는 군사적강제수단으로 600여만명의 조선청장년들과 근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징발하여 로동노예,성노예,군노예로 만들어 생명의 법적담보가 없는 노예고역장,성폭행장,전쟁죽음터로 내몰아 수많은 사람들을 집단살륙하거나 로동능력상실자,성기능불구자로 만드는 반인륜적범죄를 범하였다.
 일제는 우리 국가와 령토,민족의 인적력량은 물론이고 민족어와 민족문화,민족정신,나아가서 성과 이름까지 깡그리 빼앗는 세계정복력사와 동화정책에서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악독한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조선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애 버리려고 하였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는 국제적 정의와 도의,국제법을 짓밟으면서 국가정책으로 공공연히 감행된 중대한 인권유린죄이다.
 중세기적 포악성과 현대적 교활성을 겸비한 일제는 조선민족말살정책에 기초하여 우리 민족의 존엄과 명예,우리 인민의 인권을 가장 잔악하게 침해하고 유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정의와 도의를 심히 파괴하고 국제법을 란폭하게 위반한 중대한 인도에 대한 죄,노예범죄,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법적시효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성문법에는 전쟁범죄나 인도에 대한 죄,노예범죄 등 기본인권과 관련한 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것이 명기되여 있다.
 따라서 일본은 전쟁법규와 국제인도법원칙에 따라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에 대한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철저히 사죄하고 보상할 국제적의무를 지니고 있다.

4.일본의 태도와 립장

 일본은 패망한지 반세기가 지나고 21세기에 들어 선 오늘까지도 온갖 모략과 수법으로 조선인강제련행범죄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반동들은 기만적인 <국민기금>놀음에 계속 매달리면서 <종군위안부>피해자들을 우롱하고 있을뿐아니라 구일본군의 <군인>,<군속>으로 끌려 갔던 몇몇 재일외국인피해자들에 대한 이른바 <위문금지급>놀음으로 저들의 강제련행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 나 보려고 발악하고 있다.
 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일본반동들이 년초부터 침략력사를 외곡하고 미화분식하는 력사교과서개정책동에 열을 올리면서 범죄적인 과거를 재현하려는 기도를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 내 놓고 있는것이다.
 오늘 강제련행피해생존자들은 70∼80살의 고령으로서 인생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청춘시절에 일본군에 의하여 받은 야수적인 노예로동의 후과로 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미전에 페인이 되였거나 장기적인 병약자들이다.
 일본에서 벌어 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일본정부가 모든 피해생존자들이 이대로 죽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일본반동들은 오산하지 말아야 한다.강제련행피해자들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고 있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혈육들과 과거에 <징병>,<징용>으로 끌려 가 인간생지옥에서 노예로동을 강요 당하고 일본침략군의 대포밥으로 내몰리웠던 피해자들,유가족들의 피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것은 전체 조선인민의 확고한 의지이다.
 이전 한다시장이 늦게 나마 과거의 조선인 <피보험자명부>를 공개하였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아직도 구일본군에 의하여 강제련행된 우리 피해자들의 명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과거문건들과 자료들이 보관되여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국회에서도 일본의 전쟁자료들을 공개하는 법률인 <일본제국정부에 관한 정보공개법>이 제출통과되였다.
 일본이 조선인강제련행진상을 비롯한 과거죄행을 철저히 조사규명하고 그 사실들을 그대로 공개하는것은 침략과 범죄력사를 청산하려는 의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척도로 된다.
 일본은 조선인강제련행진상자료를 공개한데 기초하여 그 범죄자들을 처벌하며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사죄와 보상을 시급히 하여야 한다.
 죄는 묻어 둘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일본은 21세기에도 과거범죄를 숨기면 숨길수록 2중,3중의 죄를 범하게 되며 그 죄는 후세들에게 더욱 무겁게 가해 지게 된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것이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는 앞으로도 세계 여러 나라의 진보적 단체들과 굳게 련대하여 일제의 과거범죄를 폭로하고 그 청산을 위한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려 나갈것이다.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주체90(2001)년 5월 22일
평    양

                                      (끝)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제1차총회 개막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국제무도경기위원회 제1차총회가 23일 평양에서 개막되였다.
 개막식이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개막식장에는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제1차총회>라고 쓴 글발과 위원회기발이 나붙어 있었으며 총회에 참가한 나라들의 기발이 세워 져 있었다.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위원장인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국제무도경기위원회 의장 맥 하브와 로씨야,카나다,오스트랄리아,말레이시아,미국,몽골,캄보쟈,뛰르끼예,조선 등 세계 여러 나라 대표단들과 대표들이 개막식에 참가하였다.
 또한 강능수문화상,조선무술련맹 황봉영위원장,체육지도위원회 장웅 부위원장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개막식에서는 최홍희위원장의 개막연설과 강능수문화상의 축하연설이 있었다.
 개막식에 이어 진행된 제1일회의에서는 국제무도경기위원회 규약에 대한 심의결정,위원회 지도기관성원보선 등 상정된 일련의 의정들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끝)


조중국경하천운항협조위원회 제40차회의참가 중국측대표단 도착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조중국경하천운항협조위원회 제40차회의에 참가할 전육광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측대표단이 22일 평양에 도착하였다.(끝)


외국손님들과 해외동포들이 만수대동상방문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찾아 22일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제1차 총회에 참가할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위원장인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와 여러 나라 대표단과 대표들,조중국경하천운항협조위원회 제40차회의에 참가할 중국측대표단을 비롯한 외국손님들과 해외동포들이 경모의 정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경애하는 수령님에 대한 다함 없는 경모의 마음 안고 그이의 동상에 꽃다발들을 진정하고 인사를 드리였다.(끝)


오늘도 흐르는 위인의 시간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고 있다.
 그들은 주석께서 리용하시던 렬차집무실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춘다.렬차에는 주석의 숭엄한 모습이 그대로 안겨 오는 집무탁과 의자,그이의 숨결이 뜨겁게 흐르듯이 펼쳐 져 있는 일력과 변함없이 돌아 가는 벽시계가 있다.사람들은 이것을 보며 주석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과 그리움에 젖어 든다.
 주석께서는 한평생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언제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그이께서는 렬차안에서 낮과 밤을 이어 가며 사업하시였다.
 공장과 농촌,인민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시고 늦게 렬차에 돌아 오시여 이른 새벽까지 집무를 보시였다.렬차행군을 하시면서 중요역들을 통과하실 때마다 지방 당,행정경제일군들을 부르시여 공장,기업소들의 생산실태와 농사형편을 알아 보시고 자정이 넘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군들은 하루밤이라도 숙소에 들어 가시여 편히 쉬실것을 말씀드리였다.주석께서는 일군들에게 너무 걱정 말라고,이제는 렬차에 정이 들어 자신의 집이나 다름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주석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와 외국방문의 나날에도 바로 이 렬차에서 세계의 수많은 당 및 국가령도자들과 진보적인사들을 만나시여 세계혁명과 인류의 자주위업,민족해방투쟁의 길을 밝혀 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주석께서 리용하시던 렬차는 주석의 혁명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사적물이라고 하시면서 금수산기념궁전에 전시하도록 하여 주시였다.
 며채전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으신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전시된 렬차를 깊은 감회속에 돌아 보시면서 실내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가리키시며 우리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던 시계를 잘 보존하라고 하시며 수령님의 생존시와 다름없이 시계가 돌아 가게 할데 대하여 가르쳐 주시였다.(끝)


미국은 조선의 평화와 통일의 기본장애물/조선중앙통신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조선반도에서의 민족의 화해와 단합,자주적평화통일과정이 미국 새 행정부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하여 날로 엄중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집권 첫 시기부터 <강경대응>을 고취하는 부쉬행정부내에서 련이어 터져 나오는 폭언들은 이를 뚜렷이 립증하고 있다.
 얼마전 미국대통령 부쉬는 이른바 <평화유지>를 위해 <미군이 필요하다>는 강도적궤변을 들고 나왔다.
 특히 미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문제담당 차관보로 지명된 켈리라는 자는 남조선강점미군이 그 무슨 <전쟁억제력>이라고 줴치고 국무장관 포웰은 조선반도통일이후에도 <미군을 남조선에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고아 댔다.
 이것은 남조선에 저들의 무력을 그대로 눌러 두고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가로 막으며 침략전쟁도발수단으로 계속 리용해 보려는 흉악한 속심의 로골적인 표현이다.
 미행정부의 반통일책동은 폭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번에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나면 본토로부터 4일 이내로 남조선에 배치할수 있는 새로운 미군려단을 창설한다는 내용이 담긴 <신국방정책>이라는것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미국이 남조선강점미군을 강화하여 조선의 영구분렬을 추구하는 저들의 립장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지로 남조선강점미군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훈련장 꾸리기와 무력의 현대화를 위해 10억 2,500만딸라를 탕진해 왔다.
 그런데 미제는 최근 만전쟁에서 악명을 떨쳤던 최신형직승기들을 남조선에 더 배치하려는 등 침략무력강화에 계속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통일의 주되는 방해자인 미제는 저들의 목적실현에 남조선군사당국자들도 끌어 넣고 있다.
 지난 3월과 4월에 진행되였던 <한미위기조치반훈련>과 <련합전시증원연습>은 그 일부이다.
 남조선군 무력까지 동원시킨 이 훈련들에서 미국호전분자들은 있지도 않는 <위기상황>을 가상함으로써 대결분위기를 고취하기에 급급하였다.
 한편 지난 3월 18일에는 태평양지역 미군총사령관이라는자가 당시의 남조선 <국방부장관>을 만나 <한미방위동맹>강화를 력설하였다.
 뿐아니라 미국은 남조선군의 미싸일사거리의 연장요구를 공식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선임 행정부들도 감히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남조선의 군부세력을 우리 공화국과의 대결에로 적극 부추기고 있다.
 날로 위험한 단계에로 나가고 있는 미국의 범죄적책동은 조선의 평화와 자주적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장본인이며 흉악하고 파렴치한 침략자로서의 정체를 더욱 명백히 드러내 보일뿐이다.(끝)


유엔 남조선에서의 <보안법>페지와 로조활동의 자유보장을 요구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11일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에 관한 위원회 제25차회의에서 남조선이 제출한 경제,사회,문화적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2차리행정형보고서에 대한 심의결과 및 권고문이 채택되였다.
 위원회는 문건에서 먼저 남조선이 제출한 보고서에 일련의 중요한 분야에 대한 자료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1차리행정형보고서 심의후 위원회가 제기한 권고들이 제대로 리행되지 않은데 대해 지적하였다.
 위원회는 경제,사회,문화분야에서 <보안법>이 부정적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분야들에 필요한 예산이 줄어 드는 반면에 <방위>예산이 높아 지고 있는데 대하여,가정과 직장에서 녀성들과 어린이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집 없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으며 지식인들이 <보안법>에 의한 탄압의 대상으로 되고 있는데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위원회는 권고문에서 남조선이 1차리행정형보고서심의때 받은 권고를 리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위원회는 남조선당국이 로조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어린이들에 대한 성폭행과 로동을 근절하고 철거민들과 집 아닌 <집>에서 사는 주민들의 주택문제를 풀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할데 대하여 강조하였다.(끝)


<민주로총> 등 사회단체들이 <전경련>을 규탄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의 <문화방송>에 의하면 18일 <민주로총>과 <전국녀성로동조합>이 <전경련>회관앞에서 집회를 열고 모성보호관련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전경련>을 규탄하였다.
 그들은 모성보호와 비정규직차별철페 등 로동자들에게 절박한 법과 제도개선에 대해 <전경련>이 방해하는것은 용납할수 없다고 하면서 모성보호법이 6월 <국회>에서 통과되여 7월부터 시행될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하여 투쟁할것이라고 밝혔다.(끝)


<21세기의 태양맞이모임>과 기념비건립준비위원회 결성/기네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기네조선친선 및 련대성조직들과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16일 <21세기의 태양맞이모임>과 기념비건립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기네 기술교육 및 직업양성상인 기네조선친선협회 위원장 알마미 포데 씰라가 선출되였다.
 준비위원회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지 37돐이 되는 올해 6월 19일부터 다음해 2월 16일까지의 기간에 <21세기의 태양맞이모임>과 기념비건립을 위한 준비사업을 하면서 토론회,강연회,사진전시 및 영화감상회 등 다양한 정치행사들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혁명위업의 충실한 계승자이신 김정일각하는 세련된 령도로 인류의 자주위업을 현명하게 이끌고 계시는 위대한 태양이시라고 하면서 <21세기의 태양맞이모임>과 기념비건립을 위한 준비를 잘하는것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각하를 적극 숭배하고 있는 자기들의 응당한 도리이라고 강조하였다.(끝)


기네인사와 방글라데슈단체 일본의 력사외곡책동 규탄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기네기술교육 및 직업양성상인 기네조선친선협회 위원장 알마미 포데 씰라가 14일 일본당국의 력사외곡책동을 규탄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는 담화에서 일본이 조선강점시기 감행한 범죄행위와 태평양전쟁시기 아시아인민들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사실들을 외곡하여 서술한 력사교과서들을 새로 만들어 통과시킨데 대해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일본이 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이 기간에 600여만명의 조선청장년들을 죽음의 고역장에 내몰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으며 근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만들었다는것은 엄연한 력사적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교과서들에서 이 모든 사실들을 외곡하면서 저들의 조선강점이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고 태평양전쟁이 아시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전쟁이였던것처럼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게 미화분식하여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가르쳐 주려는것은 력사교육의 신성한 사명과 리념을 어지럽히는 용납 못할 또하나의 범죄행위로 된다.
 그 누구도 력사를 외곡할수 없으며 력사를 외곡하는것은 인류에 대한 파렴치한 도전이며 우롱이다.
 우리는 일본당국이 외곡된 력사교과서들을 지체없이 시정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방글라데슈조선친선협회는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일본반동들은 중학교용력사교과서들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강점이 조선사람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었으며 <한일합병조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였다고 서술하였다.
 이것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군국주의와 해외침략사상을 주입하려는 행위이다.
 우리는 일본당국의 력사외곡책동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일본정부가 문제시되고 있는 력사교과서들을 검정에서 통과시킨 조치를 철회하고 조선과 아시아나라 인민들에게 과거의 죄악에 대해 사죄할것을 요구한다.(끝)


중국이 <야스구니진쟈>는 일본의 해외침략상징이라고 지적

 (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중국중앙인민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외교부 부부장이 17일 중국주재 일본대사를 호출하여 일본측의 <야스구니진쟈>참배문제와 관련한 중국측의 립장을 천명하였다.
 그는 <야스구니진쟈>는 일본의 해외침략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이곳에는 아직도 수급전범자들의 위패가 보관되여 있다고 말하였다.
 일본측이 <야스구니진쟈>참배문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것은 결코 일본에만 국한된 국내문제가 아니라 일본정부가 과거의 침략력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것을 검증하는 시금석으로 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최근 <야스구니진쟈>문제와 관련한 일본측의 일련의 발언들은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나라 인민들에 대한 도전으로 된다고 단죄하고 일본측은 <야스구니진쟈>참배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