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당국은 국제사회의 한결 같은 항의규탄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본이 조선과 아시아나라들에서 감행한 범죄적침략전쟁과 야수적만행,강도적행위를 심히 미화하고 외면,은페한 중학교용력사교과서들을 검정<합격>시키였다.
검정통과된 교과서는 내외의 강경한 항의에 의하여 원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한것이라고는 하나 아직도 40여곳에 조선침략의 죄악사를 외곡미화한 대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자들은 이제 더는 수정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교육에 강행도입하려고 책동하고 있다.
일본당국의 조선력사에 대한 외곡행위는 과거 일제가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범행을 합리화함으로써 군국주의자들의 전철을 밟아 또다시 재침의 길에 나서려는 침략의지의 발현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일제의 침략과 학살,략탈의 력사를 바로 쓸것을 요구하는 우리 인민과 세계의 공정한 여론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다.
이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일본당국의 력사외곡행위를 엄중시하면서 력사위조자들이 력사의 진실과 침략의 죄악사를 얼마나 파렴치하게 외곡하고 교활하게 미화,은페하였는가를 낱낱이 폭로단죄하며 력사외곡책동의 진의도를 온 세상에 고발하려고 한다.
검정통과된 력사교과서는 초기 조일관계사를 혹심하게 외곡하면서 곳곳에서 파산된지 오랜 <미마나미야께>설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마나미야께>설이란 일본이 4세기이후 수백년동안 조선의 남부지역 임나(미마나)에 <일본부(미야께)>를 설치하고 지배하였다는 주장이다.
이 설은 이미 오래전에 북남력사학자들과 일본의 량심 있는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여 완전한 날조품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미마나미야께>설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 지자 수정본에서는 교묘하게 <일본부>란 말을 <거점>으로 바꾸어 놓고 야마또정권이 <반도남부의 임나(가야)라고 하는 곳에 거점을 구축>했으며 6세기에 <임나로부터 철퇴하여 반도정책에서 실패했다>고 고쳐 놓았다.보는바와 같이 검정된 새 교과서는 문구를 바꾸었을뿐 <임나>지배설을 그대로 살리였다.
이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교과서는 4세기 당시 아직 서부일본을 통합하지도 못한 기내 야마또정권을 통일정권으로 묘사하면서 이 정권이 조선에 출병하여 남부지역을 지배한듯이 력사를 외곡하였다.
4세기에 아직 서부일본을 통일하지도 못한 한개 지방정권이 바다 건너 이국땅에 와서 신라와 백제를 굴복시키고 그곳에 식민지를 설치하였다고 하는것은 어불성설이다.더우기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4∼5세기에 야마또정권의 군사력이 조선남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한것처럼 묘사한것은 전혀 당시의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 위조행위이다.
력사적사실은 이와 정반대로 그 모든 사건들이 일본의 기비지방(오늘의 오까야마현일대)에 형성된 임나(가야),고마(고구려),구다라(백제),시라기(신라) 등 조선계통소국들과 기내 야마또정권사이에 벌어 진 일임을 보여 주고 있다.<일본서기>에 나오는 <미마나미야께>란 바로 6세기경에 기비지방에 가야(임나)소국에 설치된 야마또정권의 림시행정기관(야마또노 미야께)이였다.지난 날 일제어용사가들은 일본의 조선지배를 력사적으로 합리화하려는 목적밑에 일본에서 벌어 진 이 사건의 무대를 조선에 옮겨 놓았던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력사교과서에서 과거 식민지어용사가들에 의하여 조작된 이 허황한 <미마나미야께>설을 렴치없이 또다시 들고 나온데는 그들이 노리는 불순한 정치적목적이 있다.일본당국자들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임나>설을 계속 주입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야마또민족이 천수백년전부터 조선에 식민지를 두고 조선민족을 통치한 <우월한 민족>이며 조선민족은 일찍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은 <렬등>민족이라는것을 믿게 하려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식민주의사상,조선재침야망을 불어 넣으려 하고 있다.
이런 민족배타주의적사상은 교과서의 이 부분에서 과거 일제가 조선과 조선민족을 멸시하여 <반도>,<반도인>이라고 부르던 말마디를 그대로 골라 써가며 <반도정책>이요,<반도남부>요 한것에서도 표현되고 있다.지어 그들은 <백제나 신라가 야마또조정에 조공하였다>는 등 없는 사실도 꺼리낌없이 꾸며 냈으며 미개지였던 일본에 발전된 조선문화를 전파해 준 문명의 선도자들을 <귀화인>으로 모독하였는가 하면 지어 명백히 백제국명이 붙은 <백제관음상>마저도 일본것이라고 우겨 대고 있다.
력사교과서는 또한 일본의 조선지배를 력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일본력사의 <우수성>을 인위적으로 강조하고 그 비교,방증대상으로 조선력사를 꺼들어 대면서 조선력사는 예속의 력사이고 조선민족은 력사적으로 <속국>의 운명에 놓여 있은듯이 란폭하게 외곡하였다.
조공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중세 아시아의 큰 나라와 작은 나라들사이의 의례관계,변형된 무역관계였지 근대적의미에서의 종주국과 속국관계는 아니였다.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갖고 있었다>고 하면서 그 무슨 <중화질서>라는 말을 만들어 내여 조선이 <중국의 력대왕조에 복속>되여 있었다고 쓴것도 실은 사대외교의 형식을 본질로 본 고약한 력사위조이다.
특히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였다고 쓴것은 완전한 상식밖의 날조행위이다.
13세기 초중엽에 고려인민들은 몽골의 침략을 반대하는 근 30년간의 반침략투쟁을 전개하여 끝내 <화친>을 이룩하고 고려정권을 보존유지할수 있었다.당시 유라시아의 광활한 대륙이 몽골의 지배밑에 들어 가고 칭기스한후예들이 직접 통치하는 몽골한국들이 세워 졌지만 고려만은 자기 주권을 유지하였다.물론 일정한 기간 몽골의 다로가치들이 고려의 서북,동북지방을 통치한 일이 있었지만 총체적으로 고려는 전국토에서 자기의 주권을 확고히 행사하였으며 따라서 두 나라 관계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가 아니였다.몽골통치배들까지도 고려를 <천하에서 신하로 복종하지 않는>나라라고 말한것은 두 나라 관계의 본질을 실토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 엄연한 력사적사실을 부인하고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였다고 서술한것은 나라의 자주권을 영예롭게 지켜 싸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에 대한 참을수 없는 외곡이다.
이렇듯 일본력사교과서들에 조선력사를 수많이 꺼들면서도 조선력사의 자랑으로 되는 사실에는 전혀 눈을 감고 일본의 <우월감>을 조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것이라면 분별없이 력사를 외곡한것은 일본의 조선지배설을 력사적으로 <합리화>하여 또다시 재침의 길에 나서도록 새 세대들을 오도하려는 흉계에서 출발한것이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다.
교과서는 일본의 조선침략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지정학적론리를 끌어 들이면서 <조선반도위협>설을 들고 나왔다.
수정되기전 교과서에 <일본을 향하여 대륙으로부터 하나의 팔뚝이 돌출되여 있다.이것이 조선반도이다.조선반도가 일본의 적대적대국의 지배하에 들어 가면 일본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지>로 되기때문에 <배후지를 못 가진 섬나라 일본은 자국의 방위가 곤난하게 된다.이런 의미에서 조선반도는 끊임없이 일본에 들이대고 있는 흉기로 되지 않을수 없는 위치관계에 있다.>고 쓴것이 바로 그 한 실례로 된다.
조선을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라고 규정한데 대한 항의가 높아 지자 수정본에서는 <흉기>라는 표현을 삭제하였을뿐 조선반도가 일본의 <위협>으로 된다는 <조선위협>설의 본질적내용은 조금도 달라 지지 않았다.
<조선반도위협>설은 본질에 있어서 일본은 자체안전을 위해 반드시 조선을 정복하여 자기 지배하에 두어야만 한다는 강도적인 침략론리이며 지정학적위치가 달라 지지 않는 한 조선지배야망을 버 리지 않겠다는 로골적인 재침선언이다.
력사적인 사실은 조선이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팔뚝>으로 되여 온것이 아니라 일본이 력대로 조선을 침략하는 칼을 쥔 팔뚝이였다는것을 보여 주고 있다.
1592-1598년 <임진왜란>때 도요또미는 조선을 중국침략의 문호로,교량으로 간주했으며 악명 높은 <다나까상주서>에서도 조선을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보고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타고 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실제로 조선을 강점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발판으로 하여 만주를 침략하였고 중국대륙에로 전쟁을 확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교과서에서는 조선침략을 자체의 안전을 위한 정당방위로 묘사하면서 <정한론>이나 <강화도조약>,<한일합병> 등 강도적인 침략행위를 합리화하였다.
<정한론>은 19세기 중엽 사이고 다까모리를 우두머리로 한 사쯔마번출신의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제창된 <조선정복론>이며 그것을 국책으로 규정하고 <정한>의 길로 줄달음치게 된것은 해외침략으로 국내모순을 해결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적시초축적의 원천을 마련하려는 일본정부의 대내정책의 필연적결과이며 그 연장이였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1873년 개국권유를 거절한 조선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하여 사족들사이에 조선에 무력을 보내여 개국을 강박하자는 정한론이 대두하였다.>고 씀으로써 <정한론>이 마치도 <국교>를 맺자는 일본정부의 요구를 거절한 리조정부의 <무례>한 태도로 하여 발생한것처럼 진실을 외곡하였다.이것은 참으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의 강도적론리이다.
이런 파렴치한 수법은 <운양>호사건 서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교과서는 <운양>호침입사건을 <일본군함이 조선의 강화도에서 측량을 하는 등 시위행동을 하였기때문에 조선의 군대와 교전한 사건>,<포격 당한 사건>이라고 모호하게 쓰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 조선에 국교수립을 강박하였다.>고 사건의 전반내용과 목적을 심히 외곡,미화하였다.
알려 진바와 같이 일본군함 <운양>호는 측량하기 위하여 강화도에 기여 든것이 아니라 군사적도발을 일으켜 조선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파견된 침략의 척후병이였다.다른 나라 령해에서 측량하자면 응당 그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것이 국제관례로 되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함장 이노우에는 자기 정부로부터 사전에 군사정탐임무와 강화도공격임무를 받고 왔던것이며 바로 그렇기때문에 즉시 물러 가라는 조선측의 요구에 응할대신 물이 떨어 졌다는 구실밑에 초지진포대에까지 계속 전진하였다.이에 대하여 조선군대가 자위적조치를 취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가했으며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거나 약한 정산도와 영종진을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운양>호사건의 전 과정은 그것이 조선측의 발포를 유도하여 사건을 확대함으로써 그것을 구실로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며 <정한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계획적인 군사작전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보여 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연한 력사적사실을 숨기고 침략을 <측량 등 시위행동>으로,군사적도발과 학살만행을 <교전>으로 분식하는것은 피해자인 조선민족의 격분을 자아내는 력사외곡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런 군사적도발과 압력을 거듭하던 끝에 1876년에는 리조정부에 <강화도조약>체결을 강요해 나섰다.
일본은 이 조약으로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정치,경제,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조선을 예속시킬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였다.그러나 력사교과서는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오래동안 현안으로 되여 온 조선과의 국교가 수립되였다>고만 씀으로써 이 조약의 침략적성격과 목적을 고의적으로 숨기였다.
력사교과서는 근대적개혁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력사도 완전히 외곡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19세기 후반기에는 사회발전의 합법칙적요구에 따라 주체적력량에 의한 근대적개혁운동이 진행되였다.봉건사회의 태내에서 발생발전하고 있던 자본주의적관계를 반영하여 개화사상이 싹 터나고 개화파들이 형성되였으며 그들에 의한 부르죠아개혁운동이 벌어 졌다.
그러나 력사교과서는 이와 반대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에 그 무슨 <도움>이라도 준것처럼 외곡서술하였다.<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을 <친일파>로 규정함으로써 <갑신정변> 마치도 일본의 조종하에 진행된것처럼 만들어 놓고 실패원인도 청나라간섭에만 귀결시켰을뿐 일본의 배신행위에 대해서 외면한것은 그 한 실례로 된다.력사적사실은 어떠하였는가?
일본은 정치자금해결을 위한 개화파들의 활동을 파탄시켰으며 신식군대를 양성하려던 개화파들의 시도도 수포로 돌아 가게 하였을뿐아니라 정변당시에는 청나라간섭군이 새 정권이 자리 잡고 있던 왕궁에 침공해 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왕궁호위에 동원시켰던 일본수비대를 배신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정변이 진압 당하게 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력사교과서들에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도와 주었다고 외곡서술한 력사적사실의 일단이다.
이런 외곡행위는 갑오농민전쟁 서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은 <척양척왜>,<보국안민>의 구호밑에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고 나라의 독립과 근대화,인민의 안녕을 지향하여 궐기한 대규모적인 반봉건,반외세 농민전쟁이였다.농민군은 삼남의 거의 전 지역을 해방하고 충천한 기세로 한성(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승리는 시간문제로 되였다.그러나 이 결정적순간에 일본침략군이 봉기군을무참히 진압함으로써 일본은 여기서도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적발전을 억제한 조선민족의 철천의 원쑤로서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놓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살자로서의 죄행을 감추고 갑오농민전쟁을 >동학의 란<이라고 하면서 그의 반침략,반일적성격을 거세하고 그 의의를 종교운동에 한정시킨것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조선의 근대화운동을 가로 막은 죄행을 감싸보려는 목적에서 나온 추악한 력사위조행위이다.
일본 중학교력사교과서들은 조선을 강제병탄한 일제침략의 강도적성격을 은페하고 조선강점이 일본의 >안전<과 당시의 국제적사조로 보아 필요한 조치였던듯이 외곡서술하였으며 식민지통치의 죄악을 숨기고 그것이 조선의 근대적발전에 기여한것으로 미화하였다.
일제의 조선강점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는 특대형국가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당시 <일본정부는 한국의 병합이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고 썼으며 조선강점에 대하여 <영국,미국,로씨야 3국은...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한국국내에서는 일부 병합을 받아 들이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하였다.
<일본의 안전>을 위하여 조선강점이 <필요>했다는것은 작은 나라,약한 나라를 자기 리익의 희생물로 간주하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대국주의적,국수주의적사고방식이며 일본군국주의자들에게 고유한 <조선반도위협>설에서 출발한 망설이다.이 주장의 기저에는 다른 민족멸시사상과 야마또민족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극악한 인종주의사상이 놓여 있다.<만주의 권익 보호>를 운운하는것도 결국은 만주를 다른 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이 <보위>하여야 한다는것인데 이것은 본질에서 <내가 살아 가기 위해서는 너를 먹어야 하겠다>는 약육강식론의 로골적인 제창이다.오늘 자주시대에 <정치대국>으로 행세하면서 유엔안보리사회 상임리사국이 되겠다고 분주히 돌아 치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사상의식과 륜리도덕수준은 바로 이렇게 저렬하다.
극소수 친일매국노들이 일본의 조선강점을 지지한것을 부각시켜 강조한것도 바로 이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다.우리는 여기서 몇명의 친일매국노들에게 응원을 바라지 않으면 안되는 일본당국자들의 가련한 몰골을 보게 된다.또 영국,미국,로씨야 등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데 대하여 말한다면 로씨야는 로일전쟁에서 패하여 자기 령토까지 빼앗긴 처지에서 남의 령토가 병탄되는데 대하여 푸념할 여지가 없었으며 영국은 <영일동맹>에 의하여,미국은 <가쯔라-타프트협약>에 의하여 벙어리가 된 처지에 있었다.일본당국자들이 조선강점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끄집어 낸 력사적사실들이란 이렇듯 모두가 한결같이 터무니없는것들이다.우리 시대 인민들은 이런 강도적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을 <정치난쟁이>라고 부르는데 실로 일본군국주의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정치난쟁이들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력사교과서는 일제의 국토병탄의 진상도 악랄하게 개악하였다.
교과서에서는 <안중근이 이또 히로부미를 만주 할빈에서 암살>했기때문에 <일본은 한국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고 썼는가 하면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을 약화시키고 반일의병투쟁과 전민족적반일애국항쟁인 3.1인민봉기를 비롯한 각이한 형태의 반일투쟁을 무참히 탄압한 만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또가 처단된 요인은 밝히지 않고 그 >보복<조치로 조선을 병탄한듯이 력사를 외곡하고 수많은 반일투사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실을 감춘것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합리화하고 식민지통치가 조선인민의 큰 저항을 받음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듯 한 인상을 조성함으로써 일본의 과거죄행을 무마시키고 반성,속죄할 근거를 말살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일본당국자들의 교과서개악책동에서 가장 범죄적인것은 죄악에 찬 식민지통치를 미화하면서 인민학살과 자원략탈,강제련행과 같은 특대형범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것이다.
일제는 조선을 비법강점한후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에게 노예의 운명을 강요하고 조선에서 인적,물적자원을 무제한 략탈해 갔다.
일본륙군대장 데라우찌는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자 <조선사람은 우리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폭언을 공공연히 내던지고 그대로 실행하였다.
조선은 말그대로 하나의 감옥이였으며 인간생지옥이였다.
그러나 력사교과서는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미화하는데만 급급하였다.<한국병합후 일본은 식민지로 된 조선에서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진행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하였다>고 서술한것은 그 한 실례로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일제가 왜 조선을 강점한후 철도,관개시설 등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하였는가 하는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로 하여 조선인민이 겪은 피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력사교과서는 또한 식민지통치기간 조선인민에게 입힌 인적,물적 및 정신적피해가 얼마나 가혹하였는가 하는데 대해서도 교활한 방법으로 축소하였거나 일반적서술로 대체하였다.
력사교과서는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인민에게 강요된 징용과 징병이 일본인들이 겪던것과 같은것으로 서술하였으며 <황민화>정책과 창씨개명도 <일본식의 성명을 부르게 하였다>는 서술로 대체함으로써 그 본질과 목적을 의도적으로 숨기였다.이런 교활한 방법으로 조선인민의 피해상황을 극소화함으로써 결국 일본이 조선인 수백만을 희생시키고 600여만을 강제련행한 죄악의 진상을 교묘하게 감추려고 하였다.
일제가 조선에서 략탈해 간 희유금속들과 철광석들,쌀,목화 등 농산물들과 소 등 물질적재부는 천문학적수자에 달한다.
이와 함께 일제는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우리 인민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하여 조선의 말과 글,이름마저 완전히 없애 치우려고 하였다.
력사교과서에서 특히 엄중한것은 일본정부와 군부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감행된 <종군위안부>문제를 고의적으로 루락시킨것이다.근 20만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일본군의 범죄는 이미 력사적사실로 명백히 밝혀 졌으며 이에 대해서는 일본당국도 인정하였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규탄한바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중한 반인륜적범죄를 고의적으로 숨기여 력사의 흑막속에 덮어 버리려고 한것은 그에 대한 철면피한 책임회피이며 인륜도덕과 정의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이며 추호도 용서 못할 대범죄이다.
일본의 중세,근대의 력사는 해외침략과 략탈전쟁으로 엮어 진 피의 력사이기도 하다.
중세 왜구들은 조선과 중국의 넓은 지역에 침입하여 살인과 략탈을 일삼았으며 임진(1592)년에는 20여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의 거의 전 국토를 유린하였다.근대이후에는 청일전쟁에 이어 로일전쟁,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조선과 아시아의 광범한 지역을 강점하였다.
일본의 근대화의 완성과 자본주의발전,물질적부의 축적은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의 고혈로 이루어 진것이라고 볼수 있다.략탈과 살인이 왜구,사무라이들의 생활방식이였다면 전쟁은 그 후예들인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생존조건이였으며 잔인성과 교활성,략탈성은 그의 속성이였다.
력사교과서는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일본의 죄악에 찬 해외침략의 력사를 정당한것으로 묘사하면서 그 죄과를 극소화하였거나 외면,은페하였다.
<임진왜란>은 그 잔인성,야수성에 있어서 왜구의 침략을 방불케 한 략탈적침략전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임진전쟁을 아시아의 전 대륙을 지배하려는 ><거대한 꿈>으로,<의기왕성>해 진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장거처럼 묘사하였고 침략의 개시도 <조선에로의 출병>,<대군을 조선에 보냈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씀으로써 침략을 분식하였으며 전쟁에서 조선인민에게 입힌 잔인한 가해사실에 대해서도 <조선의 국토와 사람들의 생활이 현저히 황페화되였다>는 말로 굼때였다.
<임진왜란>이 조선인민에게 들씌운 재난과 불행은 인민생활이 령락되고 국토가 황페화된 정도가 아니다.일본 사무라이들은 조선에 침략의 발을 들여 놓은 순간부터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랍치해 갔으며 조상전래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파괴략탈하였다.
오늘도 일본 교또와 오까야마에는 조선사람의 코를 베여 가 만든 <하나쯔까>(코무덤),<미미쯔까>(귀무덤)라는 무덤이 있다.여기에는 무참히 살해된 조선사람들의 구천에 사무친 원한이 어리여 있다.
조선사람을 닥치는대로 죽이는것도 성차지 않아 베여 온 코를 가지고 <군공>을 론하였으니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일본의 야수적인 침략죄행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
일본이 근대 이후에 와서만도 청일전쟁으로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크고작은 전쟁을 련속 도발하고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으나 교과서에서는 그 진상을 외곡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면서 자기 죄과를 미화분식하기에 애 쓰고 있다.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독점하기 위하여 조선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청,로의 세력을 몰아 내고 독점적지배기반을 쌓기 위하여 도발한 침략전쟁이였으나 교과서는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며 일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인듯이 외곡서술하였으며 특히 로일전쟁은 당시 <약육강식의 가혹한 세계>속에서 <일본의 생존을 걸고> 할수 없이 진행하지 않으면 안된 <장대한 국민전쟁>이였던듯이 그 침략성을 은페하고 정당화하려고 시도하였다.그리고 로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세계를 변화시킨 일본의 승리>로 묘사하고 <세계의 억압민족들에게 독립에 대한 끝 없는 희망>과 <용기>를 안겨 준데 그 의의가 있는것처럼 사실을 전도하여 서술하였다.
태평양전쟁서술에서는 이런 파렴치성이 극도에 이르고 있다.교과서는 이 전쟁이 당시 일제의 아시아지배야망이였던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한것이라고 하면서 침략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 부르고 <대동아공영권>의 목적이 아시아 <각국의 자주독립,각국의 제휴에 의한 경제발전,인종차별의 철페>에 있은듯이 외곡하였으며 친일괴뢰들이 도꾜에 모여 발표한 <대동아회의>의 공동선언(1943.11)에 의하여 <일본의 전쟁관념이 명백해 졌다>고 하였다.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전쟁초기 일본이 련합국군을 타승함으로써 <오랜 기간 유럽,미국의 식민지지배밑에 있던 아시아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일본군의 남방진출은 아시아제국의 독립을 촉진시킨 하나의 계기로도 되였다>고 꺼리낌없이 흑백을 전도하였다.이것은 그대로 <대동아전쟁>이 백색인들의 지배로부터 황색인들을 해방하기 위한 <해방전쟁>이였다고 떠벌인 궤변의 재현이다.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전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제의 야심적인 침략전쟁이였으며 <남방진출>은 이 침략전쟁수행에 필요한 전략물자를 해결하며 교전일방인 미국과 영국의 태평양군사거점들을 격파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일본군의 남방진출>로 <독립>하였다는 나라들이란 모두가 한결같이 친일괴뢰정권이 세워 진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대동아공영권>이란 본질에 있어서 일제의 세력권이며 구식민주의자들에 의한 식민지통치체계였다.
일제는 <대동아신질서>수립의 구호밑에 아시아나라 인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현재까지 알려 진데 의하면 그 수는 중국에서 3,500만,웨ㅌ남에서 200만,인도네시아에서 200만,필리핀에서 110만,말라이에서 120만이상에 이른다.
이 끔찍한 살인범죄를 감추고 식민지재분할을 위한 침략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일제의 식민지통치권을 <공영권>으로 묘사하는것은 실로 시비전도와 허위날조에서 파렴치성의 절정이다.
침략과 정의를 전도하면서 일본의 과거 죄행을 감추거나 정당한것으로 외곡하는 력사위조행위는 조선전쟁서술에서도 로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과서는 인민군대의 자위적인 방어와 반공격을 <침공>이라고 단정하고 미제의 조선침략을 정당한것으로 묘사하면서 일본의 범죄적인 전쟁가담행위를 은페하고 일본은 <미군에 많은 물자를 공급>하였다고만 썼다.이것은 그야말로 력사외곡의 전형이다.조선에서 전쟁은 1947년부터 미제의 조정과 관여 밑에 국부전쟁형태로 38도선에서 끊임없이 벌어 졌다.미극동군사령부에 근무하였던 데이비드 콘데와 에이다대좌 등에 의하여 그 진상이 여지없이 폭로된바와 같이 38도선에서의 <작은 전쟁>이 곧 조선전쟁의 시초였다.조선전쟁은 전적으로 미국의 세계제패전략과 극동정책,리승만괴뢰정권의 <북진통일>론의 산물이였으며 이 <작은 전쟁>의 연장이고 확대였다.미제와 리승만도당이 조선전쟁을 도발하지 않을수 없었던 필연성과 직접적원인도 이미 우리 학계와 미국,일본의 량심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밝혀 진지 오래다.일본은 미국의 전략적요구에 따라 조선전쟁도발계획과 작전지도를 만들어 주었으며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미군을 적극 지원한 교전일방이다.<황군>출신장교들은 미군참모부들에서 길안내자가 되고 수많은 장교들과 사병들은 <유엔군>과 함께 지상전에 참가하였을뿐아니라 인천,원산,군산,남포 앞바다의 소해작업을 맡아 하였으며 수많은 함선과 비행기로 군수물자를 수송하여 주었다.일본의 전 령토가 미군의 거대한 출동기지,수리기지,보급기지로 되였다.때문에 일본의 전면적협조가 없었더라면 미군은 조선에서 3개월도 견디여 내지 못하였을것이라고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릿지웨이도 실토한바 있다.오늘 일본에서는 일본군의 조선전쟁참전사실이 공개된 비밀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이 엄연한 력사적사실을 외면하고 철면피하게 외곡하였다.일본당국자들은 이러한 력사외곡으로써 광복후 또다시 조선인민을 반대하여 감행한 범죄행위를 숨기려 하며 모면해 보려 하고 있다.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는 법이다.
이렇듯 교과서는 일본이 력대적으로 도발한 모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그 성격과 의의를 터무니없이 외곡전도함으로써 죄 많은 일 본력사에 분칠을 하고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여야 한다는 사상을 로골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 중학교력사교과서들의 조선관계 서술에서 나타난 력사외곡행위는 매우 엄중하다.교과서의 력사위조는 많은 경우 그것이 편찬자의 무식이나 사료에 대한 리해상 착오에서 온것이 아니라 일본당국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의적이며 의도적인 행동에 기인한것이다.그 의도적인 행동이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악을 무마,약화시키고 치욕스러운 침략죄행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기어코 회피하려는것이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침략사상으로 길 들여 해외침략에로 부추기려는것이다.이것은 력사과학의 신성한 리념과 사명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며 2중적인 범죄행위이다.
우리 공화국의 력사학자들은 력사교육의 신성한 사명을 유린하는 일본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엄중히 항의하며 검정된 력사교과서를 당장 철회하고 력사주의적원칙에 기초한 진실한 교과서를 편찬하여 후대들에게 참된 력사교육을 줄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와 함께 일본당국자들이 정치난쟁이식 사고방식을 버리고 죄 많은 과거력사에 대하여 성근하게 반성하며 조선인민에게 응당한 사죄와 보상을 할것을 견결히 요구한다.
우리는 량심 있는 일본 및 세계력사가들과 언론인들이 일본에서의 력사외곡책동과 군국주의부활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며 당면하게는 일본의 각 현의회들에서 외곡된 력사교과서 채택을 거부하도록 항의의 목소리를 계속 높여 나가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