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위원장 베네수엘라대통령에게 축전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위원장이 베네수엘라독립절에 즈음하여 5일 이 나라 대통령 우고 챠베스 프리아스에게 축전을 보내였다.
축전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 있다.
나는 베네수엘라독립절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 두 나라사이의 친선협조관계가 더욱 강화발전되리라고 믿으면서 나라의 진보와 번영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을 축원합니다.(끝)
김영남위원장 말라위대통령에게 축전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위원장이 말라위독립 37돐과 공화국선포 35돐에 즈음하여 3일 이 나라 대통령 바킬리 물루지에게 축전을 보내였다.
축전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 있다.
나는 말라위독립 37돐과 공화국선포 35돐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을 축원하면서 우리 두 나라사이의 친선관계가 더욱 강화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합니다.(끝)
양형섭부위원장 외국의 친선대표단들을 만났다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부위원장은 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국회 외교,국방,무역위원회 위원장 그라함 켈리를 단장으로 하는 뉴질랜드친선대표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여기에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최정환부위원장이 참가하였다.
석상에서 단장은 뉴질랜드정부는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이후 조선의 통일문제해결에서 전진이 이룩된데 대하여 환영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은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고야 말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뉴질랜드와 조선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할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이날 양형섭부위원장은 만수대의사당에서 부회장 심위평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국제우호련락회친선대표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여기에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최정환부위원장과 조선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왕국장이 참가하였다.
석상에서 단장은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중국공산당창건 80돐에 즈음하여 왕국장대사가 차린 경축연회에 친히 참석해 주시였으며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공고발전을 위하여 불멸의 공헌을 하고 계시는데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조선인민이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건설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끝)
최태복비서가 중국공산당친선참관단을 만났다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비서인 최태복동지는 4일 중국공산당 강서성위원회 부서기 종기황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친선참관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여기에는 관계부문 일군들과 우리 나라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가 참가하였다.
석상에서 단장은 참관단의 조선방문은 비록 짧았지만 많은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하면서 두 나라의 선대령도자들께서 마련해 주시고 꽃 피워 주신 전통적인 중조친선은 오늘 더욱더 강화발전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자기들은 복잡한 정세와 혹심한 자연재해속에서도 모든 난관을 이겨 내면서 조선인민이 거두고 있는 성과들을 자기의 성과처럼 여기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용감한 조선인민이 김정일총비서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로동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선식 사회주의건설과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계속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기 바란다고 말하였다.(끝)
최태복의장 나이제리아국회상원대표단을 만났다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최태복의장은 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국회상원 의원이며 국회상원 농업 및 농촌개발상설위원회 부위원장인 묵타르 아흐메드 모함메드 아루와를 단장으로 하는 나이제리아련방공화국 국회상원대표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여기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농업과학원 계영삼원장과 관계부문 일군들,우리 나라 주재 나이제리아련방공화국 대사 알하지 다우두 슐레이만이 참가하였다.
석상에서 단장은 나이제리아와 조선 두 나라는 공동의 리익에 맞게 친선협조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끝)
평양-유럽아시아합영회사창설계약서 조인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원예총회사와 <네데를란드 유럽-아시아집단>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남새와 화초를 재배하는 평양-유럽아시아합영회사를 창설하기 위한 계약서가 4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조인되였다.
여기에는 우리측에서 평양원예총회사 일군들을 비롯한 관계부문 일군들이,상대측에서 <네데를란드 유럽-아시아집단> 총재 양빈을 단장으로 하는 <네데를란드 유럽-아시아집단> 남새화초온실합영대표단 성원들이 참가하였다.
이날 저녁 양빈총재는 계약서조인과 관련하여 연회를 차렸다.(끝)
공화국영웅 리수복,안영애,김광철,길영조의 유해 애국렬사릉에 안치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공화국영웅들인 리수복,안영애,김광철,길영조의 유해가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1211고지 좌측 무명고지 습격전투때 생명도 귀중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을 서슴 없이 바쳐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 놓은 18살의 청년군인 리수복영웅,한순간을 살아도 오직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아버지장군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를 마음속에 그리며 맡겨 진 혁명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적동지애를 높이 발휘한 당의 참된 딸 안영애영웅,터지려는 수류탄을 한몸으로 덮어 10여명의 전사들을 구원한 90년대의 첫 군인영웅인 김광철영웅,생사를 판가리하는 위급한 순간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고 불 타는 비행기와 함께 최후를 마친 자폭용사 길영조영웅.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전 리수복,안영애,김광철,길영조영웅들은 시대가 대표적으로 내세울수 있는 영웅들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 주시였다.
공화국영웅들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는 의식이 4일 현지에서 진행되였다.(끝)
직맹일군들과 직맹원들의 회고모임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7돐 직맹일군들과 직맹원들의 회고모임 <수령님은 찬란한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4일 중앙로동자회관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중린비서와 직총중앙위원회 렴순길위원장 등 관계부문 일군들,성,중앙기관,평양시내 직맹일군들과 직맹원들이 참가하였다.
모임에서 연설한 직총중앙위원회 렴순길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일을 맞이하는 직맹일군들과 직맹원들은 20세기와 더불어 길이 빛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감회깊이 돌이켜 보고 있다고 말하였다.
경애하는 수령님은 우리 민족과 인류의 운명개척에서 위대한 전환의 새 력사를 창조하시고 자주시대의 년대기에 영원불멸할 세계사적공적을 이룩하신 전설적위인이시라고 그는 강조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과 민족,시대와 혁명앞에 쌓아 올리신 혁명업적중에서 특별히 귀중하고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공적은 혁명위업계승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여 주체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위한 결정적담보를 마련하신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조국과 인민은 영원히 김일성조선,김일성민족으로 강성부흥을 떨쳐 갈것이며 인류의 자주위업은 승리의 길을 따라 더욱 힘차게 전진해 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모임에서는 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가 랑송되였다.
녀성중창 <그리움의 대하>,녀성독창 <수령님 만고풍상 못 잊습니다>,웅변 <사향가>의 출연자들은 모임참가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 없는 그리움을 더욱 가슴 뜨겁게 간직하게 하였다.
모임은 합창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로 끝났다.(끝)
평양6월9일대성제1고등중학교 교원,학생들과 총련조선대학교 학생조국방문단성원들의 회고모임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7돐에 즈음하여 경애하는 수령님을 회고하는 평양6월9일대성제1고등중학교 교원,학생들과 오민학 을 단장으로 하는 총련조선대학교 학생조국방문단 성원들의 모임이 4일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서는 토론들이 있었다.
토론자들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대원수님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그이께서 지니신 숭고한 풍모에 대하여 가슴 뜨겁게 회고하였다.
총련조선대학교 학생조국방문단 단장 오민학,학생들인 안철수,최성수,김시경,황호용,김석규,김홍지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이역땅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하여 모든것이 부족하였던 어려운 시기에 이국땅 도처에 학교를 세우도록 하시고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끊임 없이 보내주시는 한량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데 대하여 지적하고 그들은 세상에 우리 수령님과 같으신 자애로운 어버이는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조국과 인민,시대와 력사 앞에 쌓으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업적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하면서 그이의 불멸의 업적은 만대에 길이 전해 질것이라고 말하였다.
모임에서 토론자들은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민족의 미래는 확고히 담보되여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태양의 모습으로 영생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언제나 가슴깊이 간직하고 충성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 나갈것이라고 말하였다.
모임에 앞서 참가자들은 룡남산마루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하고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끝)
조선의 언어학학회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의 진상을 폭로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어학학회는 일본당국이 죄 많은 과거력사에 대하여 미화분식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철면피하게 행동하고 있는것과 관련하여 일제가 감행한 조선어말살책동을 폭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일제가 감행한 조선어말살책동의 범죄적진상 근 한세기전에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민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하여 조선어말살책동을 가장 야수적으로 감행하였다.
일제는 <동조동근>의 허황한 론리에 기초하여 <내선일체>를 제창하였으며 이러한 강도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어말살책동을 강행적으로 추진하였다.
조선인민은 일제의 악랄한 민족어말살책동으로 하여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강요 당하였으며 조선민족의 문화발전은 막대한 피해를 당하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선 오늘도 일본당국은 지난 날 일제가 감행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하고 보상할 대신 력사교과서의 개악을 비롯하여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조선인민의 격분을 자아내는 너절하고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어학학회는 일제가 감행한 조선민족어말살책동은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악독한 범죄행위라는것을 선언하면서 그 잔인성과 악랄성을 온 세상에 폭로한다.
1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철저히 국가통치기구와 국가법령에 의하여 강행된 국가범죄행위이다.
일제는 조선어가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특징 짓는 대표적위치에 놓인다는것을 간파하고 민족성거세와 민족어말살책동을 밀접히 결부시켜 벌리였다.
당시 일제가 제창한 <황민화>,<동인화>의 구호는 조선사람을 일본사람과 꼭 같은 <1등국민>으로 만들려는것이 아니라 저들에게 순종하는 노예로 전락시키자는것이였다.
일제는 저들의 이러한 침략적목적을 위해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의 <혼연융합>을 집요하게 떠들었다.
이에 대하여 <조선총독부>학무국장이였던 다께비 깅이찌는 <나라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사상감정으로부터 언어,풍속에 이르기까지 혼연융합하는것이 필요하다.따라서 내선(일본과 조선)간에 있어서도 량자가 일체로 되여 동화되고 한가족으로 되여 융합되는것이 필요하다.즉 진정한 동화는 이러한 민족(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이 동일한 언어에 의해 결합되고 동일한 풍속관습을 가짐으로써 같은 사상감정을 품을 때>(<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 1922년판 227페지)라야 이루어 진다고 떠벌이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매일 아침 동쪽을 향해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도록 강요하였으며 언어도 일본어,머리형태도 일본식의 단발,옷색갈도 일본식의 검은색,신발도 일본의 게다짝이 좋다고 선전하였다.
그리하여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전 기간 민족성말살의 살벌한 분위기는 온 나라를 휩쓸었다.
일제는 이러한 폭압속에서 조선어말살을 위한 강력한 국가통치체계를 형성하였다.
일제가 민족어말살을 위한 국가통치체계를 특별히 형성한것은 민족어말살이 곧 민족말살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것이 강력한 국가통치체계를 떠나서는 절대로 실현될수 없다고 보았기때문이다.
일제는 조선어의 철저한 말살에로 <조선총독부>,도청,군청,면사무소,경찰서,주재소,파출소 등 행정,경찰기관은 물론 헌병까지 총 동원하였다.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는 총독통치의 첫 단계에서 <관공서와 재판소 및 기타에서 쓰는 모든 공용어를 일본어로 한다>고 공식선언하였으며 일본어는 조선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할 <국어>라고 꺼리낌없이 선포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11월부터 각 도의 지사급들이 <국어(일본어)강습상황보고>를 작성하여 총독부에 제출하는 제도를 세웠으며 1937년 3월에는 모든 관공청들에서 일체 공문서를 일본어로 작성하도록 전국의 도지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어 1938년부터 일본어강습소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할데 대한 총독부결정을 채택하고 이를 적극 강행함으로써 그해 말에 이르러 강습소는 벌써 3,660여개에 달하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을 보다 철저히 실현하기 위하여 수많은 악법들을 날조하였다.
1907년 <신문지법>을 날조하여 애국주의를 선전하고 우리 글자로 간행되던 많은 신문들의 발간을 극력 억제한 일제는 1909년에는 <출판법>을,1910년에는 <출판규칙>을 발포함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성과 민족어말살을 위한 폭압의 강도를 더욱 높이였다.
민족어말살을 위한 일제의 책동은 교육부문의 법령날조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1905년 4월 11일 일본공사 하야시는 외무상 고무라에게 <한국교육개량안>을 제기하였는데 제1장 <방침>에는 <일한의정서가 량국의 관계를 규정한후부터 한측은 당연한 결과로 일본제국의 보호국으로서의 운명을 지니게 되였다.제국정부가 이 방침을 변혁하지 않은 이상 한국교육개량의 방침도 원래 이에 기초>하는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것은 그후의 모든 교육법들이 철두철미 일제의 리익에 맞게 제정되도록 한 침략적인 법리의 기초로 되였다.
일제는 그후 4차례에 걸쳐 <조선교육령>을 날조,개악하여 민족어말살을 악착하게 추진하였다.
1911년 8월에 발포된 제1차 <조선교육령> 제5조에서는 <보통교육은 보통의 지식기능을 교수하고 특히 국민(일본국민)된 성격을 배양하며 국어(일본어)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보통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일본어보급이라는 침략적이며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
뿐만아니라 이 법령의 부속문건인 <보통학교규칙> 제7조에도 <모든 교과목에서 국어(일본어)의 사용을 정확히 하고 그 응용을 자유롭게 할것을 요한다>는 내용을 박아 넣음으로써 일본어사용을 장려하는 방법으로 조선어사용을 억제,말살하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1922년에 들어 서면서 조선어를 말살하기 위한 법적기초를 로골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1922년 2월에 개악된 제2차 <조선교육령>의 <중학교규정> 제10조에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하는것을 허락>한다는 문구를 써넣었다.
수의과목이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란 뜻으로서 결국 이것은 조선어과목을 완전히 없애버리는것이였다.
이때부터 중학교이상의 학생들은 일본어교육만을 철저히 받게 되였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조선어교육은 내선 외국어교육이 되였다.
일제는 1938년 3월 제3차 <조선교육령>의 <소학교규정> 제13조에서 <조선어는 수의과목으로 할수 있다>고 정식화함으로써 소학교학생들마저 철저히 일본어교육의 포위환에 들게 하였다.
이렇듯 일제는 <조선교육령>발포를 통하여 교육부문에서 조선어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한 법적제도를 철저히 수립하였다.
일제가 날조한 <조선교육령>들은 결코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외국어로 습득시키려는것이 아니였으며 철두철미 조선인학생들을 <모범>적인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내선일체>에 기여하려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조선총독부> 시학관이였던 다까하시는 <국어(일본어)교육이 중요한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민족의 동화는 국어의 동화로 이룩되는것인데 이는 고금의 력사에서 뚜렷이 나타난다>(<조선교육사고> 1929년판 402페지)고 하였다.
다께비 깅이찌도 <(조선교육령)에 있어서...국민의 성격을 함양하고 국어(일본어)에 익숙하게 하는 목적을 규정하고 있는데 주요하게는 교육에 의해 내선의 동화를 실현하는것외에 다른것이 아니였다>(<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 1922년판 227페지)고 공식 밝히였다.
일제가 조선어를 말살하기 위하여 모든 국가통치기구들을 동원하고 악법들을 련이어 날조한것으로 하여 조선에는 강도적론리가 지배하게 되였다.
일제에게 있어서 일본어의 사용은 <국어>의 사용이고 <합법>적이였으며 조선어의 사용은 외국어의 사용이고 <비법>적이였다.
일제의 가혹한 민족어말살책동은 조선인민의 정신문화발전에 실로 엄중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 출판물들에 실린 자료에 의하면 1933년 전 조선인구의 72프로가 문맹자였으며 일제의 문헌자료에 의하더라도 1934년 조선의 문맹자는 1,580여만명에 달하였다.
원래 조선인민은 19세기 후반기부터 근대문명의 흐름을 타고 민족글자교육을 국가운명문제와 관련되는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고 줄기찬 교육활동을 벌리였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침략과 민족말살책동으로 하여 민족어교육은 무참히 짓밟혔다.
2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전면적으로 감행된 가장 악착한 범죄행위이다.
일제는 교육,출판,방송,연극,영화,음악,어학부문은 물론 가정생활에까지 민족어말살의 마수를 뻗침으로써 그 어느 부문에서도 민족어사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일제는 민족어말살의 중요한 방도가 일본어의 보급과 그 사용의 장려에 있으며 여기에 가장 적합한 부문이 교육부문이라고 간주하고 학교들에서의 민족어말살책동을 악착하게 감행하였다.
일제는 우선 학생들을 일본민족의 정신이 꽉 들어 찬 새 세대로 만들 때 <내선일체>의 확고한 기초가 형성되며 그들이 사회의 각이한 부문에 진출할 때 <황민화>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룩된다는 민족말살의 <설계도>를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학생들은 매일 교실에 들어 설 때마다 일본왕의 초상에 절하는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국어는 일본어이다>,<우리 나라 기발은 히노마루이다>는 교재의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였다.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노래도 일제의 <일장기>에 대한 노래였다.
일제는 조선을 완전히 강점하기전부터 일본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면밀한 대책을 세웠다.
이에 대하여 일제의 문헌인 <조선교육문제관견>에는 <신교육에 있어서 국어(일본어)의 보급에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하는것은 처음부터 확정한 방침...>(1935년판 72페지)이라고 밝히였다.
일제는 1891년 6월 서울에 <일어학당>을 설치하였으며 그 운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그해 7월 25일에 일본인교원을 파견하였다.
일제의 책동으로 1899년부터 평양,원산,서울,대구,부산 등 주요도시들에 일본어학교들이 설립되였으며 1904∼1905년에는 그 수가 30개를 넘었다.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은 <을사5조약>이 강압체결된 1905년부터 한층 강화되였다.
일제는 조선력사,조선지리 과목을 페지하면서도 교과서는 일본어로 편찬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교과서보장대책도 구체적으로 세웠다.
당시 일제가 조선어를 말살하고 일본어교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자하였는가 하는것은 <한국시정년보>에 기록된 1906∼1907년분의 학교예산자료를 통해서도 알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그해 조선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의 예산은 7,273원이 전부였지만 서울일어학교예산은 9,337원,인천일어학교예산은 3,878원,일본어통역양성을 위한 <림시교원양성과>예산은 1,680원이였다.결국 일본어교육을 위한 예산이 배를 넘었다.
일제는 조선말을 하는 학생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조선인학생들은 제 민족의 말을 한마디만 하여도 갖은 욕설과 기합,벌금과 퇴학을 비롯하여 민족적모욕과 천대를 받았으며 지어 구타와 법적제재까지 강요 당하였다.
일제는 교실과 복도들에 <국어애용함>을 만들어 놓고 조선어를 사용한 학생들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 넣도록 하였으며 <국어상용>이라는 표쪽이 조선어를 사용한 학생들에게 돌아 가게 하였다.
그리고는 매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서 명단을 작성하여 조선어를 사용한 학생들을 심히 모욕하였다.
국민학교,사립학교의 3,4학년에는 조선의 옛이야기를 일본어로 말하는 시간이 정해 져 있었으며 일본어로 번지지 못하는 학생들은 갖은 멸시를 당하였다.
일제의 악착한 만행은 다음의 기록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1921년 4월 수원군을 중심으로 활동한 학생단체 <구국민단>을 공판할 때 재판에 나선 박순남이 조선어로 답변하였다고 하여 판사는 발언을 중지시키고 듣지 않았으며 구타하였다.(<동아일보> 1921년 6월 4일)
-1925년 3월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이 조선어를 한마디만 하여도 벌금을 1전씩 꼭꼭 받아 내였다.(<동아일보> 1925년 5월 10일)
-1929년 4월 전라남도 령암류학생회가 글자보급반을 설치하고 동무리 낭남학원 강당에서 군중 100여명을 모아 놓고 열심히 배워주었는데 형사들이 몸을 수색하며 강제로 해산시켰다.(<조선일보> 1929년 8월 18일)
일제는 조선어말살책동에 방해로 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법적제재도 서슴지 않았다.1928년 5월 일제경찰은 조선어교수를 요구하여 동맹휴학을 단행한 함흥고등보통학교 학생 100여명을 체포구금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15명은 재판에 넘기였다.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문학예술,출판보도분야에서도 악착하게 벌어 졌다.
일제는 1942년부터 종래의 <조선문인협회>를 <조선문인보국회>로 개칭하고 여기에 망라시킨 200여명의 성원들에게 <국어작품>을 쓰라고 강요하였으며 기관지 <국민문학>도 일본어로 발간하도록 철저히 통제하였다.
그리고 <조선연극문화협회>로 하여금 <국어연극운동>을 벌리도록 강박하였으며 1943년이후 연극에서 1막이상을 무조건 일본말로 공연하도록 강요하였다.
일제는 1941년부터 레코드제작에서 조선가요의 한개절이상은 일본어로 된것을 제작하도록 하였으며 1942년에 <조선영화제작회사>를 만든 다음 <국어영화>의 제작과 영화배우들의 <국어발성>을 강요하였다.
또한 <라지오국어>시간을 설정하고 일본어보급을 진행하였으며 라지오 제2방송에서 일본어방송비률을 계통적으로 높였다.
일제는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어를 전파시키는데서 출판물의 역할을 중시하고 1910년 한해에만도 255종의 출판물들을 페간시켰으며 <매일신보>에 매주 2회씩 <국어교실>란을 설정하였고 <황민일보>라는 일본어보급을 전문하는 신문까지 따로 발간하였다.
조선어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은 조선어연구분야에도 뻗치였다.
조선어연구가 저들의 민족어말살책동에 큰 방해로,위험행위로 된다고 여긴 일제는 <조선어학회>성원들을 항시적으로 감시하였다.그러던 1942년 10월 그들의 조선어연구와 보급이 반일애국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것을 구실로 일제는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하고 그들을 집단적으로 체포하여 10여명을 재판하고 감옥에 가두어 넣었다.
일제의 악착한 만행으로 하여 2명의 학회성원들은 감옥에서 무참히 희생되였으며 5명은 조국광복의 날에야 석방되였다.
일제는 어용학자들까지 동원하여 조선어말살책동을 감행하였다.
1911년에 <조선총독부>령으로 철자법규정을 조작하여 일본어표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고 조선어표기에 혼란을 일으킨 일제는 그것이 항의에 부딪치자 1921년,1930년에 2차,3차로 개정하였다.
뿐만아니라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민족적특성이 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완성하자 그의 사용을 각방으로 방해하였다.
제는 <일한량국어동계론>,<조선방언학시고>등의 <론문>들을 통하여 비과학적이며 허황한 자료렬거와 론리로 조선어와 일본어의 <동계론>을 설교하였다.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가정생활에까지 미치여 <국어상용운동>을 벌리는데 이르렀다.
일제는 1942년부터 <내선일체는 국어상용으로부터>,<교실국어에서부터 생활국어에로>,<국어생활을 철저히 하자> 등의 구호를 제창하였으며 <전 관민국어상용>의 철저한 실현에 모를 박았다.
<조선총독부>와 파쑈조직인 <국민총력조선련맹>은 1942년부터 전국 3,000여개의 국민학교에 일본어강습회를 설치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함으로써 민족어말살의 조밀한 그물망을 형성하였다.
같은 해 5월 <국민총력조선련맹>은 조선어를 철저히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는것을 저들이 벌리는 <국민총력운동>의 중심과업으로 정하였다.
일제는 <국민총력조선련맹>의 산하조직인 <애국반>을 발동하여 조선말을 버리고 일본어를 적극 사용하는 <국민가정운동>과 <일일일어운동>을 모든 가정들에서 벌리도록 강요하였다.
일제의 통치기관들은 집집의 대문에 <국어애용>,<국어상용>이라는 글을 써붙이도록 하였고 <국어가정>,<국어애용의 집>이라는 패쪽을 붙여 표창하는 제도를 세웠다.
일제가 조선어를 사용하면 상급학교입학과 관리취직,차표판매와 보잘것없는 식량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에 대한 <배급>마저도 허용하지 않은것은 이미 그것을 직접 체험한 수많은 산 증인들에 의해 론의할 여지없이 증명되였다.
지난 시기 세계적으로 영국,프랑스,벨지끄,뽀르뚜갈,네데를란드,이딸리아 등 적지 않은 제국주의,식민주의자들이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나라들을 강점하고 저들의 언어를 공용어로 선포하였지만 일제처럼 민족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구타,체포,재판,징역과 같이 야수적인 방법으로 탄압하지는 못하였다.
3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 말살하는데 이른 가장 잔인한 범죄행위이다.
사람의 성과 이름은 언어의 한 부분이며 사회력사적 및 민족적특성이 반영된 정신적유산이다.
따라서 성과 이름문제는 민족성과 민족어를 떼여 놓고 론할수 없으며 그의 말살은 민족어의 말살,민족의 말살을 의미한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자기의 고유한 성과 이름을 지녀 왔다.
혈통에 따라 친족관계를 나타내는 조선사람의 성에는 민족의 력사적전통과 집안의 가풍과 관련된 정신적특성이 깃들어 있으며 이름에는 부모들의 지향과 기대,고상하고 아름다운 어휘적의미와 느낌이 반영되여 있다.
때문에 조선민족은 자기의 성과 이름을 고유한 민족성과 자랑스러운 전통이 깃든 귀중한 정신적유산으로 여겨 왔으며 조선어의 아름다운 말소리와 풍부한 어휘적의미,정연한 문법적수법에 기초하여 이름 짓기의 민족적전통을 고수하여 왔다.
이렇듯 가문의 성과 이름자 돌림을 조금도 어길수 없는 절대적인 전통으로 여겨 온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성과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라고 강요한것은 너무도 가혹한 정신적타격이였으며 상상밖의 민족적치욕이였다.
그러나 일제는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말살하는 <창씨개명운동>을 강행하였다.
일제는 1937년 4월 <사법법규개정조사위원회>를 조작하고 <창씨개명>과 관련한 모의를 벌렸으며 1939년 6월에 진행한 중추원회의에서 <창씨개명>을 시급히 다그칠 대책을 토의하였다.
일제는 이 회의에서 일제의 대륙침략에서 <중대한 사명을 지닌 조선>이 일제와 <내선일체>가 되자면 <창씨제도의 급속한 실현>이 중요하며 따라서 <씨계출서>를 늘이고 <씨제도실시>선전을 대대적으로 벌릴 계책을 꾸미였다.
이러한 단계를 걸친 다음 일제는 1939년 11월 10일 <개정조선민사령>의 총독부훈령 제19호에서 <조선의 호주(법적대리인이 있을 때에는 법적대리인)는 본령시행후 6개월이내로 새로 씨를 정하여 그것을 부윤 또는 읍,면장에게 제출할것을 요함>이라는 전대미문의 강도적요구를 제기하였다.
이리하여 일제는 저들의 범죄적인 <창씨개명운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법적기초를 구축하였으며 이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탄압할 통치체계를 세워 놓았다.
원래 일제는 오래전부터 <창씨개명>이 <내선일체>의 실현에서 큰 <전진>으로 된다고 간주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조선어말살을 선행시키지 않고서는 실현될수 없다는것을 간파하였다.
이러한 일제에게 있어서 1939년은 <창씨개명>의 강도적요구를 제기할수 있는 적합한 시기였다.
일제는 1938년에 이르러 교육부문을 비롯하여 사회생활의 전반분야에서 민족어말살책동이 크게 <전진>하였으며 가정들에서까지 일본어<상용>이 실현되기 시작할 정도로 사회적조건이 성숙되였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일제는 1938년,1939년의 전환적고비를 계기로 또하나의 민족징표인 성과 이름을 말살하기 위한 민족살륙전에 진입하였다.
일제는 <창씨개명>과 관련한 <법령>을 발포한 후 폭압의 쇠사슬을 바싹 조이였다.
<조선총독부>로부터 도청,군청,면사무소,경찰서,주재소,학교에 이르는 광범한 통치기구들과 각종 친일단체들은 <창씨개명>의 철저한 시행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성과 이름을 일본의 성과 이름으로 바꾸도록 강요하고 위협하였으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비국민>,<불온한 사람>으로 몰아 박해하고 <징용>과 <보국대>의 첫째 가는 선발대상으로 삼았다.
경찰서,주재소,면사무소에서는 <창씨개명>한 사람의 명단만을 호적에 기입하였으며 그에 따라 심한 차별을 두었다.
특히 일제는 <창씨개명>과 관련한 <개정조선민사령> 제3항에서 <앞항의 규정에 의하여 계출하지 않을 때에는 본령시행시의 호주의 성을 씨로 인정함>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제정된 기간내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고쳐 놓을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으며 실지 수많은 사람들의 성과 이름을 협잡의 방법으로 위조하였다.
일제의 통치기관들에서는 모든 집들의 대문에 <창씨개명>정도를 알수 있게 문패를 써붙이도록 하였으며 조선식의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애당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지어 출생신고조차 받아 주지 않았다.
일제는 <창씨개명>의 <합리성>을 교활하게 설교하였으며 수속절차를 규정함에 있어서도 간교하게 책동하였다.
일제는 <창씨개명운동>의 진척정도에 따라 <앞선 지역>,<뒤떨어 진 지역>으로 가르고 <창씨개명>한 사람들에게는 <특혜>를 보장하는것처럼 하였으며 지어 <신라,백제,고구려 사람들의 성이 일본사람들과 같>았다고 거짓선전까지 하였다.
한편 조선총독 미나미는 <본령의 개정은 반도민중에게 내지인(일본인)식 성씨창시를 강압하는 성질이 아니라 내지인식 성씨를 사용할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을뿐이다>고 하여 마치도 저들이 <창씨개명>을 강요하지 않고 조선사람들의 자의에 맡긴것처럼 지껄이였다.
일제는 <창씨개명>을 위한 수속절차는 간단히 만들어 놓았지만 일단 <창씨개명>을 한 후 조선식의 성명제로 되돌아 갈수 없게 하였다.
일제는 1939년 12월 <창씨변경세칙>을 발표하여 성씨를 다시 고치려는 사람은 본적지나 거주지의 재판소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인정될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성씨를 다시 고치려고 재판소까지 찾아 다녔댔자 그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였으며 또한 실지로 일제가 일본식의 이름을 조선식으로 바꾸는것을 허락한 례는 전혀 없었다.
이렇듯 일제의 악착하고 지독한 책동으로 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본의아니게 일본식의 성과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김>가의 성은 <가네,가네가와,가네다>와 같은 일본성으로 바뀌고 <김성근>은 <가네가와 세이꼰>으로,<리계섭>은 <가끼무라 게이쇼>로불리우는 희세의 비극이 민족적울분과 고통속에 빚어 졌다.
일제의 책동으로 <리창호,리정호,리성호>이던 형제들중 셋째의 이름이 하루 아침에 <가끼무라 세이꼬>로 되여 버림으로써 이미 세상을 떠난 형들은 조선사람이 되고 살아 있는 셋째는 일본사람이 되고 말았다.
공부하는 자식을 퇴학시키겠다는 위협을 받고 <창씨개명>을 한 아버지가 조상에게 진 <죄>를 벗을 길 없어 돌을 안고 우물에 빠져 죽은것도 일제가 빚어 낸 참혹한 재난의 한 토막이다.
일제의 이러한 민족말살행위는 조선인민에게 강요된 가장 잔인하고 참혹한 정신적고문이였으며 극악한 범죄였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과거 일제가 조선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외곡,은페,합리화하려고 온갖 잔꾀를 부리고 있다.
1982년 일본문부부당국은 력사교과서들을 검정하면서 <현대사회>,<일본사>교과서에 서술된 <조선에서는 일본어교육이 철저히 진행되고 (창씨개명)이 강제로 진행되는 등 민족성을 부정하는 (황민화)정책이 실시되였다>는 부분을 <일본어교육,(창씨개명)이 민족성부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였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 서술>하라고 지시하였다.
일본정부는 력사외곡에 대한 내외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을 외면하고 1985년에 사용할 교과서들에 대한 검정지시에서 또다시 <일본어교육,(창씨개명)이 민족성부정 그 자체를 목적한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서술하라>고 하였다.
이전 일본수상이였던 호소가와는 1993년 11월 초 남조선 경주에서 당시 남조선당국자와 회담하면서 지난 시기 일제가 조선사람들에게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을 강제로 시켰다>,<교육의 기회를 빼앗았다> 등의 몇마디 말로 과거 일제가 저지른 죄악을 덮어 버리려고 하였다.
최근에도 일본당국은 내외의 한결 같은 항의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력사적사실들을 심히 외곡,미화분식,삭제한 중학교용력사교과서들을 검정에서 통과시켰으며 그것을 교육에 강행도입하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
그러나 력사는 외곡한다고 하여 절대로 달라지지 않으며 부정한다고 없어 지는것이 아니다.
일본은 성근한 사죄와 보상으로 차례 질 정치도덕적리익과 책임회피로 겪게 될 상상 못할 후과에 대하여 리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가 조선민족에게 강요한 불행과 고통을 천추만대를 두고 잊지 않을것이며 피 맺힌 원한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 내고야 말것이다.
조선의 언어학자들은 일본정부가 지난 날 조선에서 감행한 일제의 만행에 대하여 정식으로 사죄하고 보상할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어학학회
주체90(2001)년 7월 4일
평 양
(끝)
꾸바인민과의 련대성월간에 즈음하여 사진전시회 및 영화감상회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꾸바인민과의 련대성월간에 즈음하여 대외문화련락위원회와 조선꾸바단결위원회의 공동명의로 4일 평양방직공장에서 사진전시회 및 영화감상회가 있었다.
여기에는 조선주재 꾸바공화국 림시대리대사 비올레따 구드리쥐 꿀싸끄와 대사관 성원들이 초대되였다.
대외문화련락위원회 홍선옥부위원장 등 관계부문 일군들과 이 공장 종업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꾸바인민과의 련대성월간개막과 관련한 연설들이 있은 다음 참가자들은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책동속에서도 굴함 없이 나라의 자주권과 사회주의전취물을 굳건히 수호하고 있는 꾸바인민의 투쟁모습을 소개하는 사진들을 돌아 보았으며 우리 나라 예술영화 <복무의 길>을 감상하였다.
이에 앞서 림시대리대사와 대사관성원들은 공장에 깃들어 있는 백두산3대장군의 현지지도사적에 대한 해설을 들은 다음 체 게바라염색종합직장을 돌아 보았다.(끝)
꾸바군사대표단 체류소식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꾸바혁명무력성 부상 겸 총참모장인 알바로 로뻬스 미에라상장을 단장으로 하는 꾸바공화국 군사대표단이 4일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만경대고향집을 찾은 손님들은 이 력사의 집에 깃들어 있는 불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적물들을 주의 깊게 돌아 보았다.
만경대 옛집방문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은 다음 손님들은 만경봉의 혁명사적들을 돌아 보았다.
또한 이날 그들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화환을 진정하였다.
한편 이날 대표단은 조선인민군 부대와 구분대들을 방문하였다.(끝)
일본 이노끼사무소 회장일행 귀국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일본 이노끼사무소 회장 이노끼 간지일행이 5일 귀국하였다.
비행장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부위원장이 일행을 전송하였다.(끝)
열혈시인 조기천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기천(1913-1951)은 조선이 낳은 열혈의 시재였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시적재능이 영특하여 린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안고 이국살이를 강요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는 자기 재능을 꽃 피울수 없었다.나라가 광복(1945.8.15)된 다음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소원을 성취할수 있었다.
그는 귀국후 새 조국건설에 떨쳐 나선 인민들의 모습과 약동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본격적인 시창작에 들어 갔다.
특히 타향의 항간에서도 수없이 전해 지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전설적영웅사를 산 현실로 받아 안게 된 그의 격동은 매우 컸다.
주석에 대한 그의 끓어 넘치는 흠모와 충성의 열정은 수령을 노래한 조선의 첫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낳았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의 장엄한 기상과 천만산악을 주름 잡으시며 령활무쌍한 전법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전률케 한 김일성주석의 위대성을 격조높이 구가한 서사시 <백두산>에는 열혈의 시인 조기천의 모습이 그대로 비껴 있다.
40년대후반기에 일어 나는 력사적인 변혁과 인민의 행복을 노래한 서정시 <그네>,<흰 바위에 앉아서>와 서정서사시 <땅의 노래>도 그러하다.
<조선은 싸운다>,<불타는 거리에서>,<나의 고지> 등은 그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하면서 창작하여 전체 인민군군인들을 전쟁승리에로 고무추동하는데 이바지한 작품들이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구국항쟁을 형상한 련시 <항쟁의 려수>도 그가 썼다.
그는 주체40(1951)년에 미군의 폭격에 희생되였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그를 못 잊어 자주 회고하시면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거듭 평가해 주시였다.
김정일령도자의 의리깊은 동지적사랑으로 하여 혁명시인 조기천과 그의 작품들은 반세기가 흘러 간 오늘도 인민들의 마음속에 간직되여 있다.(끝)
김정일총비서의 선군혁명령도업적을 빛내일데 대한 사설 발표/민주조선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민주조선> 5일부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선군혁명령도업적을 만대에 빛내이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하였다.
사설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는 독창적인 선군혁명령도로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21세기의 가장 로련한 정치원로이시라는데 대하여 쓰고 있다.
사설은 선행리론과 경험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총대중시,군사중시사상을 더욱 심화발전시키시여 선군을 정치리념,혁명로선으로 굳히시고 하나의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신것은 탁월한 사상리론가이시고 정치의 원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인류정치사에 쌓아 올리신 최상의 공적으로,력사에 길이 빛날 세계사적업적으로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이께서 독창적인 선군혁명로선을 우리 시대 혁명의 영원한 전략적로선으로,사회주의건설의 만능의 보검으로 틀어 쥐시고 그것을 빛나게 구현하신데 언급하면서 사설은 김정일동지의 선군혁명령도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켜 나갈수 있게 하는 탁월한 령도이라고 지적하였다.
력사상 류례 없는 독특한 선군혁명령도로 우리 인민을 승리와 영광에로 이끌어 나가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며 현 시대의 가장 걸출한 정치가이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시고 살며 혁명하는것은 조선인민의 크나큰 영예이고 행복이며 자랑이라고 사설은 지적하였다.
사설은 김정일동지께서 이룩하신 선군혁명령도업적을 만대에 빛내여 나가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갈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며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켜 나가야 한다는것이 사설에 밝혀 져 있다.
사설은 총대로 개척된 조선혁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려는것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확고부동한 의지이고 혁명적립장이라고 강조하였다.(끝)
김일성주석 서거 7돐에 즈음하여 상무위원회 확대회의/<한민전> 공보발표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에 의하면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중앙위원회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서거 7돐에 즈음하여 상무위원회 확대회의가 진행된것과 관련한 공보를 6월 30일에 발표하였다.
공보는 <한민전>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가 6월 30일 서울에서 소집된데 대하여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7주년에 제한 행사조직에 대하여>의 의제가 토의되였다.
회의에서는 다가오는 7월 8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7주년이 되는 잊을수 없는 날이라고 언급하고 <한민전>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에게 있어서 지난 7년간은 얼마나 위대하신 만고절세의 위인을 민족의 령수로 모셔 왔는가를 다시금 페부로 절감하며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슴 불 태워 온 경모의 나날이였다고 지적하였다.
회의에서는 20세기가 낸은 가장 걸출한 사상리론가이시고 20세기의 준엄한 폭풍을 헤치시며 백승의 위훈을 창조하신 령도의 거장이시며 만민을 매혹시키는 특출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20세기 혁명의 대성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해 가슴 뜨겁게 회고하였다.
회의에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주체위업의 승리적전진과 함께 더욱 찬연히 빛나고 있으며 수령님의 혁명력사는 세기에 세기를 이어 변함없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회의에서는 이남의 각계 민중속에서 7월 8일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 따라 수령님의 필생의 념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한 열기가 더 한층 높아 가고 있는데 대해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다.
1.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7주년을 맞으며 7월 1일부터 15일까지를 회고행사기간으로 할것이다.
2.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7주년을 맞으며 <한민전>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할것이다.
3.회고행사기간에 <한민전>각급 조직들과 애국운동단체들에서 자체실정에 걸맞게 회고모임,강연회,연구토론회,록화물시청,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들을 벌릴것이다.
4.회고행사기간에 <구국의 소리>방송과 <구국전선>인터네트를 비롯한 출판보도물들에서 특집을 조직하여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흠모 열기를 더욱 고조시켜 나갈것이다.(끝)
김일성주석회고위원회 인도네시아에서 결성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김일성주석회고위원회 결성모임이 6월 30일 인도네시아 수카르노교육재단에서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교육재단 총재 라흐마와띠 수카르노뿌뜨리와 인도네시아-조선친선문화교류협회 성원들,붕카르노종합대학 교직원들이 참가하였다.
모임에서는 수카르노교육재단 총재가 회고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였다.
회고위원회는 1일부터 8일까지를 회고기간으로 설정하고 이 기간에 영화감상회,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끝)
나이제리아 주체사상연구전국위원회 결성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나이제리아 주체사상연구전국위원회 결성모임이 6월 21일 아부쟈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는 나이제리아 인민민주당 전국조직비서와 여러 주체사상연구조직 책임자들과 성원들이 참가하였다.
모임에서는 전국위원회 위원장으로 나이제리아 아부쟈종합대학 지리학강좌장 엠.엠.알하싼이 선출되였다.(끝)
가이아나에서 뷸레찐 특간호 발행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일성각하회고 가이아나위원회에서 6월 26일 <김일성주석의 존함은 주체사상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다>라는 제목의 뷸레찐특간호를 발행하였다.
뷸레찐은 주체사상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력사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주는 불멸의 사상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주체사상이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는것은 이 사상이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사람중심의 혁명사상이기때문이다.
주체사상의 영원불멸성은 또한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철저히 옹호하는 참다운 애국애족의 사상이라는데 있다.
오늘 세계적범위에서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날을 따라 늘어 나고 있으며 주체사상연구보급사업이 정연한 체계를 가지고 활발히 벌어 지고 있다.
특히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은 다음해에 평양에서 진행되는 주체사상에 관한 세계대회준비사업을 활발히 벌리고 있다.
김일성주석의 존함은 주체사상과 더불어 21세기에도 영원히 인류력사에 찬연히 빛날것이다.(끝)
가이아나에서 뷸레찐 발행/조선인민과의 국제적련대성월간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인민과의 국제적련대성월간에 즈음하여 6월 25일 김일성동지주체사상연구 가이아나전국위원회,조선통일지지 가이아나위원회,가이아나조선친선협회가 공동으로 <조선전쟁의 도발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뷸레찐을 발행하였다.
뷸레찐은 국제사회에서는 조선전쟁의 도발자가 누구인가 하는것이 론의의 초점으로 되고 있다고 하면서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것을 론하는것은 전쟁도발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세력에 의해 당시 그 진상이 오도되였고 지금도 오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나 진실은 감출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새벽,남조선은 불의에 북조선에 대한 전면공격을 개시하였다.
평양은 이에 대해 즉시 침공을 중지하라고 서울에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단호한 반공격으로 대답하겠다고 경고하였다.그러나 남조선은 전쟁의 불길을 계속 확대하였다.그러므로 북조선은 지체없이 반공격에로 넘어 갔다.
뷸레찐은 이것은 엄연한 력사적사실이며 미국력사가도 자기의 저서 <아메리카현대사>에서 그것을 확증하였다고 썼다.
그러면서 뷸레찐은 이로부터 남조선이 전쟁도발자이라는 답이 나온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그러면 남조선이 제스스로 그런 <용단>을 내렸겠는가.
전쟁이 일어 나기 며칠전 당시 서울주재 미군사고문단 단장은 남조선의 리승만<대통령>에게 <우리가 왜 6월 25일을 택하게 되는가.
25일은 일요일이다.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있다.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다시말하면 우리가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명백히 알수 있는것처럼 전쟁개시날자도 미국이 정하였다.
뷸레찐은 미국당국이 전쟁개시 23시간전에 남조선의 인천항에서 수백명의 미국인 부녀자들을 노르웨이선박으로 철수시킨 사실을 까밝히면서 미국이 전쟁을 계획적으로 준비한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뷸레찐은 또한 전쟁이 일어 나기 한주일전에 미국대통령특사 덜레스가 남조선에 가서 남조선의 군고위급장성들과 참모들을 거느리고 38선까지 나가 전쟁준비상태를 최종검열하고 북침작전계획을 검토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면 미국의 진의도는 무엇인가.미국은 남조선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고는 전쟁도발의 책임을 북조선에 들씌워 <침략자를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저들이 직접 개입하여 전 조선을 강점하고 아시아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하였다.
덜레스는 조선을 아시아라는 <고기덩이>를 잘라 내는 <단검>에 비유하였다.그 <단검>을 거머쥐고 중국과 이전쏘련,동남아시아를 평정하고 세계제패를 실현해 보려던것이 바로 미국의 본심이 였다.
그래서 미국이 반세기전에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던것이다.
미국은 조선전쟁도발자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 날수 없다.(끝)
벌가리아와 핀란드에서 련대성집회 진행
(평양 7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에 즈음하여 벌가리아의 쏘피아시,핀란드의 오울루에서 6월 11일과 15일에 련대성집회가 진행되였다.
벌가리아조선친선협회 위원장 게오르기 쓰또야노브는 집회에서 한 연설에서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 후 조선반도에서 일어 난 긍정적인 평화과정에 대하여 언급하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미행정부의 로골적인 간섭책동으로 하여 선언리행에서는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그 무엇으로써도 조선의 통일을 가로 막을수 없다.
조선의 북남수뇌분들이 엄숙히 선언하였고 북과 남,해외의 전체 조선민족과 세계가 열렬히 환영한 북남공동선언은 반드시 리행됨으로써 조선은 가까운 앞날에 통일될것이다.
핀란드공산당 오울루지부 위원장 베이꼬 노우씨아이넨은 연설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북남관계발전을 주도해 나가시는데 대해 높이 칭송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갈라 진 조국을 자주적으로,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와 련대성을 보낸다고 지적하였다.
벌가리아에서 진행된 집회에서는 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며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 지지를 표시하는 성명이 채택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