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백두산장군의 성스러운 천만리 추억을 안고 뜻 깊은 력사의 한 지점에 섰다.
유정한 솔숲의 싱그러운 바람이 옷자락 스치고 훈련의 쉴참에 병사들이 부르는 씩씩한 군가소리가 철벽의 진지 넘어 저 멀리 조국의 푸른 하늘로 끝없이 울려 가는 초소,
여기가 바로 우리 장군님께서 그리도 애착 깊이 외우시고 정들어 잊지 못해 하시는 다박솔중대이다.
다박솔초소,언제부터 너의 이 유정한 이름이 우리의 귀에 익혀 지고 우리의 입에 자주 오르게 되였으며 무엇으로 하여 너의 이 자그마한 언덕길이 우리 장군님의 심중에 그리운 다박솔,못 잊을 다박솔,고마운 다박솔로 그렇듯 뿌리깊이 자리 잡게 되였던가.
선군혁명의 영광스러운 천만리로정을 돌이켜 보시면서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추억 깊은 말씀이 숭엄하게 메아리쳐 온다.
<나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군사를 중시하고 총대를 강화하였으며 1995년 설날에 다박솔중대를 현지지도하는것으로부터 선군정치를 시작하였습니다.>
다박솔바로 그때문이였다.
위대한 선군혁명의 신호총성을 울린 뜻 깊은 시작길로 하여 너는 조국이 알고 인민이 알고 세계가 아는 크나큰 시대의 이름,백두령장의 피 더운 추억속에 살아 숨 쉬는 높고 높은 력사의 산정이 되였다.
오늘에 와서 보면 사변은 너무도 조용히,너무도 소박한 걸음으로 이루어 졌다.
그 나날에 우린 다 몰랐다.
5천년 민족사에 가장 비통한 설날이였던 그 아침 어찌하여 장군님께서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병사들이 있는 여기 다박솔초소를 찾아 주시였는지 장군님께 설인사를 드린 병사들도 몰랐고 그 화폭을 신문과 텔레비죤에서 보는 인민들도 몰랐으며 수령님 서거후 첫 혁명활동의 시작인 이날의 충격보도를 듣고 전전긍긍하는 세계도 몰랐다.
오직 한분 장군님께서만이 알고 계셨다.
그이께서만이 이 길이 새로운 하나의 혁명단계,새로운 정치시대의 서막을 여는 거대한 사변임을 꿰뚫어 보시고 그 어떤 요란한 연설이나 엄숙한 선언이 없이 이 중대하고도 운명적인 순간을 만들어 놓으시였다.
1995년 1월 1일,우리는 력사의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얼마나 가슴 저리는 아픔이였던가.
애통한 울음소리와 뒤섞여 울리는 아이들의 설맞이 공연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허벼내는 섣달 그믐밤의 여운이 처절히 남아 있던 그 시간에,만수대언덕에 올라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수령님곁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덧쌓여 지던 그 시간에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서 <피눈물>이라는 세 글자에 불 타는 애국의 의지를 담아 력사적인 친필서한을 쓰셨던 우리 장군님.
피눈물,누가 이런 말을 했던가.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피와 인간의 가장 강렬한 진정인 눈물의 무게를 대신할 언어는 없으리라.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가장 진실한 말,가장 뜨거운 말,가장 순결한 말인 <피눈물>.
수령님을 잃은 아픔과 인민에게 하고 싶은 심장의 말을 이 세글자에 담아 피력하시고 찾으신 길,그 길이 바로 다박솔길이였다.
피눈물!
다박솔은 이 비장한 형상으로 온다.
수령님 없이 단신으로 찾으신 다박솔,병사들은 북 받치는 비통함을 누르며 <만세>를 터쳤고 애 써 웃으시며 답례하시는 장군님의 가슴속에도 이름할수 없는 뜨거운것이 고패쳤다.
아,그래서 병사들이 드리는 축하의 꽃다발을 받으시는 이날의 장군님 사진은 눈가는 젖어 있고 입은 웃으시는 참으로 눈물겨운 모습으로 찍혀 진것 아니던가.
너 말없이 서 있는 다박솔아 이야기하라.
너 정갈하게 뻗어 간 푸른 초소길이여 말하라.
온 나라에 수령님의 마지막 신년사의 육성이 울리던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장군님께서 여기 다박솔 언덕에 서계신 그 사연이 무엇이였고 다박솔 너머 만경대고향집과 만경대갈림길쪽을 말없이 바라보시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 계신 장군님의 깊은 심중이 무엇이였던가.
만경대를 떠나 백두산에서 시작된 수령님의 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리라!
피눈물을 안고 이 언덕에 서신 장군님의 심장은 이것으로 세차게 고동쳤으리라.
다박솔은 푸르게만 보이지 않는다.
온 민족이 영영 쓰러져 버릴것 같은 그 절망적인 슬픔의 바다를 헤치고 비장하고도 용감무쌍히 솟아 오른 조선의 첫 이름,조선의 첫 얼굴이였던 이 언덕은 말그대로 피눈물이 물든 붉은 다박솔이였다.
위대한것의 탄생은 그만큼 진통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추억은 그렇게 온다.
묻노니 력사여,우리 정녕 흘릴 눈물을 흘렸던가,우리 일어 날수 있는것을 일어 났던가.
지금에 와서 보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 진 력사처럼 생각되는 때도 있다.그러나 세월의 망각이 아무리 어쩔수 없는것이라해도 우리 장군님께서 쓰러진 인민을 부둥켜 안으시고 일생일대의 대용단을 내리셔야 했던 운명의 95년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세계적판도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제국주의미치광이들의 압살공세가 절정에 달하고 있던 때에 민족의 어버이를 잃었다.여기에 참혹한 자연재해와 경제난,식량난까지 겹쳐 나라는 사실상 위기의 최후계선에 서게 되였다.
수령님의 영생은 어떻게 지켜 드리고 주체위업은 어떻게 계승해 나가며 이 천층만층의 시련의 장막을 뚫고 백두산민족의 장래운명은 어떻게 열어 나가야 하는가.
아마도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이 나날처럼 조국과 혁명의 운명을 두고 그렇게 뼈 저리게 모대겨 본적이 없고 그렇게 많이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처한 형편에 눈이 휘둥그래져 장군님께서 하루빨리 공장을 찾으시여 로동계급부터 일으켜 주셨으면 하는 소신을 피력한 편지를 당중앙위원회앞으로 보내여 왔다.제국주의 책략가들의 음모에 추종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정책변화를 점잖게 건의하거나 지어 강박하는 정치가들도 있었다.
온 세계가 숨을 죽이고 조선을 지켜 보고 있던 그때 장군님께서 제일 많이 생각하신것이 만경대갈림길이였다.
조국을 광복하신 그해 20년만에 찾는 고향을 지척에 두시고 이 갈림길을 지나 강선으로 달리신 수령님,아직 당도 없고 국가도 없던 그때,아직 인민들앞에 자신의 존함을 공개하지 않으시고 개선연설도 하지 않으신 그때 우리 수령님께서 부디 강선부터 찾으신 그 류다른 사연은 무엇이였던가.그것은 총대를 잡고 빼앗겼던 나라를 기어이 찾았으니 이제는 마치를 들고 우리의 손,우리의 힘으로 하루빨리 새 조국을 일떠세워야 했기때문이였다.
그렇다면 오늘 이 <갈림길>을 지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과연 어디인가.
어버이수령님께 붉은 기폭을 덮어 드리시는 그 가슴 에이는 마지막밤에도,수령님과 영결하는 100리 연도우에서 곡성을 터치며 몸부림치는 인민들의 처절한 정상을 눈물에 젖어 바라보시면서도 그리고 추모식장에서 통절하게 울리던 조포소리를 들이시면서도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만경대갈림길을 생각하시며 이런 말 없는 심장의 문답을 수없이 나누시였다.
그렇게 내리신 결심이 바로 다박솔길이였다.
그렇다.그것은 수령님의 말씀,백두산의 웨침이였다.
혁명에서는 령도자의 선택이 중요하다.
개인의 선택은 한 인생의 운명을 좌우하지만 수령의 선택은 한 민족,나아가서 세계의 흥망을 결정한다.
인류의 기나긴 정치사에는 <어제는 빠르고 래일은 늦으며 오늘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 인민적인 혁명폭동을 일으킨 탁월한 정치가도 있었고 지금은 <무쇠와 피가 요구된다>며 폭력적인 <철혈>정치로 거대한 제국을 만든 정치가도 있었으며 국난의 시기에 적대국에 굴종하여 국가의 존엄을 일신의 안락과 바꿈으로써 후날 인민의 심판대에 오른 비참한 정치가도 있었다.
다박솔길,말이 쉽지 간단한 걸음이 아니였다.
보통의 상식으로 볼 때 우리에게는 두길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겹쌓이는 재난을 참고 견디다가 쓰러지고 마는가 아니면 렬강들과 타협하여 경제구원의 길을 여는가 하는수밖에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경제가 망하면 국가도 망한다>는 미국식론리에 추종하여 적들은 물론 벗들까지도 조선은 어차피 경제중시의 길을 택할것이라고 장담했으며 서방세계에서는 <북조선붕괴설>과 함께 최선의 희망으로서 <북조선개방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당시 형편에서 경제에 매달리는것은 목전의 리익을 얻는 대가로 제국주의두뇌진들이 매우 로회하고 치밀하게 짜놓은 보이지 않는 함정,사회주의전복음모에 스스로 말려 드는 자멸의 길이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때에 벌써 사태의 본질을 명철하게 꿰뚫어 보시고 무작정 앉아 버티는 절망의 선택도 아니고 적들의 경제봉쇄의 제물이 되는 길도 아닌 장군님식의 새로운 길,선군혁명의 길을 택하시였다.
제멋대로 재잘거리는 수다쟁이궤변가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고 온갖 음모가들이 아연실색해 졌다.
보통사람은 세상에 있는것을 말하지만 위대한 천재는 없는것을 만들어 낸다.
참으로 천재적인 전략가이시였다.
<다박솔충격>은 세계를 진감시켰다.
제국주의가 살판치는 오늘의 지구에 유일하게 정의를 대표하고 믿음직하게 수호할수 있는 위대한 힘의 체현자 백두산호랑이가 포효를 터쳤다.
장군님께서는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는것보다 몇천몇만단수 더 내다보는 세계전략의 명줄과 근본열쇠를 령활하게 틀어 쥐시였다.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야 하는 시대,아무리 옳아도 힘이 약하면 주권국가도 마구 폭탄세례를 받아야 하고 나라를 위해 싸움에 나섰던 국가수반도 재판장의 피고석에 앉아야 하는 오늘 장군님의 다박솔길은 온 지구를 흔들어 깨운 희망의 불길이였다.
자기 민족을 비굴하게 만드는 정치가 가장 나쁜 정치라고 하였다.
옷은 누구나 입혀 줄수 있지만 존엄은 누구나 줄수 없다.
쌀이냐,총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결단코 총대를 잡은 장군,우리는 여기서 정치가이기전에 수령이시고 애국자이시고 인간이신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혁명세계를 가슴 뜨겁게 절감한다.
력사는 오래동안 많은 경우 힘의 정치를 제국주의독점물로 여겨 왔다.
시대는 달라 졌다.인류는 처음으로 진정한 힘의 체현자,정의의 맹장을 맞이하게 되였다.
다박솔길은 말그대로 21세기 위대한 힘의 선택,정의의 힘의 분화구였다.그것은 백두산바람으로 이 지구의 흙먼지바람을 쳐갈기며 따웅-소리와 함께 솟구쳐 오른 세계의 <맹호출림>이였다.
적들은 장군님의 이날의 현지시찰보도에 대하여 요란하게 떠들며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전연에서 60마일 떨어 진 미싸일부대를 방문하였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결코 오보가 아니였다.
그렇다.그것은 철덩이미싸일 몇만몇억개보다 위력한 <정치미싸일>,백두산자주화바람을 안은 <선군혁명미싸일>이 지구에 날아올랐음을 통감한 응당한 공포였다.그것은 제국주의머리우에 불벼락을 내리는 인류의 위대한 정의의 수호자 백두산천출명장의 출현을 예감한 통쾌한 아우성이였다.
세계는 진짜장군을 보았다.
오만한 제국주의자들에게 공포와 죽음을 줄 무서운 백두산전략가를 보게 되였으며 21세기 이 지구의 가장 힘 있는 주인공을 보게 되였다.
다박솔,우리 이제 이 이름을 단순한 지명으로 외울수 없다.
1995년 1월 1일,우리 이제 이날을 평범한 날의 하루로 생각할수 없다.
다박솔은 선군시대의 진정한 고향으로,95년 1월 1일 선군정치의 탄생일,선군혁명절로 력사에 기록되게 되였다.
백두산장군의 선군혁명결사전이 시작되였다.
다박솔길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로운 혁명의 폭풍을 불러 백두산에 들어 가신것과 같은 비장하고 격렬한 영웅적장거였다.
여기에 산악을 맹렬히 들부시는 눈보라의 울부짖음도 없고 장엄하게 설레이는 천고의 밀림도 없다.
그러나 백두산눈보라 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 빨찌산전구에 선것만 같다.
고요한 다박솔이 아니라 폭풍치는 다박솔이다.
첫 무장대오의 탄생으로 장백의 산발을 뒤흔들며 광복대전의 출전북을 울렸던 32년의 안도의 수림이 여기에 보이고 빨찌산행장을 치고 백두산에 들어와 눈보라혈전만리길에 결단코 오르시던 항일혁명의 김대장의 모습도 여기서 다시 본다.
나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도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최고사령관이 될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다박솔초소에서 돌아 오신 저녁 인민군지휘성원들앞에서 하시였던 장군님의 이 엄숙한 말씀은 초소에 두고 온 병사들에 대한 류다른 애정이나 그리움만이 아니였다.
아,얼마나 심장이 뜨겁게 불 타오르시였으면 이런 비상한 각오를 품으시였으랴.
그것은 가장 성스러운 위업의 새로운 출전을 위하여 자신의 심장에 내린 폭풍신호,전투명령이였다.
다박솔,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수도 평양의 당중앙이 아니라 멀고 험한 천리방선 전선길로 장군님의 주소가 달라 졌으며 그때부터 우리가 매일같이 뵈와 온 장군님의 모습은 위장망을 친 최전방지휘소나 바람 세찬 고지우에 서계시는 전선사령관의 모습이였다.바로 그때부터 우리 생활에는 <전선길>이라는 새로운 시대어가 생겨 나고 장군님의 혁명활동은 집무실이나 회의장이 아니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빨찌산식의 강행군현지지도로 시대를 진감시켰다.말그대로 백두산전장을 달리는 빨찌산장군의 영웅기상였다.
바로 그래서였다.
그래서 장군은 다박솔언덕을 내려 그리도 자주 백두산을 찾으신것이 아니였던가.백두산에 올라 때로는 붉게 타오르는 해돋이도 보시고 령하 40도씨의 눈보라 10리길을 걸어 보기도 하시고 때로는 빨찌산의 탄피가 묻힌 밀림의 옛 전구들을 밟아 보기도 하시면서 전선길에서 백두산으로,백두산에서 다시 전선길로 이렇게 수십만리를 이어 가신것이 아니였던가.
그렇다.다박솔은 이땅에 혁명의 우뢰가 울고 눈보라가 폭풍치는 빨찌산전구,백두산밀림을 펼쳐 놓았다.장군의 신호총성에 따라 천만의 군대와 인민이 선군혁명 총 진군결사전에 진입했으며 전선도 후방도,종심도 익측도,온 조국땅이 하나의 선군혁명전선이 되였다.
근 7년을 그렇게 싸웠고 수십만리가 그렇게 이어 졌다.
다박솔은 그 푸른 머리를 높이 들어 시대와 력사앞에 소리쳐 웨친다.
선군은 단순한 정치가 아니였다.
그것은 완전한 하나의 전쟁,하나의 혁명이였다.
처음에는 전선시찰보도가 자주 나오고 그에 이어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 배우는 사회적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으며 그 앙양된 분위기속에서 선군정치라는 새로운 정식화가 나오고 오늘은 그것이 선군혁명이라는 말로 그 의미가 비상히 커졌다.
선군은 제2의 조선혁명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렇다,혁명이였다.
그것은 제국주의를 사상과 함께 힘의 정치로 제압하고 인류의 자주화를 실현하는 세계사적인 대격전이였다.그것은 인간도 사회도,당도 국가도 혁명강군의 사상과 정신,투쟁기풍과 일본새로 일신하는 새로운 한 시대의 개척이였고 백두산민족다운 존엄과 배짱으로 사회주의 건설로부터 강성대국건설에로 시대를 변혁하는 민족사적대업이였다.
혁명에는 필연코 용감무쌍한 제1기수,선구자들이 있어야 하며 새 시대 개척에는 언제나 력사의 주인공들이 있다.
<인터나쇼날>의 노래 부르며 자본의 아성에로 육박해 가던 시대에는 마치를 잡은 로동계급이 가장 힘있는 주력군이였다.그 누가 말했듯이 맑스는 로동자를 일으켜 세워 수자보다 더 정연히 종대를 편성하고 그를 이끌었다.
로자간의 모순이 폭발하던 계급투쟁의 시대로부터 나라와 민족들의 자주적운명개척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시대로 력사의 흐림이 바뀌여 진 오늘 진정한 혁명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되여야 하는가.
이에 대한 세계사적대답이 바로 우리 장군님의 선군후로의 총대혁명관이다.
정의는 오직 힘으로만이 지킬수 있으며 사회주의의 성새인 조선은 마땅히 자주강국이 되여야 한다는 대륙적인 경륜을 펼치신 장군님께서는 이 위업의 믿음직한 담당자로서 총대를 잡은 인민군대를 내세우시였다.
선군의 뿌리는 주체사상이다.
오늘의 정의는 주체이며 그것을 실현할 최대의 힘,최대의 무기,최대의 전략은 바로 선군이다.
선군혁명로선은 21세기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 더하기 선군혁명로선,이것은 오늘의 위대한 김정일동지혁명사상으로 온 세계에 강력한 충격을 주고 있다.
력사의 다박솔길은 이렇게 열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거창한 혁명대강을 구상하신데 토대하여 인민군대를 주체위업의 기둥군으로 하는 새로운 전략구도를 편성하시고 오늘의 백두산길인 다박솔길에 오르시였다.
여기에 선군시작길의 깊은 사연을 파헤쳐 보이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온 나라가 슬픔에 울던 7월의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령전에서 오열을 터치며 호상을 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건군절에 하신 육성록음을 듣도록 류다른 조치를 취해 주시였다.
비장한 추도곡을 울리며 민족의 어버이와 영결하는 마당에서 장군님께서 왜 부디 수령님의 육성을 듣도록 해주시였는지 인민군지위성원들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였다.이날도 붉은기에 싸여 계시는 수령님앞에 서시여 쏟아지는 비분의 눈물을 가까스로 억제하시며 마음속깊이 필승의 신념을 굳게 다지신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나는 지금까지 수령님께 의거하여 모든 사업을 해왔다,정말 수령님을 잃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허전하다,그러나 나에게는 군대가 있다,나는 이제부터 군대를 믿고 군대에 의거하여 모든 일을 해나갈 결심이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령전에서 피눈물의 무게로 다진 이 결심을 안고 찾으신것이 다박솔길이였다.
결국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찾아 다박솔초소에 가시였다.그 잊지 못할 설아침 다박솔병사들과의 눈물겨운 상봉은 바로 수령님과의 상봉이였다.
수령님을 잃은 우리 장군님의 마음의 공백을 메울수 있는것은 오직 군대였다.
빨찌산 김대장의 불멸의 존함이 새겨진 <백두산>총을 손에 잡은 군대,나를 받들었듯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라는 수령님의 유훈을 피로 새긴 군대가 바로 우리 인민군대이다.
혁명투쟁에서는 전사에게만이 아니라 수령에게도 믿고 의지할 마음의 기둥이 있다.
오늘날 장군님의 마음의 기둥은 인민군대이다.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어제날 수령님이 마음의 기둥이였던것처럼 오늘은 인민군대가 마음의 기둥이 되였다고 말할수 있다.군대는 수령님을 대신할만큼 귀중한 제1의 동지,가장 믿음직한 전우였다.
오늘에 와서 보면 백두산눈보라가 폭풍친 선군혁명의 피어린 일곱성상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수령님과 함께 계셨다.괴로와도,슬퍼도 수령님과 함께 말 없는 심장의 말을 나누시였고 생사결단의 사지판을 헤칠 때도 수령님과 함께 어깨 겯고 헤치시였으며 고난의 무거운 짐도,가슴 벅찬 승리의 희열도 수령님과 함께 나누시였다.우리는 그 수령님이 바로 인민군대였다고 말한다.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세워 주신 장군님의 선군혁명관,다박솔길의 시대적 높이가 여기에 있다.
장군님께서는 모든것을 다 내다보시고 모든것을 다 각오하시였다.
허리띠를 조이고 선군길에 나서는것이 남의 집 울타리밑에 사랑하는 혈육을 놓고 혁명,혁명을 부르짖으며 백두산으로 들어 가던 항일전만큼 모질고 가혹한 혁명이라는것을 아시였다.한해후에는 식량난이 들이닥치고 또 한해후에는 거리와 마을에 불빛이 꺼지고 또 한해후에는 패배주의자,동요분자,변절자도 나올수 있다는것도 다 내다보시였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피눈물 안고 다박솔에서 시작한 이 길 힘들어도 가리라,쓰러져도 가리라,승리하는 그날까지 돌아 보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웨치시며 선군길에 오르시였고 폭풍을 맞받아 해연마냥 돌진해야 하는 격렬한 싸움에 바로 자신처럼 믿을수 있는 인민군대와 어깨 겯고 나서시였다.
그렇다.장군님께서는 군대를 수령님처럼 믿고 오늘의 백두산길인 선군혁명결사전에 나서시였다.
장군님과 인민군대의 이 운명적인 결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다.
장군님께 있어 군대는 생의 태를 묻고 자란 고향이고 요람이며 세상에 나서 처음 본 조국,첫 인연을 맺은 동지이며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유일하게 운명을 함께 할수 있고 완전무결하게 믿을수 있는 변할수 없는 마음의 기둥,절대적인 지지자이다.
장군님은 할아버님도 총을 잡은 반일애국투사이시고 두분의 부모님도 빨찌산장군이신 위대한 군인가정의 3대피줄을 이으시여 백두산전구에서 삶의 고고성을 터치시였다.
어리신 몸에 유격대복차림으로 빨찌산대원들과 함께 군함을 타고 조국에 개선하셨고 당년 10살때에는 포성이 울려 오는 최고사령부에서 수령님으로부터 만경대와 백두산혁명가문의 3대가 이어 가는 권총을 유산으로 물려 받으신 장군님,주체위업의 계승의 대를 굳건히 이어 준 잊지 못할 삼지연의 새벽길도 빨찌산뿌리,빨찌산군력으로 마련되였다.
그이께서는 력사적인 2월 19일의 온 사회주체사상화강령도 군부를 곁에 끼고 선포하시고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운 80년대의 번영기도 군대의 힘으로 안아 오시였다.
수령님과 장군님과 군대는 백두산과 더불어 한피를 나누고 력사에 등장한 하나의 생명체였다.
장군님의 고향도 백두산이고 우리 군대의 고향도 백두산이다.장군은 자신의 태줄기,자신의 살붙이와 같은 군대를 떠나 살수 없고 군대 또한 자기의 피와 목숨,승리와 영광의 전부인 장군을 떠나 존재할수 없다.
백두산3대장군의 위대한 산아인 조선인민군은 수령과 운명의 피줄기를 잇고 수령의 용맹으로 다스려 진 이 세계의 유일한 정예군,영광스러운 김일성군,김정일군이다.
피는 숨길수 없다.장군님께서 장차 조선이 어느 길로 나갈것인가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병사들을 찾아 다박솔길로 가신것은 달리는 될수 없는,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장군님의 길,백두산의 론리였다.
다박솔,너는 안을수록 위대하고 성스럽구나,너는 결코 이 땅에 한점으로 찍혀 진 언덕만이 아니다.
백두산장군과 백두산군대가 혼연일체의 무진장한 힘을 폭발하며 지구의 머리우에 선군혁명의 총대진리를 뢰성처럼 울린 너는 혁명의 최절정,세계의 상상봉이다.
그래서 장군님은 다박솔을 잊지 못하신다.
그래서 인민은 다박솔을 사랑한다.
위대한 력사의 기적을 보고 있다.
다박솔,얼마나 준엄한 격전의 포성이 너와 함께 울렸고 또한 얼마나 거대한 사변과 가슴 벅찬 승리들이 너와 함께 왔던가.
기적의 다박솔,행운의 다박솔이다.
운명의 이 언덕을 내려 승리의 오늘까지 이 나라의 어디에나 피 붉은 폭풍의 선군전역을 헌헌히 누벼 오며 근 7년이 흘러 갔다.
7년은 짧았다.
그러나 력사의 순간과 같은 이 나날에 장군님께서는 70년,700년을 두고도 이룰수 없는 극적인 변혁들을 안아 오시였다.
지난 9월 멀리 전선길에서 돌아 오시는 길로 몸소 시범문답식학습경연에 참석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젊은 세대들이 연단에 나와 선군정치의 생활력에 대하여 열정에 넘쳐 대답하는 모습을 류다른 감회속에 바라보시였다.
너무도 범상한 이날의 이야기가 장군님의 심중에 얼마나 세찬 파동을 일으켰던지 그이께서는 깊은 밤 일군들에게 우리가 힘들게 전선길을 달려 온 보람이 있다.젊은 세대들이 선군정치에 대하여 흥분에 넘쳐 대답하는것을 보고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나는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이제는 우리가 인민들에게 선군정치의 진리성에 대하여 웅변으로 말해 줄 때가 됐다.우리는 크게 이겼다라고 격정어린 어조로 발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오늘의 승리를 얼마나 가슴 저리게 바라셨으면,인민의 지지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평범한 새 세대들의 말에 그처림 커다란 감흥을 받으셨으랴.
그렇다.
우리는 빈 배낭을 메고 이 언덕에 서지 않았다.
<우리는 맹세한다>는 피눈물의 노래를 부르며 장군님따라 여기에 첫 자욱을 내디딘 우리가 오늘은 <강성부흥아리랑>노래를 부르면서 <고난의 행군>을 추억하게 되였다.
모든것의 가치와 의의는 겪어 보아야 알수 있다.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였다.
우리는 다박솔에서 시작한 장군님의 선군길이 그처림 살을 에이고 뼈를 깎고 자욱자욱 피땀을 고여야 갈수 있는 길인줄 다 몰랐다.
근 7년 세월 말그대로 빨찌산을 하시며 전선에서 전선에로 낮에 밤을 이어 달리신 장군님의 수십만리전선길,어디 상상이나 할수 있는 길인가.
육체만 부시면 갈수 있는 길도 아니였다.
전선은 멀고 공장은 가까왔으며 총대보다 쌀이 급했던 그 세월,재난 당한 조국의 숨죽은 공장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민들의 정상을 매일같이 보시면서 이길을 가시자니 오죽했으랴.그러나 겪은 고생은 쓰리고 아파도 오늘의 승리는 얼마나 달고 큰가.
이런 크나큰 승리를 안아 오시자고 장군님께서 그리도 모진 고생을 다 겪으신것이 아니랴 하는 생각이 가슴을 두드리는 이 시각 우리는 이 위대한 천만리의 첫 걸음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 본다.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훌륭한 선택을 하였으며 우리는 얼마나 강의한 의지로 얼마나 위대한 승리를 안아 왔는가 하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앞에 최대의 경의를 드릴수 있게 되였다.수령님의 전사,제자답게 수령님의 영생을 가장 빛나게 지켜드린 공산주의 도덕의 최고체현자,승리자로서 시대앞에 서게 되였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과의 피어린 대결전에서 붉은기를 지켜 내고 사회주의 운명을 수호한 포성 없는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서 인류앞에 서게 되였다.
상상도 못했던 사변들을 체험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의 세계사적승리와 더불어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보고 있다.
다박솔길은 주체혁명위업의 새 시대를 안아 온 오늘의 <ㅌ.ㄷ>길이였다.
1926년의 <ㅌ.ㄷ>길은 위대한 주체사상의 창시와 영광스러운 자주시대의 탄생을 안아 왔다면 1995년의 다박솔길은 주체사상에 선군로선을 더한 력사의 새 시대,선군혁명시대를 펼쳐 주었다.
수령님을 따라 온 주체의 천만리가 장군님을 따르는 선군혁명 천만리로 시대의 높이가 달라졌다.
로동계급의 혁명정신보다 한 단수 높은 새로운 시대의 말-혁명적군인정신이 나오고 온 사회의 로동계급화로부터 혁명강군화에로 시대의 요구가 높아 졌다.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지난 천리마시대,로동계급의 시대에는 강선이 시대정신의 고향이였다면 장군님께서 펼쳐 주신 선군시대에는 다박솔과 같은 제1의 선군진지가 시대정신의 분화구로,발단으로 되였다.강선의 <쇠물철학>이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사상정신적불꽃이였다면 오늘은 <다박솔총대철학>이 시대를 선도하는 삶과 투쟁의 좌표가 되였다.
지난날의 로동가정으로부터 군인가정으로 가정혁명화의 척도가 달라 졌으며 로동계급의 문화가 도시로 흘러들어가는것으로 부터 인민군대의 문화가 사회로 흘러드는 새로운 현실이 펼쳐 지고 인민군대의 노래가 온 나라를 분발시키는 군가정치의 새 화폭이 펼쳐 지고 있다.
장군님시대의 새로운 조선말인 <선군>은 오늘날 지경을 넘어 벗들이 동경하고 배우며 교훈을 찾는 세계의 언어로 울리고 있다.
선군력에 부딪쳐 55년 분렬의 장벽에 금이 가고 선군의 초고압배짱에 눌리워 렬강들의 <평양행>이 앞을 다투어 서둘러 진 <2000년충격>이 지구를 뒤흔들었다.
다박솔길은 세계에로 쳤다.조국땅을 누벼간 장군님의 전선길이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여 5만 5천리 대장정으로 이어 지는 제1의 국제사변이 터졌다.
사회주의 수호대전에서 승리한 세계적인 전승명장의 개선원정길과 같은 이 격동적인 장정과 함께 인류가 그처럼 고대하던 장군님의 세계진출이 이루어 졌다.
장군과 세계의 상봉,여기에는 크나큰 력사적울림이 있다.
바로 선군의 궤도우에서 세계는 장군을 맞이했고 장군은 세계를 안으셨다.
자주화냐 <세계화>냐.
다박솔은 이에 대한 무게 있는,결정적인 완전무결한 대답이였다.
참으로 장군은 세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 놓으시였다.
력사를 따라 온것이 아니라 력사를 창조하며 세계를 이끌어 왔다.다박솔은 행복을 속삭인다.
유정한 너의 이름은 백두산민족의 만대의 혈통을 이어 주고 김정일조선의 창창한 미래를 열어 준 행운의 다박솔,광명의 다박솔이다.
백두의 천출명장의 선군해발이 여기서부터 빛발치고 총대에 뿌리를 둔 조선의 장군혈통이 이 푸른 언덕과 더불어 굳건히 이어 지고 있음을 조국이여 긍지높이 노래하라.
다박솔을 잊지 말자.
이것은 우리 장군님의 뜨거운 심장의 호소,선군시대의 긍지 높은 목소리이다.
얼마전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 천만리력사를 생각하면 자주 다박솔초소길이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피눈물을 안고 선군을 시작한 다박솔언덕길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첫 걸음을 잊으면 만걸음을 잃는다.
다박솔을 잊으면 천만리도 잃고 후손만대도 잃는다.
그렇다.다박솔을 잊으면 인간이 아니고 혁명가가 아니다.그것을 잊으면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붉은기도 잊게 되고 조국도 잃으며 자주세계도 잃는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창조하는 력사가 얼마나 성스러운것이며 21세기 백두산혈통이 어떻게 계승되여야 하는가를 알려면,라남의 봉화를 높이 들고 강성부흥아리랑 북소리를 힘차게 울려가는 오늘의 장엄한 현실을 알고 저 멀리 소리쳐 오는 김정일조선의 휘황한 미래를 보자면 다박솔을 알아야 하며 다박솔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의 열매가 커지고 승리가 더 많아 질수록,세월이 흘러 갈수록 우리는 더 선명하게 더 열렬하게,더 사무치게 다박솔의 95년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국과 인민을 한품에 안고 몸부림치신 장군님의 피눈물의 만고풍상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운명적인 기로에서 선견지명 있는 선택을 하신 그이의 천재적인 예지를 잊지 말아야 하며 죽음도 각오하고 일어 나 오늘의 백두산길에 오르신 그 비범한 영웅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피눈물을 삼키시며 한자두자 애국의 친필서한을 쓰시던 95년의 1월의 그 비장한 새벽을 잊지 말아야 하고 여기 다박솔진지에 오르시여 저 멀리 만경대쪽을 바라보시며 한동안 말없이 서계시던 그 침묵의 1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병사들이 드리는 꽃다발을 받으시며 눈은 울고 입은 웃으시던 장군님의 그 가슴치는 심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사랑하는 인민이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 보시면서 선군길을 가셔야했던 장군님의 그 가슴 에이는 만단사연을,그래서 때로는 한밤중에 괴로운 심정을 달래시며 몇백리씩 차를 몰아 달리신 그 눈물겨운 이야기를 어찌 잊을수 있으랴.
다박솔언덕은 이제 선군시대의 전통이 되고 좌표가 되고 거울이 되였다.
그대가 누구이든 우리 시대 매 인간의 운명은 이 다박솔길과 하나로 이어 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투쟁과 생활의 진정한 뿌리,우리 시대의 모든 번영과 행복의 원줄기와도 같은 사랑스럽고 고마운 <나의 다박솔>로 우리의 심장에 더욱더 깊이 자리잡고 있다.
누구나 힘이 지치고 마음이 흐려 질 때면 여기에 올라 장군님의 크나큰 심장에 다시금 신념과 의지의 박동을 맞추며 삶과 투쟁의 새 출발을 할수 있게 되였다.
언제나 첫걸음의 정신,첫걸음의 기백,첫걸음의 속도로 장군님의 천만리선군길을 끝까지 걸어 나갈수 있게 되였다.
우리가 오늘 <ㅌ.ㄷ>를 추억하며 주체위업의 천만리길을 돌이켜 보듯이 먼 후날 우리 후세들은 다박솔길을 추억하며 선군혁명의 강성부흥시대를 긍지높이 노래하게 될것이다.
다박솔길,오랜 세월 너의 이름은 없었다.
너를 불러 시대에 웨치기에는 너무도 범상한 언덕이였다.
그러나 력사여 오늘은 붓을 들어 세월의 갈피에 써넣으라.
다박솔언덕은 피눈물의 바다에서 조선을 구원한 선군혁명제일봉,잠자는 인류의 머리우에 진리의 새벽종을 친 조선의 영원한 승리봉이다.
력사는,후손만대는 이 지구우에 진리와 힘을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한 슬기롭고 용맹한 정의의 수호명장이신 21세기 태양 김정일장군을 받들어 올린 다박솔혁명전설을 무궁토록 노래하게 될것이다.(조선중앙통신=조선통신)